1. 지적 재산권에 대한 의식


지식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며 지식 기반의 무형 가치가 중요해지고 있다. 저작권은 더 이상 전통 미술과 문학 작품 등 전문적인 영역만의 개념이 아니다. 개인이 휴대 전화로 찍은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업로드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개인 정보와 프라이버시권(right of privacy), 지적 재산권 등에 대한 인식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디지털 콘텐츠의 가치, 특히 NFT 아트의 가치는 더욱 주목받고 있다. 현재 전 세계 NFT 마켓은 지적 재산권의 권리와 보호는 미국의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Digital Millennium Copyright Act·DMCA)을 따른다.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은 1998년 미국 의회가 자국 내 온라인 디지털 콘텐츠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제정한 법안이다. 과거에는 저작권자가 직접 저작물의 무단 사용을 증명할 시에만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지만 이 법안 덕분에 저작권을 쉽게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메일 한 통으로 무단 저작물에 대한 게시 중단 통지를 보낼 수 있게 됐으며 콘텐츠를 삭제할 수도 있다. 콘텐츠가 플랫폼에서 삭제되면 NFT로 연결되는 링크가 끊어진다. 도용된 복제본은 플랫폼상에서 사라지게 되며, 저작권자는 이를 통해 작품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다.

실제 미저작권자의 NFT 판매 피해는 국내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픽셀 아트로 유명한 주재범 작가는 디지털 이미지를 구성하는 단위인 사각형의 픽셀(pixel)을 배열해 그림을 그린다. 어느 날 그는 세계 최대 NFT 마켓 오픈씨에서 누군가 자신의 동의도 없이 본인의 작품을 NFT로 발행해 판매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오픈씨에 업로드된 가짜 작품은 본인 작품의 픽셀 좌표와 전체 칸수까지 일치했다.
주재범 작가의 모나리자 NFT 작품과 오픈씨에서 판매된 모나리자 NFT. ©주재범 작가 인스타그램, 오픈씨.
누군가 주재범 작가의 작품을 일부 변용 후 거래한 것이다. 이미 판매된 가짜 작품의 가격은 약 3억 원에 달했다. 피해가 발생한 건 분명했지만 작품이 해외에서 판매됐기에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결국 주재범 작가는 해외 서비스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이가 도용한 작품을 판매하는 것을 막는 일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저작권 전문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판매 중지나 손해배상 청구 등 별도의 대응 없이 이 사태를 단순 해프닝으로 마무리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개구리라 불리는 캐릭터 ‘페페’를 패러디해 만든 〈새드 프로그 디스트릭트(Sad Frogs District)〉가 NFT로 판매됐는데, 이 역시 원작자가 발행한 NFT가 아니었던 것이다. 원작자인 매튜 퓨리(Matt Furie)의 요청과 디지털 밀레니얼 저작권법에 따라 해당 작품의 NFT는 삭제됐다. 이외에도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저작권 침해 사례는 더욱 많을 것이다.
새드 프로그 디스트릭트 NFT. ©새드 프로그 디스트릭트 오픈씨
NFT 아트는 기술적 요소가 결합해 있기 때문에 저작권에 대한 접근이 더욱 복잡하다. 2022년 NFT의 시초라 불리는 ‘크립토 펑크 V1’이 오픈씨에서 삭제되는 일이 발생했다. 삭제를 요청한 이는 ‘크립토 펑크 V2’ 개발자인 라바랩스(Larva Labs)였다. 라바랩스는 2017년 크립토 펑크 V1을 선보였으나, 저작권자가 사전에 정해 놓은 거래 조건이 충족되면 계약이 자동으로 이행되는 시스템인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에서 버그가 발견되어 이를 수정 후 크립토 펑크 V2를 출시했다.
크립토 펑크 V1 NFT. ©룩스레어
이 때문에 ‘크립토 펑크의 원본이 무엇인가’를 두고 논란이 불거지자, 오픈씨는 크립토 펑크 V1의 판매를 금지했다. 그러나 일부 개발자들이 크립토 펑크 V1의 오류를 수정한 NFT를 다시 선보였다. 수정된 크립토 펑크 V1은 오픈씨의 경쟁자 마켓으로 떠오르는 NFT 플랫폼 룩레어(LookRare)에서 주목받았다. 이에 위기 의식을 느낀 오픈씨는 크립토 펑크 V1의 판매 금지 조치를 철회했다. 그러나 크립토 펑크의 원본 여부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희소성을 중시하는 NFT 시장에서 크립토 펑크 V1이 합법적으로 유통된다면 크립토 펑크 NFT의 공급량이 증가해 크립토 펑크 V2의 희소가치에 타격이 갈 것이다. 현재 진행형인 이 사건이 어떻게 종결되느냐에 따라 NFT 시장의 저작권법이 조금이나마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NFT 시장은 성장하고 있지만 시장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는 미비하다. 더불어 NFT의 저작권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판례가 많이 쌓이지 않아 혼란한 상황이다. NFT는 현재 미술 시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성장하는 분야인 동시에 투자자와 기업까지 뒤엉켜 있다. 그 안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인한 충돌이 예상된다. NFT 시장은 아직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지만 정부는 성장하는 시장의 속도에 맞춰 관련 제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2. 소유권과 지적 재산권의 분리


NFT 시장에서 저작권과 함께 많은 논란을 빚는 것이 바로 소유권이다. 보통 물건을 구입하면 그 물건은 완벽하게 구매자의 소유가 되지만, 미술 시장은 전혀 다른 문법을 갖고 있다. 저작권은 크게 물질에 대한 저작권과 비물질에 대한 저작권으로 나뉜다. 이중 전자에 해당하는 ‘저작 재산권’은 저작권에서 발생하는 경제적인 이익에 대한 권리로, 양도 또는 상속이 가능하다. 반면 후자에 해당하는 ‘저작 인격권’은 창작자의 정신적 노력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다. 저작 재산권과 달리 양도 또는 상속이 되지 않고, 오직 창작자 본인에게만 적용된다.

비물질인 NFT 아트에도 기존 미술 시장에서의 저작 인격권이 적용된다. NFT 구매자는 NFT 이미지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 것이지, 이미지를 재가공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 그저 작품으로서 감상만 할 수 있다. 그러나 전 세계 NFT 시장 참여자의 다수는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NFT를 구매했다. 구매자 중 상당수는 투자자들이었는데 그들은 자신이 구매한 NFT로 수익을 창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허탈함을 느꼈다. 일부는 창작자에게 항의하며 커뮤니티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저작 인격권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다. 이에 소유권과 저작권이 통합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동의를 얻기 시작했다. 특히 고가의 NFT를 구입한 이들의 목소리가 컸다. 앞서 언급한 구매자들이 제작사인 라바랩스 측에 NFT 소유자들에게 소유권과 저작권 권리를 모두 부여하여 상업적 권리를 획득할 수 있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라바랩스 측에서 이를 허용하지 않아, 많은 구매자들이 NFT를 낮은 가격에 거래해 버린 후 커뮤니티에서 이탈하기도 했다.

여전히 NFT 작품을 구매하면 소유권과 함께 저작권도 양도받는 것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다. 전통 미술 매체인 회화 작품은 구매하더라도 재가공할 수 없다는 것이 많은 대중에게 친숙한 사실이지만, NFT 아트는 디지털 기반이라는 점에서 수집가들이 쉽게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2021년 말 저작권에 관한 기존 법칙을 깨고 수집가에게 소유권과 지적 재산권을 양도한 사례가 있다. NFT 시장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는 ‘BAYC(Bored Ape Yacht Club)’ 얘기다. BAYC는 유가랩스(Yuga Labs)의 NFT 프로젝트로, 컴퓨터 알고리즘이 이미지의 요소들을 무작위로 생성하고 조합해 만드는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아트다.
오픈씨 BAYC. ©오픈씨 BAYC Honorary Members 컬렉션
 
이런 형식의 디지털 아트는 ‘제너레이티브 아트(Generative art)’라고도 불리는데, 여러 제한 요소를 컴퓨터에 입력하면 알고리즘을 통해 수백만 가지 옵션을 생성한다. 이처럼 같은 조건 속 다른 조합을 통해 작품들이 각각의 고유성과 희귀성을 띄게 된다. 유가랩스는 이처럼 PFP NFT(Profile Picture NFT, 소셜 미디어에서 프로필 이미지로 사용할 수 있는 NFT)라는 새로운 예술 영역에서 혁신적인 행보를 보여주며 대번에 NFT 시장의 선두 주자로 자리 잡았다. 유가랩스는 또한 크립토 펑크의 사례처럼 저작권 논란이 큰 문제로 불거질 것을 예견했다. 이에 과감하게 NFT 구매자에게 저작권과 소유권을 모두 쥐여 주며 단숨에 시장을 장악했고, BAYC의 NFT 거래가 급증하자 NFT 시장은 최고가를 갱신했다.

한편 BAYC의 저작권을 획득한 구매자들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순수하게 자신이 BAYC의 일원임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상업적 이용권을 사용했다. BAYC의 이미지가 삽입된 모자와 후드 등을 생산해 함께 입거나 낮은 가격에 판매하며 자발적 팬덤 현상을 일으킨 것이다.

BAYC의 사례를 통해 NFT 시장은 기존 관습이 아닌 현재 시장 참여자들의 생각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BAYC는 NFT 세계가 개인이 소유권을 갖고 이득을 취하는 것이 아닌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세계임을 보여 줬다. 이전에는 NFT 시장 역시 제도권의 기업처럼 판매자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기조가 강했다. 이에 BAYC가 새로운 선례를 남긴 것이다. 

BAYC는 NFT 세계에서 그 형식과 내용에 색다르게 접근하며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 가고 있다. 커뮤니티를 위한 후속 NFT인 ‘보어드 에이프 켄넬 클럽(Bored Ape Kennel Club)’, 일명 ‘강아지 분양 NFT’를 발행해 BAYC 보유자들에게만 무료로 배포하는 등 남다른 행보를 보인 것이다. 또 BAYC는 보유자들에게 NFT에 관한 권리를 허락하기 전에도 커뮤니티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 파티를 개최한 바 있다. 2021년 10월 31일부터 11월 6일까지 뉴욕에서 열린 에이프 페스트(APE FEST)에선 갤러리 파티, 요트 파티 등이 열렸다. NFT 보유자들은 NFT를 멤버십 카드처럼 활용했고, 요트 파티 티켓을 선착순 무료로 제공 받았다.
Bored Ape Kennel Club. ©오픈씨 BAKC(Bored Ape Kennel Club) 페이지

 
3. 거버넌스, 투명과 공정을 외치다


앞서 BAYC의 사례에서 확인한 것처럼 NFT는 공정하고 투명한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NFT 생태계는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투명하고 확장성 있게 연결하는 현시대를 반영한다. 또 디지털 기술은 NFT의 탄생과 함께 탈권위를 외치며 ‘소비자 참여’라는 놀라운 가치를 이끌고 있다. 즉 NFT 기술로 인해 소유권에 대한 개념이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창작물이 단 한 사람의 소유로 귀속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NFT를 통해 하나의 창작물을 공동 소유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NFT는 물질로 존재하지 않기에 증명서처럼 나눠 가질 수 있으며, 개인이 소액으로 여러 작품을 구입할 수 있어 시장 참여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KISA 〈NFT 기술의 이해와 활용, 한계점 분석〉 보고서
또한 창작자는 NFT 기술 덕분에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쉽고 빠르게 인증할 수 있다. 과거 작품이 고가에 거래돼도, 유통 과정에서 경매사가 이익을 취하고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없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러나 구성원들이 공공 이익을 추구하는 블록체인 생태계 내에서는 누구나 정당한 수익을 취할 수 있다. 작품의 이력을 추적하는 것은 물론, 재판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일부를 보장받는 것이 가능하다.

블록체인 생태계에선 이미 참여자의 목소리가 크다.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투표 제도 덕분이다. 거버넌스는 과거 소수에 의해 이뤄졌던 의사 결정의 일방향성을 탈피해 참여자들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추구한다. 거버넌스를 통해 참여자는 블록체인 정책에 직접 관여할 수 있다. 물론 투자자와 개발자를 포함한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는 모두의 합의가 중요하다. 모든 사용자의 의견을 취합하고 투표 질문을 선정한 후, 웹사이트의 게시판 투표, 유튜브 회의 등에서 의결한다. 

물론 블록체인 기술 초기에는 탄탄한 거버넌스 체계를 갖추지 못했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은 최초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위기 상황이나 업그레이드와 같은 사항을 관련 인물과 개발자들이 비공식적으로 결정했다. 이후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의사 결정 체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기성의 투표 방식을 접목했다. 그러나 블록체인의 특성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 하에 새로운 거버넌스를 설계한 것이다.

거버넌스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투표와 차이가 있다.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투표란 사용자가 보유한 한 개의 토큰당 한 표를 행사하는 방식이다. 그러니 토큰 보유량을 기초로 하는 거버넌스는 토큰을 많이 보유한 사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투표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고자 여러 대안이 나오고 있으며, 그중 거버넌스는 의사 결정 방식에 대한 정확한 메커니즘 도입과 위기가 닥쳤을 때 대응하기 위해 갖춰진 체계다. 거버넌스의 등장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던 시기에도 수많은 고초를 겪으며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제 민주적인 접근을 통해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가치가 무엇이고, 그 편익의 경계를 어디까지 둘 것인지 고민하는 사회로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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