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밍 시대의 영화관

8월 24일 - FORECAST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글로벌 시네마 체인 시네월드가 미국 내 파산 신청을 고려 중이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영화관 산업은 살아날 수 있을까?

  • 글로벌 영화관 체인 2위 시네월드(Cineworld)가 미국 내 파산 보호 신청을 고려 중이다.
  • 국내 1위 멀티플렉스 CGV 또한 판데믹의 직격탄을 맞았다.
  • 멀티플렉스는 혁신을 보여 줄 수 있을까? 반쪽짜리 질문일지 모른다.

DEFINITION_시네월드
  • 글로벌 멀티플렉스 체인 2위다. 1995년 영국에서 시작했다. 전 세계 10개국에 751개 극장, 9189개의 스크린을 소유하고 있다.
  • 쇠락의 발단은 코로나였다. 2020년 3월 시네월드는 영국 내 모든 상영관 영업을 일시 중단했다. 2020년 8월 일부 극장 영업을 재개했으나 불과 두 달 만에 다시 영업 중단을 선언했다.
  • 2019년, 캐나다의 영화관 체인 시네플렉스(Cineplex)와 체결한 인수 합병 계약이 미뤄진 것 또한 타격이 컸다. 지난해 말 시네월드는 계약 이행 의무를 고의적으로 지연했다는 혐의가 인정되며 9억 3400만 달러의 손해 배상금을 물게 됐다. 
  • 2022년 8월 19일, 시네월드가 미국 내 파산 보호 신청을 고려 중인 것이 월스트리트저널에 의해 밝혀졌다. 코로나 기간 동안 누적된 부채 규모는 48억 달러. 해당 보도 후 시네월드의 주가는 58퍼센트 폭락했다. 경쟁사에도 후폭풍이 이어졌다. 글로벌 영화관 체인 1위인 AMC 엔터테인먼트의 주가 또한 40퍼센트 가량 폭락했다.

RECIPE_ 마블
  • 판데믹의 직격탄을 맞은 시네월드의 유일한 버팀목은 마블이었다. 2021년 10월에서야 제임스 본드 시리즈 〈007 노 타임 투 다이〉를 개봉하며 회복기에 들어섰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개봉과도 맞물리며 2021년 12월 시네월드의 매출은 코로나 이전인 2019년도 매출의 88퍼센트 수준까지 올라왔다.
  • 지난 3월 자레드 레토는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마블 영화가 아니었다면 영화관이 살아남았을지조차 모르겠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해 가장 크게 흥행에 성공한 다섯 개 영화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 〈블랙 위도우〉였다. 분노의 질주를 제외한 네 개 작품 모두 마블 세계관과 연결된 영화다. 마블은 코로나 기간 동안 시네월드뿐 아니라 전 세계 멀티플렉스에 숨을 불어넣는 역할이었다.

NUMBER_ 19
마블의 심폐 소생술은 멀티플렉스 종말의 반증이었다. 이미지와 사운드가 주는 매력이 압도적인 콘텐츠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영화관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다. 영미권만의 얘기는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국내 3대 멀티플렉스,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의 총 19개 지점이 영업을 종료했다. 국내 1위 멀티플렉스 CGV는 지난해 영업 손실 2411억 원을 기록했다. 시장 예상치 2181억 원을 상회하는 규모였다.
MONEY_ 14000원
영화관이 택한 전략은 티켓값 인상이다. 2000년 국내 멀티플렉스 입장료는 약 7000원이었다. 2013년 2월 영화 관람료 1만 원 시대가 개막했다. 현재는 주중 1만 4000원, 주말 1만 5000원 선이다. 미국 뉴욕시의 상영관 입장료가 16달러(한화 1만 9000원), 영국은 11파운드(1만 7000원) 선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 영화관은 여전히 저렴한 편이다. 그러나 대중의 입장은 다르다. 시네마 입장료의 가파른 인상폭은 고물가시대의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CONFLICT1_ OTT
2020년 2월 한국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영화관을 찾지 않는 이유’ 1위는 ‘영화관을 가지 않아도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서(36퍼센트)’였다. 영화관은 공적인 장소다. 멀고 불편하다. 시공간의 제약을 허문 OTT의 추월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같은 전문 스트리밍 플랫폼은 물론,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시장까지 넘보는 애플 티비 플러스, 자체 스포츠 IP로 스트리밍 플랫폼을 만든 FIFA, 커머스와 연결된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까지 다양한 형태의 OTT가 대거 등장했다. 서비스가 포화하며, 영화관에서만 누리던 마법같은 두 시간의 암흑은 매력이 아닌 페인 포인트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CONFLICT2_ 독립상영관
극도의 편의를 제공하는 OTT뿐만 아니라 소규모 상영관들도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 독립 극장 ; 아트나인, 라이카시네마와 같은 독립 상영관들은 멀티플렉스에서 주지 못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비주류 영화를 저렴한 가격에 볼 수 있다. 예술, 독립 영화에 특화된 큐레이션으로 마니아층의 마음을 사로잡고, 고정비에 대한 부담이 적어 운영이 수월하다. 
  • 모노플렉스 ; 화질과 음질이 대단치 않더라도 영화를 감상한다는 행위 자체에 집중한 공간이다. RNR은 유휴 공간을 소규모 영화관으로 개조해 영화를 상영한다. 호텔 없이 호텔업을 하는 에어비앤비처럼, 영화관 없이 영화관업을 하는 미래를 그린다. 레스토랑과 시네마를 결합해 만든 복합 문화 공간 오시리아가 대표적이다.

STRATEGY_ 큐레이션, 프리미엄, 해외
위기를 직면한 멀티플렉스는 다각도의 시도를 펼치고 있다.
  • 큐레이션 ; 2019년 10월, CGV의 예술 영화 전용 극장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가 출범했다. 국내 독립 예술 영화의 거점으로 성장하겠다는 포부였다. 예술 독립 영화 위주로 시간표를 구성하고, 영화 관련 장서를 보유한 도서관도 마련했다.
  • 프리미엄화 ; CGV의 씨네드쉐프는 레스토랑과 시네마를 결합한 프리미엄 관람권이다. 지난 2007년 첫 출시 후 지속적으로 리뉴얼해 왔다. 침대에 누워 고급 다이닝과 함께 영화 관람을 즐기는 콘셉트다. 티켓 가격은 1인 5만 원이다.
  • 해외 시장 ; CGV 글로벌 멀티플렉스 순위 5위를 차지한다. 올해 1분기 기준 CGV 글로벌 매출 비율은 한국이 1위(37퍼센트), 중국이 2위(28.7퍼센트), 튀르키예가 3위(11.9퍼센트)였다. 시장 상황이 녹록치는 않다. 지난해 코로나19의 충격으로 중국 시장에선 영업 손실 812억 원을 안았다. 튀르키예 시장은 근 몇 년간 리라화 가치 하락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

RISK_ 멀티플렉스
  • 멀티플렉스에는 이렇다 할 혁신이 없었다. 영화 상영과 스낵 장사, 명절마다 개봉하는 블록버스터 혹은 유명 인사와 함께하는 GV를 비슷한 형태로 십 수년간 유지해 왔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을 때도 지원금 제도를 시행하고, 키오스크 주문과 로봇 서비스를 도입하는 정도였다.
  • 마케팅 또한 기존 모델에 머물렀다. 영화 캐릭터를 활용한 굿즈, 영화 관람을 기록하는 포토티켓북은 DT 시대 이전에도 나올 수 있는 상품이었다. 미술 산업은 NFT 시장에 주목하고 게임 산업은 가상 현실과 증강 현실을 넘나들지만 멀티플렉스의 혁신은 과거에 멈춰 있다. OTT의 등장은 거들었을 뿐, 영화관 쇠퇴의 본질은 영화관 자체에 있다. 

REFERENCE_ 씨네라이브러리
  • CGV의 예술 영화 전용 극장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는 3년도 채 되지 않아 폐관 위기에 처했다. 문제는 비싼 임대료였다. 명동 한복판에 위치한 것이다. 소수의 수요만으로는 덩치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영업 종료 날짜는 2022년 8월 18일로 확정됐었다. 최근 임대인과의 협상으로 계약을 2년 연장하며 폐관은 면했으나, 독립 영화 전용관은 기존 다섯 개에서 두 개로 줄어들었다.
  • 씨네라이브러리의 실패는 멀티플렉스만의 가치에 질문을 던진다. 큐레이션은 도시 곳곳의 로컬 시네마로도 충분하다. OTT 만큼 엄청난 양의 영화를 상영하는 것도 어렵다. 독립 상영관들이 동네 책방의 역할을 한다면, OTT 플랫폼은 무한 검색과 열람이 가능한 인터넷 서점 및 전자책 시장과 같다. 멀티플렉스는 그 중간에 위치해 있다. 서점으로 치면 교보문고와 같다. 독립 극장만큼 색깔이 뚜렷한 큐레이션을 보여 주지 못하고, 넷플릭스만큼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멀티플렉스 모델만이 줄 수 있는 효용감을 찾아야 한다.

INSIGHT_ 공간
  • 살롱 ;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 영화 상영과 GV를 넘어 제작과 교육, 커뮤니티 모임이 이뤄지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이다.
  • 극장 문화 ; 기존 멀티플렉스는 일방향적인 구조였다. 상영하고, 관람하고, 떠났다. 멀티플렉스의 권위가 옅어진 시대에선 청중이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지난 7월 〈미니언즈2〉 개봉 당시 영미권 청소년들이 단체로 슈트를 입고 극장에 등장하며 화제가 됐다. 틱톡과 같은 소셜 미디어의 영향이 겹치며 〈미니언즈2〉 관람객들만의 밈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확장했다. 이처럼 멀티플렉스는 다수의 대중이 하나의 영화를 둘러싼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 랜드마크 ; 멀티플렉스의 장점은 규모다. 상영관에 입장하기 전과 후, 사람들은 넓은 라운지로 모인다. 꼭 영화를 관람하지 않더라도, 돈을 쓰지 않더라도 시간을 보내고 만남이 발생할 수 있는 장소다. 현재 멀티플렉스 라운지의 기능은 티켓 발권 및 스낵 구매로 한정돼 있다. 상영관에 입장하기 위한 임시 통로가 아닌 머무르고 싶은 광장으로 재구성한다면, 멀티플렉스는 그 지역 사람들이 공유하는 랜드마크로 자리잡을 수 있다.

FORESIGHT_ 관객
  • 멀티플렉스는 거칠게 말해 부동산 사업이다. 배급사의 콘텐츠를 명당에 디스플레이함으로써 수익이 발생했다. 현재 국내 영화 상영관 수는 610개에 달한다. 랜드마크로의 전환에 성공하고, 새로운 극장 문화가 형성된다 해도 지금의 덩치를 유지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한국 영화 산업에 한 획을 그었으나 40여 년 만에 폐관한 서울극장의 뒤를 이어, 상영관들이 속속들이 문을 닫는 것은 머지 않은 미래다. 관건은 어느 상영관이 살아남는가다.
  • 한국의 영화 감상 문화는 철저히 개인적이었다. 작은 불빛에 민감하고, 각자 숨죽여 영화를 감상했으며, 영화가 끝나면 빠르게 극장을 떠났다. 멀티플렉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선 시네마 측의 분발뿐 아니라 시민의 참여가 중요해진다. 멀티플렉스의 위기는 시네마의 향수와 OTT의 간편함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 세대에게 질문을 던진다. 영화관은 영화 그 이상의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답은 관객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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