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수 없는 여자들
3화

여성에게 학력 프리미엄이 있을까

여성만의 위험이 있다


고용 보호와 숙련 형성의 정치 경제 속에서 고용주가 투자를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가 성별이다.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고용주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서 직장을 그만둘 가능성이 높다고 여긴다. 기업 입장에서 투자 대비 수익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서면 여성 인력에 투자하는 비용도 줄어든다. 생산 레짐을 연구하는 대표적인 여성학자 마가리타 에스테베즈 아베(Margarita Estèvez-Abe)는 생산 체제를 구성하는 제도적 맥락이 젠더 격차를 만들고, 성별 직종 분리 현상을 강화시킨다고 분석했다.[1]

에스테베즈 아베는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 가사 노동의 불평등으로 인해 여성이 떠안게 되는 부담을 여성 특정 위험(women-specific risks)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여성은 결혼과 출산, 양육 등의 이유로 해고당할 수 있다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 동시에 꾸준히 기술을 키울 기회를 누리지 못하거나 습득한 숙련의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는 위험도 안고 있다.

한국은 여성 특정 위험이 실존하는 나라다. 2017년 통계청이 발표한 일·가정 양립 지표에 따르면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여성의 경력 단절 사유는 결혼이 가장 많고, 육아, 임신과 출산, 가족 돌봄, 자녀 교육 순으로 나타났다. 남녀가 가사를 공평하게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50퍼센트가 넘지만, 실제로 가사 노동을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고 답한 가구는 남성은 17.8퍼센트, 여성은 17.7퍼센트로 훨씬 낮다.

문제는 많은 기업이 여성의 가사 노동을 자발적인 선택으로 보고, 여성이 자의로 노동 시장에서 이탈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자녀 양육은 여성의 몫이라거나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육아를 돕는다는 명목의 관대한 유급 휴가 정책도 성별 직종 분리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긴 유급 휴가는 고용주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고용주가 유급 휴가에 대한 실질적인 부담을 지지 않더라도, 임시 인력을 고용해야 하는 등의 추가 비용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게다가 1년 이상의 긴 휴가를 쓴 노동자가 있다면, 복귀 시점에 노동자가 업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과 인사 관리 시스템 등이 있어야 한다. 고용 보호 법률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나라라면 추가 비용에 대한 기업의 부담이 더 커질 것이다. 고용주가 노동력을 붙잡아 두기 위해 인적 투자를 늘릴수록, 여성에게는 더 차별적인 노동 환경이 만들어지는 이유다.

여성이 경력 단절 후 복귀하는 과정도 결코 순탄치 않다. 출산 이후 직장에 복귀한 유자녀 여성들은 자신의 업무 능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들 한다. “전문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적합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당황했다”거나 “갑자기 머리가 새하얘진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시장 변화에 민감한 직업일수록 출산 후에 복귀한 여성의 당혹감은 더 커진다. 여기에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으로 생긴 공백 기간에 내 업무를 맡은 동료에 대한 미안함, 복귀 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불안함 등이 겹쳐 중첩된 어려움을 겪는다. 기업은 이들이 직장 생활에 빠르게 복귀할 수 있도록 적절한 교육을 제공해야 마땅하나, 가정으로의 이탈을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기업이라면 숙련도가 떨어진 여성을 업무의 최전선에 두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배워도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


남녀의 비활동 격차(inactivity rates)라는 지표가 있다. 비활동이란 고용되지 않았거나 일자리를 찾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남녀의 비활동 격차는 여성의 비활동률에서 남성의 비활동률을 뺀 값으로, 수치가 높을수록 남성에 비해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여성이 많다는 의미다.

2018년 OECD가 발간한 비활동 격차의 평균을 보면 중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전기 중등 교육(below upper secondary)이 가장 높고, 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후기 중등 교육(upper secondary), 대학 과정에 해당하는 고등 교육(tertiary) 순으로 수치가 감소했다. 대부분의 선진 국가에서는 학력 수준이 높아질수록 여성과 남성의 비활동률 격차가 줄어든다.

여성의 높은 교육 수준이 안정된 일자리를 가질 기회를 높인다는 학력 프리미엄 효과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부분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통하는 이야기다. 많은 연구가 실증 분석을 통해서 여성의 교육적 성취가 여성 고용 증가 현상을 설명하는 중요 요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근의 한국은 고학력 사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여성의 교육 수준은 과거에 비해서 월등하게 높아졌다. OECD가 수행하는 국제 학습 능력 평가에서도 여학생의 성적이 남학생과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2] 그런데 한국은 비교 대상이 되는 OECD 국가 중에서 홀로 다른 경향을 보인다. 학력이 높을수록 여성의 비활동률이 남성에 비해 높아졌다. 한국은 고등 교육, 후기 중등 교육 및 중등 후 비고등 교육, 전기 중등 교육 순으로 비활동 격차가 높았다.[3]

여성 교육 프리미엄을 노동 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나라는 미국이다. 대학 이상의 교육을 받은 여성이 노동 시장에서 유리한 지위를 가지는 것이다. 미국처럼 기업 특정 숙련을 요하는 제조업의 기반이 약하고, 기업이 노동자를 고용하거나 해고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유연성을 갖는 노동 시장에서는 여러 직장으로 전이가 가능한 대학 교육을 받은 이들이 노동 시장에서 유리한 지위를 갖는다.[4]

미국은 지식 기반 산업이 지배적이어서, 대학 교육이나 전문 자격 획득 여부에 따라 보상이 크게 달라지는 교육 프리미엄이 존재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더 높은 수준의 직업으로 진입하거나 승진할 때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비교 열위에 처하지 않는다.[5]

미국은 복지 정책의 측면에서 한국과 유사한 점이 많지만, 한국과는 달리 중산층 고학력 여성이 전문직, 관리직에 활발하게 진출한다. 출산이나 육아로 경력 단절을 겪는 경우도 적다. 1979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 고학력 여성의 합계 출산율은 2.0명으로 높은 편이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고졸 이하의 여성은 임금이 상승할 때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지만, 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여성은 임금이 상승할 때 오히려 아이를 더 낳는 경향이 있다고도 한다.[6] 고소득이 기대되는 고등 교육을 마친 여성이 일과 가정을 성공적으로 양립하고 있다는 의미다.

자녀가 있는 여성이 노동 시장에 복귀하는 형태도 한국과 다르다. 불평등이 심한 국가에서는 양질의 일자리를 갖고 있었던 여성이라고 해도, 경력 단절 이후 비슷한 수준의 일자리로 재진입하기가 어렵다. 국가 차원에서 제공하는 복지도 적고, 고용 보호도 약하기 때문에 자녀 양육을 위해 시간제 노동을 선택할 가능성도 높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은 생후 6개월 이상 자녀를 둔 여성의 42퍼센트가 주당 근로 시간이 30시간이 넘는 정규직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OECD에 따르면 미국 여성의 풀타임 고용률은 높은 편에 속한다. 2014년 OECD 17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미국 여성의 풀타임 고용률은 82퍼센트로 조사 대상 평균 70퍼센트보다 높았다. 반대로 파트타임 점유율은 조사 대상 평균 73퍼센트보다 낮은 66퍼센트였다.[7]

한국 여성의 학력에 따른 노동 시장 참여 정도를 분석한 연구가 있다.[8] 2005년과 2013년 상황을 비교해 보니, 전문대 졸업 이하 여성과 4년제 대졸 이상 여성의 고용률에 차이가 있었다. 2005년 전문대 졸업 이하의 연령별 고용률은 M자형 곡선을 보이는 반면에, 4년제 대졸 이상의 연령별 고용률은 L자 형태에 가까웠다. 노동 시장에서 나가면 다시 진입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2013년에는 2005년에 비해 모든 연령에서 고용률이 증가했고, 40대 후반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도 높아졌다. 하지만 80퍼센트에 근접하던 20대 후반 고학력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30대 중반에는 60퍼센트로 떨어졌고, 30대 후반이 되면 50퍼센트로 떨어졌다. 재진입이 활발한 시점은 50대 초반으로 70퍼센트에 달하지만 그마저도 급격하게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1980년대부터 2011년까지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과 합계 출산율, 경력 단절 지표를 사용해 여성의 일·가정 양립 지수를 만드는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9] 결과는 참담했다. 한국은 비교가 가능한 OECD 18개국 중에서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과 합계 출산율이 최하위 수준이었다. 반면 경력 단절 정도는 가장 높게 나타났다.

경제 활동 참가율은 15세부터 64세까지 전체 여성 인구 대비 경제 활동을 하거나 일할 의사를 가진 인력의 비율이다. 구직 의사를 가진 실업자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여성의 노동 시장 참여에 대한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파악하기에 유용하다. 한국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최저 수준에 머물렀다.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한국 여성이 지속적으로 노동 시장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동시에 합계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었다. 합계 출산율이란 한 여성이 가임 기간인 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숫자다. 한 사회의 출산 수준을 비교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지표이기도 하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국가별 합계 출산율의 평균을 구한 결과, 미국이 2.1명으로 가장 많은 자녀를 낳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1.22명으로 비교 대상국 중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출산율은 더 낮아지고 있다. 합계 출산율이 1.3명 이하이면 초저출산 국가로 분류하는데, 2017년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1.05명이다.[10] 여성들은 점점 더 아이 낳기를 꺼리고 있다.

경력 단절이 적은 사회는 연령별 경제 활동 참가율이 역U자형 모양을 그린다. 20대에서 40대 초반까지는 경제 활동 참가율이 증가하다가 40대 후반부터 감소하기 시작하는 형태다. 이에 반해 출산과 양육으로 경력 단절이 발생하면 그래프가 M자 형태를 보인다. 20대에는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이 비교적 높은 상태에 있지만 출산, 양육으로 인해 20대 중후반부터 30대에 접어들며 참가율이 감소하는 형태다. 자녀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난 50대 초반부터 증가 추세를 보이지만 60대부터 다시 크게 감소한다. 연구 결과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체로 경력 단절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M자형 그래프를 보였다. 한국은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경력 단절이 가장 심한 나라였다.

한국의 여성들에게는 노동 시장에서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여성의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출산율도 높아질 리 만무하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출산이 직장 생활에 타격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욕구를 간과한 채로 출산 자체만을 지원하는 정책은 직장 생활에서의 성공을 목표로 공부한 여성에게는 효과가 없는 제도다.

 

남성들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한 연구 모임 회식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유독 남성이 많은 자리였다. 식사가 한창일 무렵,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단체로 담배를 피우러 나간 모양이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한 남자 박사가 말했다. “같이 안 가세요?”

당시에는 이 질문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시간이 흘러 동료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거의 모든 직장에서 남성들은 회식 자리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특히 담배를 피우며 한다고 했다. 그래서 술을 즐기지 않거나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도 회식에 끝까지 남으려 하고 담배를 피우러 나간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이 최근에는 많이 줄고 있지만 회사 내부의 보이지 않는 남성 중심 관계망은 여전히 여성들의 인사 고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의 기업 내부 노동 시장은 남성 중심의 생계 부양 모델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대기업에서 형성되고 발전했다. 기업은 남성을 충원해 가족 부양을 위한 연공 임금과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 왔다. 내부 노동 시장으로 진입이 제약된 여성은 비정규직이나 영세 기업에 취업해 외부 노동 시장을 채워 왔다. 한국에서는 성별에 따라 노동 시장이 분절되고, 고학력 여성의 취업 유인이 약화됐기 때문에 미국처럼 일반 교육으로 인한 여성 고용 프리미엄 효과가 높을 수 없었다. 양질의 일자리에서 여성을 배제하거나 승진에 있어서 여성을 장벽에 부딪히게 하는 구조적 기제가 작동했다.

한국의 성별 직업 분리와 고용 형태의 젠더 차이에 주목한 연구들은 한국 노동 시장의 성별 분리가 수직적, 수평적 분리 모두에서 여성에게 불리한 결과를 낳았다고 강조한다.[11] 한국의 경우 1990년대 이후부터 여성의 고용률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늘어난 인력이 여성 중심 직종에 몰리는 바람에 성별 직종 분리는 더 심화됐다는 것이다.

외환 위기로 인한 구조조정은 여성 정규직을 비정규직화하는 과정이었다.[12] 2008년의 글로벌 경제 위기는 여성 노동 시장에 추가적인 타격을 가했다. 외환 위기 당시 실업 사태의 핵심은 대기업의 구조조정이었고, 상대적으로 안정된 일자리를 가지고 있던 남녀가 고용 불안을 겪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는 한국 여성 노동 시장의 비정규직화가 진행될 대로 진행된 후에 발생한 일이었기에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 노동이 추가로 충격을 받았다[13]

최근까지 고학력 여성의 노동 시장 참여가 저조한 현상은 이중 노동 시장 구조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남성 중심의 내부 노동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한국에서는 내부 권력이 남성에게 집중된다. 공식 조직이 남성의 연결망 중심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남성 중심 조직은 남성의 경험이나 남성 중심의 기준이 능력의 개념을 결정짓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고학력 전문직 여성은 자신의 업적과 능력을 낮게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제한을 경험한다.[14] 전문직이나 관리직에는 여성이 진입하기 어렵다는 문제 외에도, 업무상의 차별이나 승진 기회 차별, 여성을 전문직 종사자로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 고객의 태도, 남성 위주의 문화와 관행이 존재하고 있다.

남성 위주 문화의 또 다른 사례는 장시간 근로가 회사에 대한 충성심으로 평가받는다는 점이다. 장시간 근로가 인사 고과에 영향을 미치면, 일과 가정을 동시에 지켜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여성들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일과 가정의 양립, 일과 생활의 균형을 논할 때 근로 시간 단축을 빼놓을 수 없는 문제로 지적해 왔다.

그러나 저임금, 장시간 노동 관행은 여전히 노동 시장에 남아 있다. 한국의 근로 시간은 주 40시간제를 기본으로 미사용 연차 휴가에 대한 보상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장시간 근로는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근로자 1인당 연평균 근로 시간은 2007년 기준 2316시간으로 OECD 30개 국가 중에서 가장 길다. 2017년에는 2024시간으로 줄기는 했지만, OECD 평균인 1759시간에 비하면 265시간이나 길다. 장시간 일하는 노동자의 비중도 압도적으로 높다. 일본의 노동 정책 연구·연수 기구는 2016년 주 49시간 이상 근무하는 노동자의 비중을 국가별로 비교 연구했다. 한국은 전체 근로자의 약 32퍼센트가 장시간 근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5]

장시간 노동은 한국 여성의 일과 가정 양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장시간 근무는 충성심의 지표로 간주되어 근무 평가에 반영된다. 가정 내의 재생산 활동을 전담해야 하는 유자녀 여성에게 장시간 근무는 쉽지 않다. 아이가 있는 여성은 직장 생활에서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아이를 돌보기 위해 일찍 퇴근해야 한다. 결국 직장 경력을 위해서 출산을 포기하거나, 노동 시장에서 이탈해 주부로 남는 옵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국가 차원에서는 일하는 여성이 어떤 선택을 하든 문제가 생긴다. 많은 여성이 출산을 포기하거나 아이를 적게 낳을 경우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이들이 전업주부로 돌아서면 노동력 손실이 상당할 것이다.

한국 사회의 장시간 근로 문화는 노동 시간과 보육 시스템의 불균형을 초래한다.[16] 장시간 노동은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전반적인 사회 구조와 경제 구조가 변화하지 않는 한 사라지기 쉽지 않다. 일부 기업에서 유연 근무 제도를 실시하는 등의 긍정적인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기업 문화와 경쟁, 성과주의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부분적으로만 활용되거나 실제 활용률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생애 주기의 특정한 시기나 근로자 개인 또는 가정의 필요에 의해 고용을 유지하면서도 근무 시간을 탄력적으로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제도들은 제한적이다. 육아기 근무 시간 단축 제도, 부모 육아 휴직 제도 등도 기업 문화나 인식의 부재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 장시간 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제도가 있어도 불이익을 받지 않고 사용하기에는 불안하다.

직장이 있는 여성에게 일과 가정의 양립보다 우선시되는 문제는 직장 안에서 자신의 능력을 선보일 기회가 얼마나 많이 주어지느냐다. 직장에서의 미래 보장은 현재의 경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남성 동료에 비해 승진에서 밀린다는 선례가 있다면 직장 생활을 포기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여성의 경력 단절은 유리 천장이라고 불리는 직장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은 단단한 유리 천장을 가진 국가다.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매년 3월 8일 여성의 날을 기념해 여성의 사회 진출 및 기업 내 승진 기회를 보여 주는 유리 천장 지수(glass-ceiling index)를 발표하고 있다. 2017년 한국은 비교 대상이 되는 29개 국가 중에서 최하위를 차지했다. 미국보다도 순위가 낮았다. 미국은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 같은 복지 국가도 아니고, 불평등으로 대표되는 어두운 측면이 있는 나라인데도 그렇다.

한번 직장을 포기한 여성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노동 시장에 재진입하지 못한다. 업무와 관련된 식사 자리에서 한 여성분을 만난 적이 있다. 내가 박사 학위를 따고 정부 기관에서 일하고 있다고 소개하니 그가 말했다. “저도 박사인데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해요.”

그는 자신의 나이가 몇 살처럼 보이느냐고 물었다. 마흔 정도로 보인다고 했더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쉰 넘었는데, 그렇게 안 보이죠? 내가 외모 관리에 신경을 좀 쓴답니다. 나이가 덜 들어 보여야 시간제 일자리라도 채용될 것 같아서요. 50대 중반인 사람이 시간 강사 자리를 얻을 수 있겠어요? 아이 낳고 경력 단절이 되니 직장으로 돌아가기 정말 쉽지 않아요. 해외에서 박사 학위 받으면 뭐해요.”

그는 정부의 일자리 중개 사업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평균 급여에 대해 듣고는 너무 적은 금액이라며 아쉬워했다. 정부 기관에서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해 알선하는 일자리는 대부분 180~190만 원 수준의 임금을 준다. 고학력 여성이 기대하는 것에 비해 적은 금액이다.

국가 주도의 여성 경제 활동 촉진법 사각 지대는 고학력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자리의 미스 매치는 고학력 여성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여성의 노동 시장 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고학력 경력 단절 여성들의 일자리 마련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들이 노동 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당사자는 물론, 고급 인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국가와 기업 모두에게 손해이기 때문이다.
[1]
Margarita Estevez-Abe, 〈Gendering the Varieties of Capitalism: A Study of Occupational Segregation by Sex in Advanced Industrial Societies〉, 《World Politics》, 2006.
[2]
신윤정, 〈OECD 지표를 통해서 본 우리나라의 양성 격차와 일·가정 양립〉, 《보건복지포럼》, 2015.
[3]
OECD, 〈OECD Education at a Glance〉, 2013.
[4]
하연섭, 〈인적 자원 개발 정책의 비교 분석: 생산 레짐 이론을 중심으로〉, 《행정논총》 제46호, 2008.
[5]
Margarita Estevez-Abe, 〈Gendering the Varieties of Capitalism: A Study of Occupational Segregation by Sex in Advanced Industrial Societies〉, 《World Politics》, 2006.
[6]
Choi S., 〈Women’s Wage and Childbearing〉, 《한국인구학》, 2012.
[7]
OECD Labour Database.
[8]
정성미, 〈여성 노동 시장의 특징과 최근의 변화〉, 《노동리뷰》, 한국노동연구원, 2014. 6.
[9]
최성은, 〈여성 일·가정 양립의 제도주의적 분석〉, 연세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6.
[10]
〈통계청장 “올해 합계 출산율 1.0 미만…인구 감소 빨라질 것”〉, 《연합뉴스》, 2018. 11. 18.
[11]
김유선, 〈노동 복지 결정 요인 분석: 국가 복지와 기업 복지 비교〉, 제10회 한국 노동 패널 학술 대회 논문, 한국노동연구원, 2012.
[12]
이영자, 〈신자유주의 노동 시장과 여성 노동자성〉, 《한국여성학》, 2004.
[13]
배은경, 〈‘경제 위기’와 한국 여성〉, 《페미니즘 연구》 , 2009.
[14]
김현미, 〈여성 대학생과 커리어 개발: 비판과 성찰을 위한 시론〉, 《여성과 직업》, 부산대학교 여성연구소, 2001.
[15]
조현아, 〈韓, 작년 근로 시간 OECD 3위…장시간 근로자 비중 32% 압도〉, 《뉴시스》, 2018. 7. 15.
[16]
김은정, 이진숙, 최인선, 〈자녀 양육 실태 및 돌봄 지원 서비스 개선 방안: 맞벌이 가구 중심으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4.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