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수 없는 여자들

엄마 되기를 거부합니다

고학력 중산층 전업주부


일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경제력이 있었다면 아이를 위해서 당장 육아 휴직을 사용했을 것이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은 우리 가정에 엄청난 타격을 안겼다. 대전 소재의 연구원에 취직하고, 서울에서 대전으로 이사를 준비할 때였다. 우리 부부는 집보다 먼저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을 구하느라 분주했다. 가장 먼저 정부에서 실시하는 아이돌보미 사업에 지원했다. 월 소득이 해당 사업 지원 대상에서 벗어나는 고소득 계층으로 분류돼 지원금은 받을 수 없었지만 신청은 해볼 수 있었다. 그런데 현 주소지가 서울로 되어 있어 이사하기 전까지는 사업에 지원할 수가 없었다. 신청 기간도 정해져 있었다.

당시 나는 연구 위원이라는 비교적 높은 직책을 맡기는 했지만 함부로 거취를 결정하기 힘든 새내기 직원이었다. 정부 사업은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직장인에게는 버팀목이 되어 주지 않았다. 결국 지인을 통해 소개 받은 아주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기로 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이 학교만 가면 책상에 엎드려 있거나, 배가 아프다며 보건실을 들락날락했다. 새 학기 증후군을 겪고 있는 거였다. 결국 담임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머니, 힘드시겠지만 아이 등교는 어머님이 함께하시면 좋겠습니다.”

다행히 직장에는 유연 근무제가 있었다. 지방 정부 차원에서 유연 근무를 장려하라는 공문이 내려온 터라 어렵지 않게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었다. 등굣길을 함께한 후부터 아이가 변하기 시작했다. 용기 있게 교실로 들어갔고 수업에도 적극 참여했다. 하지만 내가 동행하지 않는 학원에서의 불안은 여전했다. 도우미 비용에 월급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었지만, 아이는 수시로 전화해 불안을 토로했고 도우미 아주머니는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짜증을 냈다. 돈은 많이 쓰는데 도무지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다.

남편과 상의해 시댁에 도움을 구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시어머니께서는 상황을 듣자마자 보따리 하나만 들고 대전으로 와주셨다. 시어머니께도 꽤 힘든 생활이었다. 주중에는 우리 집에 머물면서 아이를 학교와 학원에 보내고, 주말에는 본가에서 일을 보셨다. 물론 시어머니께도 적지 않은 돌봄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그러나 도우미에게 지급해야 할 만큼은 아니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엄청난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기에 더할 나위 없는 선택지다.

하지만 모든 여성이 유연 근무를 신청하고, 아이를 돌봐 줄 가족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시어머니 찬스’를 사용할 수 없었다면 지금쯤 연구실 책상에 앉아 있지 못했을 것이고, 연구원은 성실하고 열정 넘치는 박사급 여성 인력을 잃었을 것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육아는 정부가 아니라 가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아이를 가진 직장 여성인 내가 일을 그만두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의 저출산 지원 사업도 아니고, 아동 수당이나 보육 지원도, 여성을 위한 일·가정 양립 정책도 아닌, 가족의 희생이었다.

상식적으로는 여성의 학력이 높아지고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 부모 대신 아이를 돌봐 주는 베이비시터 등 가사 노동의 외주화 규모가 커져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공공 보육 서비스가 취약한 나라인데도 다른 국가에 비해 가사 노동 시장의 규모가 작다. 그 이유는 고학력 여성의 저조한 노동 시장 참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남성 중심의 기업 내부 노동은 저학력 여성보다 고학력 여성에게 더 높은 장벽을 세운다. 고학력 중산층 주부는 아이를 낳으면 직장을 그만두고 가사 노동을 맡는다. 집에서 아이를 보는 여성이 많으니 외부에 가사 노동을 맡기는 일이 줄어든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서 이상적인 가족 모델은 남성이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지고, 여성이 가사 노동을 전담하는 남성 1인 생계 부양자-여성 보살핌 노동 전담자 형태였다. 이 모델은 남성의 임금이 온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제대로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경제가 한창 성장할 때도 남성 혼자 모든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임금을 버는 경우는 적었다. 실제로는 여성이 가사 노동을 전담하며 생계를 보조할 수 있는 활동까지 병행하는 가정이 많았다. 남성의 벌이로만 온 가족이 유지되고, 여성이 집에서 가사 일에만 집중하는 모델은 중산층 이상에서나 가능했다.[1]

맞벌이 부부가 일반적인 형태가 된 지금은 가사 노동을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 그러나 유자녀 가정의 자녀 양육 행태를 조사 분석한 연구 결과를 보면,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 많은 집안일을 부담하는 양상은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미취학 자녀를 둔 여성을 대상으로 육아 시간과 가사 시간을 조사했더니 맞벌이 부부인 경우에도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맞벌이 부부의 평일 기준 평균 육아 투입 시간을 보면 여성이 4.3시간, 남편이 1.3시간이었다. 맞벌이 부부가 아닌 경우 여성은 6.7시간, 남편은 1.2시간으로 그 차이가 더 컸다.[2]

여성이 육아와 가사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구조는 가부장적인 사회 문화 탓일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은 학력이 높고 소득이 많을수록 가사나 육아를 공평하게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성들도 육아에 전념해야 하는 시기가 있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었다. 미취학 자녀를 둔 여성에 대한 조사에서 엄마들은 아이를 시설에 맡기지 않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아이가 너무 어려서(67.6퍼센트), 내가 직접 키우는 것이 정서 발달 등에 더 좋을 것 같아서(19.2퍼센트)라고 답했다. 부모에게 아이를 스스로 돌보고 싶다는 욕구는 당연한 것이다. 돌봄 서비스에서 완벽히 채울 수 없는 공백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스웨덴처럼 아이가 어릴 때 부모가 양육에 오랜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유자녀 여성의 자녀를 직접 돌보겠다는 결정이 경력 단절 또는 노동 시장 진입 포기로 연결된다.

우리나라의 20~44세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여성의 이상적인 결혼 연령에 대해 물었다. 남녀 모두 고학력일수록 여성의 초혼 연령을 늦춰 말하는 경향이 있었다. 미혼 여성 중 취업 상태인 응답자의 경우, 여성의 이상적인 결혼 연령을 더 높게 응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해도 자녀를 가지지 않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여성의 60.9퍼센트, 남성의 47.4퍼센트가 찬성했다. 미혼 여성 응답자의 과반수가 출산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학력 수준이나 연령에 따른 차이도 크지 않았다. 35세 미만의 미혼 여성에게 현재까지 결혼하지 않은 이유를 물어본 결과 결혼할 생각이 없어서(25퍼센트)가 가장 많은 공감을 얻었고, 결혼보다 내가 하는 일에 더 충실하고 싶어서(12.5퍼센트), 결혼 생활과 직장 일을 동시에 수행하기 곤란하고 사회 활동에 지장이 생기므로(11.7퍼센트)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2017년 한 대학에서 복지 정책을 강의하던 때의 일이다. 수업에는 80여 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저출산 대책이 꼭 필요한지, 복지 정책이 여성을 위한 것인지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남학생 네 명과 여학생 네 명에게 아이를 몇 명 낳고 싶은지 물었다. 남학생들은 최소 두 명을 낳고 싶다고 했다. 연봉이 충분하면 그보다 더 많이 낳을 거라는 의견도 있었다.

반대로 여학생들은 ‘결혼 생각이 없다’, ‘결혼은 해도 아이는 절대 낳지 않겠다’고 답했다. 여학생들은 자녀 출산과 양육으로 인해 자신이 피해를 입을 것이 자명하다고 했다. 특히 자기 꿈을 버리면서 자녀의 입시 경쟁에 최선을 다했던 엄마의 모습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그들의 희생에 감사하면서도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마다 난처한 입장이었다. 간혹 학생들 중에 왜 저출산이 문제가 되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아이를 낳아 놓고 제대로 책임지지 못할 거라면 아이를 낳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의미다. 이런 견해를 밝히는 학생들 앞에서 나는 고민에 빠지곤 했다. 복지 정책을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저출산 문제가 향후 우리나라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국가 경제가 잘 굴러가려면 생산 가능 연령인 15~64세에 해당하는 인구수가 어느 정도인지가 중요하다. 적어도 지금 수준으로 경제가 유지되려면 남녀 한 쌍이 결혼해서 자녀를 둘 이상 낳아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를 키우는 직장 여성으로서는 아이 낳기를 권하기가 어려웠다. 출산율 높이기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이나, 사회 진출을 꿈꾸는 고학력 여성에게는 여전히 무거운 짐이다. 한국에서 젊은 여성이 학습한 엄마 되기의 과정은 직장 생활과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 분명하다.

 

돌봄의 개인화


아이가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동생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아이 하나를 건사하기에도 우리 부부의 삶은 고단하다. 결혼 초기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였기에 퇴근할 때까지 아이를 봐줄 수 있는 직장 내의 어린이집을 이용했다. 15개월부터 보냈던 곳인데, 일곱 살이 되던 해에 보육 수요가 폭증하면서 반 정원이 두 배로 늘었다.

아이가 머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응급실로 달려갔던 날이 생생하다. 응급실에서 만난 아이의 모습은 생각보다 멀쩡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흘러내린 피를 닦고 옷을 갈아입혔다고 했다. 말끔한 매무새에 안도했던 것도 잠시, 아이의 발을 보고 끝내 주저앉아 울었다. 발바닥 전체가 빨간 피로 물들어 있었다. 당시 나는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아동 보육 담당 입법조사관보로 일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아동과 보육 정책을 논하는 일을 하면서 정작 내 자식을 돌보지 못한 죄인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돈이 많이 들더라도 소수의 정원으로 운영하는 영어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기로 했다. 조기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도, 형편이 넉넉해서도 아니었다. 근처의 일반 유치원은 대기 명단이 가득 찼고, 하원 시간도 오후 3~4시로 빨랐다. 하원을 도와 줄 도우미를 구하거나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영어 유치원은 추가 비용을 내면 6시까지 아이를 맡길 수 있었다.

아이 돌봄의 문제를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국가 정책은 내게 해결 방안이 되어 주지 못했고, 시장에서 제공하는 비싼 방법을 택해야 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가정이었다면, 엄마인 내가 아이를 위해 직장을 그만뒀을 것이다. 돌봄이 사회화되지 않은 나라에서 직장 일과 아이 돌봄, 장시간 근로에 대한 압박이 더해지면 여성은 노동 시장 진입을 포기하게 된다.

한국의 공공 보육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낮은 수준이며, 보육 교사에 대한 처우도 열악하다. 한국의 보육 관련 서비스는 스웨덴처럼 공공 보육 서비스를 통해서가 아니라, 민간 보육 시설에 의존해 급격하게 확대됐다.[3] 1991년 영유아보육법 제정 이래 민간 보육 시설의 설립이 자유로워졌고, 1995년에는 보육 확충 3개년 계획을 통해 보육 시설의 민간 참여 유인을 늘렸다. 1997년에는 보육 시설 설립을 인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면서 양적 확대가 궤도에 올랐다. 1990년대 경제 위기가 도래하고, 2000년대 초반부터 저출산이 사회적 화두가 되면서 정부는 보육 시설을 늘리도록 했다. 김대중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는 10년 동안 여성의 경제 활동을 지원하고 양육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보육에 대한 관심은 더 커졌다. 진보에서 보수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로도 이런 기조가 유지된 덕에 0~5세 무상 보육과 양육 수당 지급이라는 성과가 나왔다.

한국 정부는 2016년 7월부터 맞춤형 보육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아이와 부모의 다양한 요구에 맞춰 보육 지원을 다양화하겠다는 취지다. 맞벌이 가정에는 장시간의 충분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고, 가정 내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경우에는 필요한 시간에만 서비스를 제공해 건강한 성장을 돕는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어린이집이 보육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어린이집 지원이 간절한, 일하는 엄마에게 기회를 먼저 줄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러나 맞춤형 보육 정책은 말도 많고 탈도 많다. 0~2세를 대상으로 무상 보육을 실시하던 종래의 방식에서 부모의 취업 여부와 자격 심사를 거쳐 12시간 종일반과 6시간 반일반, 15시간 긴급 교육 바우처 등으로 지원 내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선 취업 여부와 자격 심사라는 조건은 비공식 노동자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비공식 노동자는 기관의 보육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이유를 서류 한 장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정부의 지원 방식은 비공식 노동자가 자신의 처지를 구구절절 글로 남겨 담당 직원에게 보내야 하고, 급여 증명을 위해 생활비 통장을 증빙 서류로 제출하게 만들었다.[4]

다른 돌봄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도 아니다. 시간 연장이 가능한 어린이집을 찾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다. 워킹맘들 사이에는 어린이집에서 늦게까지 아이를 맡기는 부모들을 꺼린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아이를 맡길 엄마들은 오후 4시 이후 어린이집에 머무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는지부터 확인한다. 내 아이만 남아 구박을 받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탓이다. 어린이집은 어린이집대로 고충이 있었다. 변화된 정책에 발맞출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고, 맞춤형 보육 교사의 인건비는 축소되어 보육 교사들의 소진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사실 직장 여성의 자녀 돌봄을 위해 가장 좋은 방안은직장 내 어린이집이다. 어린 자녀와 함께 출퇴근이 가능하고, 간간이 아이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조건이 없다. 한국은 상시 여성 근로자 300명 이상 또는 근로자 500명을 고용하는 단위 사업장이 직장 어린이집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무 설치 대상 사업주는 직장 어린이집을 단독으로 설치하거나, 지역 어린이집과 위탁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근로자의 자녀 보육을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상시 여성 근로자 300명 이상 또는 근로자 500명 이상 대기업 종사자만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직장 어린이집 설치 의무 대상인 사업장은 전체의 6~8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5] 해당 사업장의 보육 수요가 다 충족되는 것도 아니다. 보육 수요에 넉넉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업장이 한국에 얼마나 있을까. 중소기업과 소규모 영세 사업장 근로자들에게 직장 어린이집이란 먼 나라 이야기와 같다. 중소기업이나 영세 사업장에 일정 비용을 지원해 주고 직장 어린이집을 설치하도록 강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에서 마련한 수많은 정책은 일하는 여성이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6월 모교에서 강연했을 때가 떠오른다. 내가 쓴 논문이 연세대학교 복지 국가 연구 센터의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돼 특별 강연차 방문한 것이었다. 다양한 전공을 가진 학생들과 연구자들이 참석했다. 강연 후에 한 남성이 이런 질문을 했다. “제가 아는 고학력 여성은 시간제 일자리를 선호하던데요. 요즘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도 많아요. 발표하신 내용은 제조업 중심 시기에나 해당되는 내용 아닌가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긴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만약 내게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여성들이 정말로 시간제 일자리를 선호한다고 확신할 수 있나요? 왜 시간제 일자리를 택할 수밖에 없는지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성이 노동 시장에서 한번 퇴장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구조에서 시간제 일자리 확산은 커리어 쌓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간제 일자리가 여성의 일과 가정 양립에 도움이 되려면, 시간제 일자리의 급여 수준 및 복리 후생이 정규직 일자리와 비슷한 정도가 되어야 한다. 이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제 일자리 정책의 남발은 성별 직종 분리 현상을 더 심화시키고, 여성을 핵심 노동 시장에서 밀려나게 만들 수 있다.

지인에게 비정규직 노동자의 설움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1년 계약으로 입사한 지 4개월이 지난, 7개월 차 임신부였다. 입사 시험을 치를 때만 해도 자신이 임신 중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입사와 동시에 임신 소식을 들었는데, 고용에 문제가 생길까 봐 회사에 알리지 못했다. 입사를 축하하기 위한 자리에서도 감기약을 먹는다는 어설픈 이유를 대며 술잔을 거절했다. 그러나 입덧이 시작되고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지경이 되자 그제야 임신 사실을 밝혔다. 그는 출산 휴가는 쓰겠지만 육아 휴직은 안 되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1년밖에 계약하지 않았는데 육아 휴직을 사용하면 자기 일은 누가 하냐는 것이다. 자리를 잃는 것이 두려워 남편이 육아 휴직을 쓰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출산 전후 휴가 제도는 근로기준법 제74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여성이 자녀를 낳는 경우 출산 전후로 90일의 휴가를 보장받을 수 있다. 법적으로 모든 여성 임금 근로자는 이 제도를 통해 휴가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 2005년부터는 출산 휴가 급여 90일분을 모두 고용 보험에서 지급하도록 사회 보험 지급이 확대됐다. 법령의 정비는 일정한 효과를 거뒀다. 기혼 여성의 출산 전후 휴가 사용 경험을 조사한 결과, 2001년 이전 출생아를 둔 여성보다 2010년 이후 출생아를 둔 여성의 사용 경험이 많았다. 최근 10년간 국가 정책 기조가 일·가정 양립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뀌었고, 가부장적 사회 문화가 약화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가 모든 노동자를 포용하지는 못하고 있다. 상용직 여성과 임시직 혹은 일용직 노동자 간의 불평등은 상존한다. 상용직 여성은 출산 전후 휴가를 사용하는 비율이 높지만, 임시직이나 일용직 노동자의 경우에는 사용률이 매우 낮다. 게다가 출산 전후로 경력 단절을 경험한 대부분의 여성이 출산 전후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고 퇴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고용 보험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닌 특수 고용 노동자와 프리랜서를 포함한 자영업자도 출산 전후 휴가 급여의 수급 대상이 아니다. 고용 보험 가입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가입하지 않고 있는 영세한 사업장 근로자와 비정규직 근로자도 출산 휴가 급여를 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고용 보험과 건강 보험의 대상이라 해도 피보험 단위 기간이 180일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가 있어 제도 안에서도 사각지대가 있다.[6]

육아 휴직의 사용 실태는 출산 휴가보다 더 심각하다. 여성의 육아 휴직 사용 경험을 분석한 결과 상용직의 경우 46.4퍼센트가 사용했지만, 임시직이나 일용직 노동자의 경우 4.7퍼센트만 사용했다.[7] 한국에 육아 휴직 제도가 생긴 것은 1987년 12월 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에 생후 1년 미만의 영아를 둔 여성이 육아 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는 조항을 명시하면서부터다. 1995년에는 출산한 여성 근로자를 대신하여 그 배우자인 남성도 육아 휴직을 사용할 수 있게 됐고, 2001년부터는 성별을 불문하고 생후 1년 미만의 영아를 둔 부모라면 모두 각자의 육아 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2008년부터 도입된 시간제 육아 휴직인 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 제도는 주당 15~30시간 근무하며, 연장 근무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행 육아 휴직 제도에서는 만 8세 이하 자녀가 있는 남녀는 최대 1년 동안 휴직할 수 있다. 그러나 육아 휴직 제도를 이용하는 남성의 비율은 매우 낮다. 출산 전후 휴가 제도처럼 고용 보험의 피보험 대상이 아니거나, 자격 요건이 미달되면 육아 휴직 제도를 활용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출산 전후 휴가 급여를 받는 수급자라 하더라도 일부 영세 사업 근로자나 비정규직 근로자는 육아 휴직 제도를 사용하지 못한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여성도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없으면 선택의 길은 하나다. 생물학적 이유에서든, 사회적 분위기와 관습이 혼합된 결과이든 한국 사회에서 육아는 엄마 역할이다.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도 없고, 가족에게 손을 뻗을 수도 없다면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엄마가 아이에 대한 책임을 진다. 현 직장으로의 입사와 아이의 입학이 겹쳐 수심이 깊은 나를 보고, 연구원 선배는 지금이 육아 휴직을 써야 할 시기라고 조언했다. 법적인 권리이니 고민하지 말고 쓰라는 응원도 했다. 그는 내게 “당신의 담당 분야가 여성·아동 정책이 아니냐”며 “잔 다르크처럼 멋지게 여성의 권리를 누리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고 했다.

남편에게 육아 휴직을 쓰라고 한 적도 있다. 우리 부부는 마땅한 자산은 없고 소득은 애매하게 높아 모든 정부 지원 정책에서 배제되는 월급쟁이다. 우리 부부의 월급이 아예 한 자리 수가 높았다면 아이를 위해서 과감히 육아 휴직을 사용했을 것이다. 2018년 7월부터 우리나라는 부모가 모두 육아 휴직을 쓰는 경우, 마지막으로 사용한 사람의 육아 휴직 급여를 통상 입금의 100퍼센트로 상향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육아 휴직 수당은 소득을 충분히 대체하지 못한다. 책상 위에서 다뤘던 육아 휴직 정책은 진보한 것이었는데, 막상 내가 도움을 받으려니 있으나 마나 한 정책이었다.

그나마 공공 기관에서 근무하는 나는 육아 휴직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편에 속했다. 민간 기업이나 대체 인력을 구하기 힘든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경우는 어떨까. 딸 친구들의 엄마 중에는 육아 휴직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공공 기관에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짧은 육아 휴직 후에 복귀한 경우도 있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그에게 물어보니 유급 휴가 기간까지만 쉬고 바로 복귀했다고 한다.

서른여덟 살에 첫 정규직 직장을 잡은 나는 지금부터 더 공부하고 경력을 쌓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직장에서도 연구 위원인 내게 거는 기대가 있고, 나도 해결할 일이 많다. 서러운 기억들을 이겨 내고 어렵사리 잡은 직장에서 해야 할 일을 미루면서 육아 휴직을 쓰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육아 휴직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월급 전부를 아이를 돌보는 비용으로 쓰더라도 내 책상에서 일을 하고 싶다.
취업한 기혼 여성에게 자녀의 필요성을 설문한 한국 보건 사회 연구원의 2015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 보건·복지 실태 조사에 따르면 자녀가 꼭 있어야 한다는 응답이 60.2퍼센트로 과반수를 차지했다. 이상적인 자녀 숫자는 2.25명이었다. 아이를 낳고 싶은 부모는 충분히 많다는 의미다. 그런데 통계청 자료인 인구 동향 조사를 보면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2016년 1.17명, 2017년에는 1.05명이다. 한국의 저출산 현상은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람이 많아서 발생한 문제라는 설명이 적절해 보인다.

 

여성의 노동력이 낭비된다


미국의 중산층 고학력 여성들은 한국에 비해 유리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 미국의 중산층 고학력 여성의 일자리는 크게 네 차례의 변화를 거쳤다. 19세기 이전까지 미국 사회에서도 덕성 있는 어머니와 아내가 바람직한 여성상으로 그려졌다. 한국처럼 가부장적 가족 규범이 강하게 자리 잡지는 않았지만, 살림을 하고 자녀를 기르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산업화로 기록 보관 필요성이 높아지고, 화이트칼라라 불리는 사무직 여성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늘어난 일자리로 인해 이 시기부터 미혼 여성을 중심으로 노동 시장에서 일하는 여성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1930년대부터는 중산층 기혼 여성의 사회 진출도 늘어났다. 1932년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자유방임주의 정책을 버리고, 적극적인 정부 개입을 허용하는 뉴딜 정책을 실시했다. 뉴딜 정책이 미국을 스웨덴과 같은 엄청난 복지 국가로 견인하지는 못했지만, 이 정책이 시행되면서 여성의 정치적 입지와 일자리, 노동 여건이 개선됐다.

이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대공황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경제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일자리가 줄었고, 미국이나 독일 등의 유럽 국가에서는 기혼 여성이 남편의 동의를 받아야 노동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는 법률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퍼스트레이디였던 엘리노어 루스벨트가 여성 정치인 네트워크를 구성, 뉴딜 정책 내 복지 분야에서 고등 교육을 이수한 기혼 여성들이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왔다. 1939년에는 중산층 이상의 남편을 둔 기혼 여성들의 근로 비율이 높아졌는데, 이는 자동차, 세탁기 같은 고급 가정 소비재를 구입하고 자신의 벌이를 자녀 교육에 투자하기 위해서였다. 중산층 가정의 이상적 삶을 위해 일하는 어머니와 아내를 둔 불편함을 가족 내에서 용인해 나갔다.

여성의 노동 시장 진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전쟁이었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전후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은 그 규모부터 달랐다. 노동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남성들이 전쟁터로 나가면서 모든 산업 분야에 일자리 공백이 찾아왔다. 정부와 기업가들은 남아 있는 유일한 노동력인 여성, 특히 기혼 여성을 데려가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다. 미혼 여성만으로는 필요한 노동자 수요를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동일 노동-동일 임금 캠페인처럼 젠더 차별을 줄이려는 노력들이 시행됐다. 전쟁이 끝나고 남성들이 노동 시장에 복귀하면서 일하는 여성에 대해 자녀를 제대로 키우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미 미국 내에서 기혼 여성의 취업 장벽은 무너진 뒤였다.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민권 운동을 기점으로 여성 운동도 부활했다. 여성 해방 운동이 거세게 일어난 미국 사회는 성차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경제 불황, 전쟁 시기를 거치면서 노동 시장에 진출한 여성들은 그들의 세력을 조직화하고 있었다. 이들은 여성 해방 운동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정부에 차별 시정 정책을 요구했기 때문에, 케네디 대통령은 재임 초기부터 정부 주도로 여성의 지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들을 도입했다.

교육 영역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여성 운동은 전문 대학원을 졸업한 유능한 여성 인력들을 배출했고, 서비스 산업화로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여성은 점점 더 경쟁력 있는 인적 자원으로 성장했다. 1970년대까지 미국 여성은 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진출하고 있었다. 맞벌이 부부가 일반적인 형태가 된 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이다. 이 시기에는 여성 운동과 노동 운동이 연합한 결과, 동일한 가치의 노동에 동일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의 비교 가치(comparable worth) 운동[8]이 시작됐다. 레이건 정부는 비교 가치 운동을 무력화하려고 했지만, 대부분의 주 정부와 지방 정부가 비교 가치 운동을 지지했다. 이를 통해 여성 노동력이 집중되어 있는 직업군의 임금이 전체적으로 상승했다. 무엇보다 공공 부문의 사무직과 준전문직 여성, 사기업의 핵심 부문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임금이 중간 임금 수준으로 상승하면서 중산층 고학력 여성의 노동 의욕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기업 차원에서도 가족 친화 제도가 확산되어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는 동력이 됐다. 어떻게 미국 기업은 가족 친화 정책에 드는 지출을 감내하면서 여성 채용을 늘릴 수 있었을까. 유연성이 높은 미국의 노동 시장 환경에서는 우수한 근로자의 이직을 막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9] 1980년대 자본의 국제화 여파로 기업 간의 경쟁이 심화되자 미국 사회는 경직된 포드주의 생산 방식을 버리고, 유연한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으로 체질 개선을 시도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대학 교육이 창출하는 높은 수준의 일반 기술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가 많아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기업가 사이에서 2000년대가 되면 고급 인력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확산됐다. 미래의 노동 위기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은 다양성 경영 전략이었다. 이로 인해 여성 핵심 인재를 양성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인적 자원 관리 붐이 일었다. 기업들은 성과주의를 구현한다는 목표 아래 고학력 여성 인력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여성 고용을 선도한 기업들이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면서 여성 고용은 더 확대됐다. 중요한 것은 기업의 여성 지원 정책이 소수자 혹은 약자 집단을 지원하는 문제가 아니라, 전체 기업의 인력 개발 관점에서 논의됐다는 점이다. 포드의 경우 가족을 위한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 문화부터 가족 친화적이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포드는 경영상 효율성이 떨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철저히 부모의 입장에서 직원의 요구를 수락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직무 중심의 시장 임금 체계와 개별 고용 관행은 미국에서 여성 채용을 늘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은 1930년대부터 노동자 개개인의 기본적 노동권을 보장하는 개별 고용 관계법이 발전했다. 근로자 개인의 능력과 직무에 따라서 임금과 고용 조건을 개별적으로 협상할 수 있었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근로자에게 맡긴 직무와 성과를 기반으로 임금을 조정할 수 있어 여성 채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이런 구조에서 여성은 고학력이나 자격증 등의 능력을 내세워 임금 협상 과정에서 필요한 조건을 관철시킬 여지가 있다.

미국에서는 맞벌이 부부 가정의 자녀 돌봄 문제가 궁극적으로 기업의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축적되기 시작했다. 고용주들은 가족 친화적 지원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갖게 됐다. 가족 친화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는 유연 근무다. 포드에서는 관리자의 허가를 받아 업무 시간을 90퍼센트까지 단축할 수 있다. 일정한 조건만 지키면 근무 시작 시간과 퇴근 시간은 개인의 필요와 선호에 따라 정할 수 있다. 뉴욕 생명 보험도 유연 근무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맞춤형 근무제를 시행했다. 뉴욕 생명 보험은 업무에 최적화된 근무 방식을 스스로 택하는 것을 유연성이라 정의한다. 노동자가 자신의 근로 시간을 자유롭게 정하는 것도 유연성의 일부다. 노동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일할 장소와 시간을 정할 수 있었다. 업무 성과가 노사 협상의 기본조건이 되므로 기업 입장에서도 손해를 볼 가능성이 낮았다.

미국과 한국의 결정적인 차이는 미국에서는 양육이 성별을 초월한 복지 측면에서 논의됐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남성과 여성은 직장에서 능력에 기반을 두고 평가받을 수 있었고, 기업 입장에서는 여성의 노동력을 활용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다. 정부도 유연한 근로 시간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1973년 종합 고용 훈련법(Comprehensive Employment and Training Act)을 제정했다. 이 법을 기점으로 많은 정부 기관에서 유연 근로를 장려했다. 미국 정부는 스웨덴처럼 복지 지출을 확대하는 대신 세금을 공제해 주는 방법으로 여성 고용과 출산율을 높이고자 했다. 저소득 가구의 소득 공제를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근로 소득 지원 세제(Earned Income Tax Credit)도 있다. 저소득층의 세금 부담을 덜어 주고, 근로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인 가구에 현금을 지급한다. 이런 정책을 통해 여성들은 집안일을 외주화하거나 민간 보육 시설을 이용해 돌봄 문제를 해소했다. 200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미국의 고학력 중산층 여성이 집안일과 직장 일을 병행하는 현상은 노동자와 기업가 모두의 필요를 충족하는 익숙한 규범이 됐다.

미국의 사례는 고학력 여성이 가사 노동으로 경제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공감대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여성 인력 활용은 국가 경쟁력 제고뿐 아니라, 기업의 노동력 확충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인구 증가율이 떨어지고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2025년까지 여성에 대한 불평등이 완전히 사라지면 전 세계 국내 총생산GDP이 11퍼센트나 증가할 수 있다는 컨설팅 기업 맥킨지(McKinsey)의 보고서도 있다.[10]

한국 여성 정책 연구원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유가 증권 시장에 상장된 170개 기업을 대상으로 여성 임원의 숫자와 기업의 재무 성과 관계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비슷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5년 동안 여성 관리자 비율이 증가한 기업이 감소한 기업보다 자기 자본 이익률(ROE) 평균이 2배 이상 높았다는 것이다. 또 여성 임원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 기업이 전혀 없는 기업보다 매출액과 수익률 평균이 더 높았다. 여성 인력의 확대는 기업과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시급한 과제다.
[1]
배은경, 〈‘경제 위기’와 한국 여성〉, 《페미니즘 연구》 , 2009.
[2]
이삼식, 〈2015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 보건 복지 실태 조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5.
[3]
김수정, 〈보육 서비스의 트릴레마 구조와 한국 보육 정책의 선택 - 민간 의존과 비용 중심의 정책〉, 《경제와 사회》, 2015. 3.
[4]
김진석, 김은정, 안정인, 최경숙, 김호연, 이경민, 〈맞춤형 보육에 대한 학부모, 교사의 곡성〉, 《월간 복지동향》, 2016.
[5]
백선희, 〈직장 어린이집 설치 의무 제도,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때!〉, 《육아정책 브리프》, 육아정책연구소, 2018. 8. 13.
[6]
신현구, 장지연, 〈모·부성휴가 요구 분석 및 사각 지대 해소 방안 연구〉, 한국노동연구원 고용보험연구센터, 2015.
[7]
이삼식, 〈2015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 보건 복지 실태 조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5.
[8]
비교 가치 운동은 동일 노동-동일 임금에서 나아가 동일 가치 노동-동일 임금이라는 구호를 제시했다. 여성 노동이 집중된 직무에 대한 저평가로 나타나는 임금 차별을 보정하려는 정책이었다. 기술, 노력, 작업 조건, 책임성 등을 기준으로 한 직무별 점수 평가에 근거해 직무 가치(job worth)의 동등성(comparability)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운동이었다.
[9]
Mary Secret, Ginny Sprang, 〈The Effects of Family-friendly Workplace Environments on Work-family Stress of Employed Parents〉, 《Journal of Social Service Research》, 2015.
[10]
손해용, 〈한국 직장 내 성 평등 아시아 최하위권…“성 평등 이루면 GDP 172조 원 늘어”〉, 《중앙일보》, 2018.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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