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랩스, NFT 파워하우스
2화

지루한 원숭이의 탄생 ; 2021년 4월

유일무이한 프로필 사진


2021년 4월 17일‘Bored Ape Yacht Club(지루한 원숭이들의 요트 클럽)’이라는 트위터 계정이 첫 번째 트윗을 통해 그들의 출범을 알렸다. 해당 트윗에서 BAYC 원숭이 이미지들은 디지털 클럽의 멤버십(회원권) 기능을 갖춘 유일무이한 1만 개의 NFT로 소개되었다.

BAYC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NFT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NFT는 대체 불가능 토큰이라는 명칭 그대로, 대체할 수 없다는 특성을 지닌 암호 화폐의 일종이다. 여기서 ‘대체 불가능’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려면 반대 개념인 대체 가능 토큰(Fungible Token)을 떠올려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BAYC 트위터
이제는 대중들에게도 익숙한 비트코인(Bitcoin)이나 이더리움 등의 일반적인 암호 화폐를 대체 가능 토큰이라고 한다. 하나의 비트코인은 다른 하나의 비트코인과 동일하며 서로 대체될 수 있다. 또한 하나의 비트코인은 여러 조각으로 나뉠 수 있으며 다른 비트코인에서 나누어진 조각들과 섞여 또 하나의 비트코인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NFT는 하나의 NFT가 다른 하나의 NFT와 대체될 수 없고,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질 수도 없다. BAYC의 소개처럼 각각의 NFT는 유일무이하다.

BAYC 출범 이전에도 NFT는 활용되고 있었다. 유즈 케이스(Use Case・활용 사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크립토키티(CryptoKitties)’일 것이다. 크립토키티는 캐나다 밴쿠버 소재의 회사 ‘액시엄 젠(Axiom Zen)’이 2017년 11월에 출시한 세계 최초의 블록체인 게임 중 하나다. 현재는 액시엄 젠에서 분사한 ‘대퍼랩스(Dapper Labs)’가 운영 중이다.
크립토키티의 Dragon ⓒOpenSea 홈페이지
크립토키티 유저는 고유한 외모와 특성을 가진 새끼 고양이들을 수집하고 교배해 새로운 고양이를 탄생시킬 수 있다. 만약 새로운 고양이가 희귀한 속성을 가졌다면 높은 가격에 거래될 확률이 높다. 역대 최고가에 거래된 고양이는 ‘드래곤(Dragon)’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로 거래 가격은 무려 600ETH에 달했다. 2022년 6월 8일 기준으로 1ETH은 230만 원선이니 한화로는 14억 원에 달한다. 엑시엄 젠은 이 고양이들을 NFT 형태로 제작함으로써 유저들에게 복제와 삭제가 불가능한 고양이를 완전히 소유하고 거래하는 경험을 선사했다.

NFT는 게임 외에도 수집품(Collectibles)이나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됐다. 크립토키티는 게임이지만 그 고양이들은 일종의 수집품으로도 볼 수 있다. 수집품으로 유명한 NFT로는 대퍼랩스가 출시했던 ‘NBA 탑 샷(Top Shot)’이 있다. 대퍼랩스는 미국 농구 리그인 NBA의 명장면을 NFT 기반의 스포츠 카드로 만들어 판매했다.

BAYC는 그 중에서도 프로필 사진으로 활용할 수 있는 PFP NFT에 해당한다. NFT 시장 데이터 분석 플랫폼인 ‘NFTGO’가 제공하는 도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 PFP NFT는 모든 NFT 사용처 중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시가 총액(Market Capitalization)과 거래량을 보여 주고 있다.
이제는 국내에서도 PFP NFT 홀더(Holder・보유자)들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소셜 미디어에서 PFP NFT 이미지를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계 최초의 PFP NFT 프로젝트는 ‘라바랩스(Larva Labs)’[1]가 2017년 6월에 출시한 ‘크립토펑크(CryptoPunks)’[2]였다. 출시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NFT 시장이 성장하면서 최초이자 최고의 PFP NFT로 자리매김했고 우리나라 언론에도 자주 소개됐다.

초기 크립토펑크는 대체 가능 토큰을 만들 때 사용되는 ‘ERC-20 프로토콜’을 수정한 형태였다.[3] ERC는 ‘Ethereum Request for Comment’의 약자로 이더리움 블록체인에서 발행되는 토큰의 표준 규약이다. 그중 ERC-20은 이더리움 토큰의 공통 규칙을 정의하고 주소 간 토큰 전송법과 토큰 내 데이터 접근법 등을 담고 있다. 크립토펑크의 등장은 현재 이더리움 기반의 NFT 프로젝트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ERC-721 프로토콜’의 개발에 영감이 되었다.
CryptoPunk ⓒOpenSea 홈페이지
크립토펑크가 PFP NFT의 시초였다면 BAYC는 PFP NFT에 멤버십 등의 유틸리티(Utility・유용성)를 도입해 지금과 같은 모습의 PFP NFT 시장을 만들었다. 이러한 BAYC의 방향성은 앞서 소개한 첫 번째 트윗에서부터 드러난다. BAYC는 첫 번째 멤버 특전으로 ‘THE BATHROOM(화장실)’을 소개했는데, 이는 BAYC 홀더들만 그릴 수 있는 가상의 그래피티 보드였다. 또한 로드맵을 통해 계획하고 있는 멤버십 혜택을 소개했다. 그 내용은 홀더 전용 상품 스토어 이용, 증정품 및 ‘Mutant Apes(돌연변이 원숭이들)’ NFT를 제공하는 것 등이었다.
THE BATHROOM ⓒBAYC 트위터
창업자 소개 페이지 ⓒBAYC 홈페이지
이러한 BAYC를 만든 회사가 유가랩스다. 공동 창업자는 네 명으로 모두 가명을 사용하고 있다. BAYC 홈페이지에 기재된 순서대로 가가멜(Gargamel), 고든 고너(Gordon Goner), 엠페러 토마토 케첩(Emperor Tomato Ketchup), 노 사스(No Sass)다. 유가랩스는 2021년에 설립되었으며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위치해 있다.

 

요트 클럽의 삶을 상상하다


이들의 창업 스토리는 가가멜과 고든 고너가 2021년 7월에 미국 주간지 《더 뉴요커(The New Yorker)》, 10월에 암호 화폐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Coindesk)》와 가진 인터뷰에서 소개된 바 있다. 가가멜과 고든 고너는 모두 마이애미 출신이다. 한 다리 건너 친구 사이였던 둘은 20대 초반에 마이애미의 한 바에서 만나 미래를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문예 창작(Creative Writing) 전공으로 MFA(Master of Fine Arts) 과정에 함께 등록했는데, 가가멜은 학위를 받았으나 고든 고너는 건강상의 이유로 자퇴했다. 그들은 2017년에 암호 화폐를 처음 구입한 후 암호 화폐 시장에 더 깊게 관여하고자 했다. 하지만 투자자도, 트레이더도, 개발자도 아닌 둘에게는 시장 진입이 쉽지 않았다. 가가멜은 작가 겸 에디터로, 고든 고너는 단타 위주의 주식 투자자를 뜻하는 ‘데이 트레이더’로 파트타임 일을 하며 방안을 모색해 나갔다. 그러던 중 NFT 프로젝트 ‘해시마스크(Hashmasks)’의 성공[4]을 지켜보면서 자신들의 창의성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NFT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들이 처음부터 BAYC를 기획한 것은 아니었다. 초기 아이디어는 커뮤니티에 합류한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디지털 캔버스였다. 첫 번째 특전이었던 THE BATHROOM은 사실 BAYC의 전신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고든 고너의 친구는 디지털 캔버스에 낙서만 가득할 것이라고 예측했고, 그들은 방향을 틀었다. 역시나 THE BATHROOM은 낙서장으로 활용됐다.
해시마스크의 오픈씨 배너 이미지 ⓒOpenSea 홈페이지
몇 가지 시행착오를 거쳐 나온 아이디어가 BAYC였다. 시작은 작은 질문이었다. 가가멜과 고든 고너는 만약 초기 암호 화폐 투자자로 억만장자가 된다면 어디를 가고 싶은지를 자문했다. 그들의 답은 어린 시절 좋아했던 것들로 채워진 공간이었다. 암호 화폐 투자로 부자가 된 이들도 둘의 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보내고 있었다. 해변가에서 모델들과 함께 놀기보다는 대부분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가가멜과 고든 고너는 이러한 바람을 충족해 줄 클럽을 만들기로 했다. 그들은 어린 시절 뛰어놀았던 공간을 떠올려 이 클럽을 늪가에 위치한 요트 클럽으로 상상했다. 그리고 클럽의 주인은 원숭이들(Apes)로 정했다. 암호 화폐 투자자들이 사용하는 은어 중에 하나인 “aping in(새로운 암호 화폐나 NFT를 깊은 고민 없이 사는 행위)”을 따와 원숭이(Ape) 캐릭터를 만들었다.

가가멜과 고든 고너는 BAYC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후 팀에 그들의 프로그래머 친구인 엠페러 토마토 케첩과 노 사스를 합류시켰다. 이렇게 유가랩스의 창업자 네 명이 모였다. 이어서 그들은 프로젝트의 그래픽 파트를 담당할 일러스트레이터들을 고용했다. 이들을 고용한 비용은 4만 달러 정도였는데 유가랩스의 초기 비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로써 유가랩스는 BAYC를 출범시킬 준비를 마쳤다.

지금 시점에서 결과물만 놓고 봤을 때, 누군가는 장난스러운 이름을 단 기괴한 원숭이 캐릭터 NFT가 그저 운 좋게 시기를 타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가랩스조차 디지털 캔버스를 포함해 몇 차례 실패를 겪었다. NFT 사업은 흥행 산업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흥행 산업에서 성공을 거둔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까 보기 전에는 모른다”는 것이다. 유가랩스는 2017년부터 끊임없이 주사위를 던졌고, 마침내 BAYC라는 주사위가 성공 위로 안착했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유가랩스가 웹3.0 시장의 그 누구보다도 잠재 고객이 원하는 바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고 잘 해냈다는 것이다. PFP NFT 프로젝트 운영 팀의 핵심 역량 중 하나는 커뮤니티가 원하는 것을 읽는 역량이다. BAYC의 꾸준한 차별화와 그로 인한 성공은 이 역량에 기반을 두었을 것이다.
[1]
2005년에 캐나다 토론토대학 출신인 두 명의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만든 팀이다.
[2]
크립토펑크 또한 고유의 캐릭터 이미지를 가진 1만 개의 NFT로 구성돼 있다.
[3]
라바랩스는 ERC-721 프로토콜이 개발된 이후 변환 기능Wrapping을 제공하고 있다.
[4]
해시마스크는 2021년 1월 1만 6384개의 NFT를 판매하여 16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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