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지배하는 슈퍼리치

인도를 지배하는 슈퍼리치

인도의 신흥 갑부들은 역사상 거의 모든 국가의 부호보다 더 빨리,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


2018년 5월 3일 오후 4시 45분 무렵이었다. 키가 작고 호리호리한 인도 남성이 런던의 올드 콤튼 스트리트(Old Compton Street)를 빠르게 걸어 내려왔다.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는 듯 고개를 숙인 채였다. 근처 식당의 창가 자리에 앉아 있던 아누바베 팔(Anuvabe Pal)은 그를 금세 알아봤다. 팔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체구가 작은 남자였어요. 인도의 모든 신문에 얼굴에 실렸던 사람이죠.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렸어요.”

영국의 거리에서 그를 되돌아볼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바로 그 점이 남자에겐 중요했다. 수요일 저녁 소호 거리를 걷던 그 남자는 인도의 보석상이자 억만장자이며, 동시에 국제적 도망자 신분인 니라브 모디(Nirav Modi)였다.

2018년 2월 모디는 18억 달러(2조 205억 원)에 달하는 사기죄 혐의를 받자 고국인 인도를 떠났다. 자신의 사업체를 통해 인도의 대형 은행에서 불법적인 현금 서비스를 받는 방식으로 금융 시스템을 악용해 기소된 뒤였다. 이후 그의 행방은 묘연했는데, 인도 언론은 그가 홍콩이나 뉴욕에 숨어 있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인도 법원이 구속 영장을 발부하고 경찰이 추적에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팔이 모디를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팔은 인도 뭄바이에서 주로 활동하는데 마침 그날은 코미디 공연을 위해 런던에 체류하고 있었다. 팔이 말했다. “나만의 의식처럼 매일 같은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공연장으로 향했어요. 항상 창가 자리에 앉았는데, 그날 우연히 모디가 지나가는 것을 봤습니다. 면도를 하지 않은 상태였고 에어팟을 끼고 있었어요. 어딘지 급해 보였죠.”

언론이 모디의 소재를 파악한 것은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2018년 6월이었다. 모디가 영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할 계획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당시 모디는 범죄 혐의를 부인하면서도 코멘트 요청에는 응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런던의 악명 높은 사교 클럽에 속하게 되었다. 바로 자국에서 스캔들이 불거지자 영국 런던으로 도피한 인도 억만장자들의 모임이다.

그 모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인도 태평성대의 왕’이라 불리는 비제이 말리야(Vijay Mallya)다. 킹피셔(Kingfisher) 항공을 설립한 항공업계의 거물이자, 킹피셔 맥주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운 인물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말리야는 인도에서 가장 저명한 기업가였다. 특히 멀릿 헤어스타일(앞은 짧고 옆과 뒤는 긴 헤어스타일)과 화려한 라이프 스타일로 유명했다. 하지만 2016년 초 인도 정부는 킹피셔 항공 부도와 관련해 말리야를 기소했다. 킹피셔 항공은 엄청난 규모의 부채와 임금 체불을 남기고 2012년 완전히 파산했다. 금융 비리 의혹이 제기되자 말리야는 대출금 상환을 거부하고 영국행 비행기에 조용히 몸을 실었다.

말리야 또한 모디처럼 혐의를 부인했다. 2018년 6월 말리야는 장문의 성명을 발표했는데, 인도 정부가 마녀사냥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최근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니라브 모디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인도 총리는 말리야와 같이 범죄 혐의가 있는 거물들을 잡아들이라는 압박에 시달려 왔기 때문이다.

《포브스(Forbes)》에 따르면 비제이 말리야, 니라브 모디 같은 인도의 억만장자는 계속 늘고 있고, 현재 119명에 달한다. 2017년 인도 억만장자들의 총 재산 규모는 4400억 달러(492조 원)에 달하는데,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그 어느 나라보다 많다. 반면 평범한 인도인은 1년에 겨우 1700달러(190만 원)를 번다. 경제 성장의 초기 단계임을 감안할 때, 인도의 신흥 갑부 계층은 역사상 거의 모든 국가의 금권 귀족 계층보다 더 빨리,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
2014년 5월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가면을 쓰고 선거 운동 중인 지지자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지난 10년간 인도를 괴롭혔던 수많은 부정부패를 근절하겠다는 공약을 앞세워 2014년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인도에서는 많은 부패 스캔들이 저명한 기업인들과 얽혀 있었다. 몇몇은 부패 사건에 직접 연루되어 고발을 당했고, 몇몇은 재정 운용에 문제가 있었지만 용케 책임을 피해 갔다. 유권자들은 자칭 ‘가난한 찻집 아들 출신’인 모디가 인도를 정실 자본주의[1]의 오명에서 벗어나게 하고, 깨끗한 정부와 고속 경제 성장이라는 새 시대를 열 것이라 기대하며 그를 지지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발리가르히(Bollygarchs)[2]’라 불리는 인도의 초부유층이 13억 인도 국민과 달리, 자신들만의 법에 따라 살고 있는 현 상황을 종식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비제이 말리야와 니라브 모디 같은 이들이 여전히 런던 등지에 은신해 있다는 사실은 모디 총리의 공약이 이행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2017년 인도 당국이 《힌두스탄 타임스(Hindustan Times)》에 밝힌 대로, 말리야 사건은 ‘길고 고된’ 범죄인 송환 절차를 남겨 두고 있다. 인도는 ‘앞으로 갈 길이 멀다’.

모디 총리는 2019년에 치러질 재선을 준비하면서, 인도 정부가 이런 거물들을 굴복시킬 수 없고 신흥 재벌의 부정부패 스캔들 해결에 무력하다는 비판에 맞서고 있다. 뭄바이에 위치한 싱크탱크 IDFC 연구소의 최고 책임자 루벤 아브라함(Reuben Abraham)은 이렇게 말한다. “재계 거물들이 법을 준수하게 하려는 이 싸움이 지금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입니다. 이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 인도의 경제적, 정치적 미래에 있어 핵심입니다.”
 

인도는 지나치게 오랫동안 계층화된 사회였기 때문에, 불평등의 급격한 증가에 국제적 관심이 충분히 집중되지 않았다.


인도는 오랜 기간 동안 카스트 제도, 인종, 종교에 따라 계층화된 사회였다. 1947년 독립하기 전까지 인도 국민은 영국 황실과 수많은 마하라자(토후국의 군주), 지방 군주의 지배를 받아 왔다. 독립한 뒤에는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세계 무역에서 완전히 고립된 비효율적 국가 계획 경제 모델을 채택하면서 극도로 가난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도는 과거보다 평등해졌는데, 이는 산업화된 서구의 기준에서 인도 부유층이 상대적으로 덜 부유하다는 관점에서만 가능한 해석이다.

그러나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지난 30여 년간 인도 상류 사회에서는 엄청난 부의 폭발이 일어났다. 1990년대 중반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에 인도인은 두 명밖에 없었다. 자산 규모도 도합 30억 달러(3조 3500억 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1991년부터 경제를 점진적으로 재개방하면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2016년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에는 84명의 인도인이 이름을 올렸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당시 인도의 경제 규모는 2조 3000억 달러(2569조 원)였다. 중국은 2006년에 비슷한 수준의 GDP를 달성했는데, 그때 중국의 억만장자는 10명에 불과했다. 경제 발전의 같은 단계에서 인도는 중국보다 8배나 많은 억만장자를 배출한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부의 증가는 반길 만한 일이다. 2018년 인도는 주요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지난 20여 년간 인도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성장해 왔고, 이러한 경제 성장은 수억 명이 빈곤을 벗어나는 데 기여했다.

그래도 여전히 인도는 가난한 나라에 머물러 있다. 글로벌 투자 기관인 크레딧 스위스(Credit Suisse)의 연구에 따르면 2016년 인도에서 상위 1퍼센트의 부유층이 되려면 자산이 3만 2892달러(3676만 원)만 있으면 되는데, 상위 10퍼센트의 소득이 국가 전체 소득의 55퍼센트를 차지한다. 규모가 큰 나라 중에서는 가장 높은 비율이다.[3]

다르게 말하자면, 인도는 성장의 과실이 비정상적으로 빠른 속도로 최상위로 이동하는 경제 발전 모델을 만들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오랫동안 계층화된 사회였기 때문에, 불평등의 급격한 증가에 국제적 관심이 충분히 집중되지 않았다. 독립 전까지 거의 1세기 동안 인도는 영국의 지배(British Raj)를 받았다. 라즈(Raj)는 산스크리트어로 ‘통치(rule)’를 뜻하는 ‘라자(rajya)’에서 유래한 용어다. 1947년 독립한 이후에는 반세기 동안 ‘라이선스 허가 할당제 라즈(License-Permit-Quota Raj)’, 줄여서 ‘라이선스 라즈(License Raj)’[4]라 불리는 까다로운 산업 규제 시스템의 지배를 겪었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시스템이 드리워지고 있다. 바로 ‘억만장자 라즈(billionaire Raj)’다.

‘억만장자 라즈’ 시대를 알리는 첫 번째 특징이자 가장 확실한 징후인 슈퍼리치의 부상은 국내 경제 개혁에 의해 발생했다. 인도 정부는 낡은 규제와 관세 장벽으로 이뤄진 라이선스 라즈를 1980년대부터 서서히 폐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91년 극심한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개혁이 급속히 진행되었다. 구체제 아래에서 과도하게 보호받던 기업들은 규제가 철폐되고 해외 자본이 유입되고 경쟁이 심화되자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항공과 금융업부터 철강, 통신업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대기업들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인도 최고의 갑부 무케시 암바니(Mukesh Ambani)가 뭄바이에 건설한 고층 주택 안틸라(Antilia)는 억만장자의 힘을 극명하게 나타낸다. 강철과 유리로 이뤄진 이 건물을 짓는 데 10억 달러(1조 1182억 원)가 들었다고 한다. 안틸라는 도시민의 절반이 빈민가에 살고 있는 인도의 경제 수도를 173미터 높이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집 안틸라 ⓒprimetime
암바니는 석유 화학부터 통신업까지 주무르는 대기업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Reliance Industry)를 소유하고 있다[그에게 기업을 물려준 부친 디루바이(Dhirubhai)는 1980년대 경제 개혁의 수혜를 크게 입었다]. 암바니는 샹들리에로 장식한 거대한 연회장에서 안틸라의 방문객을 맞이하는데, 이 공간은 건물 1층을 대부분 차지한다. 암바니 일가의 슈퍼 카 컬렉션을 위한 주차장이 6개 층에 달하고, 건물 상층부에는 호화로운 거주 공간과 공중 정원이 자리한다. 지하 2층은 레크리에이션 공간인데, 실내 축구장까지 갖추고 있다. 안틸라는 2010년에 완공되자마자 뭄바이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뭄바이는 오랜 세월 동안 빈부 격차가 심한 도시였지만, 암바니의 집은 그 차이를 더욱 도드라지게 하고 있었다(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의 대변인은 코멘트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인도 슈퍼리치의 등장은 국제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2000년대 초반 세계 경제는 ‘대안정기(great moderation)’라 불리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저금리 기조가 이어졌고 선진국들은 무난한 성장세를 보였다. 이 시기에 인도 신흥 재벌의 운명도 바뀌기 시작했다. 인도 기업가들은 외국 자본 유입과 국내 은행 대출, 급격한 자신감 상승에 힘입어 흥청망청 돈을 뿌렸다. 무케시 암바니는 정유 공장과 석유 화학 공장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고, 비제이 말리야는 에어버스 제트기를 사들이는 데 엄청난 돈을 지출했으며, 니라브 모디는 세계적인 쥬얼리 브랜드 체인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주식 시장은 호황이었다. 인도는 2004년부터 10년간 연평균 8퍼센트 이상 성장했다. 역사상 가장 빠른 경제 성장률이었다.

인도는 세계 경제에 재통합되면서 호황을 맞이했다. 그러나 급속한 성장은 동시에 경제를 분열시키고, 사회에 상처를 남기고, 환경을 파괴했다. 작가인 라나 다스굽타(Rana Dasgupta)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가적인 트라우마’를 남긴 것이다. 인도에서 새롭게 창출된 부는 매우 불공평하게 분배되었다. 《세계 불평등 보고서(World Inequality Report)》에 따르면 1980년 인도의 소득 상위 1퍼센트 집단은 전체 국민 소득의 7퍼센트를 차지했다. 2014년에는 그 비중이 22퍼센트까지 치솟았고, 같은 기간 소득 하위 50퍼센트 집단이 국민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하락했다.

이런 사실에 분개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제 은행가에서 지역 반부패 활동가로 변모한 미라 산얄(Meera Sanyal)은 2014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이 도시의 거리를 직접 거닐면서 안틸라에 대한 분노를 실제로 듣지 않고는 아무리 설명해도 모를 겁니다.” 그보다 6년 전인 2008년에는 인도 억만장자들의 재산 규모가 드러났는데, 경제학자이자 훗날 인도 중앙은행 총재를 지내게 되는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은 재벌들에게 다음과 같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만일 러시아를 신흥 재벌이 지배하는 과두(寡頭) 국가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인도는 그렇지 않다고 우길 수 있을까요?”
 

자유 시장 경제는 정실 자본주의가 국민 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다시 런던 얘기로 돌아가 보자. 비제이 말리야는 최근 인도가 정실 자본주의 국가 ― 이는 ‘억만장자 라즈’ 시대의 두 번째 특징이다 ― 라는 오명을 벗으려고 애쓰면서 자신이 부당하게 표적이 됐다고 주장한다. 2018년 6월 발표한 공개서한에서 그는 이렇게 밝혔다. “정치인들과 미디어는 내가 마치 900억 루피(1조 4238억 원)를 훔쳐 달아난 것처럼 혐의를 씌우고 있지만, 그 돈은 킹피셔 항공사가 대출받은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재벌들이 저지른 부정행위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해소하는 욕받이’가 됐다고 주장했다.

2017년 봄, 나는 런던에 있는 말리야의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베이커(Baker) 스트리트 지하철역 인근에 위치한 등급 I(Grade I, 고대와 중세 건축물에 부여하는 등급)의 타운하우스였다. 그의 집 뒤뜰에는 ‘VJM 1’이라는 번호판을 단 육중한 은색 마이바흐가 있었고, 그 옆의 작은 길을 따라 여러 종류의 롤스로이스와 벤틀리가 주차되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나무 테이블 너머로 말리야가 보였는데, 그의 앞에는 금색 라이터와 핸드폰 두 대가 놓여 있었다. 볼일을 보고 오겠다고 양해를 구하자, 제복을 입은 사람이 황금빛 화장실로 나를 안내했다. 번쩍이는 금빛 시트와 색을 맞춘 금빛 레버가 보였다. 두루마리 휴지걸이도 금빛이었다. 푹신한 흰색 수건에는 ‘VJM’이라는 금색 자수가 새겨져 있었다.

겉보기에 말리야는 여전히 모든 면에서 패기 있는 거물 같았다. 빨간 폴로셔츠를 입고 양손에는 금팔찌를 차고 커다란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한 건장한 남자였다. 하지만 당시 그는 1년 넘게 영국에 갇혀 있던 신세였고, 오후가 되면서 대화 주제가 사업 문제와 고국의 상황으로 바뀌자 의기소침해졌다. 말리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인도에는 부패의 피가 흐릅니다. 그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말리야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헤어스타일과 화려한 차림새 덕분에 인도 기업가 중에서 가장 자유분방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왔다. 특별히 개조한 보잉 727기는 그를 비즈니스 미팅과 파티 장소로 실어 날랐고, 기내 바는 킹피셔 맥주로 가득했다. 비즈니스 미팅과 파티의 경계는 대부분 모호했다. 말리야의 회사에서 임원을 지냈던 사람의 전언이다. “그 모든 것이 좀 말이 되질 않았어요.”
2008년 11월 16일 뉴델리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의 인도경제정상회의에 참석한 비제이 말리야 UB 그룹 회장 ⓒWorld Economic Forum / Photo by Dana Smillie
런던에 고립된 말리야는 지난 과오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때 인도의 상원 의원을 지냈지만 그의 외교 여권은 이미 취소되었다. 영국 장기 거주자로서 체류 허가를 받기는 했지만 여행증명서 없이는 돌아다닐 수도 없는 처지다. 제트기로 세계를 누비던 라이프 스타일도 더는 누릴 수 없다. 2018년 7월 초 영국 법원은 인도 당국이 부채 회수를 위해 말리야가 소유한 영국 내 부동산에 진입하는 것을 허가했다.

위풍당당하던 시절의 말리야는 새로운 인도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였다. 말리야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인도의 전통적인 기업가와는 달랐다. 그는 부유했고, 영향력이 있었으며, 그 사실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 신흥 기업가라고 해서 모두 말리야처럼 행동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나 IT 기업의 재벌 대부분은 그보다 대담하지 않았다. 말리야는 계속해서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다수의 인도 신흥 재벌들이 부패 혐의를 받게 되면서, 자신이 부자를 향한 국민의 분노가 집결되는 ‘대표적 인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인도의 구체제는 부패가 자라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구체제에서 일반 시민과 기업인 모두는 기본적인 국가 서비스를 받으려면 뇌물을 숱하게 줘야 했다. 하지만 이런 일상적인 부패는 2000년대에 발생한 대형 스캔들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었다. 고위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수십 억 상당의 자산을 재계 거물들에게 은밀히 넘겼고, 이러한 일련의 부정부패 스캔들은 ‘사기 시즌(season of scams)’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막대한 규모의 불법 리베이트는 기업들이 토지를 취득하고, 환경 규제를 우회하고, 사회 기반 시설 계약을 따내게 만들었다. 뉴스 머리기사는 사기성 공공 주택 건설 계획부터 부실한 도로 공사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대중이 분노할 만한 새로운 사건들로 가득했다.

인도의 경제 개혁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은 자유 시장 경제가 정직한 정치 체제로 이어지기를 바랐지만, 기대와 달리 정실 자본주의가 국민 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는 결과를 낳았다. 일각에서는 부패한 정치인들과 재계 거물들이 결탁해 빼돌린 돈이 수천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구체제에서 소규모였던 부정부패가 몸집을 엄청나게 불린 것이다.

상당수의 정치인들 역시 놀랄 만큼 부자가 되었다. 재산을 유령 회사나 해외 은행에 조심스럽게 은닉하지 않았다면, 이들도 《포브스》의 억만장자 리스트에 올랐을 것이다. 급속한 경제 성장은 정치권력과 그로부터 얻어 낼 수 있는 것들의 가치를 높였다. 정당들은 그들의 자리를 보전해 줄 지지자들을 금전적으로 지원하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더 많은 정치 자금을 모아야 했다. 2014년 인도 총선에서는 약 50억 달러(5조 6000억 원)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자유화 시대 이전의 저렴하고 쾌적했던 선거와 비교할 때 엄청나게 늘어난 금액이다. 선거 전문가들은 이 돈의 대부분이 미래의 어떤 특혜를 대가로 재계 거물들로부터 불법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인들은 그 돈을 선거 운동에도 쓰지만, 유권자에게 일자리나 현금 같은 선심을 베푸는 데도 쓴다. 라구람 라잔은 인도 중앙은행 총재로 재임하던 중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일종의 위험한 결합입니다. 공공 서비스가 형편없다고요? 사실 정치인들이 그 결핍을 메우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기업인들에게서 공공 서비스의 재원을 마련합니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준 정치인을 다시 뽑아 줍니다.”
 

사회적 대립이 극심한 경제는 적당한 수준의 번영은 누리지만 부유한 나라가 되는 데는 실패하는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경제와 정치의 결합은 ‘억만장자 라즈’ 시대가 지닌 세 번째 문제의 핵심이다. 이는 산업 경제의 호황과 불황의 순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사회 기반 시설 구축에 나섰는데, 대부분 국영 기업에 의해 이뤄졌다. 반면 2000년대 중반에 인도가 맞이한 호황기는 민간 재벌에 의해 독점적으로 지배되었고, 이로 인해 기업인들과 대기업들이 경제 발전에 있어 지나치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인도 신흥 재벌들은 국영 은행에서 막대한 돈을 차입해 거리낌 없이 투자했다. 150년 전 미국이 철도망을 건설한 이래 최대 규모의 민간 자본 투자였다. 하지만 2007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인도의 호황기는 막을 내렸고, 재계 거물들의 오만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들의 사업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어 있었고, 부채 상환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금융 위기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인도 은행들은 아직도 최소 1500억 달러(168조 원)의 부실 자산을 가지고 있다.

모디 총리는 집권 이후 기업, 은행의 부채 위기와 족벌주의, 이를 유발한 슈퍼리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때로는 허사에 그쳤지만 이런 전개를 지켜보면서 누군가는 인도 재벌의 힘이 서서히 약해지고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인도의 초부유층은 여전히 번성하고 있고, 억만장자의 수도 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현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인도의 빈부 격차는 확대될 것이다. 인도가 중국식의 두 자리 수 경제 성장이라는 목표에 가까워질수록 빈부 격차는 오히려 더 빠르게 벌어질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인도는 이미 오래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브라질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순위에 이름을 올렸어야 했다. 더 중요한 사실은 빈부 격차가 심한 가난한 나라들은 부유해지는 것으로 이런 흐름을 뒤집으려 한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인도가 행동에 나설 때라고 말한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인도의 미래를 언급하면서 빈부 격차로 인한 사회 갈등이 고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극심한 불평등의 주된 위험은 이 문제를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풀지 않으면 다른 방식으로 해결되리란 점입니다. 그건 아마 매우 끔찍한 방향일 겁니다.”

인도는 이제 발전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한국과 말레이시아처럼 빈곤을 벗어나 중진국의 지위를 완전히 얻은 아시아 국가들을 따르려고 하고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못할 까닭은 없다. 하지만 남미의 사례에서 보듯, 사회적 대립이 극심한 경제 구조를 지닌 국가는 적당한 수준의 번영은 누려도 부유한 국가가 되는 데는 실패하는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반면 동아시아 국가들은 부분적으로 기초적인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고, 최상위층에게 세금을 제대로 걷었기 때문에 평등을 유지하면서 번영할 수 있었다. 인도가 두 모델 중 어느 쪽을 따라야 하는지는 자명해 보인다.

부정부패도 마찬가지다. 인도의 전통적인 족벌주의 시스템은 정치적 특혜와 무위험 은행 대출과 관련해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부패와의 전쟁은 기껏해야 절반의 승리다. 토지 구입부터 지방 자치 단체의 계약에 이르기까지 공공 생활의 곳곳에서 불법 리베이트가 자행되고 있고, 주와 시 단위의 지방 정부도 예전과 다름없이 부패해 있다. 인도가 아시아에서 뇌물이 가장 만연한 국가라는 조사도 있다. 경제학자 폴 콜리어(Paul Collier)는 말한다. “극빈 상태를 벗어나고 싶은 국가라면 세 가지 체제를 갖춰야 합니다. 조세 제도, 법, 치안입니다.” 인도에서는 이 세 가지 모두 여전히 고질적인 부패를 겪고 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는 은밀한 정치 자금 문제일지도 모른다.

기업과 은행의 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도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모디 총리는 새로운 파산법과 은행 자본 재편을 포함한 몇 가지 주요 정책을 도입했지만, 공공 대출 기관 민영화 같은 급진적인 정책은 펴지 않고 있다.

인도 정부의 이런 노력들이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실제로 역사에서 빈번히 일어났던 일이기 때문이다. 인도 이전에도 족벌주의가 만연한 상태에서 고속 성장을 경험하고 그 시기에 발생한 문제에 대응한 국가들이 있었다. 영국은 19세기 중반 산업혁명이 닥쳤을 때 이미 겪은 일이다.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나 앤서니 트롤럽(Anthony Trollope)의 소설에도 잘 나타나 있다. 더욱 유사한 사례는 미국에서 찾을 수 있다. 1865년 남북 전쟁이 끝나고 20세기로 넘어가는 전환의 시기 사이에 미국이 맞이한 ‘도금 시대(Gilded Age)’[5]다. 한 역사가는 이때를 ‘위대한 기업, 무신경한 재벌, 타산적인 정치 보스’의 시대라 칭하기도 했다.

인도의 도금 시대는 여러 면에서 다르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산업화 초기는 정치적, 경제적 격변기라는 점이다. 철학자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가 한때 ‘국가의 미래에 대한 로망스’라고 불렀던 것처럼, 이 시기에는 국가 성장에 힘을 불어넣고자 하는 국민들의 희망에 호소할 수 있다.

인도는 미국이 19세기에 그랬던 것처럼 21세기 내내 경제력을 키울 것이다. 일각에서는 인도가 인구수에서 이미 중국을 넘어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 되었다고 본다. 또 누군가는 10~20년 내로 경제 패권이 인도로 넘어가리라 전망한다. 어떤 경우든 인도가 경제 모델을 제대로 갖추는 데 인류 상당수의 운명이 달려 있다. 서구에서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인도의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과도기에 인도의 ‘억만장자 라즈’는 통과 의례가 되어야 한다. 결코 영원히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아시아의 세기’ 후반부를 이끌어 나가려는 인도의 야망, 그리고 보다 공정하고 민주적인 미래를 향한 세계인들의 희망은 인도가 이 과도기를 잘 헤쳐 나가는 데 달려 있다.
 
[1]
끼리끼리, 패거리 자본주의를 의미한다. 절차나 합리성을 무시하고 친한 사람들끼리 패거리를 지어서 운영하는 경제 활동을 일컫는다. 혈연, 지연, 학연, 정경유착 등 집단주의적 특징을 보인다.
[2]
인도를 뜻하는 발리(Bolly)와 러시아의 신흥 재벌을 뜻하는 올리가르히(Oligarch)의 합성어다.
[3]
세계 불평등 데이터베이스(World Inequality Database)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소득에서 상위 10퍼센트가 차지하는 소득 비중은 2016년 기준 43.3퍼센트였다. 세계 평균은 52.1퍼센트였고, 국가별로 인도, 브라질이 55퍼센트, 미국 47퍼센트, 일본 41.6퍼센트, 캐나다 41.4퍼센트, 독일 40.3퍼센트, 영국 40퍼센트, 프랑스 32.6퍼센트, 덴마크 26.9퍼센트를 기록했다.
[4]
라이선스 라즈는 직역하면 ‘규제 왕국’이라는 뜻이다. 1947년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이후 40여 년 동안 인도는 국가 주도의 사회주의 경제 정책을 추진했다. 국영 기업을 육성하고 외국 자본 유입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이 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규제로 인해 경제 성장이 더뎠다. 1987년 당시 자동차 구입을 허가받는 데 10년, 아파트에 전화선을 설치하는 데 11년이 걸렸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1991년 인도 정부는 각종 폐단을 낳은 사회주의 정책을 폐기하고 경제 자유화와 개방 정책을 도입하기에 이른다.
[5]
1873년부터 1893년까지 이어진 미국의 대호황 시대를 말한다. 남북 전쟁 이후의 사회상을 풍자한 마크 트웨인의 동명 소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 시기에 미국은 철도, 철강 산업을 중심으로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했다. 카네기, 록펠러 등 재계 거물이 탄생했고, 마침내 영국을 밀어내고 세계 경제의 일인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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