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플라스틱

굿바이 플라스틱

플라스틱이 우리 삶의 근간이 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플라스틱에 대한 전 세계적인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플라스틱은 어디에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갑자기 그것을 정말 나쁜 물질이라고 결정했다. 최근까지만 해도 플라스틱은 온갖 곳에서 익명성을 만끽했다. 우리는 너무 많은 플라스틱에 둘러싸여 있는 나머지 플라스틱을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자동차와 비행기 부피의 절반이 플라스틱이라는 사실을 알면 놀랄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의류가 면이나 모직이 아니라 폴리에스테르와 나일론으로 제조되는데, 둘 다 플라스틱이다. 영국에서 매년 생산되는 600억 개의 티백 대부분을 봉인할 때 사용하는 소량의 접착제 또한 플라스틱이다.

여기에다 플라스틱이 사용된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영역인 장난감, 집안 장식품, 포장재 등을 더하면 플라스틱 제국의 지배 범위가 명확해진다. 플라스틱은 현대적 삶에서 다채롭지만 진부한 배경을 이루는 물질이다. 매해 전 세계에서 3억 4000만 톤의 플라스틱 제품이 생산된다. 뉴욕시의 고층 건물 전체를 채우고도 남는 양이다. 인류는 수십 년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양의 플라스틱을 생산해 왔고, 1990년대 초반에 처음으로 그 양이 1억 톤을 넘어섰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최근에 들어서야 사람들이 이 문제에 진짜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플라스틱에 대한 세계적인 반감이 일어났는데, 이 반감은 국경은 물론이고 오래된 정치적 대립도 뛰어넘는다. 2016년 영국 전역에서 미세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자며 그린피스가 올린 청원에 불과 넉 달 동안 36만 5000명이 서명을 했다. 정부에 제출된 환경 관련 청원 중 가장 큰 규모였다. 미국에서 한국에 이르기까지, 플라스틱 사용에 항의하는 단체들이 그들 말에 따르면 쓸데없이 무절제하게 사용되고 있는 플라스틱 포장재들을 슈퍼마켓 앞에 쌓아 놓았다. 2018년 초에는 성난 소비자들이 감자칩 봉지가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항의하는 뜻으로 엄청난 수의 감자칩 포장지를 제조사에 반송하는 바람에 우편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찰스 왕세자가 플라스틱의 위험성에 대해 연설했고, 배우 킴 카다시안(Kim Kardashian)은 인스타그램에 ‘플라스틱 위기’에 대한 게시물을 올리면서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말자고 촉구했다.

정부 최고위층이 플라스틱 공포에 취한 조치는 자연재해 내지는 공중 보건 위기에 대한 발 빠른 대응과 유사하다. UN은 일회용 플라스틱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영국에서는 테레사 메이(Theresa May) 총리가 일회용 플라스틱을 ‘재앙’이라 일컬으면서 2042년까지 일회용 포장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25년짜리 정책을 발표했다. 인도는 같은 조치를 2022년까지 취하겠다고 선언했다.

환경 보호 단체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의 활동가 줄리안 커비(Julian Kirby)는 “거의 20년 가까이 활동을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봅니다”라고 말했다. 지구의 벗은 2016년에야 겨우 플라스틱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그린피스도 2015년까지 플라스틱 전담팀이 꾸려지지 않았다. 플라스틱 취재 기사를 실은 최초의 신문 중 하나인 《데일리 메일(Daily Mail)》의 한 기자는 다른 어떤 환경 문제보다 플라스틱에 대한 메일을 더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기후 변화 메일을 매번 능가한다니까요.”

그러던 중 다큐멘터리 〈블루 플래닛(Blue Planet) 2〉가 등장한다. 2017년 12월에 방송된 마지막 화에서는 플라스틱이 해양 생물에 끼친 영향을 6분 동안 집중적으로 보여 줬다. 희망을 잃은 채 플라스틱 그물에 엉켜 있는 거북이, 배 속에 가득 찬 플라스틱 조각 때문에 죽은 앨버트로스 같은 것들을 말이다. “그 장면이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BBC의 방송 책임자 톰 맥도널드가 말했다. “사람들은 마지막 화에 대해 말만 하고 끝내길 원치 않았어요. 사실 보통은 거기서 끝인데 말이죠. 시청자들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 왔어요.” 그 뒤 며칠 동안 정치인들은 방송을 보고 행동해야겠다고 느낀 유권자들이 보낸 숱한 전화와 이메일을 받았다. 사람들은 여론이 플라스틱에 등을 돌린 결정적인 이유를 설명할 때 ‘〈블루 플래닛 2〉 효과’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로 인해, 30년 전 산성비와 프레온 가스에 맞서 성공적인 투쟁을 벌였던 이래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종류의 환경적인 승리가 목전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거대한 대중의 분노는 우리의 집단생활에서 단 하나의 물질을 제거하도록 권력자들을 압박하고 있으며, 이미 확언된 대형 공약들로 보건대 전망은 밝아 보인다.

그러나 플라스틱을 제거한다는 것은 플라스틱 포장재를 쓰지 않는 제품을 진열한 구역이 슈퍼마켓에 생기고 펍에서 퍼석거리는 종이 빨대를 쓴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플라스틱이 어디에나 사용되는 까닭은 그것이 대체한 천연 물질보다 품질이 좋아서가 아니라 가볍고 저렴하기 때문이다. 사실 정말로 저렴한 덕에 버릴 때도 정당화하기가 쉬웠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편했고, 기업들은 고객이 청량음료나 샌드위치를 살 때마다 새 플라스틱 포장 용기도 같이 파는 셈이었으니 행복했다. 강철이 건축의 지평을 넓힌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플라스틱은 이제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저렴한 일회용 문화를 가능하게 했다. 플라스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소비주의 자체를 수용하는 것이다. 한 인간의 생애 정도의 시간 동안 우리 삶의 방식이 지구를 얼마나 급진적으로 재편해 왔는지 깨닫고, 그 변화가 너무 과한 건 아닌지 물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플라스틱을 잡동사니 정도로 간주하곤 했다. 성가신 것이긴 해도 위협은 아니었다.


반(反)플라스틱 운동의 가장 놀라운 점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2015년의 세상으로 돌아가 봐도, 우리가 현재 플라스틱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당시에도 대부분 알려져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에 대해 딱히 분노하지 않았다. 3년 전만 해도 플라스틱은 기후 변화, 멸종 위기종, 아니면 항생제 내성 등 여러 문제 중 하나에 불과했다. 다들 플라스틱이 나쁘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그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드물었다.

과학자들의 노력이 부족해서는 아니었다. 플라스틱을 반대하는 주장은 거의 30년간 차곡차곡 쌓여 왔다. 1990년대 초 연구자들은 해양 쓰레기의 60~80퍼센트가 미생물이 분해할 수 없는 플라스틱이며, 해변과 항구에 밀려들어 오는 플라스틱의 양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던 중 플라스틱이 해류 사이의 무풍 수역에 퇴적되면서 해양학자 커티스 에비스메이어(Curtis Ebbesmeyer)가 ‘거대한 쓰레기 지역’이라 부르는 영역이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쓰레기 지역 중 가장 큰 곳은 ― 에비스메이어는 이런 곳이 총 여덟 군데라고 추산한다 ― 프랑스 면적의 세 배에 달하며 7만 9000톤의 쓰레기가 모여 있다.

2004년 플리머스 대학의 해양학자 리처드 톰슨(Richard Thompson)이 커다란 플라스틱이 부서지면서 생성되거나 상품에 사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조된 수억 개의 조그만 플라스틱 조각을 일컫기 위해 ‘미세 플라스틱(microplastic)’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면서 문제의 심각성은 훨씬 더 분명해졌다. 전 세계의 연구자들은 이 미세 플라스틱이 아주 작은 크릴새우부터 참치처럼 커다란 생선에 이르기까지 유기체의 내장 기관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분류하기 시작했다. 2015년 조지아 대학의 환경공학자 제나 잼벡(Jenna Jambeck)이 이끄는 연구팀은 매년 480~1270만 톤 사이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고 있으며, 2025년경에는 수치가 두 배에 달하리라 추산했다.

플라스틱 문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심각했고 점점 더 심각해졌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갖도록 하기가 어려웠다. 가끔씩 플라스틱에 대한 놀라운 기사가 매체에 실려 대중의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 쓰레기 지역 얘기는 매체의 단골 기삿감이었고, 넘쳐나는 쓰레기 처리장이나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배에 실어 외국으로 보낸다는 내용의 기사가 종종 새로운 두려움을 야기했다 ― 반응이 요즘 같지는 않았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영향력 있는 산업 생태학자 롤랜드 가이어(Roland Geyer)가 2006년과 2016년 사이의 변화에 대해 증언한 바에 따르면, 10년 전에는 플라스틱에 관해 열 건도 안 되는 인터뷰를 했는데 최근 2년 동안에는 인터뷰 요청이 200건 이상 들어왔다고 한다.

이런 변화가 정확히 왜 일어났는지는 커다란 논쟁거리다. 가장 그럴싸한 대답이자 내가 이야기를 나눠 본 과학자와 환경운동가들의 잠정적인 이론은 플라스틱에 대한 과학이 임계치에 도달했다거나 우리 머릿속이 우리가 만든 쓰레기(설령 그것이 중요한 것이라 해도)에 질식하는 사랑스러운 바다 생물의 이미지로 들어차게 돼서가 아니다. 우리가 플라스틱을 생각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플라스틱을 잡동사니 정도로 간주하곤 했다. 성가신 것이긴 해도 위협은 아니었다. 하지만 플라스틱이 많은 사람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만연해 있고 훨씬 더 사악한 존재라는 인식이 최근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그런 생각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사고의 전환은 마이크로비드(microbead), 즉 1990년대 중반에 제조사들이 화장품과 세제에 거칠거칠한 가루를 추가하고자 쏟아부은 조그만 연마용 플라스틱 알갱이에 대한 대중의 반감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거의 대부분의 플라스틱 제품에는 그보다 먼저 사용된, 미생물로 분해할 수 있는 천연 재료가 있다. 플라스틱 마이크로비드는 잘게 빻은 낱알이나 부석(浮石)을 대체한 재료다]. 2010년 과학자들은 해양 생물에 가해질 잠재적 위협에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마이크로비드가 존슨앤드존슨의 여드름 제거용 페이스 스크럽에서부터 바디샵처럼 친환경인 줄 알았던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수천 종의 제품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영국 그린피스의 플라스틱 캠페인 부서장인 윌 맥컬럼(Will McCallum)에 따르면 대중이 플라스틱에 대해 등을 돌린 결정적인 계기는 마이크로비드가 수백만 개의 욕실 배수관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마이크로비드는 디자인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는데, 실은 디자인 결함이었던 거죠. 사람들이 묻게 되었거든요.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라고요.” 2015년 미국 의회는 마이크로비드가 함유된 화장품에 대한 제한적 금지 조치를 검토했고, 양당의 고른 지지 속에 통과되었다. “대중의 인식에서 그 이슈는 거의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가 광범위한 충격으로까지 번지게 되었죠.” 영국 하원의원 메리 크레이(Mary Creagh)의 말이다. 그녀가 위원장이었던 환경 청문회는 2016년에 마이크로비드를 조사했고, 결국 그 제품의 생산과 판매에 대한 포괄적 금지를 이끌어 냈다.
미국 버클리의 재활용 센터 ⓒjar
마이크로비드는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대중은 이내 나일론과 폴리에스테르 같은 합성 섬유를 세탁기에 한 번 돌릴 때마다 수많은 미세 섬유가 떨어져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과학자들이 이 섬유들이 물고기의 내장에 어떤 경로로 들어가는지 보여 주고 난 후, 신문에서는 ‘요가 바지가 지구를 파괴한다’ 같은 제목의 기사를 실었고, 파타고니아처럼 환경 문제에 민감한 브랜드는 재빨리 해결책을 강구했다(2017년부터 파타고니아는 ‘구피프렌드’라는 세탁망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옷에서 떨어져 나오는 플라스틱 중 ‘일부’를 잡아낸다고 한다). 그다음에는 구성 성분 중 60퍼센트가 플라스틱인 타이어 차례였다. 타이어가 움직이는 동안 미세 섬유가 떨어져 나온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아마도 그 양이 마이크로비드와 합성 섬유 의복을 합친 것보다 많을 것이다.

매일 사용하는 물건들이 전염의 원천처럼 보이기 시작했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학부모 사이트인 ‘맘스넷’의 게시판에는 마이크로비드를 함유하지 않은 대안 화장품에 대한 게시물이 수없이 올라오지만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은 타이어에 대한 글은 아직까지 없다. 이 문제를 의회에서 제기한 하원의원 안나 맥머린(Anna McMorrin)은 자기 선거구 유권자들이 분통을 터뜨렸다고 말했다. “그분들이 저한테 말하는 거죠. ‘내가 사는 물건을 꼼꼼히 살펴보고, 재활용도 하는데, 그래도 플라스틱이 사방에 있으면 대체 어쩌라는 겁니까?’”

전 그린피스 국장이자 환경에 관한 영향력 있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크리스 로즈(Chris Rose)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플라스틱이 위험한 오염 물질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대중들의 생각이 바뀐 건 최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플라스틱은 알기 쉬운 물건으로 보였다. 구입한 다음 버린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어떤 면에서는 통제하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사람들은 플라스틱 문제에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는데도 자기들이 정말 원하기만 한다면 얼마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능한 한 가장 직접적인 방법으로, 그러니까 플라스틱을 집어 들어 쓰레기통에 버림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플라스틱은 더 이상 이렇게 보이지 않는다. 플라스틱은 여전히 주변에 있지만 ― 가정용품, 커피컵, 티백, 의류 ― 우리 능력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듯하다. 플라스틱은 우리 손가락과 정수기 필터를 빠져나가, 사악한 공장에서 나오는 오폐수처럼 강과 바다로 흘러간다. 플라스틱은 더 이상 길가에 버려진 빅맥 포장지처럼 구체적인 물질이 아니다. 이제 플라스틱은 헤어스프레이 용기에 깨알같이 적혀서 예전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물고기에게 돌연변이를 일으키거나 오존층에 구멍을 뚫을 준비가 되어 있는 화학 물질에 가까워 보인다.
 

막연하고 거대하며 묵시록적으로 보이는 기후 변화와 달리, 플라스틱은 작고 실체적이며 바로 지금 개인의 삶에 스며들어 있다.


과학자나 환경운동가들은 대중이 플라스틱에 등을 돌리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 대부분은 자기들의 경고가 주목받지 못하는 데 익숙하니까. 사실 일부 과학자들은 플라스틱에 대한 반감의 규모에 다소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듯하다. “매일 이 문제로 머리를 긁적입니다.” 임페리얼 대학의 해양학자 에릭 반 세빌(Erik van Sebille)의 말이다. “어떻게 플라스틱이 공적 1호가 된 거죠? 기후 변화가 그래야 하는데.” 내가 대화를 나눠 본 다른 과학자들은 플라스틱 오염을 수많은 환경 문제 중 하나로 여겼지만, 더 위급한 문제들로 대중의 관심을 돌렸다.

하지만 막연하고 거대하며 묵시록적으로 보이는 기후 변화와 달리, 플라스틱은 작고 실체적이며 바로 지금 개인의 삶에 스며들어 있다. “대중은 이게 저것보다 몇 배 더 나쁘다, 같은 식으로 섬세하게 계산하지 않습니다.” 지구의 벗에서 국장을 지낸 톰 버크(Tom Burke)의 말이다. “계기가 생기면 사람들은 어떤 이슈에 대해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같은 심정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럼 추진력이 생기죠. 사람들은 그저 문제를 바로잡길 원할 뿐입니다.” 뱅거 대학의 환경학 강사이자 자기 고향 체스터를 영국에서 가장 격렬한 반플라스틱 도시로 바꾸고자 지난 1년을 보냈던 달변가 크리스티안 던(Christian Dunn)의 말을 인용하면, “그게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인 거죠.”

던, 그리고 던과 공동 간사로 활동하는 지구의 벗 지부장이며 오랫동안 환경 운동을 해온 사람 특유의 꾸준한 긍정성과 겸손한 태도를 지닌 헬렌 탠디(Helen Tandy)와 같이 걷다 보면 플라스틱에 맞서는 싸움이 가진 매력이 분명해 보인다. 반란군의 정치 운동에 참여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코스타 커피에서 번화가 식료품점에 이르기까지, 가게들 창문에 운동을 지지하는 표시가 나붙어 있다. 젊은 바텐더가 내게 말했다. “체스터에 있는 아무 펍에나 가서 플라스틱 빨대를 달라고 해보세요. 그럼 이렇게 말할 겁니다. ‘안 됩니다. 그거 때문에 고래가 죽거든요.’” 딜런이라는 건설업자는 고객들에게 플라스틱 포장을 사용하지 않은 부품들을 추천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B&Q(영국의 DIY 매장)에 가보면 넘쳐난다고도 했다.
미드웨이 환초에서 발견된, 배 속에 플라스틱 잡동사니가 꽉 차 있는 검은발 앨버트로스의 새끼 ⓒChris Jordan
체스터 동물원의 시설 관리자는 카페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을 없애는 중이며 선물 가게도 감사 중이라고 밝혔다. 동물원은 이 지역의 가장 큰 명소라 캠페인에 큰 도움이 된다. “먹이 자루는요? 동물에 사용되는 다른 물품은 어떨까요?” 던이 물었다. (매니저는 알아보겠다고 했다.) 동물원을 나가는데 초등학생들이 보라색 마일러(폴리에스테르 제품 상표) 풍선을 들고 코끼리 우리 쪽으로 걸어갔다. “저게 어디서 났을까요?” 탠디가 궁금해했다. “다음에 한번 물어봐야겠어요.”

이런 식의 끈질기고 현실적인 풀뿌리 운동이 지난 2년간 번성했다. 그 결과 우리는 온갖 브랜드와 조직과 정치인들이 뭔가를 하는 모습을 목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심지어 지난 몇 주간 소방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처럼 쏟아지는 언론 보도만 살펴봐도, 토트넘 홋스퍼는 새 경기장에서 일회용 플라스틱을 단계적으로 없앨 계획이며, 시애틀은 시 경계 내에서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했다. 가장 유명한 커피 체인인 스타벅스는 전 세계 2만 8000개의 매장에서 연간 1억 개씩 사용되는 것으로 추산되는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겠다고 약속했고, 비(非)플라스틱 제품을 절대 만들지 않는 레고는 생산 공정에 집어넣을 수 있는 식물 기반의 플라스틱을 알아보고 있다.

이 모든 상황에는 약간의 광적인 열광이 서려 있다. 브리스톨에 본부가 있는 캠페인 단체 ‘도시에서 바다까지(City to Sea)’를 설립한 활동가 나탈리 피(Natalie Fee)는 2017년 BBC에 출연해서 플라스틱에 대해 이야기한 뒤 마치 자기 계발 강사처럼 은행이나 기업 중역실에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강연해 달라는 요청을 수없이 받았다고 한다. 기회주의가 출몰하는 분위기도 뚜렷이 감지된다. 환경식품농무부의 전직 고위 간부에 따르면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최근의 집중적 관심은 브렉시트 국민 투표 후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대중적이며 초당적인 정책을 만들기 위한 내각의 발 빠른 행동이라는 공감대가 부처 내부에 퍼졌다는 것이다. “마이클 고브(Michael Gove) 장관은 우리 부서가 자기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점을, 또한 본인이 환경장관으로서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주고 싶어 했어요.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 목표가 플라스틱과 아주 잘 맞아떨어졌던 겁니다.” 환경식품농무부 간부의 말이다.

정치인들의 동기가 어떻든 간에, 플라스틱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심각한 환경 문제에 대한 정부와 기업 최고위층의 높은 관심을 이끌어 냈고, 그들이 이 문제가 우세한 이슈라는 것을 납득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플라스틱에 대한 대책 중 아주 일부만이 법으로 명문화됐지만 ― 미국과 영국의 마이크로비드 금지에는 예외 조항이 있다 ― 감정은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것이다.
 

플라스틱만의 독특한 특성은 세계 경제가 폐기 중심의 소비문화로 이동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비록 플라스틱이 우리 생활의 도처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플라스틱이란 무엇이고, 누가 제조하며, 어디서 오는지에 대해 말하고자 애쓸 것이다. 이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플라스틱은 대중의 눈에서 멀리 떨어진 채 제조되는 전 지구적 산업 제품이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의 원재료는 화석 연료이고, 석유와 가스를 생산하는 거대 기업 중 상당수는 같은 시설에서 플라스틱을 생산한다. 플라스틱에 대한 이야기는 화석 연료 산업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2차 세계대전 후 이어진 소비문화 속에서 석유로 인해 불붙은 호황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플라스틱은 탄소 함량이 풍부한 화학적 혼합물을 단일한 구조의 물질로 변형시키는 방법으로 제조하는 제품을 모두 아우르는 용어다. 19세기에 화학자와 발명가들은 이미 빗과 같은 가정용품을 부서지기 쉬운 초기 형태의 플라스틱으로 제조하고 있었다. 초기 형태의 플라스틱은 처음에는 ‘파크신(Parkesine)’이라 불리다가 나중에는 그것의 재료가 되는 식물 셀룰로오스에서 이름을 따 셀룰로이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현대의 플라스틱은 1907년 미국에서 ‘베이클라이트(Bakelite)’가 발명되면서 시작되었다. 베이클라이트는 원유 또는 석탄을 석유로 바꾸는 과정에서 남게 되는 화학 물질인 페놀을 시작점으로 사용한 완전 합성 물질로서, 단단하고 반짝이며 밝은 색깔을 띤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플라스틱으로 인식될 수 있는 물질이다. 베이클라이트를 발명한 사람들은 그것을 전선 절연체로 사용할 생각이었지만, 이내 그 물질의 거의 무한한 잠재력을 깨닫고는 ‘수천 가지 용도로 쓸 수 있는 재료’라고 광고를 했다. 훗날 이 광고는 상당한 과소평가였음이 드러난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온갖 종류의 플라스틱이 개발되었고, 대중은 무한한 변형이 가능한 이 놀라운 과학적 창조물에 매혹되었다. 하지만 플라스틱을 진정으로 필요 불가결한 존재로 만든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천연 소재가 부족해지고 전쟁 수행을 위해 막대한 물량이 요구되면서, 거의 무엇이든 될 수 있는 플라스틱의 잠재력은 ― 선구적인 플라스틱 화학자 빅터 야슬리(Victor Yarsley)가 1941년에 말했듯 ‘석탄, 물, 공기’만 있으면 됐다 ― 국가 군사 조직에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과학 기술 잡지 《파퓰러 머캐닉스(Popular Mechanics)》의 1943년 기사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군모 차양, 조준기, 박격포 포탄 기폭 장치, 항공기 조종실을 묘사하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군대는 심지어 플라스틱 나팔까지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플라스틱 생산량은 1939년에서 1945년 사이 9만 7000톤에서 37만 1000톤으로 세 배 이상 뛰었다. 전쟁 후 화학과 석유 산업 분야의 거대 기업들이 자기들 사이의 시장을 합쳤다. 듀폰(DuPont), 몬산토(Monsanto), 모빌(Mobil), 엑손(Exxon)은 플라스틱 생산 설비를 구입하거나 개발했다. 이로 인해 물류적인 의미가 생겨났다. 이 회사들은 이미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데 쓸 원재료를 기존의 정유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인 페놀과 나프타라는 형태로 공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40년에 다우(Dow) 케미컬에서 스티로폼을 발명하고 모빌이 포장용 플라스틱 필름에 대한 다수의 특허를 보유하게 되는 등 새로운 플라스틱 제품을 개발함으로써, 이 회사들은 자기네 원유와 가스를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효율적으로 개척해 나갔다. 1988년 오스트레일리아의 국립 과학국 소속 연구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석유 화학 산업의 발전은 아마도 플라스틱 산업의 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한 단일 요인일 것이다.”

전후 수십 년간 경제 규모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플라스틱은 거침없는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소비재 제품 재료를 선택함에 있어 면, 유리, 마분지를 대체하게 될 것이었다. 얇은 플라스틱 포장지는 1950년대 초에 도입되면서 상품과 드라이클리닝 제품을 보호하던 종이와 천의 자리를 차지했다. 1950년대 말엽에 듀폰은 1억 장 이상의 플라스틱 시트가 소매상에 팔렸다고 발표했다. 그와 동시에 플라스틱은 라텍스 도료와 폴리스티렌 단열재의 형태로 수백만의 가정에 발을 들였는데, 이것들은 톡 쏘는 냄새가 나는 유성 페인트와 값비싼 암면이나 목재 섬유 패널에 비해 엄청나게 향상된 제품들이었다. 이내 플라스틱은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심지어 우주까지 진출했다. 1969년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이 달 표면에 꽂은 미국 국기는 나일론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듬해 코카콜라와 펩시는 자신들이 쓰던 유리병을 몬산토 화학과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이 제조한 플라스틱병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1972년 철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다음과 같이 썼다. “물질의 위계질서는 폐기되었다. 단 하나의 물질이 모든 물질을 대체한다.”
1969년 버즈 올드린이 달 표면에 꽂은 나일론 미국 국기와 같이 서 있다. ⓒProject Apollo Archive
하지만 플라스틱은 단순히 기존 재료를 대체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해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계는 변하지 않은 채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훨씬 유연한 동시에 다루기 쉽고, 대체된 물질보다 엄청나게 저렴하고 가볍다는 플라스틱만의 독특한 특성은 세계 경제가 폐기 중심의 소비문화로 이동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1955년 경제학자 빅터 리보(Victor Lebow)는 이렇게 썼다. “엄청나게 생산적인 우리 경제는 소비가 우리 삶의 방식이 되기를 요구한다. 우리는 증가 일로의 생산 속도에 맞춰 물건들을 소비하고, 소각하고, 닳도록 써버리고, 바꾸고, 버려야 한다.”

플라스틱은 이런 급격한 변화를 야기하는 완벽한 촉매가 되었다. 가격이 싸고 버리기도 쉽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빅터 리보의 글이 나오기 1년 전인 1954년, 무역 잡지 《모던 플라스틱스(Modern Plastics)》의 편집자인 로이드 스토퍼(Lloyd Stouffer)는 산업 콘퍼런스에서 “플라스틱의 미래는 쓰레기통에 있다”고 발언했다가 언론에서 조롱을 당했다. 1963년 그는 같은 콘퍼런스에서 다음 연설로 완전히 누명을 벗었다. “여러분은 쓰레기통, 쓰레기 하치장, 쓰레기 소각로에 말 그대로 수억 개의 플라스틱병, 플라스틱 주전자, 플라스틱 튜브, 블리스터와 스킨 팩, 비닐봉지와 필름과 포장지를 꽉꽉 채우고 있습니다.” 그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누구도 더 이상 플라스틱 포장이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 행복한 날이 오고야 만 것입니다.”

플라스틱은 이익을 뜻했다. 공학 기술 연구 기업인 미드웨스트(Midwest) 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1969년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일회용 용기 시장의 발전 이면에 존재하는 강력한 동력은 반환 가능한 병 하나를 시장에서 축출할 때마다 반환할 수 없는 병 20개를 팔 수 있다는 사실이다.” 1965년 무역 단체인 플라스틱 산업 협회는 플라스틱이 13년 연속으로 성장 기록을 갱신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플라스틱은 쓰레기를 뜻하기도 했다. 1950년 이전, 미국에서 유리병처럼 재사용이 가능한 용기는 96퍼센트에 달하는 반환율을 보였다. 1970년대에 이르면 모든 종류의 용기를 반환하는 비율이 5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한 번 쓰고 만다는 것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많은 물건들이 매립지에 버려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증가하는 쓰레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969년에 열린 미 환경 보호국 회의에서 백악관 과학 자문인 롤프 엘리아센(Rolf Eliassen)은 “이 파괴할 수 없는 물건들을 수집하고 처리하고 처분하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다”고 주장했다.

이후에 등장한 것은 일회용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반감, 특히 플라스틱에 대한 반감이었지만, 우리가 요즘 보고 있는 그런 종류는 아니었다. 1969년 《뉴욕타임스》는 “쓰레기와 쓰레기 처리 문제라는 산사태가 국가의 주요 도시 주변에 계속 쌓이고 있는데, 이는 현재 진행되는 대기와 수자원 위기와 같이 놓고 볼 수 있을 만큼 임박한 위급 상황이다”라고 보도하면서 쓰레기 문제를 당대의 주요 환경 문제와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1970년 첫 번째 ‘지구의 날’ 축하 행사가 이뤄지기 두 달 전, 닉슨 대통령은 “새로운 포장 방법은 분해되지 않는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고 개탄하면서 “요즘 우리는 한 세대 전에는 아껴 쓰던 것들을 자주 버린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뉴욕시는 1971년 플라스틱병에 세금을 도입했고, 의회는 1973년에 반환이 불가능한 포장 용기에 대한 전면 금지 조치를 가지고 논쟁을 벌였다. 하와이주는 1977년에 플라스틱병 사용을 완전히 금지했다. 당시에도 플라스틱에 대한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유리, 철, 알루미늄은 거의 무한정 녹이고 개조해도 처음과 똑같은 품질의 신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반면 플라스틱은 재활용을 할 때마다 품질이 뚝뚝 떨어진다.


업계는 제의된 법률에 대해 시작부터 강공을 펼쳤다. 플라스틱병에 세금을 매기려던 뉴욕시의 정책은 세금이 부과된 해에 주 대법원에 의해 폐기되었고, 뒤이어 플라스틱 산업 협회가 부당한 대우를 주장하며 소송을 걸었다. 하와이의 플라스틱병 금지는 음료 회사가 비슷한 소송을 걸고 난 뒤인 1979년 주 순회 법원에 의해 폐기되었다. 의회에서 논의된 금지안은 로비스트들이 그 조치가 제조업 일자리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주장하자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이런 법률적 위협을 물리치고 난 뒤, 석유와 화학 기업은 음료와 포장재 제조업체와 느슨한 동맹을 맺고서 반플라스틱 정서를 성공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2단계 전략을 한 세대에 걸쳐 추진했다. 이 전략의 첫 번째 단계는 쓰레기와 폐기물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서 소비자로 옮기는 것이었다. 일회용 포장 사용을 조장하고 그 과정에서 수백만 달러를 번 기업들을 비난하는 대신에, 바로 그 기업들이 무책임한 개인이야말로 진짜 문제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런 주장의 완벽한 예시는 미국 포장업계 잡지가 1965년 ‘총이 사람들을 죽이는 건 아니다’라는 제목을 달고 실은 권두언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글은 제조업자들이 아니라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서 우리 고장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비난했다.

플라스틱과 기타 일회용 포장재 관련 기업들은 이 메시지를 퍼뜨리기 위해 쓰레기에 대한 소비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비영리 단체에 기금을 투자했다. 그런 단체 중 한 곳인 ‘미국을 아름답게 유지합시다(Keep America Beautiful·KAB)’는 1953년에 설립되었다. 이 단체에 기금을 낸 회사들로는 코카콜라, 펩시, 다우 케미컬, 모빌 등이 있었고, KAB는 이런 기조에 따라 수백 건의 광고를 내보냈다. 1971년 지구의 날에 내보낸 캠페인 광고는 “사람들이 공해를 유발합니다. 사람들이 그걸 멈출 수 있습니다”였다. KAB는 또한 지역 시민 단체와 사회단체를 동원해 이른바 ‘국가적 수치’인 쓰레기를 치우고 처리하도록 조직했다.

이런 작업은 성과를 거뒀지만, 1970년대 중반이 되면 KAB와 업계의 유착에 대한 우려로 인해 ‘시에라 클럽(Sierra Club)’과 ‘아이작 월턴 리그(Izaak Walton League)’ 같은 환경 단체뿐 아니라 미 환경 보호국도 KAB 자문 역할을 그만두게 되었다. 1976년 미 환경 보호국 국장 러셀 트레인(Russell Train)이 KAB의 기업 후원자들이 공해 방지법을 훼손하려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담긴 분노에 찬 메모를 유포했다는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쓰레기를 개인의 실패로 규정하는 작업은 놀랄 만큼 성공적이었다. 1988년 지구의 플라스틱 생산량이 강철 생산량을 따라잡던 해, 세인트 제임스 공원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쓰레기를 줍고 있던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는 그 분위기를 완벽하게 포착했다. “이건 정부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녀가 기자들에게 말했다. “알면서도 생각 없이 쓰레기를 버린 사람들 잘못입니다.” 애초에 플라스틱을 제조하고 팔았던 사람들은 그녀의 지적에서 제외돼 있었다.
말레이시아 쁘렌띠안 케실 섬에 밀려온 플라스틱 쓰레기들 ⓒColocho
오염에 대한 대중의 우려를 가라앉히기 위한 업계의 두 번째 전략은 상대적으로 최신 개념인 가정에서의 재활용에 역점을 두는 것이었다. 1970년대에 환경 단체와 미 환경 보호국은 점점 커지는 소비재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동차, 기계류 및 금속 조각 같은 대형 품목에는 익숙했던 개념인 재활용을 지역 공동체 단위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구하고 있었다.

포장재와 음료업계는 재활용이 자기네 제품을 쓰레기 매립지로부터 지켜 낼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냉큼 밀어붙였다. 1971년, 플라스틱병이 널리 퍼지기 전, 코카콜라 보틀링 컴퍼니는 유리나 알루미늄 같은 가정용 쓰레기를 재활용하고자 뉴욕시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저장소 중 몇 곳에 자금을 지원했다.

플라스틱 산업도 이와 유사한 방침을 취하면서 자기네 제품을 재활용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소리 높여 부르짖었다. 1988년 플라스틱 산업 협회는 도시에서의 플라스틱 재활용을 촉진할 목적으로 ‘고형 폐기물 문제 해결 위원회’를 설립한 뒤, 1995년까지 플라스틱병의 25퍼센트를 재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89년 아모코(Amoco, 스탠더드 오일의 새로운 이름)와 모빌, 다우 케미컬은 ‘국립 폴리스티렌 재활용 회사’를 설립하여 역시 1995년까지 25퍼센트를 재활용하겠다는 똑같은 목표를 내세웠는데, 이 경우는 음식 포장재였다(당시 《타임》에 실린 모빌의 광고는 폴리스티렌이 폐기물 위기의 ‘희생양이지 문제는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 해결책은 ‘더 많은 재활용’이었다). 1990년에는 ‘미국 플라스틱 협회’라는 또 다른 산업 단체가 2000년에는 플라스틱이 ‘가장 재활용이 많이 되는 재료’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개진했다.

이런 장밋빛 전망이 가진 문제는 플라스틱이 재활용에는 최악의 물질 중 하나라는 점이다. 유리, 철, 알루미늄은 거의 무한정 녹이고 개조해도 처음과 똑같은 품질의 신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반면 플라스틱은 재활용을 할 때마다 품질이 뚝뚝 떨어진다. 플라스틱병을 재활용해도 같은 품질의 플라스틱병을 만들 수가 없다. 대신 재활용된 플라스틱은 의류용 섬유나 가구용 슬레이트가 되고, 그런 다음에는 도로 충전재나 플라스틱 절연재가 될 텐데, 여기까지 오면 더 이상은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 매 단계가 본질적으로 매립지 아니면 바다 쪽으로만 회전하는 톱니바퀴인 것이다. 위스콘신 대학의 공학자 로버트 햄(Robert Ham)은 1992년에 플라스틱 제품이 제한된 수의 물건으로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플라스틱 재활용의 미래는 여전히 도통 알 수 없는 수수께끼다.”

알루미늄처럼 더 수익성 있는 재료를 재활용한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재활용 플라스틱이 가진 상업적 매력은 많지 않았다. 1980년대에 플라스틱 재활용이 호황 산업이 되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공공 부문이 개입했다. 재활용이 국가에서 상당한 자금을 지원받고, 플라스틱이 쓰레기차에 실려 운송되는 동안, 업계는 계속해서 점점 더 많은 플라스틱을 쏟아 냈다. 하원의원 폴 B. 헨리(Paul B Henry)가 1992년 용기 재활용에 대한 청문회에서 말했듯, 플라스틱 업계는 ‘자기네가 재활용의 든든한 옹호자라 주장’했지만 ‘커브사이드 재활용 프로그램[1]은 거의 전적으로 정부 보조금에 의존’했다. 다시 말해 정부는 업계가 재활용에 대해 예전에 떠들어 댄 허풍에 꼼짝없이 낚여서 비용을 지불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중은 누군가 쓰레기를 치워 주는 한 행복해했다. 오늘날까지도 몇몇 환경운동가들은 가정용 재활용품 수거를 ‘소망 순환’이라 부르고, 재활용 쓰레기통을 실제로는 별 도움이 안 되는데도 사람들의 죄책감은 덜어 주는 ‘마법 상자’라 부른다.
 

기후 변화를 둘러싼 훨씬 큰 싸움에서, 플라스틱에 대한 반격은 작지만 힘을 주는 승리이자 향후 행동의 모델이 될 수 있다.


그사이 전 세계의 플라스틱 생산량은 1995년 1억 6000만 톤에서 현재는 3억 4000만 톤으로 치솟았다. 재활용률은 여전히 울적할 정도로 낮다. 미국에서 매년 재활용되는 플라스틱은 전체 플라스틱의 10퍼센트 이하다. 심지어 재활용률이 기적적으로 치솟는다 해도, 재활용된 플라스틱으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빤하기 때문에 결국 새 플라스틱에 대한 수요는 항상 높을 수밖에 없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산업 생태학자인 롤랜드 가이어(Roland Geyer)는 2017년에 미국과 영국의 정책 입안자에게 기념비적 참고 문헌이 된 보고서 〈지금까지 제조된 모든 플라스틱의 생산, 활용, 종말(Production, Use and Fate of All Plastics Ever Made)〉을 작성한 인물로, 그는 내게 “재활용이 전 세계의 플라스틱 양을 줄이는 데 전혀 효과가 없으리라는 사실을 점점 더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록 대중이 반플라스틱 캠페인에 대해 보이는 열정은 부분적으로는 플라스틱이 기후 변화보다는 단순하고 해결하기 쉬운 문제일 거라는 느낌에 의해 추동되고 있겠지만, 이 두 사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플라스틱 생산업체 열 곳 중 일곱 곳은 여전히 석유와 천연가스 회사다. 그들이 화석 연료를 뽑아내는 한 플라스틱을 만들고픈 커다란 동기가 늘 있다는 얘기다. 2016년의 세계 경제 포럼 보고서는 2050년까지 전 세계에서 추출되는 석유의 20퍼센트가 플라스틱 제조에 쓰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과학자 요한나 크램(Johanna Kramm)과 마르틴 바그너(Martin Wagner)는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본질적으로 보면 결국 플라스틱 공해는 인간이 만든 전 지구적 변화의 가시적이면서도 실체적인 부분이다.”

이것이 플라스틱의 역설이다. 또는 적어도 우리가 현재 꼼짝없이 붙들려 있는 문제다.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알게 되자 행동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 문제를 점점 더 밀어붙일수록, 우리가 해결하는 데 실패했던 여타의 환경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 역시 점점 더 막막하고 다루기 힘든 것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똑같은 장애물에 맞닥뜨리고 마는 것이다. 규제 불가능한 산업, 세계화된 세상, 지속 불가능한 우리 삶의 방식.

그렇다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플라스틱을 쓰고 싶어 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반플라스틱 운동은 아마도 21세기 들어 출현한 가장 성공적인 전 세계적 환경 캠페인일 것이다. 만약 정부가 약속을 지키고, 운동이 계속 동력을 유지한다면 분명 성과를 볼 것이다.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미국 컨설팅 회사인 우드 맥켄지(Wood Mackenzie)에서 화학 산업 분석가로 일하는 스티브 징거(Steve Zinger)의 말이다. “특히 올해는 소비자들의 반플라스틱 정서가 커졌어요. 기업들은 플라스틱 사용 금지라는 새로운 현실에 맞춘 사업 모델을 적용해야 할 겁니다.” 그는 석유 생산업자들 또한 수요에서 손실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플라스틱의 역설에 존재하는 긍정적인 면이다. 만약 플라스틱이 우리가 겪는 다른 환경 문제의 축소판이라면, 그 논리를 따를 경우 해결책도 있다는 얘기다. 불과 몇 년 사이에 플라스틱이 환경에 끼치는 해악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사람들을 조직화했고, 정부 규제를 압박했으며, 화석 연료 회사들의 관심도 끌었다. 소비자들은 슈퍼마켓에 포장을 줄이라고 요구했고, 그 결과 1년 만에 석유 회사 BP는 2040년까지 일일 석유 생산량이 200만 배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하게 되었다. 플라스틱에 대한 우리의 집념이 표출된 것이다. 기후 변화를 둘러싼 훨씬 큰 싸움에서, 플라스틱에 대한 반격은 작지만 힘을 주는 승리이자 향후 행동의 모델이 될 수 있다.

문제들이 아주 긴밀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플라스틱은 그것만 따로 떼어 우리 삶에서 추방할 수 있는 개별적인 문제가 아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만연했던 소비 양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생산물에 불과한 것이다. 엄청난 도전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세 플라스틱이라는 용어를 만든 해양학자 리처드 톰슨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는 낙관적인 모습이었다. 그가 말했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과학자, 기업, 정부와 함께 이런 식으로 똘똘 뭉쳤던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진짜 기회가 온 겁니다.”
 
[1]
주택 지역의 도로변을 순회하면서 재생 자원을 수거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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