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뉴스
2화

뉴스라는 독특한 상품

팔리는 뉴스의 탄생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살아온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 세대는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다루지만, 디지털이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는 알지 못한다.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디지털 이전과 이후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디지털 이전의 저널리즘을 알지 못하면, 디지털 이후의 저널리즘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디지털 이후 저널리즘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기 위해서 먼저 디지털 이전의 저널리즘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뉴스는 상품의 형태로 유통된다. 뉴스는 기자들의 임금 노동을 통해 생산되고, 이용자들이 직접 유료로 구매하거나 광고주가 대가를 지불해야 소비할 수 있는 상품이다. 우리는 뉴스가 시장에서 화폐를 매개로 교환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뉴스가 처음부터 상품의 형태로 거래되었던 것은 아니다.

기원전 490년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까지 달려와 승전보를 알린 전령, 부족장의 지시를 우렁찬 목소리로 마을에 전한 뉴스 크라이어(crier), 보고 들은 소식을 노래로 만들어 부른 음유 시인은 돈을 벌기 위해 뉴스를 전하지 않았고, 시장에서 뉴스를 거래하지도 않았다. 초기의 뉴스 전달 중 일부는 종교적인 행위였고, 일부는 우정이나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에서 비롯된 호혜적 행위였다.

인쇄 신문도 처음에는 상품과 거리가 먼 형태였다. 신문은 돈을 벌기 위해 판매하는 상품이 아니라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수단이었다. 당파지(party press)라 부르는 미국 건국 초기의 신문들은 특정 정당이나 정파에 종속되어 있었고, 이들의 후원금을 받아 운영됐다. 주로 정치 에세이를 담는 신문은 정치에 관심이 많은 엘리트 지식인들의 전유물이었다.

미국에서 뉴스가 상품 형태로 교환되기 시작한 것은 1830년대부터였다. 대도시 노동자 계급이 구매할 수 있도록 1센트 동전 한 닢만 받는 파격적인 가격의 상업적 대중지(popular press)들이 등장했다. 페니 프레스(penny press)라 불린 이 신문들은 범죄, 스캔들 등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선정적인 사건들을 큼지막한 헤드라인과 삽화를 곁들여 기사화했다. 이제 신문은 정치 세력에 의존하지 않고 구독료와 광고 수입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임금을 대가로 취재 노동을 하는 기자라는 직업도 이때 처음 등장했다.

신문이 정치적 주장을 전달하는 수단에서 이윤 창출의 도구로 탈바꿈한 것은 19세기 초 미국 사회 전체가 겪었던 급격한 변화와 관련이 있다. 이 시기는 산업혁명 이후 제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도시화가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백화점과 콜라가 등장했고 여가 시간에 소비할 수 있는 프로 야구, 영화, 추리 소설이 인기를 끌었다. 기업들은 새롭게 등장한 대중이라는 계층에게 제품을 팔기 위해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나섰다.

불특정 다수의 대중 소비자에게 광고를 배포할 수단을 원했던 기업의 요구를 충족시킨 것이 바로 신문이었다. 신문은 산업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달라진 생산 조건과 삶의 패턴에 발맞춰 성격을 적절히 바꿨던 것이다. 이것이 뉴스 상품화(commodification)[1]의 역사적 출발점이다.

 

저널리즘, 사회 계약을 맺다


새롭게 등장한 뉴스 상품은 이내 중요한 변곡점을 만나게 된다. 20세기 벽두 미국 사회에 도래한 혁신주의 시대(The Progressive Era)의 조류였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부작용을 비판하면서 시작된 혁신주의는 경제적 독점 해소와 근본적 사회 변혁을 요구했다. 자본 계급의 폭주에 브레이크를 걸고 비대해진 자본주의와 앙상해진 민주주의 사이의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 저널리즘도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된 신문은 조지프 퓰리처(Joseph Pulitzer)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를 비롯한 소수의 부호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저널리즘이 부유한 지배 계급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저널리즘이 계급 선전에 불과해졌다는 믿음이 확산되자 신문을 찾는 사람들이 차츰 줄어들기 시작했다.

난관에 봉착한 미디어 소유주들은 경제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정치적 권력을 희생하기로 결심했다. 발행인들은 자신들이 발간하는 신문이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기를 원했다. 편집상의 의사 결정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상업적 목적이나 소유주·광고주의 계급적 이해와는 별개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여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널리즘이 전문직(professional) 저널리스트의 독립적 판단에 기초해 수행된다는 믿음을 얻어야 했다.[2]

기자를 전문직으로 만들어 주는 장치들이 하나둘 마련되었다. 1910년 텍사스주 신문 편집인들을 시작으로 각 주에서 속속 윤리 강령이 제정됐다. 1923년에는 미국 신문 편집인 협회가 신문 윤리 강령을 채택했다. 1908년 미주리 대학이 세계 최초로 저널리즘 학부를 신설하는 등 전문직 저널리스트를 양성하는 기관들이 설립되었다. 전문직이 갖추어야 할 직무 기술로서 객관주의가 저널리스트들 사이의 직업적 이상으로 자리 잡은 것도 이즈음의 일이다.

20세기 초반에 이뤄진 미국 저널리즘의 ‘전문직주의’ 프로젝트는 독점적 시장과 언론사 소유주의 권력 남용에 대한 비판에 직면했던 뉴스 산업의 대응책이자 미디어 소유주, 뉴스 노동자, 시민 공중이라는 세 이해관계자 사이에 맺어진 일종의 합의였다고 할 수 있다. 미디어 소유주들은 정치적 이익을 포기한 대가로 경제적 이윤을 보장받았다. 뉴스 노동자들은 고용주가 아닌 시민 공중에게 봉사하는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저널리스트로 거듭날 수 있었다. 시민 공중은 자본 계급의 이익에 봉사하지 않고 권력을 비판하는 독립적 언론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오늘날 저널리즘의 이상을 표현하고 저널리즘 실천을 규율하는 규범적 모델(normative model)이 자리 잡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저널리즘을 수행하는 조직과 저널리스트들은 권력과의 길항 관계 속에서 ‘자율적으로 통치되는(self-governed) 독립적 주체’라는 특권적 지위를 부여받는다. 그 대가로 저널리즘은 사회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공적 이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중을 계몽함으로써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양식 있는 시민(informed citizen)을 배양해야 한다. 또한 주권자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은 대리인(representative)으로서 시민들이 생업에 바빠 미처 하지 못하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임무를 수행하여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3]

이를 저널리즘과 시민 사회 사이에 맺어진 암묵적 사회 계약이라 부를 수 있다. 저널리즘의 규범적 모델이 수립되면서 저널리즘과 민주주의는 공생 관계가 되었다. 이때부터 저널리즘 없이 민주주의는 유지되기 어려우며, 민주주의 없이 저널리즘은 존립할 수 없다는 인식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저널리즘은 사기업의 형태로 수익을 추구하는 동시에 민주주의를 위해 공적 서비스를 수행하는 모순적 성격을 숙명처럼 갖게 되었다.

산업 자본주의 시대는 본질적으로 상충될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원리가 일시적 타협에 성공했던 시기였다. 20세기의 산업 자본주의는 자본과 노동 간의 계급 대타협 위에 수립된 민주적 자본주의(democratic capitalism) 체제로 불린다.[4] 산업 자본주의는 표준화된 상품의 대량 생산과 노동자 구매력 향상에 의한 대량 소비를 접합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는 전략에 기초했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은 극단적인 노동 분업을 통한 탈숙련화를 강요받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노동 계급이 소비 시장에서 구매력을 갖출 수 있는 수준의 급여가 제공되었고, 파업을 방지하기 위해 제도화된 노사 관계와 사회 보장 제도가 구축되었다.

자본이 노동에 일정한 물질적 양보를 함으로써 계급적 이해관계의 균형이 이루어졌고, 노동 계급은 소비사회의 주역이자 민주주의 체제의 주요한 행위자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규범적 모델에 바탕을 둔 현대 저널리즘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균형을 자양분 삼아 형성되었다.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


미국 저널리즘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저널리즘도 산업 자본주의의 발전과 긴밀한 연관을 맺으며 형성되고 발전했다. 한국에서도 뉴스는 상품으로 유통되었고 규범적 모델의 지배를 받았지만, 그 구체적 과정은 서구와 다르다.

한국의 뉴스는 서구와 같은 자생적 상품화를 경험하지 않았다. 이미 상품화된 뉴스 형식을 서구에서 수입해 왔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때에도 뉴스는 일정 부분 상품의 형태를 띠었지만 독자 시장과 광고 시장의 성장은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물렀다. 산업 자본주의 발전이 더딘 상황에서 뉴스가 상품으로서 활발히 거래되기에는 물적 토대가 취약했다. 해방 직후의 미 군정기와 이승만 정권 시절까지 대다수 신문들은 정론지적 성격을 유지했고 이윤 확보에 소극적이었다.

한국 뉴스가 본격적인 상품화의 길을 걸은 것은 산업화가 급속한 진전을 이루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다. 생산 시설의 증대와 함께 신문사들은 양적인 팽창을 이루었고, 발행 부수도 빠르게 늘었다. 신문사들은 설문 조사를 통해 독자 수요를 정교하게 파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앞다투어 상업적 성격의 주간지, 여성지, 소년지, 스포츠 신문 등 자매지를 창간했다.[5]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에는 대량 생산 체제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대량 소비 체제가 부재했다. 대량 생산된 상품을 내수가 아닌 수출을 통해 소화하는 한국의 특수한 경제 구조에서 대중은 소비 사회의 주축이 될 수 없었다.

1980년대 대중 소비 사회가 형성되면서 뉴스의 상업적 성장 속도도 빨라졌다. 내수 시장의 활성화와 함께 폭발적으로 늘어난 광고의 영향이 컸다. 전체 광고액이 세 배 이상 늘어나면서 중앙 일간지 전체 수입에서 광고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70퍼센트를 상회하기 시작했다. 신문사들은 광고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지면을 두 배 이상 늘려 가며 증면 경쟁에 나섰다. 언론사의 매출은 급성장했다. 1980년부터 1990년까지 10년간 매출액은 조선일보가 8.9배, 중앙일보가 7.0배, 한국일보가 5.0배, 동아일보가 4.5배 늘었다.[6]

규범적 모델 또한 뉴스 상품과 마찬가지로 외부로부터 이식되었다. 한국 저널리즘의 규범적 모델은 해방 직후 1950년대 미 국무성의 한국 언론인 교육 교류 사업을 통해 미국 연수를 다녀온 소장 언론인들에 의해 도입되었다. 미국에서 발원한 저널리즘의 규범적 모델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 국무성과 비정부 기구의 다양한 노력을 통해 제3세계에 수출되어 여러 사회에서 저널리즘의 모범적 규준으로 자리 잡았는데, 한국은 주요 수출국 가운데 하나였다.

1955년부터 1959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실시된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한 마흔두 명의 젊은 한국 언론인들은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저널리즘의 역사, 민주주의에 대한 강의를 듣거나 토론을 벌였고, 지역 신문사에서 현업 근무 경험을 쌓으며 한국 언론의 후진성을 자각하고 미국의 선진적 저널리즘을 본받아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된다.[7] 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이들은 1957년 1월 관훈 클럽을 결성하고 미국식 전문직주의의 국내 도입을 서둘렀다.

관훈 클럽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1957년 4월 결성한 한국 신문 편집인 협회가 처음으로 제정한 신문 윤리 강령에는 “신문 최대의 책임은 공중의 신뢰를 기초로 하여 공공의 이익에 충실하게 복무함에 있다”고 명시하는 등 언론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 독립성 등을 강조하였다. 서구에서 비롯된 규범적 모델의 핵심적 가치가 짧은 기간에 걸쳐 명목상으로나마 한국의 뉴스 생산 규범 안에 편입되었다.

여기에 언론인들이 지도적 위치에서 민중을 계몽하는 한국 저널리즘 특유의 지사志士적 전통이 결합했다.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 이래로 한국의 왜곡된 정치 현실은 언론인에게 단순히 사실을 객관적으로 알리는 전달자를 넘어 부조리한 체제에 저항하는 지사의 역할을 요구했다.

언론사 통폐합과 언론 기본법, 보도 지침 등 독재 정권의 언론 탄압에 맞서 언론인들과 시민 사회가 언론 자유화 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은 서구에서 형성된 규범적 모델을 한국적 현실에 맞게 정교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저널리즘이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조건에서 운영되면서 공중의 정치적 의견을 형성하고 민주화 투쟁과 민주주의 발전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인식은 한국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게 되었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이 채택한 〈자유 언론 실천 선언〉이 “민주 사회를 유지하고 자유 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사회 기능인 자유 언론은 어떠한 구실로도 억압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한 것도, 이 선언으로 시작된 백지 광고 지면을 수많은 독자들이 격려 광고로 채웠던 것도, 모두 한국에서 저널리즘의 규범적 모델이 자리를 잡았음을 증명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던 다양한 장치들이 폐지되거나 개선되면서 제도적 차원에서 언론의 자율성이 크게 증대되었고, 저널리즘과 시민 사회 간의 사회 계약은 이제 한국 사회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형 규범적 모델은 민주주의에 대한 강력한 지향성과 달리 자본 권력으로부터 사회 평등을 보호하려는 노력에는 소홀했다. 한국의 규범적 모델은 태생적으로 자본으로부터 독립하려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자유 언론 실천 선언〉 등 권위주의 정권 당시의 언론 자유화 운동은 정치권력만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을 뿐, 정치권력에 조응하여 기자들을 축출하고 순치된 언론을 만든 사주에 대한 문제의식은 담고 있지 않았다.[8]

자본 권력과의 전선 형성이 지연된 결과, 한국형 규범적 모델은 자본의 지배적 헤게모니에 대한 기자들의 무관심을 야기했다. 한국의 언론인들은 여전히 국가로부터의 언론 자유에는 민감하지만 자본으로부터의 언론 자유에는 체념적이거나 무비판적이다.

한국의 규범적 모델은 서구와 같은 전문직주의를 발전시킬 기회 또한 충분히 갖지 못했다. 객관주의 보도 관행이나 기자 협회 설립, 윤리 강령 채택 등 형식적 측면에서 서구 전문직주의를 모방하는 시도들은 계속됐지만, 전문직으로서의 정체성 형성이나 직업적 자율성, 전문직 특유의 윤리 의식은 지극히 낮은 단계에 머물렀다. 객관주의 역시 본래 목적과는 달리 피상적 사실을 형식적으로 보도하여 사건의 본질이나 쟁점을 회피하고 권력 비판의 책임을 면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이용됐다. 한국형 규범적 모델은 한국 저널리즘의 역동적 가능성을 잉태했지만, 동시에 수많은 과제들도 함께 남겼다.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고 할 수 있었다.

 

시민과 시장 사이


뉴스 상품이 비누나 셔츠, 텔레비전과 같은 일반적 상품과 뚜렷이 구분되는 점은 다른 영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규범의 강력한 영향과 견제 아래 만들어지고 평가받는다는 사실이다. 뉴스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하고, 공익을 추구해야 하며,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 민주주의에 기여해야 한다. 저널리즘의 역사는 이러한 원칙을 규정하는 저널리즘 규범의 형성과 적용 과정이었다.

규범적 모델은 엄격한 기준에 따라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규정하고, 저널리즘과 저널리즘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역할을 해왔다. 저널리즘이 가십, 타블로이드, 가짜 뉴스와 같은 다양한 정보와 구분되었던 것은 규범적 모델을 준거로 삼은 평가 덕분이었다. 언론사가 아무리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이라 하더라도 수익 극대화의 경영 논리가 무차별적으로 뉴스 제작에 침투하는 것을 금기시했던 배경에도 규범적 모델이 있었다.

뉴스 상품은 저널리즘으로서의 가치와 비즈니스로서의 가치가 공존하는 경합적 상품(contested commodity)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9] 경합적 상품이라는 개념은 인간 또는 사회의 어떤 요소들은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존엄성을 갖기 때문에, 매우 특별한 조건 아래에서만 화폐로 교환될 수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사회에는 교환 가치로 환원할 수 없는, 도덕적 딜레마를 제기하는 거래가 존재한다. 장기 매매나 대리모 거래가 그 예다. 이러한 재화나 서비스가 무차별적으로 상품으로 교환되는 것은 사회 정의와 정치적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적절히 규제되어야 한다. 뉴스 거래 역시 그중 하나다. 저널리즘은 시민의 정치적 권리와 관련돼 있고 자본주의에 내재된 비도덕성을 제어하면서 민주주의 사회를 위한 도덕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시장에 무제한적으로 종속되어선 안 된다. 뉴스는 시민과 시장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경합적 상품이 되어야 한다.

뉴스의 모순은 현대 민주주의의 유지와 발전을 가능케 한 긍정적 의미의 모순이었다. 이 모순을 통하여 비로소 언론사의 존립과 뉴스의 지속적인 생산이 가능해지는 동시에 저널리즘이 공공성을 추구하고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퓰리처의 신문사에서 일했던 넬리 블라이(Nellie Bly)는 잠입 취재를 통해 정신 병원의 인권 유린을 폭로했고,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Bob Woodward)와 칼 번스타인(Carl Bernstein)은 닉슨 대통령 사임으로 이어진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했다. 뉴스의 경합적 성격은 자본주의 질서 내에서의 경제적 생존 요구와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의 공공적 역할 사이에서 현대 저널리즘이 선택한 절충안이었고, 그 선택은 나름대로 효과적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규범과의 공존이 뉴스 미디어의 수익 추구에도 전략적으로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저널리즘의 전통적 수익 모델은 다음과 같은 원리를 따른다. 뉴스 시장은 구독료 시장과 광고 시장으로 구성된 이중 시장(dual market)이다. 둘은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구독료 시장에서 판매가 늘어나면, 광고 시장 판매도 늘어난다. 광고주들이 탐내는 수용자들의 주목(attention)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뉴스 미디어들은 저널리즘의 규범을 충족시킨 질 높은 뉴스를 통해 구매력을 갖춘 수용자들의 주목을 확보한 뒤 이를 광고주에게 판매하여 수익을 극대화했다. 뉴스룸의 기자들은 이윤 창출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저널리즘 규범의 준수를 더 중요시했고, 미디어 소유주들은 이러한 기자들의 인식을 장려하거나 수용했다.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규범적 저널리즘과 자본주의의 수익 창출 원리에 근거한 뉴스의 상품화가 양립했던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가 특수했던 산업 자본주의 시대의 사회적 맥락 덕분에 가능했던 지극히 예외적인 현상이었다. 문제는 경합적 상품으로서의 뉴스가 민주주의적 가치와 뉴스 미디어의 수익성 모두에 기여했던 저널리즘의 황금기는 이제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 이 예외적 상황이 끝나가는 과도기의 한가운데 서 있다. 이 과도기를 만들어 낸 핵심적 요소 가운데 하나가 디지털 기술의 등장이었다.
[1]
뉴스의 상품화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뉴스가 임금 노동에 의해 생산되고 시장에서 교환되는 형태로 변화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때 상품화는 비(非)상품에서 상품으로의 전환을 끝으로 완결되는 과정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발전이 계속되는 동안 끊임없이 상품의 속성을 강화해 나가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뉴스는 자본주의 발전의 정치 경제적 맥락 속에서 지속적인 상품화의 길을 걷게 된다. Dan Schiller, 《How to Think about Information》,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2007.
[2]
Robert McChesney, 〈The problem of journalism: A political economic contribution to an explanation of the crisis in contemporary US journalism〉, 《Journalism Studies》, 4(3), 2003, pp.299-329.
[3]
John Nerone, 〈The historical roots of the normative model of journalism〉, 《Journalism》, 14(4), 2012, pp.446-458.
[4]
Wolfgang Streeck, 〈The crises of democratic capitalism〉, 《New Left Review》, 71, 2011, pp.5-29.
[5]
이정훈, <한국 언론의 압축적 상업화: 1960년대 한국 언론의 상업화 과정에 대한 역사적 연구>, 서강대학교 대학원 박사 학위 논문, 2011.
[6]
김해식, 《한국 언론의 사회학》, 나남, 1994.
[7]
차재영, 〈1950년대 미 국무성의 한국 언론인 교육 교류 사업 연구: 한국의 언론 전문직주의 형성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한국언론학보》, 58(2), 2014, 219-245쪽.
[8]
송건호, 《송건호 전집 8 - 민주 언론 민족 언론 1》, 한길사, 2002.
[9]
Pamela Taylor Jackson, 〈News as a contested commodity: A clash of capitalist and journalistic imperatives〉, 《Journal of Mass Media Ethics》, 24, 2009, pp.146-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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