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운동장
4화

트랜스젠더 선수, 법 앞에 서다

엇갈린 결정


이 문제가 공정한지에 대한 판단을 언제까지나 가치관의 영역에 남겨둘 수는 없다. 트랜스젠더 선수들은 실존하고 이들의 참가를 허가하거나 불허하는 공적 주체는 결국 법과 제도이기 때문이다. 특히 트랜스 여성 선수를 둘러싼 법적 쟁점은 가볍지 않다. 이들의 여성 스포츠 참여를 법적 측면에서 논하려면 인권, 국제 스포츠 연맹의 규정, 미국 연방법 등을 복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스포츠계의 법과 제도는 과연 이들의 경기 참여에 대해 어떤 답을 가지고 있는가? 제도가 말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문제를 초래하고 있나? 가장 큰 논쟁거리로 떠오르고 있는 IOC, 국제 스포츠 연맹, NCAA 등 스포츠 조직이 갖춘 규정과 근거를 토대로 로렐 허버드와 리아 토머스의 대회 참가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이들은 앞으로 계속 스포츠 경기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한 선수가 올림픽에 나가려면 IOC의 기준, 해당 종목의 세계 연맹이 제시하는 기준, 조국의 국가 올림픽 위원회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허버드의 2020 도쿄 올림픽 참가는 이 모든 것의 통과를 의미한다. IOC 합의 성명 지침 ‘IOC 컨센서스 가이드라인(Consensus Guideline)’의 당시 기준 그리고 각 대륙별 역도 연맹을 포괄하는 국제역도연맹(IWF·International Weightlifting Federation)의 기준, 뉴질랜드 올림픽 위원회인 NZOC의 기준이 그것이다. 특히 NZOC의 지지는 각별했다.

2021년 6월 21일 NZOC는 허버드를 포함한 다섯 명의 도쿄 올림픽 역도 출전 선수 명단을 발표했다.[1] NZOC의 대표이사 케레인 스미스(Kereyn Smith)는 환영의 뜻을 표하면서도 논란을 의식했는지 허버드의 출전 기준 통과를 강조했다. 스포츠계의 성 정체성은 인권과 공정의 균형을 요하는 매우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임을 인지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결정엔 독특하게도 뉴질랜드의 ‘마나키 문화(Manaaki)’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마오리어로 마나키는 ‘공감의 중요성’을 뜻한다. 발표문에는 뉴질랜드 팀 역시 이 마나키 문화를 강하게 가지고 있으며 선수 모두를 존중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뉴질랜드 올림픽역도연맹(OWNZ·Olympic Weightlifting New Zealand)의 리치 패터슨(Richie Patterson) 회장도 본 발표에서 “허버드는 투지와 인내로 부상을 딛고 심리적 압박을 이겨내며 시합에 출전했다”며 그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특히 그의 기술을 칭찬했는데, 허버드는 영리하며 기술적으로 역도에 능하다고 언급했다. 신체적 이점에 대해 일어날 수 있는 논란을 불식시키려는 듯 보였다. 해당 라인업은 뉴질랜드가 이제껏 내보낸 역도팀 중 최대 규모였는데 전반적으로 역도팀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허버드의 경기 참여는 참가 기준의 통과뿐 아니라 이처럼 연맹의 적극적 지지가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리아 토머스를 향한 제도는 칼끝은 날카로웠다. 국제수영연맹인 FINA의 의결안을 들여다보자.

토머스는 2022년 6월 초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계속 수영을 할 것이며 자신의 숙원은 올림픽에 나가 경기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2] 그리고 같은 달 19일 FINA는 세계 선수권 대회가 있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임시 총회를 열었다. 이 회의의 주요 사안은 트랜스 여성 선수 참가 기준 신설이었다. 성, 젠더와 상관없이 트랜스젠더가 참가할 수 있는 오픈 부분의 신설 그리고 참가 기준으로서 신체 발달 등급인 ‘태너 척도(Tanner Stage)’가 주로 논의되었다. 태너 척도에 대한 설명은 후술하겠다. 결과적으로 오픈 부문 논의는 뒤로 미뤄졌으며, 트랜스 여성 선수는 약 12세 이전에 성전환을 완료해야 경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표결에 앞서 위원들은 법의학, 스포츠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로부터 자문을 받아 표결에 부쳤고 집행 위원 152명 중 71퍼센트가 이 ‘12세 안’에 찬성표를 던져 통과됐다. 브렌트 노윅키(Brent Nowicki) FINA 이사는 이 표결에 대해 “FINA는 포괄적이고 과학에 기반을 둔, 포용하는 방식으로 이번 정책을 마련했다. 무엇보다도 FINA는 경쟁의 공정성을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후세인 알-무살람(Husain Al-Musallam) FINA 회장도 “선수들의 경쟁할 권리를 보호”하고 “경쟁의 공정성을 보호”했다며 결정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들의 자평과는 다르게 후폭풍은 만만치 않았다. 미국의 성 소수자 운동선수를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인 ‘애슬랫 앨리(Athlete Ally)’는 FINA의 결정이 “차별적이며, 해롭고, 비과학적이며, IOC의 2021년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반대로 트랜스 여성 선수 출전에 줄곧 반대해 왔던 영국의 전 수영 국가 대표 샤론 데이비스(Sharron Davies)는 FINA가 과학에 기반해 의사 결정을 했으며 선수와 코치의 의견도 수렴했다며 FINA의 결정을 지지했다.

상반된 두 스포츠 연맹의 결정에 트랜스젠더 선수들은 동요하고 있다. 법과 제도가 특정인을 겨냥하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국제 스포츠 연맹과 조직에서 정한 규정, 판결, 그리고 관련 회의록을 보면 이것이 혐오 정서나 공정 담론 때문이 아닌 제도적 부실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율이란 말 속에 숨겨진 것


이전까지 트랜스젠더 선수들은 2003년 스톡홀름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기준을 따랐다. 성전환 수술을 마치고 2년 후에 바뀐 성의 경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2015년 11월, IOC는 ‘성전환 및 안드로겐과잉증에 관한 IOC 합의 회의(IOC Consensus Meeting on Sex Reassignment and Hyperandrogenism)’ 에서 트랜스젠더 가이드라인의 개정안을 냈다. 참고로 안드로겐은 남성 호르몬의 총칭으로 테스토스테론은 안드로겐의 하나다. 위 개정안에서 트랜스 여성 선수에 대한 대표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선수는 여성임을 정확히 밝혀야 하고 스포츠를 이유로 4년 이내에 남성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 여성부 경기에 참여해 이점만을 챙기기 위해 성별을 마구잡이로 바꿔선 안 된다는 지침이다. 둘째로 선수는 최소 1년 전부터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1리터당 10나노몰 이하여야 출전할 수 있다. 이 사안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12개월간 자격 정치 처분을 받는다.

나아가 IOC는 2021년 11월 16일 포괄적으로 트랜스젠더 선수를 스포츠 경기에 받아들이는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발표했다. 250명 이상의 선수 및 이해관계자와 2년간의 협의 과정을 거쳐 발표된 내용이었다. 해당 발표에서 IOC는 트랜스 여성 선수가 여성 선수들과 비교하여 불공정한 이득은 없다고 밝히며, 타당한 동료 평가(Peer Review)를 받은 연구 결과 없이 트랜스젠더 참가에 제한을 두면 안 된다고 밝혔다. 또한 테스토스테론 수치로 트랜스 여성 선수 참가 여부를 결정하는 규정을 폐기했다. 이제까지 유지되어온 기준을 고려했을 때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시스젠더 여성 선수에게는 일방적이고 불합리하게 느껴질 여지도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결정이 생각보다 파급력이 없던 이유는 IOC가 각 연맹에 자율적으로 규정을 신설할 수 있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 즉, 이 프레임워크는 국제 스포츠 연맹에 영향을 줄 순 있어도 강제력은 없다.

허버드의 출전에 영향을 줬던 IWF 규정은 어떨까? 2017년 IWF 연례회의에서 의료위원회는 IOC의 2015 트랜스젠더 가이드라인을 따르기로 했다.[3] 2018년 IWF의 마이클 이라니(Michael Irani) 회장은 IOC 트랜스젠더 가이드라인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IWF만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는데 그로부터 1년 후인 2019년, IWF는 자신들의 트랜스젠더 규정을 2020 도쿄 올림픽 이후까지 바꾸지 않겠다고 확정했다.

반면 토머스의 출전에 영향을 주는 FINA는 2021년 IOC의 결정이 인권에만 치우친 결정이라 여겼다. 유럽 스포츠의학협회(EFSMA·European Federation of Sports Medicine Associations)와 FINA는 합동 성명을 발표하며 IOC의 결정이 생리학적 측면은 배제된 결정이며 테스토스테론이 경기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점을 고려하고, 최소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기조에 따라 FINA는 인권, 과학, 운동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트랜스 여성 선수의 경기 참가 규정에 대해 자체 논의했고 이것이 위에 언급한 태너 척도 등급 기반 결정이다.

태너 척도는 일종의 성적 성숙도 평가(SMR·Sexual Maturity Rating)로 1~2차 성징에 따른 신체 발달 척도를 의미한다. 영국의 소아과 의사 제임스 태너(James Tanner)가 개발했고 아직도 아동, 사춘기 청소년, 성인의 발달을 보는 척도로 활용된다. 특히 법의학에서 많이 사용됐다. 다만 신뢰성 부족 문제가 있었다. 생식기, 가슴의 크기, 고환 부피, 치모의 발달 등 물리적인 요소들이 기준이 되는데 최근엔 다양한 환경적 변화로 신체 발달과 관련한 원인 규명이 어렵다는 비판이 있다. FINA가 태너 척도 2등급을 논의한다는 의미는 1~5등급으로 나뉘는 태너 척도에서 선수가 ‘태너 2단계’ 이전에 성전환해야 경기에 참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논의한 것이다. 나이로는 12세 이전으로 사춘기를 지나기 전 단계에 해당한다.

정확한 세부 규정은 안드로겐에 감응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다. 사춘기가 오지 않은 채, 몸이 남성 호르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여야 함을 의미한다. 또 성전환 후부터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리터당 2.5나노몰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이를 지키지 않고 참가할 경우 의도와는 상관없이 소급 적용으로 징계가 가능하고 만약 의도가 있으면 반도핑 규정에 따라 처벌까지 가능하다. IOC의 규정이 리터당 10나노몰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굉장히 가혹한 조건이다. FINA는 여기에 더해 회원국에서 FINA 규정을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며 회원국에서 정한 규정은 해당 회원국에만 적용된다고 밝혔는데, 이 역시 IOC와 마찬가지로 자율권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FINA 가 주최하는 경기의 경우 FINA의 규정이 우선 적용되고, 거기에 회원국마다 각자 정한 규정이 어떻든 FINA는 그 회원국 규정에 대해 따른 결정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많은 혼란을 부를 수 있는 지침이었다.

FINA의 결정으로 올림픽에 참가하고픈 모든 트랜스 여성 수영 선수들은 역도 선수들과는 달리 매우 엄격한 조건에 놓이게 됐다. 물론 운동선수에게 올림픽은 꿈의 무대지만 올림픽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토머스가 참여했던 NCAA의 규정은 어떨까? FINA의 손이 닿지 않는 미국 내 대학생 경기가 이 단체를 따른다. NCAA 규정은 미국의 연방법과 각별한 관계에 있다. 미국의 ‘타이틀 나인(Title IX)’은 1972년 제정된 미국 연방법으로 교육계의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졌다.[4] 성별을 이유로 교육 기회의 차별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며 연방 정부 지원금으로 혜택받는 모든 교육 기관에 적용된다. 사실상 미국 내 대부분의 고등학교, 대학교가 연방 정부의 지원을 받으므로 그 파급력은 지대하다. 그렇다 보니 연방의 지원금을 받는 스포츠 조직에도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타이틀 나인은 미국의 진보적인 연방법의 대표격인데 그렇다면 NCAA 규정 역시 진보적일까?

NCAA 규정에 따르면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한 선수는 최소 1년 호르몬 요법을 받아야지만 여성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IOC의 예전 기준과 같은데, NCAA 규정은 트랜스젠더의 경기 참여를 인정하면서도 참여로 인해 불공정한 이득을 얻는 경우를 모순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2011년에 발표한 ‘NCAA의 트랜스젠더 선수 참가 방안(NCAA Inclusion of Transgender Student-Athletes)’의 원칙 2항은 “트랜스젠더는 스포츠 경기 참가에 동등한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원칙 3항은 “여성 스포츠의 존엄성은 보존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본 사안에 대한 찬반 논쟁에서 찬성 측의 사람들은 2항, 반대 측의 사람들은 3항을 들며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2022년 기준으로 보면 NCAA도 결국 IOC의 규정을 따라가는 추세다. IOC의 가이드라인과 협회 기준을 통일하며, 협회에 소속된 산하 스포츠 기구에 트랜스젠더 참여 여부를 위임하기로 했다. NCAA 회장 마크 에머트(Mark Emmert)는 “약 80퍼센트의 올림픽 선수가 대학 선수 또는 전 대학 선수다. 이 같은 결정은 운동선수의 혼란을 줄이고 NCAA와 IOC의 관계도 돈독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5] 겉으로 봐선 IOC의 개방적 기준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서 핵심은 ‘위임’이다. 이 위임 결정이 있은 지 몇 주 후, 미국 수영 협회(USA Swimming)는 또 다른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규정을 만들어 낸다. 참고로 NCAA와 미국 수영 협회는 IOC와 FINA의 관계와 같다.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서로 일정한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다. ‘자율권’이라는 키워드는 두 관계에서 똑같은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새 규정은 두 부분에서 가혹했는데, 하나는 호르몬 수치고 하나는 유지 기간이다. 테스토스테론 농도를 리터당 5나노몰로, 테스트 날 전부터 자그마치 36개월간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트랜스 여성 육상 선수 출신으로 지금은 스포츠 생리학자인 조안나 하퍼(Joanna Harper)는 “어떤 스포츠 단체라도 여성으로 전환한 트랜스젠더 선수에게 24개월이 넘어가는 호르몬 치료나 낮은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요구하는 경우는 없다”며 일침을 가했다. 이뿐만 아니라 새 규정에 따르면 “남성으로 사춘기를 보낸 경험이 여성 시스젠더와의 경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는데 기존엔 호르몬 수치만이 논의 대상이었던 것에 비해 훨씬 더 복합적인 내용의 요구였다.

트랜스젠더 선수의 제도적 수난은 이뿐만이 아니다. 테스토스테론 농도 조절을 위해 필요한 것은 당연히 약물인데, 세계반도핑기구(WADA·World Anti Doping Agency)는 남성 호르몬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스피로노락톤과 항 남성 호르몬을 금지 약물로 규정해 논란을 빚었다. 이에 WADA는 트랜스젠더 기준의 ‘치료 목적 사용 면책(TUE·Therapeutic Use Exemptions)’ 가이드라인을 제공했다. TUE는 선수가 질병 치료나 부상 회복을 위해 금지 약물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 치료 목적 사용 면책 국가 표준에 따라 심사 후 승인하는 제도다. 특정 국제 스포츠 연맹으로부터 경기 참가 허가를 받았을 때 TUE가 부여된다. TUE는 호르몬 요법을 받는 트랜스 여성 선수가 특정 스포츠의 기준에서 맞춰야 할 호르몬 농도의 기준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스피로노락톤 호르몬 요법의 목적은 특정 스포츠의 한계치에 맞춰 진행되어야 한다. 스포츠 연맹은 이때 측정 방법과 빈도를 결정하게 된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관련 규정의 변천사에 따라 어떤 이의 출전은 합법, 어떤 이의 출전은 불법이 된다. 규정에 따라 적법성 여부를 판단하자면 허버드의 출전은 완전한 합법이었다. NZOC, IWF, IOC, WADA의 규정을 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WADA가 정한 TUE를 위반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방법이 없으나 허버드의 경기 참가가 승인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WADA가 정한 불법 기준을 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IOC가 트랜스젠더 선수에 대한 규정을 보수적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허버드는 오히려 더 개방된 기준의 적용을 받게 되고, 미래의 올림픽 출전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 올림픽의 기록 역시 박탈당하지 않는다.

반면 토머스의 2024년 파리 올림픽 여성 경기 참여는 규정의 추가 개정 없인 불투명하다. 물론 IOC의 2021 개정안만 놓고 보면 토머스의 파리 올림픽 참가는 문제가 없다. 개정안에 따르면 토머스는 다른 여성 선수들에 비해 트랜스 여성으로서 불공정한 이득이 없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호르몬 수치 기준도 폐기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료 평가를 받은 연구 결과 역시 아직까지 트랜스 여성 선수의 신체적 유리함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주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IOC 조항은 토머스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
토머스의 발목을 잡는 것은 FINA의 조항이다. 태너 척도 2등급 이전의 성전환자만 경기 출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토머스는 17~18세에 성전환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태너 척도 2등급 이후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IOC가 주최하는 올림픽 및 FINA가 주관하는 여성부 경기에 출전이 불가하다. 이벤트성 오픈 경기에 대한 가능성은 아직 열려있는 상태지만 그의 염원인 올림픽 참가는 불법이 됐다.
ESPN과 인터뷰하는 리아 토머스 ⓒESPN 유튜브

그렇다면 이제껏 쌓아 올린 수상 경력은 어떨까? 토머스의 2021 NCAA 지피인비테이셔널 대회 참가는 적법했다고 볼 수 있다. 토머스는 호르몬 요법을 2019년부터 2년 이상 받았기 때문이다. 전술했듯 NCAA는 타이틀 나인에 따라 성차별로 인한 대회 참여 제한이 불가능하며, 2011년도의 참가 방안 규정도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트랜스젠더 차별을 금지한다. 문제가 생겼을 경우 소급 적용으로 기록을 말소하거나 트로피를 빼앗는 일도 없다. 따라서 토머스의 2021 NCAA 지피인비테이셔널에서의 기록 말소는 없을 예정이다. 다만 NCAA의 자율권으로 인해 신설된 미국 수영 협회의 개정안이 토머스에게 어떻게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토머스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밝혀지지 않았고, 36개월간 리터당 5나노몰을 유지했는지 여부도 공개된 바 없기 때문이다.



스포츠의 성을 넘어라


스포츠계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젠더에 대한 논의는 포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자신이 선택한 성별에 따라 운동선수로서 경기에 참여하고픈 선수들의 욕망은 충분히 사회적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트랜스젠더 선수의 존재는 현존하는 다양한 스포츠 제도의 사각에 있다. 스포츠는 오랜 시간 생물학적 성(性)으로 구분되어 존재해왔고, 이는 공정성에 대한 하나의 믿음이자 성(城)이었다. 따라서 전통적 관점에서 트랜스젠더라는 새로운 성(性)의 존재는 쉽게 자연 질서의 파괴이자 외부 요인으로 여겨진다. 사회 일반의 인식 전환과는 별개의 문제로 봐도 좋을만큼 스포츠의 전통적 성 개념은 생각보다 훨씬 공고하다.

이 문제의 잠재적 위협은 성인 선수뿐 아니라 미성년자에게서도 나타난다. 폴란드 워미아앤마쥬리대학교(Warmia & Mazury)의 교육학자 카마시 에벨리나(Kamasz Ewelina)에 의하면 어린 학생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커밍아웃하는 경우는 늘고 있지만, 각 학교에서 트랜스젠더 학생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게끔 배려하는 정책이나 프로그램 등은 부재했다.[6] 적절한 이름과 지칭 대명사를 사용하는 법이라거나 라커룸 사용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트랜스젠더 학생 중 스포츠를 즐기는 이는 얼마나 될까? 2019년에 발표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엔 약 1500만 명의 고등학생이 있고 그중 약 800만 명이 고등학교 스포츠에 참여한다. CDC는 이 중 1.8퍼센트를 트랜스젠더로 추정했다. 숫자로 치면 약 27만 명인 셈이다. 미국의 성 소수자 인권 단체인 휴먼라이츠캠페인(HRC)의 보고서에 따르면 트랜스 남성 학생 14퍼센트, 여성 학생 12퍼센트만 스포츠를 한다. ESPN은 이 두 수치를 합산해 미국 고등학교에 약 3만 5000명의 트랜스젠더 학생 운동선수가 있으며 고등학교 운동선수 전체의 0.44퍼센트가 트랜스젠더라고 분석했다.
성 소수자를 지지하는 LGBTQ 전문 매체 《OFM 매거진(Out front Magazine)》은 미국 진보 센터(CAP·Center for American Progress)의 보고서를 인용해 트랜스 운동 선수의 스포츠 참여 금지가 이미 성적으로 차별받아 온 성 소수자들이 운동으로 얻을 수 있는 ‘신체 활동의 이점’을 박탈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운동을 통한 불안, 우울증, 자살 시도 등의 위험 감소, 담배와 마약 사용 등의 감소를 포괄한다.

특히 청소년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력을 중점적으로 짚었다. 보고서에는 이미 스포츠와 관계없이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의 자살 시도나 결심 등의 비율이 최소 두 배, 인종에 따라서는 세 배 가까이 높다는 결과가 있는데, 운동은 이를 완화할 수 있다. 운동에 적극 참여한 트랜스젠더 학생들은 운동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학생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유지했으며, 트랜스젠더 운동선수는 운동을 하지 않는 퀴어 집단에 비해 우울 증상이 20퍼센트 이상 감소했다. 엘리트 스포츠에서의 영향이 생활 체육과 학교까지 내려와 학생들의 건강 문제와 결부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성 소수자 학생들이 화장실, 탈의실, 학교 운동장 등에 출입하는 것과도 쉽게 연결된다. 문제는 각 학교나 기관마다 트랜스젠더 학생에 대한 정책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제도가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다면 적어도 스포츠 기구들이 분쟁의 조정자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과학적 기준이 부재한 상황에서 트랜스젠더 선수 당사자와 시스젠더 여성 선수의 입장을 조율하는 방법이다. 다만 전통적 성 관념을 벗어나 논의를 이어가더라도 복병은 존재한다. 바로 트랜스 여성 선수의 고의성 문제다. 군 복무에 있어 집총이나 입대를 거부하는 사례와 유사하다. 이를 종교적 양심으로 볼 것인가 종교적 양심을 가장한 고의로 볼 것인가? 두 트랜스 여성 선수의 인터뷰는 이에 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미국 트라이에슬론 대표팀 소속 국가 대표 선수이자 트랜스젠더임을 밝힌 크리스 모시어(Chris Mosier)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트랜스젠더 선수를 향한 고정관념이 몰이해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트랜스젠더 선수들도 다른 운동선수와 마찬가지로 신체를 이용해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하여 경기력을 겨룰 목적으로 경쟁에 참여하는 것이지 불공정한 혜택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같은 오해가 트랜스젠더를 쉽게 혐오의 대상으로 만든다며 그는 우려를 표했다.

반대로, 18차례나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우승한 미국· 체코의 트랜스젠더 테니스 선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Martina Navratilova)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로 인해 성 소수자 단체로부터 지지를 철회당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남성은 호르몬제를 복용 후 여성 대회에서 우승해 부를 얻을 수 있으며, 그 이후 다시 남성으로 돌아가 때로는 아이 아빠가 되기도 한다”라고 주장해 충격을 줬다. 그러면서 “이는 말도 안 되는 반칙이다. 나는 트랜스 여성을 지지하지만, 그들과 경기에서 겨루고 싶지 않다. 공평하지 않다”고 오히려 트랜스젠더 선수 전반을 비판했다. 불공정한 이점이 있음을 인정한 것을 넘어, 일부 트랜스 여성 선수는 경쟁이 아닌 우승과 상금을 목적으로 여성부 경기에 참여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스포츠계는 당사자들의 이런 발언이 있음에도 특별한 조치가 없는 상태다.

지난 2022년 3월 18일 미국 조지애나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NCAA 전국 선수권 대회에서 토머스에게 우승 트로피를 내줬던 레카 기오르기(Réka György)는 이번 대회가 대학 시절 자신의 마지막 대회였지만 NCAA의 결정으로 자신의 기회를 빼앗겼다는 생각이 든다며 불편함을 토로한 바 있다. 경기장 안팎에서의 조롱과 조우한 토머스도, 1등의 자리를 내어준 기오르기도 웃지 못한 대회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제도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



IOC의 2021년 가이드라인은 포용과 공정, 그 어느 것 하나도 잃을 수 없는 스포츠계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자율 규제 방안 역시 그러한 배경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자율의 목적은 합리적이다. 일괄적인 호르몬 기준보다 종목마다 세부적으로 기준을 두어 신체 조건이 종목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떤 종목은 호르몬 수치가 덜 중요할 수도,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다만 IOC의 방임은 사실상 극단적인 예시를 낳으며 후폭풍을 일으켰다. 역도와 수영보다 직관적인 럭비와 육상을 보자. 세계럭비연맹(World Rugby)은 2021년 트랜스 여성 선수의 여성부 럭비 경기 참가를 금지했다. 트랜스 여성 선수의 신체 크기가 여성 럭비 선수보다 월등히 크기 때문에 격렬한 신체 접촉이 많은 여성 럭비 선수에게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이와 다르게 세계육상연맹(IAAF·International Amateur Athletic Federation)은 ‘경기 전 12개월 동안 리터당 5나노몰 유지’를 기준으로 채택했다. 육상은 럭비 못지않게, 어쩌면 럭비보다 더 신체 구조에 영향을 많이 받는 종목이다. 대표적으로, 여자 육상 세계신기록은 1988년에 세운 그리피스 조이너의 100미터 기록이며 아직 여성부에서는 깨지지 않았는데, 미국 남자 고등학교 육상선수들은 이 기록을 이미 깼기 때문이다. 세계 육상 연맹의 기준은 IOC의 지난 기준보다는 엄격하지만 육상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결정이다.

호르몬이 영향을 미치는 종목이 다르고, 종목별 레퍼런스도 제각각이라면 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호르몬 이외에 추가적인 조건을 규정하는 것일 수 있다. 복잡하더라도 구체적인 신체 구조의 차이와 환경적인 요소 등을 모두 고려한다면 어떨까? 다음 장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하퍼는 스포츠 과학이 트랜스 여성 선수의 ‘이점’을 명확히 알고 구분하기엔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말한다. 불공정한 이점이 없음을 선수 개개인이 증명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스포츠계는 트랜스 여성에게 정확히 어떤 이점이 있는지 명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고 여전히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물론 그럴만한 사정은 있다. 스포츠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앞서 미디어와의 관계처럼 사회 전반과 다양한 산업에 발을 걸치고 있다. 따라서 그 모든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어렵고, 경제적 측면 역시 고려할 수밖에 없다. 공정, 정의, 차별, 권리 등 짝을 맞추어 양립하기 어려운 의제를 동시에 다뤄야 하는 숙제도 있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스포츠란 현실의 불공정을 초월하는 공간으로 인식되곤 한다. 경기장에 들어가는 순간 지위 고하 및 인종을 막론하고 평등하게 경쟁하는 것이 스포츠에 대한 대중적 상식이다. 제도에 모든 것을 기댈 순 없지만 그럼에도 제도는 차별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되며 의학·과학적 논의를 멈춰선 안 된다. 과학적 트레이닝이 스포츠 전반에 자리 잡았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스포츠 의학·과학은 우리가 보고 듣는 사회의 변화보다 더디게 진화하고 있다. 과연 트랜스 여성 선수가 시스젠더 여성 선수에 대해 가지는 신체적 이점이 실존하는지, 의학계의 논의는 어디까지 와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FIVE WEIGHTLIFTERS NAMED TO NEW ZEALAND OLYMPIC TEAM〉, 뉴질랜드올림픽위원회, 2021.06.21.
[2]
〈Lia Thomas plans to keep swimming - with an eye on Olympics〉, AP News, 2022.06.01.
[3]
Carbmill Consulting, 〈SCEG Project for Review and Redraft of Guidance for Transgender Inclusion in Domestic Sport 2021〉, 《INTERNATIONAL POLICY REVIEW 2021》, 2021.
[4]
Benjamin James Ingram, Connie Lynn Thomas, 〈Transgender Policy in Sport, A Review of Current Policy and Commentary of the Challenges of Policy Creation〉, 《Curr Sports Med Rep》, 18(6), 2019., pp. 239-247.
[5]
〈NCAA adopts new policy for transgender athletes〉, AP News, 2022. 01.21.
[6]
Kamasz Ewelina, 〈Transgender people and sports. Journal of Education〉, 《Health and Sport》, 8(11), 2018., pp.572-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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