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꿈과 악몽
완결

중국의 꿈과 악몽

“현명한 군주는 자신들의 신민들을 결속시키고 충성스럽게 유지할 수 있다면, 잔인하다는 평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 사랑을 받기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1]
 

거꾸로 가는 중국의 정치


2018년 5월, 1989년 민주화 시위 이후 29년 만에 베이징 대학 대자보에 시진핑(習近平) 주석에 대한 비판의 글이 실렸다. 한 70대 노인이 쓴 이 글에는 “당장(黨章·당헌)을 지켜라, 중국은 결단코 개인숭배를 반대한다. 헌법을 지켜라, 국가 지도자는 반드시 임기 제한 규정을 실천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어 두 달 뒤 상하이의 한 젊은 여성은 공산당 선전 포스터에 있는 시 주석의 얼굴에 먹물을 뿌리며 “시진핑 주석의 독재와 폭정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장면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린성 창춘시에는 지하철 객실 벽면에 공산당을 상징하는 붉은색 바탕에 시진핑 주석의 어록을 새겨 넣은 소위 ‘시진핑 사상 열차’가 등장했다. 현대 중국에서 벌어진 집단적 광란과 대참상인 문화 대혁명[2] 시기가 떠오를 만한 현상이다.[3]

시진핑 주석 개인숭배화 경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은 2017년 가을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 대표 대회다. 2022년에 시진핑 총서기의 뒤를 이을 차기 후계자는 최고 지도부 명부에 오르지 못한 반면, 당장에는 시진핑이라는 이름이 들어갔다. 더 놀라운 점은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라는 표현까지 당장에 가미되었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의 권력이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위상에 버금갈 정도로 강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중국 내 이데올로기의 위상 분류에서 사상의 지위는 아주 높다. 이데올로기의 위계를 보면,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鄧小平) 이론, 장쩌민(江澤民)의 ‘3개 대표론’, 후진타오 ‘과학적 발전관’의 순서로 분류할 수 있다. 즉 주의, 사상, 이론, 론, 관 순서인데, 시진핑 사상이라는 표현은 시 주석이 마오쩌둥의 지위로 격상되었음을 의미한다.

19차 당 대회에서는 시진핑의 이데올로기 캠페인인 ‘양학일주(两学一做)’가 당장에 명기됐다. 양학일주는 ‘두 가지 공부로 하나를 이루자’는 뜻이다. 두 가지 중 하나는 당장, 다른 하나는 시진핑 주석의 어록이다. 이 두 가지를 공부해 훌륭한 당원이 되자는 사상 교육 캠페인이다. 8900만 명이 넘는 중국 공산당원들은 시진핑 사상 학습에 곤혹스러워하는 것 같다.

시 주석의 권력 독점 현상이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사건은 2018년 봄에 일어났다. 3월 중순에 개최된 전국 인민 대표 대회[4]에서 시 주석이 만장일치로 국가주석에 재추대되고, 심지어 국가주석 2회 초과 연임 금지 규정[5]마저 삭제됨으로써 종신제 국가주석의 길이 열렸다. 1인 독재의 합법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게다가 20일 폐막식에서는 리잔수(栗戰書) 전국 인민 대표 대회 상무위원장(국회 의장 격)이 시 주석을 “인민의 영수(领袖),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국가의 조타수(舵手)”라고 명명하기까지 해서 세상을 더욱 놀라게 했다. 영수와 조타수란 표현은 마오쩌둥 주석을 부르는 호칭이어서, 시 주석의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게 해주었다.

개인숭배 현상을 가장 통렬히 비판한 사람은 지금의 글로벌 대국 중국을 있게 한 개혁 개방의 총설계자 덩샤오핑이었다. 그는 문화 대혁명의 직접적인 피해자였기에 전 국민에게 미친 문화 대혁명의 엄청난 폐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개인숭배와 독재야말로 그와 같은 비극과 참상을 만든 주요 원인이라 진단했다. 그래서 1978년 중국 공산당 11기 제3회 중앙 위원회 전체 회의 이래 중국의 당-국가 영도 제도의 개혁을 단행했고, 문화 대혁명의 대표적인 적폐인 1인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해 집단 지도 체제, 당내 민주, 민주 집중제 등을 관철시킨 바 있다.[6] 이 제도 관행은 최근까지 비교적 잘 지켜졌지만, 시진핑 주석이 집권한 뒤로 오히려 1인 권력이 절대화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에서도 푸틴 대통령이 4번째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무려 24년간 최고 권력을 유지하게 되었다. 러시아 헌법은 대통령의 연임을 금지하고 있으나, 임기 횟수에는 제한을 두고 있지 않아서 예전처럼 총리로 물러났다가 다시 대통령으로 등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처럼 권위주의 국가에 속하는 두 나라의 지도자는 강력한 리더십과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개인숭배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왜 이 두 나라에서는 이런 독재에 가까운 정치 행태가 큰 저항 없이 수용되고 있는 것인가?

두 나라는 서구의 정치 발전과 다른 궤도를 그리며 자국의 상황에 맞게 민주주의를 전개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를, 러시아는 ‘주권 민주주의(sovereign democracy)’라는 의사(疑似) 민주주의(pseudo-democracy) 시스템을 강변하면서 개인의 인권과 법치를 강조하는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 맞서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미국 역시 자유 민주주의의 본궤도에서 이탈하고 있다. 19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으로 중산층이 붕괴되어 자유 민주주의의 기반이 무너진 데다, 트럼프 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백인 우월주의에 기초한 이민자 홀대, 국제적 다자 제도와 규범에 대한 무시 등으로 미국의 자랑이었던 자유 민주주의 체제, 국제 자유 제도주의 레짐(regime)은 신뢰를 크게 상실하고 있다.[7] 작금의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정치 체제에 대해 훈수를 둘 수 있는 입장은 아닌 것 같다. 자국을 다시 한번 위대한 국가로 만들고 싶다는 야망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진핑, 푸틴, 트럼프 세 지도자는 닮은 꼴이다.

국제 관계와 분쟁의 맥락에서 보면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패권주의와 일방주의에 맞서기 위한 준동맹(quasi-alliance)에 가까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강화하면서 국제 금융 안정, 환경 협력, 유엔 평화 유지 활동 등의 글로벌 이슈에 공동으로 개입하고 있다.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나 시리아 내전 등 중동 문제 외에도 북한의 비핵화 과정, 미중 무역 분쟁 등 국제 문제에서도 중국과 러시아의 지역 및 글로벌 영향력은 막대하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중국은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남북 정상 회담, 북미 정상 회담을 거치는 과정에서 중국을 배제한 채 남북미 3자 주도의 해결 구도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시진핑 주석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경색되었던 북·중 관계가 완전히 복원되었다. 북한의 비핵화와 종전 선언을 위한 미중남북 4자 회담도 거론되고 있다. 시진핑이라는 지도자의 통치 패턴과 성향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국제 정세의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를 내다보는 일이다.

 

마키아벨리언으로서의 시진핑 주석


시 주석은 혁명 원로의 자제와 친인척으로 구성된 홍색 집안, 태자당 출신이다. 그의 부친 시중쉰(習仲勳)은 마오쩌둥과 함께 혁명 운동을 하면서 두터운 신임을 얻어 개국 초기에 국무원 부총리까지 맡은 고위직 인사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부친은 1962년 ‘류즈단(劉志丹) 사건’으로 체포, 수감되는 날벼락을 맞게 되었다.[8]

이 사건은 시 주석이 지금의 강인한 지도자로 성장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전화위복의 자양분이 되었다. 부친이 체포당했을 때 불과 아홉 살의 어린 나이였던 그는 샨시(陝西)성의 한 시골 마을로 내려가 강제 노역 등 재교육을 받았다. 문화 대혁명 시기에도 부친은 계속 수감되어 있었고, 어린 시 주석은 온갖 멸시와 학대, 조롱을 받으며 성장했다. 당시 학대와 궁핍을 이겨 내지 못한 이복 누나는 목을 매 자살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 주석은 문 닫힌 학교 도서관에서 몰래 공부하며 세상에 맞섰다. 지옥 같은 현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겨 내려고 분투한 그는 훗날 이때의 기억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붉은색보다 더 붉게 되어서 살아남기로 했다.”[9] 그는 이런 단련의 기간을 거치면서 강인한 투지를 기를 수 있었다. 반동분자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당원 가입을 거부당하면서 열 번째 신청에 겨우 당원이 되었지만, 결국은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문화 대혁명의 광풍이 지나간 뒤, 시진핑은 부친 친구의 도움으로 최고 엘리트의 산실 칭화(清华) 대학에 들어갔다. 졸업 이후에는 중앙 군사 위원회 말단 사무직으로 일하게 되었다. 1980년대 초반에 허베이(河北)성 정띵(正定)현 서기를 시작으로, 꾸준히 승진을 거듭해 결국 1997년 제15차 전당 대회에서 당 중앙 위원회에 진입할 수 있었다. 당시 투표로 150명을 뽑는 중앙 위원회 정위원 선거에서 그의 득표 순위는 151번째로, 안타깝게 탈락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장쩌민 총서기가 예외적으로 중앙 위원 수를 151명으로 늘리는 바람에 꼴찌로 진입할 수 있었다.[10] 당시에 그 누가 이 꼴찌 중앙 위원이 14억 인구, 8900만 명 중국 공산당원의 최고 지도자가 되리라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가 눈여겨볼 점은 그의 처신술이다. 난득호도(难得糊涂), 도광양회(韜光養晦)[11]의 자세로 능력은 탁월하나 주목받지 않기 위해 처신에 각별히 신경 쓰며, 한 발 한 발씩 최상층 중앙 무대로 진입해 올라갔다. 2000년 푸젠성(福建省) 성장, 2002년 저장성(浙江省) 당위원회 서기를 거쳤지만, 2005년 무렵만 해도 후진타오 주석 이후 차기 대권 주자 반열에 시진핑이란 이름은 거론되지 않았다.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2006년 상하이 지역을 휩쓴 대형 부패 사건 때였다. 규율에 엄격하다는 평판을 얻고 있었던 시 주석은 사건을 맡아, 신속하고 단호하게 처리했다.

2005년에서 2006년까지만 해도 시진핑은 리커창(李克强) 부총리와 벌이던 차세대 지도자 경쟁에서 뒤져 있었다. 그러나 2006년 9월 장쩌민 전 주석의 심복이던 천량위(陳良宇) 상하이시 서기가 부패 사건으로 경질되면서 2007년 3월에 후임자로 전격 발탁되어 승기를 잡았다. 원래 후임자로 거론된 인물들은 리위안차오(李源潮), 류옌둥(劉延東) 등 공청단파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공청단파의 부상에 위협을 느낀 장쩌민 총서기는 태자당 좌장이자 최측근인 쩡칭훙(曾慶紅) 국가 부주석의 추천을 받아 시진핑을 낙점했다. 시진핑에 호감을 갖고 있던 후진타오도 결국 이를 수용했다고 한다.[12]

그렇게 시진핑은 2007년 제17차 전당 대회 무렵, 차세대 지도자로 등극하게 된다. 당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9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진입했고, 대중의 인기가 높던 리커창 부총리를 제치고 국가 부주석의 자리를 꿰차게 된다. 당 상층부 바깥에서는 시진핑이라고 하면 다들 유명 가수인 펑리위안(彭麗媛)의 남편을 떠올릴 정도로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다.

마침내 2012년 제18차 전당 대회에서 시진핑은 예상대로 총서기에 당선되었다. 다음 해 2013년 국가주석 겸 중앙 군사 위원회 주석직을 맡아 당-정-군 3부 최고직을 독점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집권 이후 시진핑은 반부패 투쟁을 통해 정적들을 하나씩 제거하면서 절대 권력의 기반을 닦는다. 마치 ‘모기 잡는 척하며 호랑이를 잡는 식(打蚊子打老虎)’으로 자신에게 도전할 수 있는 정적들을 제거했다. 당시 그 악역을 맡은 이는 그의 심복이자 해결사인 당 중앙 기율 검사 위원회 서기 겸 위원장이었던 왕치산(王岐山, 2018년 3월 전국 인민 대표 대회에서 국가 부주석에 당선)이었다. 반부패 투쟁으로 인해 2012년 이후에 당원 90만 명이 징계를 받고, 4만 2000명이 당원 자격을 박탈당하고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그중에는 중앙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등 170명의 고위 간부도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고위직 지도자는 저우융캉(周永康) 전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정법위원회 서기였다.[13]

이 반부패 캠페인은 권력 강화의 수단과 방법이기도 했지만, 그 외에도 다면적인 정치적 효과가 있었다. 법치 확립, ‘양학일주’와 같은 정치 이론 사상 교육 강화, 사회 질서 유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어느 누구도 감히 시진핑 권력에 맞설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2012년 집권 이래 최근까지 거의 황제에 버금가는 모든 권력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마키아벨리언(Machiavellian)이 되어 있었다.

시진핑이라는 정치 지도자의 인생 역정과 부침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나온다. 시진핑을 잘 아는 싱가포르의 전 총리이자 국부(國父)인 리콴유(李光耀)는 시진핑에 대해, “불운함이나 고통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도록 허용하지 않는 엄청난 정서적 안정감을 지닌 인물인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와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중국 전문가인 앤드류 네이선(Andrew Nathan)은 나폴레옹을 떠올릴 만큼 자신감이 흘러넘치는 지도자로, 호주 전 총리 케빈 러드(Kevin Rudd)는 “깊은 정치적 사명감과 나라를 위한 분명한 정치적 비전”을 갖고 있으며, “성격이 매우 급한 사람”이라고 묘사했다.[14]

 

시진핑 주석과 중국의 꿈, 그리고 악몽 


국가의 전략은 목표, 수단, 방법이라는 3가지 구성 요소의 조합으로 이뤄진다고 볼 수 있다. 국가의 목표, 이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제반 수단, 이런 목표와 수단을 구현하는 방식 등 3가지 요소의 유기적인 종합으로 전략은 수립되고 집행된다. 이런 전략 목표는 한 국가의 꿈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중국 공산당 총서기로 등극하고 난 뒤 한 달 만에 시 주석은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차이나 드림(中国梦)’이라는 대담한 목표와 각 목표의 구체적인 실현 기간까지 명시했다. 중국 정치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파격적인 발언이었다. 첫 번째 목표는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해인 2021년까지 1인당 GDP를 2010년의 두 배인 1만 달러로 올려 ‘전면적인 소강 사회’(적당히 번영하는 사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중화 인민 공화국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인 2049년까지 중국을 ‘현대적이고 부강하며 조화로운 문명 선진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첫 번째 목표는 구매력 평가 지수(PPP)[15]로 환산 측정할 경우 이미 달성되었다. 국제 통화 기금(IMF)은 집권 2기가 끝날 무렵인 2021년, 예상대로 중국이 목표를 달성할 경우 PPP 기준 중국의 경제 규모는 미국보다 40퍼센트 더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만약 2049년의 두 번째 목표마저 달성한다면 중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의 세 배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16]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 국가로서 국제적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게 최고가 된다는 것은 단지 경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국방, 과학, 기술, 문화 방면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 종합 국력의 측면에서 미국을 추월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장기적인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중국 제조 2025’와 같은 첨단 혁신 기술로 무장한 경제 대국화, 미국에 맞설 수 있는 국방 현대화, 선진 과학 기술 문명의 창출과 확산, 그리고 선진 중화 문명의 복원과 확산을 위해 매진해 왔다. 전 세계를 향한 매력 공세(charm offensive) 외교 역시 그 일환이다.

장기적인 목표와 수단 외에 중단기적인 목표도 있다. 최우선적인 의제는 반부패 투쟁이다. 청렴하고 사명에 충실한 강력한 공산당을 재건하여 인민들로부터 무한한 지지를 얻는 것이다. 둘째, 인민들에게 중화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로 민족의 자부심을 고취시킨다. 셋째, 전면적인 체제 개혁을 심화한다.[17] 특히, 시진핑 집권 1기인 2014년 이래, 소위 뉴 노멀(new normal) 시대에 접어들면서 ‘공급 측면의 개혁’으로 신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해졌다.[18] 넷째, 국방 현대화와 동시에 당의 명령에 복종하는 당의 군대를 재조직한다. 그 어떤 대내외적 위기와 도전에도 맞서 싸울 수 있는, 승리하는 당의 군대를 만들어 대내 안정과 동시에 외부의 군사적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4가지 중단기적인 정책 목표와 의제들은 유기적으로 묶여 시진핑 지도부의 정책 방향을 가늠하게 해주고 있다.

중국의 중단기적인 국가 목표의 실현에 가장 큰 대내적 장애물은 당의 부패, 체제 개혁의 실패, 당 중심 군대의 와해와 같은 문제다. 대외적인 장애물은 미국의 압박과 봉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시 주석은 대내적으로는 반부패 투쟁을 통한 당의 혁신과 함께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해왔고, 대외적으로는 미국 오바마 정부가 주도하고 있던 아태 재균형 전략, 즉 아시아 중심축 전략(Pivot to Asia)과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에 대항해 중국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정책을 대담하게 추진하고 있다.[19] 미국 대응 전략의 일환으로 중국은 이른바 일대일로(One Belt-One Road Initiative·BRI) 전략 구상,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AIIB) 건설,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RCEP) 등을 추진해 왔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2017년 연말에 재균형 전략의 후속 보완 전략으로 중국을 봉쇄할 수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을 내세워 강경하게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최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및 항행의 자유 분쟁, 동중국해 분쟁, 대만 문제, 북한의 도발, 경제 냉전인 미·중 무역 분쟁 등은 미·중 갈등의 가장 두드러진 이슈들이다. 이 때문에 미·중이 투키디데스의 함정(The Thucydides Trap)에 빠져 장차 충돌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된다.[20]

그렇다면 시진핑 주석이 가장 우려하는 악몽은 무엇일까? 중국이 그릇된 개혁 전략과 정책으로 소련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이다. 소련의 붕괴 과정을 보고 이를 반면교사 삼으면서 시진핑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는 몇 가지 사고의 전환을 이뤘다. 개혁 개방으로 시장 경제를 확대한다고 할지라도, 공산당 일당 독재와 마르크스-레닌주의 및 마오쩌둥 사상을 견지하고, 인민 민주 독재,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한다는 ‘4항 기본 원칙’은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4항 기본 원칙 가운데에서도 특히 공산당의 주도권과 영도성은 절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 컸다. 둘째로 서구의 자유화 물결이 들이닥쳐도 체제 안정과 질서 유지가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정립되었다. 이것은 1989년 6·4 천안문 사태의 교훈이기도 하다. 셋째로, 어떤 경우에도 중국은 서구식 자유 민주주의 발전 노선이 아니라 중국의 역사, 전통과 문화 그리고 현재의 복잡한 국가 상황(國情)에 입각한 독특한 ‘자신의 길을 걷는다(走自己的路)’는 노선이 수립됐다. 중국 특색의 발전 노선을 고수하겠다는 신념이다.

소련의 몰락으로부터 시 주석이 깨달은 중요한 체제 유지 조건은 건재한 공산당과 더불어 비상시 당의 명령에 따라 동료, 시민에게 총을 겨눌 수 있을 정도로 확고부동한 당의 군대다. 시 주석은 일찍이 마오쩌둥의 명구인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枪杆子里面出政权)”는 냉혹한 현실 정치의 의미를 어린 시절 고난의 과정 속에서 온몸으로 체득한 인물이다. 그에게 군대 장악력은 가장 중요한 사안일 것이다. 그래서 시진핑 주석은 집권 1기에 군부 요직을 자신의 심복들로 교체했다. 그는 마키아벨리처럼 인민들에게 “사랑받기보다 두려운 지도자가 되는” 편을 택한 것 같다.

 

중국의 정치 발전 노선은 왜 독특한가?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냉전 종식이 시작된 1989년에 저서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을 발표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사회주의 체제보다 지속 가능성이 높다고 역설한 적이 있다.[21] 당시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는 물론이거니와 민주주의 확산과 신보수주의를 선전했던 그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미국 중심의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의 전도사로 나섰다. 심지어 중국식 발전 모델의 우수성을 주장하고 나섰다.[22] 몇 년 전에는 “미국 민주주의는 중국을 가르칠 만한 수준이 못 된다(Democracy in America has less than ever to teach China)”고 지적하기까지 했다. 그는 비민주적인 중국 정치 체제가 오히려 민주주의 체제인 인도나 미국보다 더 탄력적이고 복잡한 결정을 신속하게 내릴 수 있으며, 러시아나 이란과 같은 권위주의 체제보다 훨씬 효율적인 국가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23] 이 같은 평가는 사회주의 중국이 글로벌 대국으로 부상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교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 못지않은 업적 정당성(performance legitimacy)과 통치 능력을 지닌, 소위 중국의 탄력적 권위주의(resilient authoritarianism) 체제에 대한 연구가 늘고 있다.[24] 물론 일부 권위주의 체제는 선거 민주주의(electoral democracy) 혹은 경쟁적 권위주의(competitive authoritarianism) 체제로 지칭되기도 한다. 이 체제는 시민에게 그들의 선택으로 통치자가 권력을 부여받았다는 환상을 심어 주기 위해 정당, 선거 및 의회 등과 같이 법 제도적으로 외관상 민주주의 형태를 유지하기도 하지만, 정치적 책임성(accountability)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중국도 큰 틀에서는 일당 독재 국가다. 헌법상 최고 권력 기구인 전국 인민 대표 대회가 공산당의 거수기에 불과하고, 삼권 분립도 없으며, 기본권에 속하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마저 통제되는 사회다. 가짜 민주주의 체제라고 비난받을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와 지식인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은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체제를 자국의 역사적 조건과 국가 상황에 맞게 발전시키고 있다고 강변한다. 아울러 서구 중심적인 자유 민주주의 체제는 보편성을 갖지 않으며, 민주주의 체제는 나라마다 다양한 발전의 경로(trajectory)를 걷기 때문에 서구식 체제를 강요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나” 혹은 “민주주의는 미신이다”고 말하는 중국의 학자들도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신보수주의 학자인 판웨이(潘维) 같은 학자는 민주화를 만병통치약으로 신성시하는 ‘민주 신화(民主神话)’로부터 벗어나라고 경고하면서, ‘민주는 일종의 미신(民主迷信)’과 같다고 주장한다.[25] 판웨이는 민주화가 빈곤, 부정부패, 비효율, 불평등 구조, 권력 집중과 같은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없었다고 본다. 오히려 정치·사회적 안정을 바탕으로 한 경제 발전을 위해 ‘민주화 없는 법제(legalization without democratization)’의 건설이 더 시급한 과제라는 것이다. 그는 한 국가의 업적이나 경제적 성과에 도움이 되는 것은 민주화보다는 오히려 법치 제도의 건설이라고 강조한다. 중국 공산당이 요즘은 물론이고 줄곧 강조해 온 ‘의법치국(依法治国)’과 맥락이 같다.

1980년대 말 이후 중국에서 많이 거론되었던 선(先) 경제 발전 후(後) 정치 민주화를 주장하는 신권위주의나 민주화보다 법치를 선행하자는 신보수주의는 동전의 양면처럼 중국 공산당의 집권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시진핑 체제에서 이런 논리는 더욱 더 강화되고 있다. 또한 동아시아 발전 국가의 맥락에서 신권위주의나 신보수주의는 싱가포르 리콴유(李光耀)의 집권 철학을 반영한 ‘리 테제(Lee thesis)’로 정립되어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경향이 있다. ‘리 테제’의 기본 주장은 정치적 권리와 시민의 자유, 그리고 정치 경쟁이 보장되는 민주주의 국가는 사회적 불안정이나 정치적 마비 상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설적으로 민주 정부는 신속한 경제 발전을 달성할 수 없다고 본다. 반면, 독재 체제나 권위주의 국가는 경제 발전과 정치 안정에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26] 업적 정당성에 기반한 ‘리 테제’는 중국 공산당 일당 독재를 합리화할 수 있는 유력한 담론이자 이데올로기로, 작금의 시진핑 집권 철학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민주 정치에 관한 중국 정부의 공식적 입장은 무엇일까? 이미 민주 정치에 관한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2005년에 발표된 《중국의 민주 정치 건설(中国的民主政治建设)》이라는 백서에서 드러난 바 있다. 백서는 민주주의가 인류 정치 문명의 발전의 성과로서 세계 각국 인민의 보편적 요구이지만, 각국의 민주주의는 자국의 특수한 역사적 조건과 현재 실정에 맞게 발전되어야 한다고 밝힌다. 다른 나라의 정치 제도를 모방해서는 안 된다는 민주주의의 특수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백서는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4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중국 공산당의 영도 원칙, 인민 주권, 법치의 유기적 통일을 견지할 것. 둘째, 사회주의 제도의 특징과 우세를 발휘할 것. 셋째, 사회 안정과 경제 발전, 인민 생활의 부단한 제고에 유리한 영향을 미칠 것. 넷째, 국가 주권, 영토 보전, 존엄을 지키는 데 유리한 영향을 미칠 것 등이다.[27] 이러한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에서 보듯, 중국은 서구인들이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는 다당제나 삼권 분립, 그리고 인권을 핵심 가치로 생각하는 민주적인 거버넌스를 인정하지 않는다. 공산당 일당 독재를 유지하는 가운데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의 길을 걷겠다는 일관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 정치 발전의 길


시진핑은 ‘위대한 중화 민족의 부흥’이라는 두 가지 백 년 목표를 실현하려면 민주적 지도자상보다 탄력적인 권위주의 지도자상이 더 중국의 실정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차이나 드림’을 실현하기 위한 선결 과제는 청렴하고 사명에 충실한 강력한 당 건설이다. 당에 전폭적으로 충성하는(실은 시진핑 주석의 명령에 한결같이 따르는) 강력한 군대의 유지 역시 시진핑 권력 가도에 필수적인 요건이다. 여기에 국가 자본주의 체제와 같은 중국의 경제 체제 역시 중요하다. 경제적 효율성이 대단히 높고 급변하는 세계 경제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탄력적 권위주의 체제인 중국 공산당 체제는 큰 이변이 없는 한 공산당 일당 독재를 유지하면서 ‘두 가지 백 년 목표’ 위업을 달성하여 미국을 추월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현대화 또는 발전, 그리고 사회주의라는 서구 중심적 개념에 대해 이제까지 벌여 왔던 논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열린 각도에서 새로운 담론을 제기하게 될 것이다.

중국은 개인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삼권 분립과 다당제에 기반을 둔 서구의 민주 제도가 중국 실정에 맞지 않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이고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를 추진하겠다고 주장해 왔다. 결국 공산당 영도하의 중국 인민 민주주의는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통치’가 아니라 공산당 엘리트 통치이고, 플라톤 식으로 표현하면 귀족 정치, 철인 통치, 현인 정치이며, 리콴유 식의 ‘리 테제’에 기초한 업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엘리트 중심의 성과 중심적 통치(meritocracy)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과 후진타오 집권기(2002~2012년) 때만 해도 중국의 정치 발전에 관해 논할 때, 열린 태도로 민주주의를 다루는 분위기가 있었다.[28] 그러나 지금은 논의가 위축되고 인민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중국의 거리 도처에는 ‘사회주의 핵심 가치’를 강조하는 간판이 내걸리고 있다.[29]

시진핑은 유가 사상을 계승하여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자세로 중국 인민들을 덕으로 다스리고 벌로서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공자는 형벌의 공포로 질서가 유지되는 사회를 거부했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 도와 예가 통용되는 사회를 지향했다.[30] 현대적 의미로 사회적 연대와 신뢰감, 즉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충만한 사회를 지향했던 것이다.

정치가 국민과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면, 사상 해방과 자유, 경제 사회적 평등과 기회의 균등, 자발적인 소통은 필수적인 전제일 것이다. 위로부터 강요된 정치 이데올로기 캠페인이나 반부패 투쟁, 그리고 인공지능과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보이지 않는 감시망은 국민의 창의성과 자발성 그리고 혁신의 의지를 꺾을 수 있다. 탄력적 권위주의가 단기적으로 효율성과 성과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중국 민족에게 독이 될 수 있는 이유다.
[1]
니콜로 마키아벨리(강정인 譯), 《군주론》, 까치, 2008, 114-116쪽.
[2]
문화 대혁명은 1966년 5월부터 1976년 12월까지 중국 전역에서 일어난 정치, 사회, 문화상의 소요 사태다. 공식 명칭은 무산 계급(프롤레타리아) 문화 대혁명이다. 이 혁명의 발단과 동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로 1959년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난 마오쩌둥과 극좌 지지 세력들이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점진주의, 실용주의 세력인 류샤오치(국가주석), 덩샤오핑(당 총서기) 등 우파 실권 세력을 제거하려는 지도부 내부의 권력 투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둘째, 중국 사회 내에서 일기 시작한 수정주의, 부르주아 계급의 자본주의, 봉건주의, 당내 관료주의 등의 구사상과 문화를 영구적인 계급 투쟁을 통해 일소해야 한다는 극좌적 위기의식과 혁명적 열풍이 또 하나의 배경과 동기가 된다. 문화 대혁명에서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희생된 사람의 수는 수백만에 이를 것으로 추측된다.
[4]
중국의 국회 격으로 헌법상 최고 의결 기구.
[5]
5년 임기에 연임 시 10년 집권만 가능하다.
[6]
邓小平, 〈党和国家领导制度的改革〉, 中共中央文献研究室编,《三中全会以来 上》, 人民出版社, 1982, pp. 510-534.
[7]
John Ikenberry, 〈The Plot Against American Foreign Policy: Can the Liberal Order Survive?〉, 《Foreign Affairs》, May-June, 2017, pp. 4-7.
[8]
시중쉰은 1962년 ‘소설 류즈단(劉志丹) 사건’으로 숙청된다. 이 소설은 혁명 전사이자 시중쉰의 전우였던 류즈단의 생애를 묘사한 글이다. 이 소설에는 이미 숙청된 가오강(高岡)이란 인물이 시중쉰과 함께 등장해 홍군을 구하는 내용이 있다. 마오쩌둥은 “소설을 이용해 반당 활동을 했다”며 시중쉰을 해임 체포했다. 그 결과 시진핑은 반동분자의 자식으로 전락해 고초를 겪게 된다. 문화 대혁명 뒤 시중쉰은 1978년에 복권되어 인민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에 선출돼 중앙 정치 무대로 돌아왔고, 이후 광둥성 서기, 국무원 부총리 등을 역임하며 시진핑의 최대 후원자 역할을 했다.
[9]
그레이엄 엘리슨(정혜윤 譯), 《예정된 전쟁》, 세종서적, 2018년, 185쪽.
[10]
그레이엄 엘리슨(정혜윤 譯), 《예정된 전쟁》, 세종서적, 2018년, 184쪽.
[11]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의미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덩샤오핑 시기 중국의 외교 방침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도광양회〉, 《중국 현대를 읽는 키워드 100 - 네이버 지식백과》.
[13]
그레이엄 엘리슨(정혜윤 譯), 《예정된 전쟁》, 세종서적, 2018년, 191쪽.
[14]
그레이엄 엘리슨(정혜윤 譯), 《예정된 전쟁》, 세종서적, 2018년, 178, 189쪽.
[15]
각 국가의 물가 수준을 감안해 산출한 GDP로, 화폐의 구매력으로 GDP를 조정해 실제 구매력을 나타낸 것. 〈구매력평가지수〉, 《시사경제용어사전 - 네이버 지식백과》.
[16]
그레이엄 엘리슨(정혜윤 譯), 《예정된 전쟁》, 세종서적, 2018년, 193쪽.
[17]
이미 2013년 11월 중국 공산당 제18기 중앙 위원회 제3차 전체 회의에서 결정된 “중공 중앙의 개혁의 전면적 심화와 관련된 몇 가지 문제에 관한 결정(中共中央关于全面深化改革若干重大问题的决定)”에서 시진핑 체제의 개혁 심화의 방향, 기본 틀, 구체적인 내용이 확립된 바 있다.
中共中央, 〈中共中央关于全面深化改革若干重大问题的决定〉, 2013.
[18]
2014년 이래 중국 경제는 발전 속도가 계속 하락하고 있는 뉴 노멀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에 시진핑 지도부는 ‘공급 측면의 개혁’을 통해 발전의 돌파구를 마련하려 하고 있다. 규제 완화, 국유 기업의 시장화, 감세 정책, 출산 장려 등을 추진한다.
[19]
Kurt M. Campbell, 《The Pivot: The Future of American Statecraft in Asia》, Twelve, 2016.
[20]
The White House, 〈The National Security Strategy〉, 2017. 
[21]
Francis Fukuyama, 〈The End of History?〉, 《National Interest》, 16, 1989, pp. 3-18.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에 관한 국내의 체계적 비판은 다음을 참고하라.
장준호, 〈후쿠야마 역사 종언 테제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 《한국정치학회보》, 41(1), 2007.
[22]
Nancy Birdsall and Francis Fukuyama, 〈The Post-Washington Consensus〉, 《Foreign Affairs》,  90(2), 2011, pp. 45-53.
Francis Fukuyama, 〈Is China Next?〉, 《The Wall Street Journal》, 2011. 3. 12.
[23]
Francis Fukuyama, 〈Democracy in America has less than ever to teach China〉, 《The Financial Times》, 2011. 1.17.
[24]
중국의 탄력적 권위주의 체제는 탈전체주의적(post-totalitarian), 협상적(consultative) 혹은 연성적(soft) 권위주의로 표현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Andrew Nathan, 〈China's Changing of the Guard: Authoritarian Resilience〉, 《Journal of Democracy》, 14, 2003, pp. 6-17.
Andrew Nathan, 〈China’s Political Trajectory: What Are the Chinese Saying?〉, Cheng Li ed. 《China’s Changing Political Landscape: Prospects for Democracy》, Brookings Institution Press, 2008, pp. 25-43.
David Shambaugh, 《China’s Communist Party: Atrophy and Adaptation》, Woodrow Wilson Center Press, 2008, p. 178.
Minxin Pei, 〈Is CCP Rule Fragile or Resilient?〉, 《Journal of Democracy》, 23(1), 2012, pp. 27-41.
김재관, 〈현대화 과정의 중국 특색적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 《민주주의와 인권》, 12(3),  2012.
[25]
潘维, 《法治与‘民主迷信》, 香港社会科学出版社有限公司, 2003.
Pan Wei, 〈Toward a Consultative Rule of Law Regime in China〉, Suisheng Zhao ed. 《Debating Political Reform in China: Rule of Law vs. Democratization》, M.E. Sharpe, 2006.
[26]
‘리 테제’에 관한 비판적인 입장은 다음을 참고하라.
Carl Henrik Knutsen, 〈Investigating the Lee thesis: how bad is democracy for Asian economies?〉, 《European Political Science Review》, 2(3), 2010, pp. 451-473.
[27]
中华人民共和国 国务院新闻办公室, 《中国的民主政治建设》, 2005. 10. 19.
김재관, 〈현대화 과정의 중국 특색적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 《민주주의와 인권》 12(3), 2012, 94쪽.
이정남,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의 인식: 비교역사적 관점을 중심으로〉, 이정남 편, 《민주주의와 중국》, 아연출판부, 51쪽.
[28]
후진타오 집권기 중국 내 지식인들의 다양한 민주주의 논의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김재관, 〈후진타오 집권기 중국 민주개혁 논쟁에 대한 비판적 검토: 중국 지식인 내부의 최근 논쟁을 중심으로〉, 《아세아연구》, 52(2), 2009.
[29]
사회주의 핵심 가치는 부강, 민주, 문명, 조화(和諧), 자유, 평등, 공정, 법치, 애국, 투철한 집무관(敬業), 우호 선량(友善) 등이다. 習近平,〈青年要自觉践行社会主义核心价值观〉, 《十八大以来 重要文献选编: 中》, 中央文献出版社, 2016, pp. 1-10.
[30]
논어(論語)의 제2장 위정(爲政)편 3번째 구절. “인도하기를 정(政, 법제와 금령)으로써 하고 가지런히 하기를 형벌로써 하면 백성들이 형벌만 면하려고 하고 부끄러워함이 없을 것이다. 인도하기를 덕으로써 하고 가지런히 하기를 예로서 하면 비로소 백성들이 부끄러워함이 있고, 또 선에 이를 것이다.(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주자(성백효 譯), 《論語集註》, 전통문화연구회, 2015. 5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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