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우상이 된 쿠바인, 핏불
완결

미국의 우상이 된 쿠바인, 핏불

 

정체성 업그레이드의 시대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시공간의 제약이 해소되고 국경이 허물어지며 초국적 이주민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 사회도 세계화의 흐름 앞에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이행하는 중이다. 법무부 산하 출입국‧외국인 정책 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2018년 10월 기준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237만 명에 달한다. 전년 대비 11퍼센트나 증가한 수치다. 한국 사회에서도 성별, 민족, 종교, 문화 등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 증가하고 있으며, 차이의 종류도 더 세분되고 있다. 한국이 초국적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질적인 타자들과 끊임없이 교류해야 하는 시대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자아는 자신에 대해 탐구하는 과정뿐 아니라 타인과 사회 등 외부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 이제는 자기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도 주변 환경과 상황을 적절히 수용해 정체성을 지속해서 업그레이드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정체성은 한국인이나 일본인처럼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직접 정의하고 필요에 따라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가변적인 개념이 될 것이다.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가려면 역설적으로 나의 근원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나와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다른 문화와의 적극적인 융합도 어렵다. 자아를 찾는 과정은 추리 소설에서 탐정이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과도 유사하다. 탐정은 사건 해결을 위해 사건 발생 전으로 돌아가 본다. 처음이 없으면 과정이나 끝도 없다. 과거가 있어야 현재와 미래가 있다. 자아를 찾는 문제에서도 세계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지역으로, 지역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주민으로 범위를 좁히다 보면 사회의 시발점은 개인,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체성의 개념이 진화하면서 대중문화의 영역에서도 지난 십여 년간 다양한 정체성의 시너지 효과를 활용하는 사례들이 증가했다. 쿠바 이민 2세인 미국인으로 래퍼와 가수, 프로듀서 등으로 활동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뮤지션 핏불(Pitbull)이 대표적이다. 핏불은 미국인과 쿠바인, 나아가 세계인이라는 다문화 정체성 전략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이(異)문화와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소통하는 핏불은 미국 문화에 자리매김한 새로운 시대의 우상이 되었다.

 

쿠바인, 미국인, 핏불


핏불은 2002년 마이애미에서 만난 래퍼이자 프로듀서 릴 존(Lil Jon)의 앨범 《킹스 오브 크렁크(Kings of Crunk)》를 통해 첫 레코딩을 선보인 이후 거의 매해 새 앨범을 발매해 왔다. 공식 데뷔는 2004년 TVT 레코드와 함께한 앨범 《M.I.A.M.I.》다. 2017년 발매한 10번째 정규 앨범 《클라이밋 체인지(Climate Change)》를 포함해 지금까지 약 600만 장의 앨범 판매량을 올렸고, 디지털 싱글 판매 기록은 7000만 장에 달한다. 특히 2009년 발표한 정규 앨범 《레벨루션(Rebelution)》에 수록된 〈아이 노 유 원트 미(I Know You Want Me)〉, 〈크레이지(Krazy)〉, 〈비앙코(Bianco)〉, 〈호텔 룸 서비스(Hotel Room Service)〉 등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스타가 됐다.

핏불은 2015년에 발표한 스페인어 앨범 《달레(Dale)》로 그래미(Grammy)상을 받은 뮤지션이자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도 이름을 새긴 셀러브리티다. 최근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2018년 투어 콘서트에 함께했고, 개봉 예정인 애니메이션 〈어글리돌스(UglyDolls)〉에서 목소리 연기에 도전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핏불은 치열한 도전 정신과 특색 있는 음악 스타일로 높은 평가를 받지만, 그의 성공은 자신의 뿌리에 대한 확고한 인식, 같은 문화 공동체 구성원과의 유대와 협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핏불의 본명은 아르만도 크리스티안 페레즈(Armando Christian Pérez)다. 1981년 마이애미의 쿠바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쿠바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습득했다. 그러나 부모가 이혼한 뒤로 편모 아래에서 자랐고, 조지아주 로스웰(Roswell)의 위탁 가정에 맡겨지는 등 힘든 시절을 보냈다. 핏불이라는 활동명은 강인한 체력과 공격성을 지닌 견종 핏불테리어에서 착안한 것이다. 가난한 이민자 가정의 자식으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자신의 모습이 핏불과 닮았다는 뜻에서 붙였다고 한다.[1]
핏불의 곡 〈인터내셔널 러브(International Love)〉 뮤직비디오. 핏불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거친 이미지와 달리 핏불은 삭발한 머리에 깔끔한 정장 차림을 고수하는 스타일을 선보인다.
마이애미 데이드(Miami-Dade) 카운티 출신인 미국인 핏불은 쿠바에서 생활한 적이 없지만 음악을 통해 쿠바 이민 2세라는 뿌리에 대한 인식과 자부심을 드러낸다. 핏불이 뮤지션으로 기반을 다지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인데, 1980년대 중반 마이애미에서 발생한 힙합 음악 장르인 마이애미 베이스(Miami Bass)와 쿠바 출신 살사 가수인 셀리아 크루즈(Celia Cruz), 윌리 치리노(Willy Chirino)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2]

2005년에는 라틴 랩과 라틴 소울, 트로피컬 뮤직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위해 래퍼 디디(Diddy)와 함께 배드 보이 라티노(Bad Boy Latino)라는 레이블을 만들었다. 2014년에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미국의 팝 가수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 브라질 가수 클라우지아 레이치(Claudia Leitte)와 브라질 월드컵 주제가 〈위 아 원(We Are One)〉을 불렀다.[3]

핏불은 음악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의 문화적 뿌리를 표명하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이들을 지원한다. 미국에서 방영되는 스페인어 케이블 방송 채널 Mun2에서 〈라 에스퀴나(La Esquina)〉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자를 맡고 있고, 2013년에는 자신이 유년 시절을 보낸 마이애미의 쿠바인 정착 지역 리틀 아바나(Little Havana)에 자율형 공립 학교인 스포츠 리더십 앤드 매니지먼트(Sports Leadership and Management·SLAM)를 세우는 데도 기여했다.[4]

핏불의 정체성 전략을 이해하려면 쿠바인의 미국 이주 역사를 되짚을 필요가 있다. 쿠바계 미국인은 히스패닉 인구 규모상으로는 세 번째로 많지만, 미국 사회에서의 중요도에서는 훨씬 수가 많은 멕시코계 다음으로 꼽힌다. 미국 사회는 정치적 노선이 일치한다는 이유로 쿠바계 이민자에게 비교적 많은 지원을 해왔다. 쿠바계 이민자들은 다른 히스패닉과 달리 반(反)사회주의라는 정치적 동기로 입국했기 때문이다. 쿠바계 미국인들은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미국 사회에서 경제력과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쿠바인의 미국 이주 역사는 1959년 1월,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가 친미파인 풀헨시오 바티스타(Fulgencio Batista) 군사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하며 시작된다. 이전까지 쿠바는 사실상 미국의 식민지였다. 1898년 아바나 항에서 정박 중이었던 미국의 군함 메인호가 폭발한 사건으로 촉발된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면서, 종전 이후 3년 동안 미군정이 실시됐다. 미국의 자본은 쿠바 경제의 중추 기능을 장악했었다.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 이후 1961년까지 쿠바에서는 기득권 계층을 비롯한 수십만 명의 쿠바인이 미국으로 피신했다. 1959년부터 1993년까지 미국으로 이주한 쿠바인 규모는 현재 쿠바 인구의 10퍼센트에 달하는 12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주로 작은 보트나 허술한 뗏목을 타고 목숨을 건 항해를 했으며, 쿠바와 가까운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정착했다. 현재 쿠바 이민 사회는 테드 크루즈(Ted Cruz)와 마코 루비오(Marco Rubio) 등의 정치인을 배출하는 등 미국 사회에서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5]

핏불의 가족은 1959년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은 직후 미국으로 이주했다. 핏불에게 마이애미라는 지역은 쿠바계 이민자의 공동체와 같은 의미다. 핏불은 쿠바계 이민자에 대해 자유를 지키기 위해 카스트로 혁명에 대항한 이들이라며 존경을 표한다. 동시에 핏불은 자신에게 부와 명예를 안겨 준 미국에 대한 자부심도 드러낸다. 2015년 미국의 온라인 미디어 《퓨전(Fusion)》과의 인터뷰에서 핏불은 “쿠바가 개방된다면 쿠바를 방문할 의향이 있다”고 했지만 앞선 2009년에는 “쿠바가 피델 카스트로 정권하에 있는 한 쿠바에서 공연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요한 사실은 핏불이 쿠바인과 미국인이라는 서로 다른 정체성을 모두 수용하고, 음악을 통해 정체성의 시너지 효과를 긍정적으로 전달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2009년 《CNN》과의 인터뷰에서 핏불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내가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미국인(American)이라고 하고, 아버지는 내가 쿠바계 미국인(Cuban American)이라고 생각해. 내 몸에 흐르는 피는 ‘너는 쿠바계 미국인이야’라고 말하고 있어.”[6]
마이애미 스트리트의 가난한 청년에서 글로벌 스타가 된 핏불을 조명한 2014년 《CNN》 인터뷰.

언어는 문화를 잇는다


핏불의 이문화 전략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언어를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핏불은 한 곡에서 영어와 스페인어를 혼용하거나, 같은 음원을 영어 버전과 스페인어 버전으로 나누어 출시한다. 스페인어는 쿠바인이나 히스패닉이라는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같은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문화적 친근감과 공감을 유도한다.

핏불의 앨범 제목과 수록곡, 노래 가사와 랩에는 핏불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현들이 있다. 그가 가장 즐겨 쓰는 스페인어 단어 ‘달레(dale)’는 ‘어서 해봐’라는 뜻으로 영어의 ‘고 어헤드(go ahead)’에 해당한다. 라틴 문화에서 자신감 고취를 위해 주로 쓰는 표현이다.[7]

핏불은 자신을 칭하는 별명으로 ‘미스터 305(Mr. 305)’라는 표현도 자주 쓴다. 미스터 305라는 이름의 레코드 레이블을 만들었을 정도다. 305는 핏불이 태어나 성장한 마이애미 데이드 카운티의 지역 번호(area code)다. 앨범 제목에서도 마찬가지다. 《M.I.A.M.I.》는 쿠바계 이민자들의 정착지였던 마이애미를 연상시키며, 2006년 발표한 《엘 마리엘(El Mariel)》은 미국으로 쿠바인들이 이주할 때 활용했던 쿠바의 대표적인 항구 이름인 마리엘에서 따온 것이다. 2007년작 《더 보트리프트(The Boatlift)》에서는 보트를 타고 미국으로 이주했던 쿠바인의 역사를, 2012년작 《아이 앰 아르만도(I Am Armando)》에서는 자신의 남미식 본명을 강조했다.

다양한 언어를 매개로 하는 핏불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언어는 인간이 갖는 상징체계로, 의사소통의 수단이면서 다양한 현상을 묘사하고 정리하는 도구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실제의 세계를 구성한다.[8] 언어의 다양성은 소리와 기호의 다양성이 아니라 세계관의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언어는 상호 문화적 정체성 구축을 위한 핵심적인 도구이자 기반이다. 상호 문화주의는 한 사회 속에 존재하는 문화 집단들 간의 교류에 관한 철학으로, 차이를 유지하면서도 국가나 지역의 지배적인 문화를 공통분모로 권장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9] 핏불은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 쓰며 미국인과 쿠바인이라는 자신의 두 정체성을 모두 인식, 수용한다. 두 개의 언어로 미국의 주류 사회에 라틴 아메리카라는 새로운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그동안 비영어권 출신 가수들은 미국에서 명성을 위해 영어 앨범을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세계의 콘텐츠를 동시에 접할 수 있고 국가와 지역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에는 영어를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소통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른 문화를 접하고 교류할 기회가 늘어난 현재는 자신을 세상에 맞추기보다, 자신만의 정체성을 강조해야 한다. 핏불의 전략이 엄청난 인기와 파급력을 불러온 이유다.

이제 그는 세계인을 꿈꾼다. 핏불은 피쳐링의 제왕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전 세계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음악을 만든다. 피쳐링 파트너의 문화적 배경을 반영해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완성하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자메이카의 전설적인 가수 밥 말리(Bob Marley)의 아들인 스티브 말리(Stephen Marley)와 함께 작업한 〈옵션스(Options)〉, 인도의 가수 프리양카 초프라(Priyanka Chopra)와 협업한 〈이그조틱(Exotic)〉, 모로코 가수 아흐메드 차우키(Ahmed Chawki)와 함께 만든 〈하비비 아이 러브 유(Habibi I Love You)〉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비주류 문화권을 자신의 음악과 접목하려는 그의 시도는 이전의 가수들이 추구했던 크로스오버 장르보다 더 혁신적이고 독창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핏불이 피쳐링한 모로코 가수 아흐메드 차우키의 곡 〈하비비 아이 러브 유(Habibi I Love You)〉 뮤직비디오.
궁극적으로 핏불은 코즈모폴리턴의 이미지를 창출하고자 한다. 핏불은 자신을 미스터 월드와이드(Mr. Worldwide)라고 표현한다. 미스터 월드와이드는 음악을 통해 문화 간의 장벽을 허물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이질감 없이 다가가며,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가까워질 수 있도록 연결하는 다리로서의 문화인을 상징한다. 자신을 세계 시민으로 인식하는 핏불의 가치관은 《글로벌 워밍(Global Warming)》(2012),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2014), 《클라이밋 체인지(Climate Change)》(2017) 등의 앨범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다.

물론 핏불 이전에도 대중문화 시장에서 이문화 간의 소통을 지향하는 이들은 존재했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이 대표적이다. 마이클 잭슨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뮤지션인 동시에,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을 절묘하게 융합한 아티스트였다. 마이클 잭슨은 흑인은 소울이나 알앤비(R&B)에 강하며, 백인은 록이나 팝에 강하다는 고정 관념을 완전히 허물었다는 점에서 찬사를 받는다. 마이클 잭슨 최고의 명곡으로 평가받는 〈스릴러(Thriller)〉(1982)는 비틀스를 시작으로 영국의 백인 록 뮤지션들이 잠식한 미국의 음악 시장에서 흑인 음악이 주류로 부상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마이클 잭슨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으며, 피부색과 관계없이 전 세계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블랙 오어 화이트(Black or White)〉(1991), 〈힐 더 월드(Heal the World)〉(1991), 〈홀드 마이 핸드(Hold My Hand)〉(2010) 등에는 인종 차별 철폐와 세계 평화 등 화합의 메시지가 강하게 드러나 있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의 이미지는 아프리카 출신과 미국인이라는 두 가지 문화적 뿌리를 완전히 내면화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마이클 잭슨의 화법은 상대적으로 미국 주류 사회의 백인과 유사했다. 그의 음악이 특정 문화권의 언어나 전통 가락, 춤 등을 차용하는 새로운 시도로 이어졌다고 보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스페인어와 영어를 함께 쓰며 이문화 뮤지션과 협업하는 핏불은 상호 문화 정체성의 가치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미국인과 쿠바인이라는 두 가지 뿌리를 동등하게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이클 잭슨의 한계도 극복했다. “언어는 문화의 로드맵이며,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말해 준다”고 했던 미국 작가 리타 메이 브라운(Rita Mae Brown)의 말처럼, 언어는 문화적 측면에서 나의 과거와 현재를 고찰하고 그 고유성과 가치를 보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에서 태동한 언어들을 접하며 그들과 적극적으로 교감할수록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경쟁력은 더 강화된다.
2014년 미국의 인기 토크쇼 〈레이트 나이트 위드 지미 팰런(Late Night with Jimmy Fallon)〉에 출연한 핏불.
 

다양성이라는 시대의 요구


미국의 흑인 작가 알렉스 헤일리(Alex Haley)의 1976년 소설 《뿌리》는 정체성의 근원을 다룬 대표적인 작품이다. 작가는 외할머니에게서 들은 조상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굴곡진 삶을 생생하게 재조명했다. 주인공인 쿤타 킨테(Kunta Kinte)는 서아프리카 감비아에서 평화롭게 살던 만딩카(Mandinka) 부족의 소년이다. 17살이 되던 해에 쿤타 킨테는 노예 사냥꾼에게 납치돼 머나먼 미국 땅으로 끌려가 평생을 노예로 산다.

쿤타 킨테와 그의 자손들은 흑인 노예로 숱한 고난을 겪지만, 이들의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은 소멸하지 않고 7대손인 헤일리에게 전달된다. 200여 년에 걸친 세월이 흐른 후에도 헤일리가 조상과의 연결 고리를 되살릴 수 있었던 데에는 미국의 흑인 노예 토비 월러(Toby Waller)로 평생을 살면서도 만딩카 부족의 쿤타 킨테라는 정체성을 끊임없이 되새겼던 조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설은 자신의 근원적 정체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내면화하면 현재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요구하는 주류의 문화를 비롯한 타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동시에, 본연의 정체성과 연계해 풍요로운 문화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한다.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작가인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1994년에 쓴 희곡 《닫힌 방》에서 혼자 있을 수 없는 지옥을 이야기했다. 작품 속의 세 주인공은 죽은 뒤에 출구가 없는 방에 갇힌다. 서로를 모르는 채로 함께 있게 된 세 사람은 혼자 있는 권리를 영원히 박탈당할 처지가 된다. 사르트르는 타자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지옥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다양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표현한다. 에코는 “우리는 다른 이들의 현존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 자신을 인식할 수 있으며, 여기에 근거해 공존과 순응의 규율들이 세워진다”고 했다.[10]

지금의 사회는 사르트르의 자기중심적 가치와 더불어, 에코가 주목한 커뮤니케이션의 가치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시간이 갈수록 더 심화할 것이다. 교류의 범위가 확대되고 속도가 빨라지는 미래 사회에는 본래의 문화적 뿌리를 유지하는 것만큼이나 다양한 문화를 아우를 수 있는 유연한 정체성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이런 시대에 핏불은 이문화 간 소통이라는 화두를 십분 활용함으로써 다름에 대한 긍정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한국도 이러한 흐름의 예외가 아니다. 특히 한류 열풍으로 전 세계 대중문화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고 있는 한국의 대중문화는 다양성이라는 시대정신을 요구받고 있다. 자신의 뿌리를 인식하고 다양한 문화와 융합해 성장시켜 나가는 새로운 정체성의 시대가 오고 있다.
 
[1]
Teresa Wiltz, 〈Hustling to the Beat〉, 《The Washington Post》, 2004. 1. 25.
[2]
Reynaldo Herrera Jr., 〈PITBULL, RELENTESS RHYMES〉, 《Open Your Eyes Magazine》, 2009. 12. 13.
[4]
Claudio Sanchez, 〈Is Pitbull ‘Mr. Education’? Rapper Opens Charter School In Miami〉, 《National Public Radio》, 2013. 10. 15.
[5]
박국희, 〈[기자의 시각] 쿠바를 바꾸는 난민 送金〉, 《조선일보》, 2015. 12. 19.
[6]
Denise Quan, 〈Rapper Pitbull true to his Cuban heritage〉, 《CNN》, 2009. 10. 24.
[7]
Cristina Silva, 〈To Pitbull’s Fans Around The World, ‘Dale’ Is A Way Of Life〉, 《National Public Radio》, 2014. 8. 23.
[8]
유수연, 《언어 문화 상호 문화 의사소통》, 한국문화사, 2015.
[9]
장한업, 《이제는 상호 문화 교육이다》, 교육과학사, 2015.
[10]
움베르토 에코(김희정 譯), 《적을 만들다》, 열린책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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