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점의 예술
1화

프롤로그; 기술과 예술, 그리고 인공지능

2018년 10월 25일,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한 초상화가 43만 2000달러(5억 원)에 낙찰됐다. 언론은 이 소식을 각국으로 전했고, 전 세계 미술계는 충격에 빠졌다. 논란이 계속되자 크리스티는 해당 그림에 관한 포럼과 세미나를 열겠다고 밝혔다.
에드먼드 벨라미의 초상화
‘에드먼드 벨라미의 초상화(Portrait of Edmond Belamy)’라는 제목의 그림은 오래돼서인지 얼굴 형체가 뚜렷하지 않고, 여백이 많아 미완성 작품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논란을 일으킬 만큼 문제가 있는 그림은 아니다. 논란의 핵심은 작품의 수준이나 완성도가 아니라, 작가였다. 이 작품을 그린 건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 바로 인공지능이었다. 이날은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미술계에서 처음으로 소비된 순간이었다.

2018년 국내 인공지능 스피커의 보급량은 약 300만 대로, 일곱 가구 중 한 가구가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인공지능 비서에게 말을 걸어 약속을 잡고, 집안일을 시키는 것은 더 이상 SF 영화 속 일이 아니다.

인공지능은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줄 익숙한 기술로 자리 잡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는 위협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2016년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의 대국 이후,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직업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대비하기 위한 코딩 교육이나 창의성 교육 붐이 일어나기도 했다. 인간과 인간성에 대한 질문이 교육열로 터져 나온 것이다.

이러한 논쟁 속에서 예술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활동으로 꼽혔다. 예술은 인간의 창의성이 응축된 행위이기 때문에 기계는 결코 따라올 수 없다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창작 활동을 모방하는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눈앞에 있다. 2016년 구글(Google)의 딥드림(DeepDream)은 주어진 이미지의 패턴을 분석하고 다른 이미지와 합성해 마치 꿈속에서 보는 것 같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었다. 같은 해 소니(Sony)의 플로 머신즈(Flow Machines)는 비틀즈의 음악을 분석해 이를 토대로 새로운 음악을 작곡했다. 그러나 예술계에서는 딥드림이나 플로 머신즈의 결과물은 기존 작품에 대한 단순 모방이기 때문에 예술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그림이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에서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으며 거래됐다. 우리는 이제 인공지능 창작물에 대해 마냥 보수적인 태도를 취할 수만은 없는 상황에 처했다. 인공지능의 창작물을 예술이라 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을 인간과 동등한 예술가로 볼 수 있을까?

사실 우리는 기술 변화에 따라 달라진 예술을 지속적으로 접하고 있었다. 예컨대 발명 초기 사진은 예술과는 거리가 먼 과학 기술의 산물이었다. 당시 많은 예술가, 학자는 사진을 그저 기록물을 위한 것으로만 바라볼 뿐 예술로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사진이 담아내는 뚜렷한 현실 이미지는 재현에서 벗어난 현대 미술의 시작을 촉구했고, 그 결과 회화와 다른 사진만의 예술성이 인정받을 수 있었다. 컴퓨터도 처음에는 그저 전쟁용 계산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컴퓨터의 대중화는 기존 아날로그 이미지와 전혀 다른 방식의 이미지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그 결과 우리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손쉽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만들고 공유한다. 이처럼 기술의 등장은 예술의 매체를 변화시켰고, 이 변화에 따라 예술의 형태와 의미가 달라졌다. 그뿐만 아니다. 기술이 변하자 예술을 평가하는 기준과 작품을 통해 얻는 미적 경험까지도 변화했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 예술의 범위와 의미를 바꾼 것이다.

현대 매체 미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1939년에 쓴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은 기술이 어떻게 전통적인 예술 개념을 바꿨는지 보여 준다. 이 글에서 벤야민은 기술 복제 시대가 도래하면 예술의 근본적인 부분이 변화할 수 있음을 역설했다. 그의 글은 기술이 예술에 미칠 영향력을 예견한 폴 발레리(Paul Valéry)의 다음 문장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엄청난 혁신들이 예술의 테크닉 전체를 변모시키고, 그로써 예술의 창작 과정 자체에 영향을 끼치며, 결국에는 예술의 개념 자체를 가장 마법적인 방식으로 변화시키는 데까지 이를지 모른다는 점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1]
 
인공지능은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기술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이 기술은 지금까지의 예술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미 변화의 움직임은 기술 쪽에서 시작되고 있다. 특히 컴퓨터 비전(computer vision)과 신경 정보를 다루는 국제 학회에서 인공지능 창작과 예술을 주제로 콘퍼런스를 진행하면서, 창작을 위한 인공지능이 주목받았다.[2]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최전선의 학계에서 적극적으로 인공지능 창작을 다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보고, 상상하며, 다른 형태로 창조해 내는 예술의 과정, 즉 창작 행위야말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본질을 이해할 때, 인공지능 연구는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특이점을 한 걸음 앞에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술은 너무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 정도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더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삶에 들어올 것이다. 예술에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예술 작품이 많지 않지만, 앞으로는 많은 예술가가 마치 물감을 사용하듯 인공지능을 익숙한 매체로 활용해 다양한 예술 작품을 만들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공지능은 예술 창작의 편리한 도구를 넘어 적극적으로 인간의 창작을 돕는 동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아닌 새로운 예술 주체의 등장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새로운 예술을 어떻게 비평하고 해석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인공지능 창작물의 예술적 가능성을 고찰하고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 지형을 그려 보려는 시도다. 새로운 예술 주체를 통해 인간의 예술적 창의성을 비춰 보면 우리는 스스로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질문을 마주하게 되겠지만, 질문의 끝에서 인공지능과 함께할 미래를 이해할 통찰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1]
폴 발레리, 〈편재성의 정복〉, 《예술론집》에서 재인용.
[2]
2018년 신경 정보 처리 시스템 학회(Neural Information Processing systems·NIPS)에서 창의성과 디자인을 위한 머신 러닝이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진행했다. 학회 기간 중 개최된 전시에서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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