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점의 예술
6화

에필로그; 기술에 비친 인간의 모습

“인류가 우주에서 지구의 모습을 보았을 때, 마침내 지구는 ‘거울 단계’에 들어섰다.”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인류가 지구의 모습을 본 순간부터 지구가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거울 단계는 프랑스 철학자 라캉이 정의한 개념으로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의 어린아이가 거울에 비친 모습을 자신이라고 믿기 시작하는 단계를 말한다. 엄마와 자신을 하나라고 생각해 왔던 아이는 거울을 보면서 ‘아, 나는 엄마와는 다르게 생겼구나’ 하고 처음으로 자신을 인지한다. 한 사람의 세계는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을 때 마침내 시작된다. 거울 단계는 곧 성장의 증거다. 그렇다면 인류의 거울은 무엇일까?

이 책은 위 질문에서 출발했다. 거창한 질문에 답을 내리는 일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정의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인간을 기술에 비추려는 노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다른 기술 매체와는 달리 최초로 인간 지능을 벗어나고 있다. 현재 인공지능 연구는 인간의 뇌를 다각도로 연구해 최근에는 감정이나 자의식의 발현 원인까지 찾아내려 하고 있다. 인간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는 기술적 접근 외에도 철학, 인문학 등 다채로운 사유가 요구될 것이다. 인공지능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인공지능 연구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예술은 인공지능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 주고 있다. 메모 아크텐(Memo Akten)의 짧은 영상 작품 〈러닝 투 씨(Learning to see)〉[1]는 비장한 배경 음악이 깔리고 파도가 거세게 치는 바다가 등장하며 시작한다. 바다는 불꽃으로 변하고, 마침내 꽃이 된다. 이 모든 영상은 작가의 손동작을 카메라로 찍어 인공 신경망으로 생성한 영상과 합성한 것이다. 작가는 손수건 주름으로 파도를, 핸드폰 충전기로 암석을 만들어 낸다. 꽃이 피는 모양을 손으로 연출하기도 한다. 인공지능 기술이 없었다면 이런 작품 역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인공지능을 해석하는 주체는 인간이다. 넘실거리는 파도를 손과 손수건만으로 만든 작가, 그리고 그 행위에서 감동받은 나처럼 말이다. 인공지능 안에 있는 가능성을 예술로 풀어내고 해석, 이해하는 것. 그것이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을 바라보는 태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떠올리면 패배감이 먼저 든다. 발전 속도에 뒤처진 스스로가 골동품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살펴본 다채로운 시도가 증명하듯 인간의 상상력은 늘 기술보다 앞서 있다. 인공지능 예술을 해석하는 비평의 장을 통해 적극적으로 인공지능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한다면 인간의 상상력은 더욱 폭넓게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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