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확장
1화

프롤로그; 미래의 시민이자 현재의 시민

모든 인간은 탄생과 성장, 소멸이라는 자연 섭리에 따라 생애 주기(life cycle)를 경험한다. 영아기, 유아기에서 시작해 노년기로 끝나는 생애 주기의 각 단계는 대부분 생물학적 연령을 기준으로 나뉜다. 공동체에서 법과 제도에 의해 합의된 특정 연령에 도달한 성인은 독립적인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만 19세부터 성인이 되어 선거권을 갖는다. 성인이 되지 못한, 아동·청소년기에 속한 20퍼센트의 대한민국 국민은 실질적 주권 행사가 유예된 집단으로 대우받고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권은 19세 이상의 국민에게, 피선거권은 25세 이상의 국민에게 주어진다. 25세 미만의 젊은 세대는 그들의 이익을 대변할 대표자가 될 수 없고, 특히 19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은 대표자를 선출할 권리조차 없다. 아동·청소년 정책이든 아동·청소년이 훗날 짊어져야 할 정책이든,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서 19세 미만은 철저히 배제된다. 참정권이 없는 세대가 자신이 참여하지 못한 정책의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고 책임져야 할 때, 세대 간 불평등이 발생한다.

우리나라의 복지 정책이 단적인 예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노인 복지 수요가 팽창하자 정부와 정치권은 연금, 보험, 의료 제도를 손질해 내놓았다. 모두 미래 세대가 앞선 세대를 부양하는 방식이었다. 이처럼 대표성의 불균형은 젊은 세대에게 재정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 ‘현재의 시민’보다는 ‘미래의 시민’으로 인식되는 아동·청소년은, 정책 결정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향후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권리와 책임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익의 불균형도 심각한 문제다.

2015년 현재 18세 이하 아동·청소년은 940만 명에 달한다. 65세 이상 노인 657만 명보다 43퍼센트가 많다. 그러나 아동·청소년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없기 때문에 소수인 노인의 이익에 편중된 정책이 나오기 쉽다. 아동·청소년의 과소 대표, 노인의 과잉 대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런 불균형은 득보다 실이 많다.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국가 정책, 복지 행정에 과도하게 집중된 재정 지출, 그리고 향후 모든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젊은 세대의 사회적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유럽 사회는 일찍이 이런 문제를 간파했다. 그들은 정치 참여에 대한 젊은 세대의 무관심에 주목하고 선거권 연령 하향을 해법으로 내놓았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선거권 연령을 18세로 낮췄다. 한발 더 나아가 16세까지 내리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펼치고 있다. 젊은 층의 정치 참여를 통해 노후한 국가 정책을 개선하고 노인 세대에 편중한 재정 지출의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다. 2016년 청소년 관련 재정이 삭감된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대조적이다.

현행 ‘선거권 19세 제한’은 과연 합당한가? 이제는 세계적 흐름에 맞춰 공동체 구성원의 사회적 합의를 반영한 새로운 답을 제시해야 한다. 아동·청소년은 더 이상 ‘미래의 시민’, ‘유예된 시민’으로 대우되어선 안 된다. 20세기 초 아동권리선언으로 시작해 1989년 유엔아동권리협약 제정 이후 활발해진 국제 사회의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2002년 유엔아동특별총회가 인상적이다. 각국의 아동·청소년 대표 400여 명은 “아동은 문제의 근원이 아니다. 우리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자원이며, 세계의 구성원이자 시민”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이들을 대표한 두 명은 이렇게 말하면서 유엔아동권리협약 준수를 국제 사회에 촉구했다.

“어른들은 우리를 미래라 부르지만, 우리는 현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한 이후, 아동 권리 확보를 위한 법률과 제도를 신설하고 개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 2003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아동·청소년의 정치권 보장을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국제 사회의 흐름에 맞지 않는 높은 선거권 연령 기준이 문제였다. 선거권 연령 기준은 ‘몇 살부터 투표할 수 있는가’를 좌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19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이 그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이익을 관철할 수 있는 정치적 참여에서 배제되는 기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선거권 연령을 기준으로 19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은 대통령 및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회의원에 대한 선거권뿐만 아니라 같은 연령을 준용하는 주민투표권, 조례의 제정과 개폐 청구권, 정당의 발기인 및 당원 자격과 교육감 선거권 역시 제한된다. 19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은 선거권 제한 이외에도 정당 가입 및 활동, 선거 운동 제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정치적 참여가 배제되고 있다.

아동·청소년의 참정권 확대를 외치는 목소리는 사회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당사자인 아동·청소년부터 나섰다. 그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정치적 관심을 표출하고, 광화문 촛불 시위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아동·청소년 단체가 국회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선거권을 요구하기도 했다.[1]

국회에서는 선거권 연령 하향 입법안이 지속적으로 발의되고 있다. 이미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선거권 연령 기준을 낮춰야 한다고 국회에 권고했다. 2016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같은 취지의 법안 개정 의견을 냈다. 그러나 연령의 장벽은 좀처럼 무너지지 않고 있다. 2014년 4월 헌법재판소는 현행 선거권 연령을 규정한 공직선거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2017년 2월 현재 여야 4당은 선거권 연령을 18세로 낮추는 선거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태다.

민주주의에서는 주권자이자 공동체 구성원인 개인의 자유로운 정치적 참여 보장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대의제 민주주의의 요체는 선거권 보장이다. 선거는 국민 주권 실현의 현실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국가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동시에 통제하는 힘을 얻는다. 선거는 정치적 소수파가 다수파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고, 또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당의 설립 및 활동의 자유, 정당의 기회 균등 등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선거는 개인의 가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각자의 이익과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정치적 의사 표출은 인간의 본성인 정치적 욕구를 충족한다. 이 역시 선거의 중요한 기능이다. 1989년 9월 헌법재판소는 “참정권은 국민이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국정에 참여한다는 전체주의적 의미보다 정치적 동물로서 정치적 욕구를 충족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국정을 창조하고 형성하는 개인의 정치적 권리 및 의사다. 권익과 행복을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보장받고, 개인의 정치적 주장과 의사를 선거를 통하여 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민주 국가의 생명이며 민주 정치의 장점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적극적인 의의를 선거 제도에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시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정치적 본성을 충족하는 참정권의 적극적인 의의가 선거 제도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보통 선거의 원칙은 ‘일정 연령에 달한 모든 국민’에게 적용된다. 이와 관련해 1997년 6월 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는 참정권의 주체와 국가 권력의 지배를 받는 국민이 되도록 일치할 것을 요구한다. 국민의 참정권에 대한 이러한 민주주의적 요청의 결과가 바로 보통 선거의 원칙”이라고 밝히면서 “특정한 국민을 정치적·경제적 또는 사회적인 이유로 선거권의 행사로부터 배제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 선거의 원칙이 처음부터 확립된 것은 아니다. ‘일정 연령’ 이전엔 재산, 성별, 인종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의회 민주주의의 본고장, 영국은 1832년 의회 개혁이 일어나 중간 계급의 남성이 의회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1884년에는 재산 자격이 완화되어 남성 선거권자가 확대되었다. 뒤이어 여성 참정권 요구가 거세지면서 1918년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선거권이 부여됐다. 10년 뒤인 1928년 비로소 21세 이상의 모든 남녀가 선거권을 행사하는 현재의 보통 선거 원칙이 확립되었다. 계급과 성별뿐 아니라 인종에 따른 선거권 제한도 있었다. 미국의 흑인 참정권 운동에 의한 선거권 확대가 대표적인 예다.

이처럼 일정한 기준에서 제외된 사람들은 치열하게 투쟁해 선거권을 확보했고, 선거권 행사를 통해 각 계층의 인권은 점차 신장했다. 오늘날 우리가 공유하는 ‘일정 연령’이란 기준은 과연 항구적인 제한일까? 우리는 재산, 성별, 인종의 장벽을 하나씩 무너뜨리고 인권의 영역을 확장해 왔다. 남은 것은 연령뿐이다.

이 책은 19세 미만의 선거권 행사를 제한하는 현행 공직선거법에서부터 고민을 시작하고, 아동·청소년의 지위에 대한 국회와 헌법재판소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볼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견하는 모든 위헌적 요소의 개선을 촉구한다. 18세의 선거권 획득, 나아가 더 많은 아동·청소년의 선거권 보장이 시대적, 사회적 변화 요청에 부응하는 일임을 강조한다. 선거권 연령 기준의 하향은 궁극적으로 민주 시민으로서의 아동·청소년의 주권 행사를 도모하는 기제가 될 것이다. 아동·청소년이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재’의 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때, 당연시해 온 연령의 기준을 보다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때, 민주주의도 더불어 성장한다. 시민의 확장은 성숙한 민주주의와 함께한다.
[1]
2017년 1월 11일 국회 정론관에서 ‘틴즈디모(TeensDemo)-틴에이저(Teenager)와 데모크라시(Democracy)를 합친 단어)’라는 단체가 만 18세 이상 청소년에게 대통령·국회의원·기초단체장 선거권을, 만 16세 이상 청소년에게 교육감 선거권을 허용할 것을 촉구했다. 청소년의 정당 가입 허용 및 정치 참여로 인한 불이익 방지를 촉구하는 기자 회견도 열었다. 1월 18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박주민 의원, 한국YMCA전국연맹, 시민단체연대회의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공동으로 ‘선거권 연령 18세 하향’ 촉구를 위한 1만 인 선언 및 전국 YMCA 동시다발 기자 회견을 열었다. 18세로의 선거권 연령 하향은 시대적 요구이므로 1월 임시 국회에서 관련 사항을 개정할 것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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