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코닉 건축
1화

프롤로그; 사람들의 마음에 이미지를 심다

철제 조각상 ‘북쪽의 천사(Angel of the North)’는 영국 북부 게이츠헤드(Gateshead) 지역의 번영을 상징하는 구조물이다. 고속 도로에서 만나게 되는 이 조각상은 높이 20미터에 54미터 길이의 날개를 가진 어마어마한 이정표다. 게이츠헤드는 1930년대까지 탄광 산업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19세기 후반에는 최초로 증기 기관차가 생산될 정도로 번영했다. 그러나 대공황의 발발과 함께 석탄 산업이 침체기에 들어가면서 점점 잊힌 도시가 되었다. 게이츠헤드 시 의회는 1986년부터 도시의 부활을 꿈꾸며 문화 예술을 중심으로 도시 재생 사업을 시작했다. 공공 미술 사업의 일환으로 1994년 세워진 북쪽의 천사상은 쇠퇴한 광산업을 기리면서, 산업화에서 정보화 시대로 넘어가는 지역의 희망을 보여 줬다. 전략적으로 만들어진 지역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의 버밍엄(Birmingham) 셀프리지(Selfridges) 백화점 역시 특이한 외관으로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1만 5000개의 알루미늄 디스크로 단장한 백화점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셀프리지 백화점은 1990년대 말 산업 구조의 재편으로 버밍엄의 도시 경쟁력이 떨어지자, 관광 수요를 끌어올리기 위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건축이다. 그리고 지금은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게이츠헤드와 버밍엄은 이제 쇠락한 공업 지역이 아닌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예술과 쇼핑의 도시다. 몰락한 지역이 아닌 영감이 깃드는 장소가 되었다. 도시의 아이콘 역할을 해내는 영국의 아이코닉 건축들은 세계화라는 전쟁터에서 영역을 넓히는 전초 기지다. 세계에 영국의 새로운 이미지를 알리는 첨병인 셈이다. 건축은 지역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발신한다. 지역의 비전에 대한 일종의 선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 카스토리아디스(Castoriadis)는 저서 《사회의 상상적 제도》에서 서구 역사는 이성과 철학이 아닌 상상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사회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서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허구적인 이미지의 상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현존하는 상(actual imaginary)이다. 이는 현존하는 집단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능력이다. 국가가 제도화를 위해 언어, 음악, 예술, 건축을 상징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두 번째는 급진적인 상(radical imaginary)이다. 현존하지는 않지만, 미래를 위한 이미지와 상징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1]
아이코닉 건축은 두 번째 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아직 현실에는 없지만 이상적인 미래의 상을 전달함으로써 인구와 투자를 유입하는 마중물이다. 지역이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가치에 비전을 더한 건축인 것이다.

비전은 언제나 미래 시제다. 미래는 현재에 의해 바뀐다. 버밍엄은 20세기 모더니즘의 이상향으로서 자동차 산업이 번영한 지역이었지만, 1970년대부터 산업이 쇠퇴하면서 급격한 도시 슬럼화와 범죄 문제를 겪었다. 재도약의 꿈을 품고 관광 도시로 변신하기 위해 지역 재개발이 이뤄졌고, 셀프리지 백화점을 포함한 여러 건축 프로젝트들이 진행됐다. 버밍엄은 셀프리지 백화점 외에도 음악당, 영국 최대 규모의 도서관, 국립 해양 생물관 등을 건설해 도시를 브랜드화하는 데 성공했다. 도시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비전의 갱신, 기억에 각인되는 이미지의 생산이 필요하다.

아이코닉 건축은 지역 재생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패션 기업에서 5층 규모의 명품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의 오픈을 맡은 적이 있다. 회사 전체가 매달려 세심하게 계획하고 만드는 플래그십 스토어는 결코 부수적인 수입을 창출하는 하나의 매장으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었다. 방문자나 잠재 고객들에게 브랜드의 가치를 전달하는 중요한 통로였다. 주요 상품만이 아니라 공간의 구조, 질감, 배치, 색감, 표현 방법, 디자인을 통해서도 브랜드의 메시지는 전달된다. 플래그십 스토어를 방문한 고객뿐 아니라 우연히 지나치거나 인터넷 게시물로 접한 사람들까지도 공간을 통해 브랜드를 체험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 이것이 아이코닉 건축과 브랜딩 사이의 연결 고리다. 이 책은 아이코닉 건축을 다루고 있지만 동시에 도시 재생, 리테일 비즈니스,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양한 영역에서 아이콘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1]
Maria Kaika, 〈Architecture and crisis: Re-inventing the icon, re-imag(in)ing London and re-branding the City〉, 《Transactions of the Institute of British Geographers》, 35(4), 2010, pp. 453–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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