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3.0
8화

에필로그; 새로운 소비자의 탄생

워너원이 활동을 종료한 후, 몇몇 팬들을 다시 만났다. B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우린 아직 1월 27일(워너원의 마지막 콘서트 날)에 살아요”였다. 다시 만난 팬들은 각자 다른 이야기를 꺼냈지만, 공통적으로 모두 워너원을 그리워하며 이 그룹의 가치가 계속 유지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얼핏 아이로니컬한 현상으로 보일 수 있다. 워너원 팬덤은 개별 멤버들의 팬덤 11개가 경쟁하고 협력하며 구성했던 팬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워너원 해체 후에는 팬 정체성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물었다.

“요즘에도 커뮤니티에 ‘워너블(워너원 팬클럽)들 아직 여기 있죠?’ 같은 글들이 가끔씩 올라와요.” 다시 만난 한 팬의 이야기처럼 팬들은 여전히 워너블이라는 이름에 애정을 보이고 있다. 직접 투표하고 기획해서 워너원을 만들어 냈던 참여의 경험은 스타와의 깊은 연대감에서 비롯되는 애정을 유지시켜 주고 있었다. 일례로 2019년 5월, 팬들은 ‘워너원의 워너블’이라는 이름으로 한 기부 프로그램에 1000만 원을 웃도는 후원금을 기부했다. 그 결과 실제 방송에서 워너블이라는 이름이 불렸다. 여전히 팬덤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자신들의 이름을 지켜 내려는 팬들의 노력이다. 이러한 팬들의 행동은 스타를 둘러싼 세 권력과 관련이 있다.

3세대 팬덤 문화는 팬덤, 미디어, 소속사라는 세 권력이 서로 공모하고 의존하는 복잡한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프로젝트 그룹은 팬덤이 기획하고 홍보함으로써 성공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제한된 활동 기간이 끝나고 소속사와 방송사가 손을 떼면 활동이 종료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소속사와 방송사가 손을 떼더라도, 권력의 한 축인 팬덤은 남아 있다. 결국 이 프로젝트 그룹의 끝은 팬덤이 사라지는 순간이 된다. 팬덤이 자신들의 이름을 유지하려 하는 이유다. 이러한 관점에서 프로젝트 그룹의 가장 큰 정체성은 그룹의 시작과 끝인 팬덤에 있다.

자신들의 이름을 지키려는 팬덤의 노력은 또 하나의 소비자 행동주의일 수 있다. 팬덤이 건재하면 프로젝트 그룹의 생명력이 이어진다는 점을 알고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여 모델의 양육형 팬덤은 현재 진행형이다. 3세대 팬덤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 갈지는 결국 이 팬덤의 활동에 달렸다.

물론 이러한 팬덤 3.0의 참여적인 특성을 결함 없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미시적으로 봤을 때에는 적극적으로 보이는 참여 모델의 팬덤이 거시적으로는 자본주의에 포섭되어 있다는 한계를 지적하려는 것은 아니다. 3세대 팬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결국 그러한 포섭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팬덤 3.0이 형성되는 과정은 새로운 현상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과거 팬덤 문화를 그대로 계승하고 유지해 온 부분도 있다. 또한 팬덤 3.0의 특징들이 모든 팬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3세대 팬덤이 기존 팬덤을 완전히 대체했다기보다는, 영향력 있는 새로운 팬덤이 등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세대 팬덤은 계속 산업과 소통하며 진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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