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히지 말 것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IPO를 추진해 덩치를 키워야 하는데, 그 전에 정리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오픈AI의 최대 투자자인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관계입니다.
지금의 오픈AI를 만든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입니다. 2019년 사티아 나델라 CEO가 1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결정하지 않았다면, 오픈AI는 구글이나 메타와 같은 경쟁자에게 진작 뒤처졌을 겁니다.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든 것도 오픈AI입니다. 한때 ‘지는 별’ 취급을 받았지만, 오픈AI에 대한 선제적인 투자로 AI 주도권을 틀어쥐면서 상승세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현재는 애플과 시총 1위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할 만큼 치고 올라왔죠.
사실, 첫 투자 당시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AI에 현금 10억 달러를 입금했던 것은 아닙니다. 5억 달러는 상품권으로 줬습니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애저 클라우드 플랫폼’ 사용 크레딧입니다. 생성형 AI 모델의 개발과 사용에는 엄청난 컴퓨팅 파워가 필요합니다. 오픈AI 같은 스타트업이 그 장비를 다 사서 굴리는 것은 비효율적일뿐더러, 그 비용을 감당할 수도 없습니다. 필연적으로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가 클라우딩 방식으로 제공하는 컴퓨팅 파워를 빌려 쓸 수밖에 없는데,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점을 이용해 오픈AI의 기술과 서비스를 모두 자사 클라우드 서비스에 묶어 두는 전략을 쓴 겁니다. 이 독점 계약은 올해 1월 종료되었지만, 앞으로도 오픈AI가 추가 클라우드 서버가 필요할 경우 마이크로소프트가 우선 협상권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까 두 기업은 거의 ‘피를 섞은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픈AI도, 마이크로소프트도 서로의 존재 없이는 지금의 지위를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IPO를 추진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마이크로소프트의 투자액은 137억 5000만 달러에 이릅니다. 오픈AI의 지분 49퍼센트를 쥐고 있으며 2030년까지는 투자금이 회수될 때까지 오픈AI가 내는 이익의 75퍼센트를 가져가게 됩니다. 투자금을 그 전에 다 회수하면 이익의 절반을 가져가고요. 즉, 오픈AI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배를 두드리게 되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입니다. 피를 섞은 혈맹의 관계였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재주넘는 곰과 왕서방의 관계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더 극단적인 상황도 가정할 수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AI를 적대적 인수 합병하는 겁니다. 물론 독점 이슈 등 규제 당국과 풀어야 할 문제가 많겠지만,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오픈AI가 영리 기업으로 구조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분을 1.1퍼센트만 더 확보하면 됩니다. 이렇게 되면 IPO는커녕, 오픈AI는 마이크로소프트의 AI 센터가 되는 겁니다.
공익 법인
그래서 오픈AI가 일단 내놓은 해결책이 바로 ‘공익 법인(Public Benefit Corporation, PBC)’으로의
전환입니다.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는데, 실제로 흔치 않은 기업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내 수천 개의 상장 기업 중 공익 법인 형태는 스무 곳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AI 기업들이 여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앤트로픽도, 일론 머스크의 xAI도 공익 법인 형태의 거버넌스 구조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생성형 AI 산업에 딱 맞는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공익 법인이 되면, 오픈AI는 주주의 이익은 물론 공공의 이익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됩니다. 즉,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결정이라도 사회 구성원 전체에 해가 된다고 판단될 경우 거부할 수 있게 됩니다. 생성형 AI 기술은 아직 완성 단계가 아닙니다.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 얼마나 더 발전해야 기술이 안정기에 접어들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적 이익에 천착했다가는 미래의 발전 가능성을 잃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픈AI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 합병된 경우를 가정하고 살펴보죠. 영리 기업의 한 부서에서는 인류 공동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기술 개발에 엄청난 투자를 계속해야 할 동력이 살아남기 힘들 수 있습니다. 회사 사정에 따라서는 인간 지능을 능가하는 AI 모델을 개발하던 인력이 오피스 프로그램에 탑재된 AI 맞춤법 수정 기능 개선 업무를 맡아야 할 수도 있겠죠. 단기적으로는 이익이 되겠지만, 장기적인 목표 달성은 물거품이 됩니다.
하지만 공익 법인이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왜 이익을 내지 못하느냐는 행동주의 주주 세력의 요구에 대응할 명분이 생깁니다. 인류의 더 큰 공익을 위해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하면 되는 겁니다. 즉, 회사가 충분히 수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방어할 방법이 생깁니다. 큰 회사에 인수 합병되는 쪽이 주주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하더라도 공익에 반한다면 이를 거부할 수 있게 되고요.
스타트업 창업자의 취업
공익 법인으로의 전환과 맞물려 오픈AI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지분 조정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진 지분의 일부를 포기하는 대신 2030년 이후에도 오픈AI의 기술 접근권을 확보하는 조건입니다. 혈맹의 유통기한을 좀 더 연장하자는 것이죠.
사실, 나델라 CEO는 2030년 이후를 미리 준비해 왔습니다. 생성형 AI 스타트업 ‘인플렉션(Inflection)’을 사실상 꼼수 인수 합병하면서, 인플렉션의 CEO였던 무스타파 술레이만을 마이크로소프트 AI의 CEO로 앉힌 겁니다. 술레이만은 AI 스타트업을 창업해 제2의 오픈AI를 꿈꾸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의 ‘AI 센터 센터장’에 안주하게 되었습니다.
CEO 자리에 앉은 술레이만이 부여받은 임무는 오픈AI로부터 전수받은 기술을 활용해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자적인 AI 모델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계약이 끝나는 2030년 이후에는 AI 모델 독립을 이룰 수 있도록 말이죠. 하지만 이게 잘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용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코파일럿의 성능이 챗GPT에 비해 너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술레이만이 오픈AI와의 회의 자리에서 고성을 질렀다는
전언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지분을 내놓더라도 기술 계약을 연장하는 것이 마이크로소프트에 손해라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다만, 변수는 있습니다. 오픈AI가 인간과 유사한 정도의 지능, 즉 AGI를 달성하게 되면 이 계약 자체를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이 생깁니다. 거물급 투자자도 추가되었습니다. 소프트뱅크나 애플, 엔비디아 같은 곳입니다. 상황에 따라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픈AI 지배력이 점점 약해질 수 있습니다. 새로 들어올 투자자 입장에서는 반길 만한 일이죠.
극한 직업
순조롭게 일이 진행된다면 오픈AI는 회사의 가치를 더 크게 인정받고 IPO에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공익 법인이라는 특수한 구조는 물론, 비영리 재단의 영향력까지 유지하면서 IPO를 추진하는 것이 순탄하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오픈AI가 기업으로서 이익을 내며 지속 가능한가의 문제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AI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는 오픈AI는 왜 아직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할까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오픈AI에 꼬박꼬박 구독료를 내고 있는데 말이죠. 문제는 오픈AI가 지나치게 혁신적인 기업이라는 점입니다.
저희 북저널리즘에서는 오픈AI가 내놓은 굵직한 새 모델에 관해 꾸준히 사유해 왔습니다. 챗GPT-3.5의 등장부터 동영상 생성 AI 소라, 추론 모델까지 다른 방식으로 작동되는 다양한 모델이 등장했죠. 뒤집어 말하면 오픈AI는 생산 단가와 판매 비용의 규모와 비율이 완전히 다른 신제품을 몇 달 간격으로 꾸준히 내놓고 있는 셈입니다. 추정치에 따르면 GPT-4 모델의 경우 훈련에 든 비용 대비 운영 비용이 4배 정도 됩니다. 추론 모델인 o3의 경우에는 훈련 비용 대비 운영 비용이 100배 정도일 것으로 보입니다.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할까요.
지금은 일괄적으로 월 구독료 기반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사실 추론 모델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종량제 방식의 과금 모델을 만들어야 할 겁니다. 그렇다고 AI 모델별로 다양한 요금제를 만들거나 요금 자체를 올리기도 어렵습니다. 안 그래도 틈새를 노리고 있는 구글이나 메타가 파격적인 요금제로 사용자를 가져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픈AI는 극단적인 불확실성 덩어리입니다. 이래서는 사업 계획을 세우고 안정적인 매출 구조를 만들 수가 없죠.
오픈AI의 CFO 자리가 극한 직업인 까닭입니다. 샘 올트먼은 역사적인 기업을 만들었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인류에게 안전한 AGI 개발이라는 과업을 달성하게 되면 영웅이든 악인이든 2020년대를 정의하는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될 테고요. 하지만 사라 프리어 CFO는 지금 엄청나게 복잡하고 위태로운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당장 내일의 시장 상황도 확실할 수 없는 가운데 먹히느냐, 망하느냐, 살아남느냐를 놓고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죠.
우리는 본 적 없는 기술이 지배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 기술이 한 영리 기업의 손에 좌지우지되어도 괜찮을지에 관한 논의도 함께 하고 있죠. 이 또한 해본 적 없는 고민입니다. 일단 오픈AI는 지금까지 없던 형태의 기업 구조를 답으로 내놨습니다. 이익을 원하는 투자자의 돈으로 인류의 공익을 달성하겠다고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모순입니다. 오픈AI가 성공적인 기업으로 자리 잡게 된다면, 이 모순은 새로운 표준이 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