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보낸 청첩장

bkjn review

올트먼과 아이브가 만났습니다. AI의 정신과 육체가 결합합니다.

AI가 보낸 청첩장

2025년 5월 23일

오픈AI가 아이오 프로덕트(io products)를 인수합니다. 5월 21일 오픈AI 홈페이지에는 인수 소식과 함께 사진 한 장이 올라왔습니다. 아이오의 공동 창업자 조니 아이브가 오픈AI CEO 샘 올트먼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는 흑백 사진입니다. 기업 인수 합병 소식에서 흔히 볼 법한 사진은 아니었죠. 꼭 청첩장 사진 같습니다. AI의 정신과 육체의 결혼식 말입니다.
샘 올트먼(오른쪽)과 조니 아이브 / 사진: 오픈AI
아이오는 조니 아이브가 지난해 애플 출신 엔지니어들과 함께 공동 창업한 하드웨어 스타트업입니다. AI 시대에 맞는 기기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아이브는 애플의 최고 디자인 책임자(CDO)를 지냈습니다.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워치 같은 제품을 디자인했죠. 하드웨어와 UI를 합해 1만 4300개 이상의 디자인 및 발명 특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정신적 파트너’라고 불렀던 아이브는 잡스 사후 애플을 떠납니다. 2019년 디자인 회사 러브프롬(LoveFrom)을 차립니다. 2년 전부터 오픈AI와 협업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더니, 2024년에 AI 기기를 개발하는 회사인 아이오를 공동 창업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인수 소식이 들려온 거죠.

오픈AI는 이미 아이오의 지분 23퍼센트를 들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나머지 지분을 사들이기로 한 건데요, 그 가치가 무려 50억 달러입니다. 기존 지분까지 더하면 아이오의 회사 가치를 65억 달러로 평가한 겁니다. 현금을 주고 사는 건 아닙니다. 오픈AI의 주식으로 줍니다. 인수 절차는 올여름에 마무리될 예정입니다.

아이오는 창업한 지 1년 된 회사입니다. 아이브가 설립한 회사라 창업 초기부터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결과물을 내놓은 적은 없습니다. 직원은 55명입니다. 애플 출신들이 많죠. 이들은 오픈AI에 합류해 하드웨어 사업부를 꾸리게 됩니다. 아이브는 오픈AI에 소속되어 일하진 않습니다. 자신의 디자인 회사 러브프롬과 오픈AI의 협업 형태로 파트너십을 이어 갑니다.

정리하면, 오픈AI가 내놓을 AI 전용 기기는 러브프롬이 디자인하고, 아이오가 제작하고, 오픈AI의 기술을 내장하게 됩니다.

새로운 인간-기계 인터페이스

AI 기술은 일상에서 인간과 실시간으로 상호 작용하기 직전까지 와 있습니다. 지금은 다들 핸드폰과 PC로 챗GPT를 이용하지만, 이 기기들은 AI를 위해 고안된 물건은 아닙니다. 문서 작업을 하고, 전화를 하고, 음악을 듣고, 문자를 보내고, 웹서핑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핸드폰 다음의 기기, AI 시대의 기기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죠.

그런데 하드웨어 최강자 애플은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플 인텔리전스’ 같은 인텔리하지 않은 기능만 자꾸 아이폰에 집어넣고 있죠. 애플이 주춤하는 사이, 오픈AI는 애플의 안방을 넘보고 있습니다. AI에 최적화한 육체를 만들어 주는 거죠.

아이브가 아무리 훌륭한 크리에이터라고 해도 과거 실적만 보고 우리 돈으로 9조 원을 태울 수는 없었겠죠. 사실 올트먼은 아이오가 작업하고 있는 첫 번째 제품의 데모를 봤습니다. 올트먼의 말입니다. “조니가 최근에 새 기기의 프로토타입 중 하나를 내게 보내 줬는데, 세상에서 본 것 중 가장 멋진 기술이었다.”

그러니까 오픈AI는 아이오의 ‘데모’를 50억 달러를 주고 사기로 한 겁니다. 이 데모는 2026년에 정식 출시될 예정입니다. 올트먼과 아이브가 뭘 만들고 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올트먼은 “뭔가 놀라운 일”을 할 것인데, 그게 “핸드폰은 아닐 것”이라고만 했습니다. 핸드폰은 아니지만, 핸드폰과 비슷한 기능을 제공하는 기기로 추정됩니다.

올트먼과 아이브는 아이폰 이후 가장 강력한 기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단순히 좀 색다른 스마트폰을 넘어 새로운 방식의 인간-기계 인터페이스를 제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조니 아이브는 기술을 기술처럼 느끼게 하지 않는 능력이 있죠. 아이브가 만들 AI 기기는 그의 디자인 철학에 따라 단순하고, 눈에 띄지 않고, 이해하기 쉬운 제품이 될 겁니다.

기기에서 존재로

조니 아이브의 행보와 디자인 철학, 기술 발전 속도를 종합하면 새로운 AI 기기의 방향성이 얼추 보입니다. 아이브가 만들 제품은 ‘AI 기기’라기보다 ‘AI 존재’를 담은 오브제일 가능성이 큽니다. 제품은 조용히 공간에 녹아 있고, 필요할 때만 반응하는 거죠. 아이브가 애플에서 기술을 감추며 혁신했던 것처럼, AI를 인간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작업입니다.

먼저, 형태는 아이브의 디자인 철학에 따라 기술의 존재감을 없애는 쪽으로 갈 겁니다. 눈에 띄지 않게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기기입니다. 스크린이 아예 없거나 최소화된 음성 중심의 기기, 또는 브로치, 목걸이, 클립 같은 웨어러블이 나올 수 있습니다. 유리, 알루미늄, 세라믹 등 애플 제품 특유의 소재를 사용해 기기라기보다 액세서리로 보일 겁니다.

오브제로 기능하는 제품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책상이나 침대 머리맡에 장식품처럼 올려 두는 AI 구슬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이 구슬은 화면도 없고 별다른 UI도 없이, 사용자의 말을 듣고 이해하고 반응하는 오브제입니다. 스크린이 꼭 필요할 때는 공간 내부에 있는 다른 스크린에 화면을 띄우겠죠.
 
이 기기들은 사용자의 문맥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대응합니다. 완전한 음성 인터페이스입니다. 주변 대화를 실시간으로 이해하지만, 개입하거나 대답하지 않습니다. 듣지만, 필요할 때만 말합니다.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시선, 제스처, 표정 등 사용자의 맥락을 파악합니다. 사용자와 대화하며 기억을 축적해서, 사용자의 문맥에 기반해 반응하고요.

결국 올트먼과 아이브가 만들 제품은 기기로서 기능하지 않고 존재로서 인간과 동행하는 AI가 될 것 같습니다. 그들은 AI 기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AI가 있는 공간을 만드는 방식으로 접근할 겁니다. 사용자가 화면을 보거나 터치하지 않아도 되고, 그 존재를 거의 인식하지 않지만,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지, 혹은 세상에 나올 수 있을지조차 장담하기는 이릅니다. 하지만 아이브가 만들 육체와 올트먼이 만들 정신이 — 게다가 막대한 자금 지원까지 — 결합한다면, 또 한 번의 ‘챗GPT 모먼트’가 올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2007년 아이폰 등장 이후의 지배적 컴퓨팅 플랫폼에 대한 주도권이 단숨에 오픈AI로 넘어오게 될 겁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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