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쇼가 예고하는 미래

bkjn review

중국이 가지지 못한 것은 엔비디아뿐입니다.

로봇 쇼가 예고하는 미래

2025년 5월 27일

요즘 중국에서 재미있는 로봇 소식이 자주 들려옵니다. 이족 보행을 하는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하프 마라톤 대회를 열기도 하고 격투기 대회도 선보였습니다. 몸동작은 여전히 어설프고 격투기 대회의 경우 사람이 로봇을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수준이었는데요, 그런 키치함 때문에 오히려 더 눈길을 끌었습니다.

만약 실리콘밸리에서 이런 대회가 열렸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들이 우승을 차지했을 겁니다. 달리기도, 격투기도 가릴 것 없이 말입니다. 특히 유압식 액추에이터(구동기)를 사용한 구형 아틀라스 모델들이 격투기 경기에서 엄청난 장면을 보여 줬겠죠. 무거운 짐도 번쩍 들어 던질 정도로 힘이 세고 공중제비는 물론 고난도의 파쿠르 동작까지 선보일 수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격투기 경기 한 판에 소모하기엔 아틀라스는 너무 비쌉니다. 아직 가격은 정해진 바 없지만, 보스턴다이내믹스가 2024년 상용화한 사족 보행 로봇 개의 가격이 우리 돈으로 약 9000만 원 수준입니다. 아틀라스는 당연히 더 비싸겠죠. 반면 중국의 휴머노이드 스타트업 유니트리(Unitree)가 비슷한 시기에 내놓은 이족 보행 로봇 G1은 2100만 원 수준입니다.

우리는 휴머노이드가 미래의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아틀라스는 물론 테슬라의 옵티머스도 아직 우리 일상에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휴머노이드는 이미 현재의 도구입니다. 적어도 중국에선 그렇습니다. 이 차이가 세계 경제의 중심축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로봇 격투기 대회는 로봇들의 어색한 동작 때문에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만약 로봇들이 인간의 신체적 능력을 한참 넘어서는 파괴력을 보여 줬다면, 반응은 완전히 달랐겠죠. 중국이 원하는 결과는 아닙니다. 출처: KBS News
기술, 기술

한때 중국은 이 세계의 중심이었습니다. 문화와 철학, 기술까지 모든 면에서 최첨단이었죠. 하지만 19세기부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중국은 식민지나 다름없는 처지가 되었죠. 수많은 불평등 조약을 맺으며 수탈의 역사를 견뎌야 했습니다.

이후 20세기 중국의 지도자들은 덩샤오핑이 제시한 ‘도광양회(韜光養晦)’ 외교 전략을 고수했습니다. ‘빛을 가리며 어둠 속에서 기운을 기른다’라는 의미입니다. 아직 국가적 역량이 부족하니 내실을 다져 전력을 축적한 뒤, 충분히 힘을 기른 다음에야 자신의 자리를 찾겠다는 것이죠. 중국은 자존심은 미뤄둔 채 최대한 원만한 대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그 결과 세계화라는 시대정신의 한복판에서 ‘세계의 공장’으로 급성장할 기회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진핑이 집권하면서 이런 기조에 변화가 시작됩니다. 대국(大國)과 굴기(崛起)라는 단어가 자꾸 들립니다. 중국이 은둔 강국 전략에서 벗어나 경제, 군사, 외교 분야 전반에서 국제적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야망을 드러내기 시작한 겁니다. 시진핑은 중국몽(中国梦)을 이야기합니다. 2049년까지 완전한 현대화 국가를 건설해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달성하겠다는 이상입니다. 전랑(戰狼) 외교 전략을 통해 밀어붙일 땐 밀어붙입니다. 단호한 외교 메시지로 중국의 국제적 목소리를 키우는 겁니다.

이 야망을 실현하는 데에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바로 기술입니다. 굴욕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현재 진행형인 기술 혁명을 따라잡아야 합니다. 그게 무엇이든 반드시 앞서 나가야 굴기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술에 대한 중국의 집착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합니다. 특히 로봇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역사 속에 이유가 있습니다.

인구압

만약 중국에서도 산업 혁명이 일어났다면 국제 질서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물론 의미 없는 상상입니다. 산업 혁명은 중국이 아니라 영국에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질문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19세기 중국에서도 꽤 부유했던 양쯔강 이남 지역의 상황과 영국 런던의 상황이 무척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두 곳 모두 인구가 너무 많았습니다. 기대 수명, 생활 수준, 소비 방식, 농업의 상업화, 가내 수공업의 발전까지도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몇 가지 설명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사람값이 너무 저렴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환경 사학자 마크 엘빈(Mark Elvin)의 ‘고수준 평형 함정(high-level equilibrium trap)’ 이론입니다. 안 쓰던 기계를 도입하려면 막대한 자본이 필요합니다. 단, 기계의 생산성이 인간의 노동력을 압도한다면 금방 기곗값을 뽑을 수 있겠죠. 그런데 중국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사람을 대체할 기계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죠. 즉, 넘치는 노동력이 중국의 약점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냉전이 종식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해외의 기술과 중국의 값싼 노동력이 만나 생산성이 폭발한 겁니다. 공장을 돌리고 또 돌려도 노동력은 끊임없이 보충됩니다. 빈곤에 익숙했던 농촌에서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몰려든 ‘농민공’들 때문입니다. 이들은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일했습니다. 똑바로 누워 자기도 힘들 정도로 열악한 숙소를 마다하지 않았던 농민공의 존재 덕분에 중국은 해외 기술을 끌어들여 세계 제조업의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었습니다. 넘치는 노동력이 중국의 경쟁력이 되었습니다.

혁신의 계기

이번에는 영국으로 눈을 돌려보죠. 영국은 왜 산업 혁명이라는, 가보지 않은 길을 택한 것일까요? 시작은 나폴레옹이었습니다. 1806년 나폴레옹은 영국과 유럽 대륙 간 교역을 막기 위해 대륙 봉쇄령을 내립니다. 영국의 경제 기반을 무너뜨릴 작정이었죠. 궁지에 몰리면 사람은 뭐라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국은 유럽을 대체할 무역 상대국을 찾아 항해에 나섭니다. 그 결과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에 닿아 식민지를 건설합니다. 약탈적 무역의 시대가 열린 겁니다.

무역으로 돈을 벌려면 돈을 써야 합니다. 물건을 실어 나르려면 배도 있어야 하고 인부도 있어야 하니까요. 운송 비용, 임금 압박이 심해졌습니다. 이러한 압력은 증기 기관의 개발로 이어집니다. 엔진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무역선이 더 빨라지고 임금 부담이 줄어들었습니다. 공장에서는 생산성이 폭발했습니다. 산업 혁명입니다.

제국주의 시대 이후 우리는 선형적 역사관에 오랫동안 천착해 왔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발전이라는 트랙 위에 놓여 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관점입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구 국가들이 앞서 나갔고, 나머지 국가는 뒤처져 정체했으니 앞서간 국가들이 더 잘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뒤처진 국가들이 살아남으려면 앞선 이의 뒤를 어떻게든 쫓아가야 한다고 말이죠.

지금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이론으로 평가받습니다. 당신의 역사와 나의 역사가 같을 리 없지요. 중국과 영국의 역사가 다른 것처럼 말이죠. 어쩌면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 중국이 맞닥트린 딜레마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산업 혁명 2025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중국은 급속한 고령화로 노동 인구가 급감하는 중입니다. 2024년 말 기준으로 중국 인구는 14억 800만 명이었습니다. 전년 대비 139만 명 감소한 수치입니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고령자 비중은 늘어납니다. 2022년 이미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4퍼센트를 넘어서면서 중국도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2033년에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전망입니다.

인구는 늙어가는데 일할 수 있는 사람들도 예전 같은 공장 생활은 마다합니다. 18세 인구의 3분의 2가 대학이나 전문대학으로 진학합니다.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농민공이 감당했던 노동 강도와 열악한 생활 환경을 감수하겠다는 사람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중국은 더 생산해 내야 합니다. 중국 같은 후발 주자가 국제 사회에서 경제적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저렴한 가격에 많이 생산해 시장을 장악하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것이 중국 당국의 판단입니다. 다시, 노동력이 중국의 발목을 잡을 위기입니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중국의 기술 발전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GPU 수출 제한 같은 조치를 통해 첨단 기술이 중국으로 새어 나갈 구멍을 틀어막고 있는 겁니다. 중국은 궁지에 몰렸습니다. 곧 잡힐 것 같았던 대국의 굴기가 멀어집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리면 사람은 뭐라도 합니다. 중국은 인구 감소에 대비해 이미 공장 자동화에 매달려 왔습니다. 당장의 손익을 따질 겨를도 없었습니다. 노조와 싸울 필요도 없었습니다. 공산당이 주도해 밀어붙인 정책이니까요. 이미 샤오미와 같은 기업은 생산 라인을 완전히 자동화했습니다. 1초에 한 대씩 스마트폰을 만들어 내는 이 공장은 ‘다크 팩토리(dark factory)’로 불립니다. 사람이 없으니 불을 켤 필요도, 냉난방을 할 필요도 없는 공장입니다.

여기에 중국이 요즘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이 현장에 본격적으로 적용되면 이제 차원이 다른 생산성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휴머노이드는 지금까지의 산업용 로봇과는 달리 사람과 같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로봇을 위한 라인이나 생산 설비가 필요 없다는 얘깁니다. 문지방이 있어도 넘어서고, 멋대로 생긴 상품도 집어 올립니다. 사람보다 잘 달리거나 영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의 노동력을 유연하게 대체할 수 있으면 됩니다.

휴머노이드 하프 마라톤 대회나 격투기 대회에서 선보인 로봇들은 조악해 보이지만, 공장에 투입되기 직전 단계쯤 됩니다. 미국이 중국을 막아선 덕분입니다. 수입이 안 되니 직접 개발했습니다. 그것도 저렴하게, 대량 생산을 목표로 개발했습니다. 미국이 중국을 기술적으로 봉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역사가 남긴 굴욕의 교훈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중국은 방법을 찾았습니다.

화웨이는 엔비디아의 GPU보다 성능은 떨어질지언정 어느 정도 대체할 만한 반도체를 개발했습니다. AI 업계에 큰 충격을 안겼던 딥시크는 실리콘밸리의 값비싼 방식이 아니어도 쓸 만한 생성형 AI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죠. 로봇의 몸을 구성하는 주요 부품도 당연히 모두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이제 중국의 로봇 산업이 가지지 못한 것은 젠슨 황 CEO 정도겠네요.

중국은 서서히 잃어가는 노동력을 이제 첨단 기술로 직접 생산해 낼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대량 생산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 계획이 정말 성공한다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게 되찾아오고 싶어 하는 제조업을 중국이 수성할 수 있을 겁니다. 수성 정도가 아니라 생산성의 폭발을 만들어 낼지도 모르죠. 이번에는 산업 혁명이 영국이 아니라 중국에서 터져 나오는 겁니다. 만약 성공한다면, 세계 경제의 중심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 시나리오는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두려워하는 방향으로 쓰이게 될 겁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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