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와 제주의 차이
2024년 7월 바르셀로나 거리 한복판에 물총이
등장했습니다. 총구는 관광객을 향했죠. 오버투어리즘에 반대하는 기습 시위였죠. 주최 측 추산에 따르면 3000명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갑작스레 물벼락을 맞은 관광객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현지에서는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입니다.
관광 산업이 스페인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2퍼센트가 넘습니다. 외국인 관광객 방문 숫자로는 세계 2위, 국민 1인당 관광객 숫자로 따지면 1위입니다. 곧 연간 관광객 1억 명을 돌파할
전망이고요. 그러니 주민들은 괴롭습니다. 일단 주거 비용이 폭등했습니다. 대중교통도 번잡합니다. 고즈넉한 옛 도심에는 맥락도 없는 박물관과 기념품 가게가 들어섰습니다. 무엇보다 휴가 기분에 들뜬 관광객들은 자신의 동네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만한 행동을 합니다. 예를 들면 술에 취해 발코니에서 뛰어내리는 일 말입니다.
스페인 당국과 지방 정부는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투어 그룹의 규모를 최대 25명으로 제한하거나 구글 맵에서 현지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버스 노선을 삭제하는 식입니다. 바르셀로나는 2028년 말까지 1만여 곳의 에어비앤비 숙소를 폐쇄할 예정입니다. 이쯤 되면 관광객과의
전쟁 수준입니다. 그런데 관광객은 여전히 바르셀로나를 찾습니다. 오지 말라고 해도 몰려듭니다. 제주에서는 관광객이 떠나고 있어 현금을 준다고 하는데 말이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르셀로나엔 가우디의 건축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사그리아 파밀리아 대성당과 같은 건물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물은 바르셀로나에서만 만끽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우디를 찾아옵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비용이나 불편은 감수합니다.
제주에 오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테디베어 박물관을 보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제주를 찾는 사람은 없습니다. 방문객들은 제주를 누리러 옵니다. 제주의 자연과 분위기, 지역의 독특한 맛과 문화, 비일상이 주는 고요한 평화 같은 것 말입니다.
틀린 전략
그런데 정작 제주도는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주도 관광 당국이 내놓는 정책을 보면 마치 프랜차이즈 체인점을 운영하는 본사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한때 제주도에서 ‘입도세’를 걷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생활폐기물 처리 비용이 증가하자, 관광객에게 일종의 ‘관광세’를 걷어 그 비용을 충당하자는 취지였죠. 마치 손님이 너무 몰려 점포 유지 비용이 상승했으니, 커피 가격을 올리겠다는 식의 결정입니다.
현금을 지급하겠다는 이번 관광 진흥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체인점이 네이버 지도나 카카오 맵에서 별점 테러를 받고 있으니 당분간 할인 이벤트를 진행해 손님을 모으자는 전략처럼 보입니다. 제주도가 통째로 할인할 수는 없으니, 관광객에게 현금을 지급해 비슷한 효과를 노린다는 점에서 좀 차이는 있지만요.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전략입니다. 돈을 걷든 주든, 제주도의 상품 가치를 오히려 떨어트릴 뿐이죠. 제주도의 관광 상품은 제주도 그 자체입니다. 전 세계에서 약탈해 온 진귀한 전시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사조가 제주를 근거지로 삼았던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제주도의 언어와 바다, 날씨와 돌덩어리를 경험하기 위해 제주를 찾습니다. 섬으로 간다는 각별한 기분도 크지요. 네, 제주도에 가는 동기는 ‘기분’입니다. 그런데 입도세나 현금 지급과 같은 정책은 제주도에 덧씌워진 아름다운 이미지에 상처를 입힐 뿐입니다.
유럽의 관광지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로마에서 도시세를 받아도 콜로세움을 반드시 봐야겠다는 버킷리스트를 지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밀라노에 ‘최후의 만찬’을 보러 가는데 만 원 정도 비용이 더 든다고 포기할 일도 없고요. 상품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관광객의 반응도 다른 겁니다.
파라솔은 시가
제주도 고유의 특성도 한몫합니다.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상 제주도는 생활인과 관광객 사이의 경계선이 아주 오래전부터 뚜렷했습니다. 즉, 나와 남의 구분이 명확한 겁니다. 우리 회사 근처의 식당이나 아파트 단지 상가의 카페는 입소문이 중요합니다. ‘여기 괜찮다’라는 인식이 생기면 꾸준히 손님이 들고, ‘별로’라는 소문이 나면 발길이 끊깁니다. 제주도도 사람 사는 곳이니 비슷합니다. 다만 제주 사람이 아닌 육지에서 온 남들은 다릅니다. 오늘 잘 해준다고 내일도 올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관광지에 있는 개별 업장의 경우 손님에게 늘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동기가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지역 축제 장터에 비싼 자릿세를 주고 한철 장사를 하러 들어온 뜨내기 업소가 한 줌도 되지 않는 닭강정을 1만 5000원에
파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해수욕장 등의 관광지를 마을 공동체가 알아서 관리해 온 관행도 문제가 됩니다. 의자나 파라솔 등의 시설을 대여해 주는 등의 사업을 대개 마을 청년회 등이 맡아 운영하는 겁니다. 자연히 가격은 ‘시가’입니다. 사람이 몰리면 더 받고, 한가하면 덜 받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제주의 해수욕장은 대개 근처 마을의
사유지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다 보니 도 차원에서 가격을 일률적으로 통제하려 해도 한계가 생깁니다.
관광지라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현상이라고 접어둘 일이 아닙니다. 숫자를 보면 심각성이 드러납니다. 한 지역에 한정해 측정한 GDP에 해당하는 지표를 GRDP(Gross Regional Domestic Product)라고 합니다. 2020년 기준으로 제주 GRDP의 20퍼센트를 관광 산업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관광 산업이 꺾이면 제주
경제가 꺾입니다. 특히 고용률에 치명적입니다.
제주의 가치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오키나와의 정책을 참고삼아 볼 수 있겠습니다. 오키나와도 제주처럼 ‘남국의 섬’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관광지입니다. 자연 경관과 유적, 독특한 전통문화가 오키나와의 관광 상품입니다. 이 상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최근 오키나와 관광청은 ‘류큐(오키나와의 옛 명칭) 요리 인증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지역 특산품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해야 하고, 가격대도 적정한 수준을 지켜야 합니다.
천혜의 자연이라는 오키나와의 상품성을 강조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역 축제, 기념품 생산 등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상쇄하기 위해 탄소 배출권을 구입합니다. 재생 에너지 시스템을 확장하고, 세계 자연 유산으로 지정된 숲을 인솔자와 탐험하는 투어
상품도 내놓았습니다. 오키나와는 스스로의 상품성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차근차근 실행하는 중입니다.
안타깝게도 제주도는 좀 다릅니다. 관광 수요에 따라 돈을 걷겠다, 주겠다 휘청일 뿐 제주를 찾은 관광객의 경험 수준을 전체적으로 관리할 체계가 미흡합니다. 바가지요금을 단속한다는 기사는 나와도 그 단속으로 성과가 나왔다는 기사는 나오지 않는 까닭입니다.
단적인 예가 제주도가 운영하는 공식 관광 플랫폼입니다. 검색해 보면 두 곳이 나옵니다. ‘
비짓제주’와 ‘
탐나오’인데, 각각 몇억씩 예산을 들여 만들었습니다. 각 플랫폼의 내용이나 역할은 대동소이합니다. 그런데 하나로 통합되어 있지 않은 이유는 운영 주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비짓제주는 제주관광공사가, 탐나오는 제주특별자치도관광협회가 운영합니다. 사전에 논의해 통합 플랫폼을 운영할 시스템도 없는 겁니다.
제주도 관광 산업의 사업 계획이라 할 수 있는 ‘관광 진흥 계획’도 마찬가지입니다. 5년 단위로 관광 정책을 수립하는데, 2024년~2028년의 계획을 수립하는 데에 약 1억 4000만 원이 투입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니 응답자 숫자가 맞지 않거나 데이터 계산이 틀린 부분들이 보입니다. 직전 계획의 실행 결과에 대한 평가도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메타 인지가 없는데 발전 계획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습니다.
관광객을 맞이하는 개별 업장이 알아서 잘하라고 맡겨 두어서는 제주 관광의 가치를 높이기는커녕 지키기도 어렵습니다. 이건 제주가 아니라도 어디서든 마찬가지입니다. 전 세계 숙박 산업
매출액은 2009년 385억 달러에서 팬데믹 직전인 2018년 642억 달러까지 뛰었습니다. 두 배에 가까운 수준입니다. 여행 산업의 규모가 달라졌다면, 산업을 진흥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할 겁니다. 관광이 도민의 삶의 수준과 직결되는 제주도 같은 곳이라면 더욱 촘촘한 전략이 필요하겠죠.
지금이라도 제주의 가치가 무엇인지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합니다. 식도락과 휴식이 주요 가치라면 오키나와의 사례를 벤치마크해 볼 수 있습니다. 제주도가 추진하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생태 법인 법안에 착안해 생태 관광 상품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도 있겠습니다. 단순한
워킹 투어를 넘어 의미 있는 체험을 안겨줄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세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템플 스테이’처럼 성공적인 사례로 남을 수 있습니다.
관광은 상인과 관광객 사이의 일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또, 관광객 수를 늘리면 지방 정부의 치적이 되지요. 그래서 마구잡이로 축제니, 지원이니 정책을 쏟아내면 지속될 수 없는 ‘한탕’의 경험만 남게 됩니다. 하지만 관광은 사람이 섞이는 일입니다. 문화적 교류이며 삶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지역 공동체가 이 과정을 잘 설계할 수 있어야 관광객은 여행자가 되고, 관광지는 다시 찾고 싶은 추억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