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분짜리 강연이 세상을 바꿀 수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기술(Technology),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디자인(Design)을 주제로 아이디어를 전파하는 콘퍼런스 TED는 한때 강연 열풍을 불러왔습니다. 형식은 간결했고, 메시지는 간명했고, 영향력은 지대했습니다. 300억 회 이상 강연이 재생되면서 “퍼트릴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Ideas worth spreading)”라는 모토를 TED는 증명해 냈죠.
하지만 터키계 영국 소설가 엘리프 샤팍(Elif Shafak)의 최근 일화는 TED의 아이러니한 변화를 드러냅니다. 샤팍이 10년 전에 처음으로 TED 무대에 섰을 때는 강연 시간이 18분 이내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강연자로 초대를 받았을 때는 13분 안에 끝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샤팍이 TED 측에 이유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세상의 평균 집중 시간이 줄어들었거든요.”
이 한마디는 TED가 의도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정보를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 아니라, 우리의 인지 능력과 정서적 인내가 허용하는 정보의 양, 복잡성의 기준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느긋한 논증과 서사의 여백을 감상하던 세계는 이제 노래 한 곡조차 길다고 느낍니다. 압축의 시대를 살고 있는 거죠.
강연에서 클립으로
TED는 1984년에 시작됐습니다. 매킨토시 컴퓨터를 사면 두꺼운 설명서가 딸려 오던 시절이었습니다. ‘스트리밍’이라는 말은 개울물에나 쓰이던 때였죠. 당시만 해도 TED는 작은 콘퍼런스였습니다. 첫 행사는 화려한 라인업에도 불구하고 손실을 기록했죠. 그러다 2000년대 중반 온라인 영상의 시대가 열리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세련된 복장의 지식인들이 18분 내외로 우주와 인간을 설명합니다. 복잡한 아이디어를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TED의 형식은 지적 호기심을 가진 대중을 열광시켰습니다. 혼자서라면 관심 가지기 어려웠을 뇌과학, 기후 윤리, AI 철학이 평범한 가정집의 일상으로 들어왔죠. 사례 중심의 짧고 쉬운 설명과 감동적인 마무리는 TED를 넘어 강연의 공식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TED는 TEDx 등으로 브랜드를 급격히 키우면서 언젠가부터 그들이 고쳐 쓰려 했던 ‘지식 예능’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클릭 유도형 제목과 과도한 연출 같은 것들 말입니다. 게다가 복잡한 주제를 짧은 시간 안에 전달해야 하니, TED 강연은 종종 내용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지적도 받습니다. 강연 수가 늘면서 강연의 품질 관리가 안 된다는 비판도 나오고요.
이런 상황에서 TED는 최근에 틱톡에 가까운 짧은 영상 시리즈 ‘TED Shorts’라는 새로운 기능을 앱에 추가했습니다. 강연의 하이라이트를 미리 보는 기능입니다. ‘TED in 3 minutes’라고 해서 3분짜리 강연만 모아서 별도로 제공하기도 합니다. 시대 흐름에 맞는 전략이긴 하지만, 깊이와 맥락을 포기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축약할 수 없는 아이디어
강연 시간을 줄이는 일은 단지 운영상의 결정이 아닙니다. 철학적 선택입니다. 이 결정은 깊은 사고가 얇게 저며져도 된다는 가정을 전제로 합니다. 지혜조차도 10분 안팎에 배달되지 않으면 효용을 잃는다는 암묵적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 특유의 불안입니다. 아무리 근본적이고 복잡한 아이디어라도 유튜브의 이탈률 그래프를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비영리 재단에서 운영하는 TED라도 말입니다.
10초 안에 청중을 사로잡지 못하면 실패한다는 조급증을 TED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뉴스는 트윗이 되었고, 칼럼은 인스타그램 카드 뉴스로 압축됩니다. 고전은 요약집으로 읽힙니다. 도둑맞을 집중력이라도 있으면 차라리 다행입니다. 애초에 집중력이란 것이 있기나 했을까 싶을 정도로 세상이 납작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브라이언 그린이 다중 우주 이론을 설명하는 강연은 충분히 흥미롭지만, 이론의 수학적, 철학적 복잡성은
생략됩니다.
결국 우리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어떤 아이디어는 간단하게 축약할 수 없습니다. 양자 역학의 윤리나 탈식민주의 문학에 대한 강연은 단순하고 캐치(catchy)한 말, 슬로건 같은 문장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물론 TED는 앞으로도 그런 주제를 다룰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TED 내부의 13분 지침은 점차 강연자가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무엇을 말할 수 없는지를 구분하게 할 겁니다.
시간 제약은 강연 내용의 수준과 성격을 결정하게 됩니다. 강연자는 복잡한 개념을 아예 생략하거나, 피상적인 이야기로 바꾸거나, 감상적이거나 인상적인 사례만 남기게 될 수 있습니다. 철학적 논증, 복잡한 사회 구조, 역사적 맥락처럼 시간이 필요한 주제는 점점 말하지 않게 될 겁니다.
접근성의 역설
TED의 딜레마입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아이디어를 전파하려 할수록, 깊이는 깎여 나갑니다. 한때 세상의 복잡함을 깨닫게 했던 무대는 복잡한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설명하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깊은 이해 없이 감동, 희망, 간단한 해결책만 강조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행복은 이렇게 찾으면 됩니다!”, “이 기술 하나가 세상을 바꿉니다!” 같은 강연이 속출합니다.
18분이 13분이 되면 이런 경향은 더 가속할 겁니다. 제작 기준이 바뀌면 정보 생산자들 — TED를 포함한 미디어, 교육, 심지어 문학까지 — 모두가 그에 맞춰 콘텐츠를 더 짧고 더 강렬하고 더 단순하게 만들게 됩니다. 문화 전체가 더 얕고 빠른 리듬으로 재조율됩니다.
줄어든 집중력을 고려한 편집은 청중의 집중력 저하를 심화할 수 있습니다. 짧고 간단하고 반복적이고 감성적인 메시지에 익숙해지면, 긴 설명은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복잡한 논리는 피곤하게 여겨집니다. 쉽게 와닿는 감동적인 이야기만 ‘좋은 아이디어’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샤팍이 겪은 일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닙니다. TED의 가장 사려 깊은 연사가 “더 적게 말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면 TED는 그들이 만든 전제를 스스로 깨트리는 셈입니다. 아이디어란 본래 크고, 다루기 어렵고, 시간을 요구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TED는 “퍼트릴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Ideas worth spreading)”를 말하지만, 아이디어가 퍼진다고 좋기만 한 건 아닙니다. 어떤 주제는 맥락과 배경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오히려 오해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TED는 더 느려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