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의 명백한 운명

bkjn review

먼 훗날 역사책에는 2025년 5월 29일의 발표가 실릴 겁니다.

일론 머스크의 명백한 운명

2025년 6월 2일

일론 머스크가 또 실패했습니다. 현지 시각 2025년 5월 27일의 일입니다. 스페이스X가 화성으로 쏘아 올린 대형 우주선 스타십(Starship)의 9번째 실험이었습니다. 하단부의 로켓 추진체와 상단의 우주선은 순조롭게 분해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다음 스텝이 꼬였죠. 우주선의 탑재물 적재함이 열리지 않아 싣고 간 스타링크 위성 모형 8대를 궤도에 올려놓는 임무에 실패했습니다. 추진체도 온전히 돌아오지 못한 채 파괴되었고요.

하지만 일론 머스크에게는 별일 아니었습니다. 이 실패로부터 이틀 뒤, X.com을 통해 ‘화성 식민지 건설’의 로드맵을 제시한 겁니다. 몇 년째 반복되고 있는 이야기이긴 합니다. 2016년에는 2022년까지 화성에 수백 명의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죠. 2022년에는 말을 바꿔 2029년으로 계획을 연기했습니다. 6~7년 뒤의 미래를 두고 호언장담을 반복했죠.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릅니다. 영상에서 머스크는 굉장히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합니다. 2026년부터 2033년까지의 시간표를 짜서 공개한 겁니다. 일단 2026년 하반기에는 화성으로 우주선을 보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고작 1년 반 남았습니다. 단, 사람 말고 옵티머스를 보낸다고 합니다. 머스크는 성공 확률을 50퍼센트로 봤습니다. 열광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인 수치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먼 미래를 더듬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를 설계했습니다. 드디어 화성 식민지로 향할 만한 준비가 된 것일까요? 아직은 불안해 보입니다. 확실한 것은 이제 화성을 향해 쏘아 올릴 때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일론 머스크가 준비를 참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이 중차대한 발표를 X.com에 올리고 말았죠. 출처: 유튜브
지금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언제든 갈 수 있습니다. 차를 몰고 가면 되지요. 달에 가는 것은 좀 더 까다롭습니다. 달까지의 궤도를 잘 맞출 수 있으면서 도달 시점이 달 기준으로 낮인 시기를 맞춰야 합니다. 달이 지구 주위를 약 한 달 주기로 돌고 있기 때문에 한 달에 며칠 정도입니다.

화성은 좀 많이 어렵습니다. 화성에 갈 수 있는 시기(window)는 26개월에 한 번 열립니다. 달은 늘 지구 주위를 돌고 있지만, 화성은 그렇지 않죠. 태양 주변을 각자의 궤도로 돌고 있는 지구와 화성이 가장 가까워지는 때가 26개월에 한 번씩 반복됩니다. 이번에 찾아올 기회는 2026년 하반기고요. 게다가 이번 기회는 특별합니다. 우주의 시간표와 지구 정치의 시간표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임기 얘깁니다. 우주 개발에는 욕심이 없을지언정, 치적에는 욕심 많은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당시부터 화성을 거듭 언급했습니다. 아마도 트럼프는 머스크를 이용하고자 하는 전략일 겁니다. 노벨 평화상도 노리는 마당에 화성 식민지, made by USA에 야망을 품지 않을 리 없지요.

머스크로서는 오히려 좋습니다. 우주로 가려면 기술과 돈, 정부 지원의 삼박자가 다 맞아야 하니까요. 실제로 스페이스X는 정부 사업을 따내 쏠쏠한 수익원을 챙깁니다. 돈을 벌어야 기술 개발도 하죠. 우주 쓰레기 문제나 지역 주민 민원 문제, 탄소 배출 문제까지 정부 규제와 충돌할 지점도 많습니다. 스타십을 자주 쏘아 올리며 그 누구도 만든 적 없는 우주선을 만들어 내야 하는 스페이스X로서는 머스크에 호의적이며 무엇보다 화성에도 호의적인 트럼프 정권이 딱 좋은 기회입니다.

일단, 옵티머스

트럼프 2기 행정부 안에 화성으로 갈 두 번의 기회가 있습니다. 2026년과 2028년입니다. 하지만 기회는 사실상 한 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성으로 향하는 첫 번째 우주선에 사람을 실어 보낼 수는 없으니까요. 게다가 이번에 머스크는 2026년의 화성행이 성공적이지 않다면 그다음 기회, 2030년에서 2031년 사이에나 사람을 보낼 수도 있다고 여지를 뒀습니다. 

단순히 실패 가능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화성에서 지구로 돌아오기까지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해서 그렇습니다. 지구에서 달까지는 최소 몇 시간, 길면 며칠이 걸립니다. 달 궤도 진입을 목적으로 했던 아르테미스 1호는 달에 근접하기까지 닷새 걸렸습니다. 좀 천천히 간 것은 맞지만, 빛의 속도로도 달까지는 1.28초가 걸립니다.

화성은 훨씬 멉니다. 지구와 가장 가까울 때도 달까지의 거리에 비해 150배, 가장 멀 때에는 1100배 정도 됩니다. 즉, 26개월에 한 번씩 찾아오는 기회를 잡아도 화성까지는 몇 달이 걸린다는 얘깁니다. 머스크는 8개월 내외로 봤습니다. 만약 인간이 몇 달간의 우주여행을 한다면 그만큼의 식량과 물자도 필요합니다. 화성에 도착해서도 다시 돌아오려면 그 주기를 1년 넘게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몇 개월의 우주여행을 해야 하죠. 그러니 2026년에 당장 사람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화성에 1년 넘게 머무를 시설도, 식량도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표

머스크는 이런 상황을 모두 고려한, 매우 현실적인 일정을 짰습니다. 2026년에는 5대의 우주선을 보냅니다. 화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기술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2028년에서 2029년 초에 열리는 주기 때에는 우주선을 20대 보낼 계획입니다. 초기 인프라를 구축하고 인간의 거주를 위한 장비를 배송합니다. 이때 사람도 같이 보내서 탐사를 진행하지만, 건설 등의 노동은 주로 옵티머스가 담당합니다.

다음으로 열리는 2030년에서 2031년 사이의 주기 때에는 우주선을 100대 보냅니다. 도로 및 발사대는 물론이고 인간이 정착할 거주지도 본격적으로 건설합니다. 이때에는 전력 생성 및 저장 능력 확보에 주력합니다. 2033년에는 500대의 우주선을 보냅니다. 머스크의 계획대로라면 이 시기는 식민지 건설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는 시기입니다. 지구에서 보급선이 끊겨도 어느 정도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며 화성 내에서 먼 거리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됩니다. 지구와 화성 간의 통신 인프라도 완성되죠.

멋진 계획이긴 합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과학자들이 이런 계획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인간은 생물이고, 생태계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화성에는 호랑이도, 비둘기도 없지만 꿀벌도 없고 대장균도, 유산균도 없습니다. 인간이 배출하는 온갖 폐기물을 분해할 박테리아도 없습니다. 화성을 완전히 테라포밍하기 전까지 인류는 이 모든 생명의 작동을 인위적인 기술로 대체해야 합니다. 가능할지도 미지수지만, 비용도 생각해야겠죠.

테라포밍 과정에 필요한 이산화탄소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화성의 대기는 이산화탄소를 다량 포함하고 있지만, 테라포밍이 가능할 만큼은 아니라는 겁니다. 게다가 화성은 지구와 달리 자기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태양풍을 막아낼 장치가 없습니다. 태양풍은 태양 표면으로부터 뜯겨 나온 수소 이온, 헬륨 이온 등의 전기 입자들이 초속 수백 킬로미터의 속도로 몰아치는 것인데, 여기에 피폭되면 살아남기 힘듭니다. 화성에서는 이 태양풍 또한 자본과 기술로 막아내야 합니다.

이 모든 장애물에 머스크는 해답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죠. 지금 당장은 화성에 우주선을 보내는 것이 급선무고요. 하지만 또 다른 장애물도 있습니다. 바로 멀어지는 트럼프의 마음입니다. 최근 트럼프는 NASA(미 항공 우주국)의 신임 국장 내정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했습니다. 머스크의 측근으로 알려진 억만장자, 재러드 아이작먼 얘깁니다.

아이작먼은 단순한 억만장자가 아니라 민간인으로는 사상 최초로 우주 유영에 성공한 인물입니다. 어찌 보면 우주가 과학과 정치를 벗어나 사업의 영역이 된 ‘뉴 스페이스’ 시대에 딱 맞는 사람일 수도 있겠습니다. 지명 철회 이유로 머스크의 측근이라는 점이 거론됩니다. 하지만 아이작먼이 ‘친 화성계’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달도 중요하지만, 노골적으로 화성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아이작먼의 입장이거든요. 아마 이유는 둘 다겠죠.

명백한 운명

원래 우주를 향한 인류의 꿈은 주로 달을 향해 있었죠. 가장 가깝고 실행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기존에 NASA와 함께 사업을 벌이던 업체로서는 달이 낫습니다. 아무래도 달까지 간다는 전제하에 기술 개발이 이루어져 왔으니까요.

하지만 인류가 우주 저 너머로 뻗어나갈 생각을 하면 다릅니다. 최소 화성까지는 가야 그다음 고지가 보일 겁니다. 더구나 머스크의 꿈은 우주에 가 닿는 것이 아닙니다. 화성에 정착하겠다는 것, 인류 문명의 수명을 연장하겠다는 것이죠. 달에서는 못 삽니다. 화성에는 일말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머스크는 달에는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왜 머스크는 자신의 인생을 모두 털어 넣어 화성을 정복하려 하는 것일까요. 두 가지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동물적 본능입니다. 생물이라면 번식하고 싶어 합니다. 번식에의 욕망은 사실 생명 연장의 욕구입니다. 생명 연장의 욕구는 살아 있는 상태에 대한 집착입니다. 머스크는 이 욕망이 아주 고도화한 형태에 사로잡혀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인생을 걸고 화성에 식민지를 개척하겠다는 집념이 설명되겠죠. 실제로 머스크는 화성 식민지를 ‘인류 공동의 생명 보험’이라고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혹은 팽창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배운 역사는 팽창주의의 맹신자들, 그중에서도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죠. 예를 들면 칭기즈칸이나 나폴레옹, 알렉산더 대왕 같은 사람들 말입니다.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도 그러했습니다. 선주민을 몰아내고 미국의 영토를 불려 갔습니다.

그 시기를 지배했던 구호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었습니다. 1845년 언론인 존 오설리반이 처음 제시한 개념입니다. 개신교와 민주정을 널리 퍼뜨려야 한다는, 신이 주신 미국의 신성한 소명을 받들어 서부를 ‘개척’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2025년 부활했습니다. 취임식 연설에서였습니다. 그린란드로, 캐나다로, 파나마로 팽창하는 트럼프의 욕망은 취임식 이전부터 설계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취임식 당일 확실하게 강조한 곳은 다름 아닌 화성이었습니다. 트럼프는 “화성에 성조기를 심겠다”라고 약속했습니다.

머스크에게 명백한 운명은 조금 다른 의미일 수 있습니다. 서부 개척 시대, 실제로 신이 주신 소명만을 따라 서부로 말을 달린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들은 자신의 꿈을 펼칠 황무지가 필요했습니다. 내가 지배할 나만의 농지, 내 소유의 목장을 향해 내달렸습니다. 어쩌면 머스크는 팽창주의에 기대 자신만의 제국을 세울 계획일 수도 있습니다. 화성의 정부는 어떻게 구성될까요? 화성의 법률을 어떤 철학에 근거해 만들어질까요? 이 질문에 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화성 식민지를 직접 건설한 사람일 겁니다.

그래서 머스크는 50퍼센트의 확률에 걸고 2026년 화성을 향한 우주선을 쏘아 올리기 위해 앞으로 뭐든 할 겁니다. 급히 정해진 건 아닙니다. 사실, 2024년에 대략적인 언급을 한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엔 미국 대선 이슈가 쏟아지면서 금방 묻혔죠. 이번에도 스타십 발사 직후에 발표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만, 실패 직후에 이야기하기에는 때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이틀의 시간차를 두고 X.com을 통해 공개했습니다. 언론에서 크게 다루지 않은 까닭입니다.

하지만 만약 머스크의 실험이 성공하고 인류가 화성으로 팽창한 미래가 도래한다면, 먼 훗날 역사책에는 5월 29일의 발표가 실릴 겁니다. 그날 《뉴욕타임스》 1면에 실린 아이티의 소요 사태나 트럼프의 관세 정책 후폭풍,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추가 무기 지원을 한다는 소식 등은 잊히거나 연구자들의 영역으로 남아 버릴 수도 있겠죠. 인류는 자신의 정체성을 만든 사건을 취사선택해 되새기는 습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5월 29일을 기억할 인류가 반드시 유토피아에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겠습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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