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수 정당을 장사(葬事) 지내며 에드먼드 버크(1729~1797)를 다시 읽습니다. 버크는 200여 년 전에 자유주의를 옹호했던 영국 휘그당 소속 정치인입니다. 영국 정부의 식민지 착취를 비판하고, 미국 독립 혁명을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소속 정당과 정치 행보만 보면 상당히 개혁적인 인물 같은데, 실은 보수주의 정치사상의 창시자입니다. 서구 근대 보수주의는 버크가 1790년에 쓴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출발합니다.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파리 시민들은 왕정에 맞서 싸울 무기를 확보하기 위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합니다. 그렇게 프랑스 혁명이 시작됐죠. 바스티유 습격 사건 직후, 한 프랑스 귀족이 버크에게 이 혁명에 관한 견해를 들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버크는 사태를 좀 지켜보다가 구구절절한 답신을 보냅니다. 이 편지가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됩니다. 그리고 보수주의자의 경전이 되죠.
프랑스 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혁에 영국 정치권도 술렁였습니다. 이참에 영국 정치도 갈아엎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죠. 이런 대혁명의 시대에 버크는 반혁명을 선언합니다. 버크는 루이 16세의 왕권을 절대적으로 옹호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한 사회가 오랜 기간 축적해 온 유기적 질서를 일거에 해체하려는 급진주의를 비판했습니다. 혁명가들이 이성과 천부 인권이라는 추상적 원리를 들고 아무 방편 없이 기존 질서를 뒤집으면 사회가 파괴된다는 겁니다.
버크식 보수주의를 요즘 말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선조들이 일부러 후손들 고생시키려고 제도를 엉터리로 만들었겠어? 다 생각이 있었고, 사정이 있었겠지.” 버크는 기존 제도를 한 번에 싹 바꿀 수 있는 기계가 아니라, 오랜 기간 종교, 전통, 관습, — 영국인의 냉담하고 둔중한 국민성 같은 — 감정과 얽히고설키며 진화한 복잡계로 봤습니다.
버크는 프랑스 혁명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영국 명예혁명은 지지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100여 년 전인 1688년, 영국에선 명예혁명으로 국왕 제임스 2세가 쫓겨납니다. 제임스 2세는 의회를 무시하고 절대 왕정을 시도했죠. 개신교 국가인 영국에서 가톨릭을 옹호했고요. 버크는 제임스 2세가 “예로부터 내려온 왕과 인민 사이의 원초적 계약을 파기”했다고 주장합니다. 1215년 영국 왕이 서명한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대헌장)로부터 이어져 온 계약을 바로잡기 위한 혁명이었으니, 불가피했다는 겁니다.
자유주의 옹호자 버크는 자유를 확보하는 방식도 따졌습니다. 프랑스 혁명가들은 자유가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진 천부(天賦)의 권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버크는 자유가 추상적 권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제도와 관행 속에서 살아 있는 것이라고 했죠. 그러면서 버크는 상속의 개념을 이야기합니다. 버크의 말입니다.
“권리청원에서 의회는 왕에게 ‘폐하의 신민들은 이 자유를 상속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추상적 원리에 따른 인간의 권리로서가 아니라, 영국인의 권리로, 그리고 그들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버크에게 자유라는 권리는 “상속받고, 보유하고,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치 제도는 사유 재산과 생명처럼, 앞선 세대에서 현세대로, 현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어 나갑니다. 세대를 거치며 달라진 현실에 맞게 조금씩 바뀌어 나가니까, 이 제도는 완전히 새롭게 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낡은 것이 되지도 않습니다.
버크는 세월의 지혜가 축적된 제도를 완전히 해체하고 재설계하려는 혁명은 무정부 상태를 불러오고, 이어서 공포 정치로 넘어갈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지적은 머지않아 프랑스에서 현실이 됩니다. 국가 권력이 혁명의 적을 색출하는 기계로 전락하면서 단두대 정치가 수년간 이어집니다. 그리고 권위주의자 나폴레옹이 백마를 타고 나타나죠.
한국 보수 정당의 죽음
버크는 요즘 말로 하면 꼰대입니다. 엘리트 의식도 강합니다. 프랑스 국민의회 의원들을 두고는 “일류 변호사도 아니고, 대학의 고명한 교수”도 아니라고 지적하죠. 지방 변호사, 시골 법무사 같은 아마추어라며 국가를 책임질 자격이 없다고 합니다.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발언은 잠시 제쳐 두고 이 책이 보수주의자의 경전으로 읽히는 대목만 살펴보겠습니다.
버크는 사회를 일종의 계약(contract)으로 간주합니다. 국가와의 계약은 커피와 담배 같은 물품을 사고파는 계약처럼 언제든 맺고 끊을 수 있는 계약이 아닙니다. 버크는 이 계약을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결합하는 위대한 원초적 계약(great primaeval contract)”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살아 있는 자들뿐 아니라 산 자와 죽은 자, 아직 태어나지 않는 자들 사이의” 계약입니다.
한국 보수 정당이 실패한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버크식 정통 보수가 아닙니다. 한국 보수 정당은 겉으로는 전통과 질서를 말했지만, 실제로는 그 누구보다 기존 계약을 파기하고 절차를 비틀고 공동체의 감각을 와해한 세력이었습니다.
12·3 계엄은 보수 정권의 권력 상실을 넘어 정당성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원초적 계약에 경외심마저 가지며 계약을 수호해야 할 이들이 계약서를 찢어버린 사건은 단순한 실책을 넘어 정치적 자살에 가깝습니다. 영국의 폭군 헨리 8세조차 수도원을 해산하고 약탈할 때 명목상이기는 해도 수도원 내에서 벌어지는 부패를 조사할 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조사 결과를 들이밀며 의회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이 제시한 건 부정 선거 음모론밖에 없었습니다.
계엄만이 아닙니다. 윤석열 정권은 보수주의의 외피를 두르고 있었지만, 전통과 제도의 존중이라는 버크식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와 상반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국회 개원식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전통을 깼고,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했고, 야당의 동의 없이 임명한 장관급 인사가 임기 대비 가장 많았고, 제1야당 대표와 회담을 가진 게 취임 720일 만으로 역대 가장 길었습니다.
국민의힘도 제도를 가지고 장난을 쳤습니다. 김문수 전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4일 대선 패배의 원인으로 국민의힘이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신념, 그걸 지키기 위한 투철한 사명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즉 제도를 지키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당원과 국민이 전당 대회를 통해 선출한 대선 후보를 당 지도부가 새벽 3시에 교체하려고 했다가 내홍을 겪기도 했죠.
지금 국민의힘이 직면한 위기는 단순히 인물 문제, 계파 문제, 정치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보수주의자답게 행동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입니다. 국민의힘은 상속받은 신조와 규범을 모두 탕진했고, 이제 지킬 전통도 남아 있지 않아 보입니다. 41퍼센트를 득표한 정당의 정신적 곳간이 비었습니다. 버크는 말합니다.
“기사도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궤변가와 경제학자, 계산가의 시대가 도래했고, 유럽의 영광은 영원히 사라졌다.”
보수(保守)의 보수(補修)
버크식 보수주의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변화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통제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다시 버크의 말입니다. “변화할 수단을 갖지 않은 국가는 보존을 위한 수단도 없는 법이다. 국가가 변화할 수단을 갖지 않는다면 독실한 마음으로 보존하려 했던 헌정의 부분을 상실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버크는 기존 체제를 보존하려면 끊임없이 교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키기 위해 바꾸는 겁니다. 변화에 계속 저항했다가는 기존 체제를 뒤엎는 혁명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국민의힘은 보수의 정신을 지키지 않아 몰락했습니다. 보수를 재건할 방법은 무너진 자리에 있습니다.
먼저, 정당의 정당성(正當性)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정당이 왜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국민의힘은 대체 이 정당이 뭘 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민주당은 오만합니다. 그래도 유권자 다수가 ‘촛불 정신의 계승’이나 ‘내란 종식’ 같은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국민의힘은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보수란 무엇인가. 시장 만능주의인가, 공동체 수호자인가. 공동체에 어떤 역할을 하려는가. 실리인가 민족주의인가, 지역 균형인가 국민 통합인가. 국민의힘은 자당이 어떤 역사와 철학, 가치를 가지고, 어떤 집단을 대표하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사가 없는 정당은 아무리 정책을 잘 만들고 조직을 잘 꾸려도 공허한 기술 관료 집단으로 보이게 됩니다.
둘째, 정당이 작동하는 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당명과 당 간판만 바꿀 게 아니라 당 내부를 갉아먹던 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공천 제도, 의사 결정 구조, 정책 생산 구조를 투명하게 하고, 시민 배심 공천처럼 시민이 공천에 참여하는 구조적 장치를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당내 부패와 특권 청산, 국헌 문란 세력 처벌을 ‘정치의 사법화’ 수준으로 강도 높게 수행해야 합니다.
셋째, 감정적 유대를 복원해야 합니다. 버크는 사회 계약을 “산 자와 죽은 자, 아직 태어나지 않는 자들 사이의 계약”이라고 했죠. 루소가 말한 개인과 국가의 계약과는 다릅니다. 버크는 사회를 시간을 초월하는 감정적 유대의 공동체로 봤습니다. 국민의힘은 가족의 장례를 치르는 상주처럼, 진심과 품격을 가지고 공동체를 위로하고 껴안아야 합니다. 과거 잘못을 철저히 사과하고, 존재 이유를 확립하고, 공동체의 미래를 제안해야 합니다.
1945년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서독에선 나치당과 그에 협력한 보수 정당들이 몰락했습니다. 대중은 ‘보수=파시즘’으로 여겼죠. 이때 등장한 기독교민주연합(CDU)은 나치와 단절하고, 기독교적 인간관과 유럽주의라는 철학을 내걸고 보수를 재건합니다. 이 활동은 단순한 정당 창설을 넘어 독일 사회의 도덕적, 정치적 재생을 목표로 했습니다. 결국 CDU는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 초대 총리를 배출합니다.
초대 총리 아데나워에게 보수의 재건은 도덕의 재건이었습니다. 전후 독일처럼 정치적, 도덕적 신뢰가 무너진 한국 보수 정당은 CDU의 사례를 참고할 만합니다. 국민의힘이 곧 새 원내대표를 뽑습니다. 조만간 당 대표 선거도 열릴 테고요. 과거와 단절 없이, 새로운 윤리 없이, 시민과의 감정적 유대 없이, 당의 얼굴이나 간판만 바꿔서는 안 됩니다.
더 많이, 더 크게, 더 깊이 바꿔야 합니다. 지키기 위해 바꾸는 것이 보수주의의 본령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