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Grok It!”
최근 암호화폐 사업가로 이름을 알린 테크 인플루언서, 마리오 나우팔이 X.com에 반복적으로 게시하고 있는 문장입니다. ‘google’이 ‘검색하다’라는 뜻의 동사로 기능했던 것처럼, ‘grok’을 ‘생성형 AI에 질문해 답을 얻다’라는 뜻의 동사로 사용한 겁니다. 나우팔은 구글의 검색 점유율 90퍼센트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전하며 “검색어 뒤에 ‘Reddit’을 입력하던 시대는 끝났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원하는 답을 정리해서 바로 알려 주는 그록을 쓰면 된다고
주장하죠.
일론 머스크의 생성형 AI 스타트업, xAI의 그록이 구글 검색을 대체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시장 점유율에서 오픈AI의 챗GPT에 밀리니까요. 하지만 생성형 AI는 분명 검색 시장의 판을 바꾸고 있습니다. 시장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요. 오픈AI가 검색 기능을 발표했을 때, 검색 특화 생성형 AI 서비스인 퍼플렉시티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을 때 알파벳의 주가가 휘청였던 이유입니다.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은 검색 광고로 돈을 법니다. 유튜브 구독 서비스부터 자율주행 택시 웨이모까지 사업 분야는 다양하지만, 2025년 1분기 기준으로 매출의 3분의 2가 광고에서, 절반이 검색 광고에서
나왔습니다. 이대로라면 알파벳의 매출은 생성형 AI 업체에 서서히 잠식될 수 있습니다. 마치 우버가 택시 시장을 잠식하고 있고, 웨이모와 테슬라 등의 무인 택시가 우버의 시장을 잠식하게 될 것처럼요.
대책이 필요합니다. 구글이 선택한 방법은 정면 돌파입니다. 지난 5월 20일 열렸던 구글의 연례 개발자 회의 ‘구글I/O 2025’에서 발표된 ‘AI 모드’ 얘깁니다. 시험적으로 운영해 왔던 ‘AI 개요’ 서비스를 다듬어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겁니다. 이제 미국에서 구글에 접속해 챗봇에게 묻듯 질문하면 AI 모드 기능을 통해 바로 답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찾는 정보를 잘 알려 줄 것 같은 링크를 골라 클릭할 필요가 없습니다. 굳이 오픈AI로 가지 말고, 쓰던 구글 검색창을 계속 쓰란 겁니다. AI가 작성한 친절한 정답을 알려 줄 테니 말이죠.
이게 성공한다면 구글은 사용자 유출을 막을 수 있습니다. 단, 매출 감소를 막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릅니다. AI 모드로 어떻게 광고를 팔 것인지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사용자를 묶어두면 광고 플랫폼으로서의 가치도 함께 묶입니다. 구체적인 매출 창출 방식은 그다음의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전통적인 방식의 구글 검색이 자발적인 멸종 프로세스에 돌입했다는 사실이죠.
한국에도 곧 AI 모드가 도입될 겁니다. 당장 우리의 검색 경험이 달라질 겁니다. 그냥 좀 편해지는 정도가 아닙니다. 구글이 알려 준 링크를 클릭해서 정보를 찾아 내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과정이 생략됩니다. 결과적으로 ‘월드와이드웹’이 작동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인류가 정보를 소유하는 방식도 달라지고요. 이제 우리는 요약된 세계를 살게 됩니다.
도서관의 미덕
지식이 필요할 때,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땐 도서관이나 서점으로 향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나의 질문이 십진분류법의 어느 항목에 해당하는지 고민한 뒤 서가에 늘어선 책 제목들 속에서 힌트를 찾았죠. 도서관에서 두꺼운 신문철을 꺼내 한 장씩 넘기는 모습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뉴스란 늘 검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문이라는 매체로 수렴되어 특별한 장소에 보관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풍경입니다. 검색하면 되니까요. 인터넷의 발명, 통신망의 보급, 구글의 등장에 이어 스마트폰이라는 세기의 발명품까지 등장하면서 우리는 지식을 스트리밍하게 되었습니다. 굳이 책을 구입하거나 종이 신문을 받아 차곡차곡 정리해 둘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스포티파이 앱을 여는 것처럼, 정보가 필요할 때 구글 검색창을 열면 되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검색이라는 방식은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지식을 찾는 일과 꽤 닮아 있습니다. 서가에서 헤매다 보면 내가 찾던 내용을 담은 책도 눈에 들어오지만, 그 옆에 꽂힌 책도 함께 보입니다. 때로는 내가 알고 싶었던 내용인지도 깨닫지 못했던 정보와 조우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구글 검색도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정보 말고도 해당 키워드에 관련된 주변부의 정보로 안내하는 링크까지 함께 보입니다. 링크를 클릭해 들어가면, 해당 내용 앞뒤로 또 다른 맥락이 만들어져 있고요.
광고와 정보
어찌 보면 알고리즘의 불완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불완전성이 구글 검색 광고의 기반이 되었고요. 내가 입력한 키워드와 관련된 재화를 판매하는 광고주의 링크가 마치 검색 결과인 양 노출되는 겁니다. 피곤합니다. ‘스폰서 링크’라는 표시가 달려 있어도 거슬리죠.
거기에 SEO(Search Engine Optimization)가 마케팅의 기본 기술로 자리 잡으면서 광고인 듯 정보인 듯 애매한 링크의 홍수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예를 들면, 네이버 맛집 광고 블로그 글에 ‘종로 맛집 ○○○의 메뉴판’, ‘종로 맛집 ○○○의 인테리어’라는 고정 키워드가 반복해서 등장하는 현상이나, 아예 글을 읽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게 흰색으로 처리해 놓은 해시태그 같은 것들입니다.
불법은 아닙니다. ‘종로 맛집’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는 콘텐츠일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 SEO는 20년 넘게 지속되어 온 온라인 가시성 확보 전략이었습니다. 사회적 약속이 된 겁니다. 문제는 구글이 언젠가부터 이런 콘텐츠들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광고도 적당히 보여야지, 검색 결과가 온통 광고뿐이라면 검색 엔진으로서의 능력 상실입니다.
사실, 구글은 능력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돈 욕심 때문에 그랬습니다. 광고와 검색 결과의 경계를 흐리고, 스팸 사이트를 거르는 데에 투자를 소홀히 했죠. 2019년경부터 구글 광고 사업 부문에서 매출 확대에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아야기는
꽤 알려진 내용입니다.
구글도 노력은 했습니다. 콘텐츠 사용료까지 지급하면서 검색 결과 상위에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노출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2021년에 시작된 이 변화가 상당히 중요한 기점이 되었습니다. 구글이 링크가 아닌 ‘답변’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지식iN 기계화
사실, 검색 시장은 선순환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최고의 검색 결과를 제공하기 때문에 모두 구글 검색을 사용합니다. 모두 구글 검색을 사용하기 때문에 최고의 결과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가 입력한 검색어는 모두 구글의 검색 엔진의 알고리즘을 개선하기 위한 소중한 데이터니까요. 그래서 구글은 돈을 법니다. 돈이 있으니, 기술 개발에 더 투자할 수 있습니다.
네트워크 효과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사용할수록 서비스의 가치가 상승합니다. 그래서 구글은 크롬과 구글 검색을 모든 디바이스의 ‘기본 설정’으로 고정해 두고자 했습니다. 아이폰에도, 갤럭시에도 말이죠. 이걸 위해 ‘마케팅 비용’을 쓰다가 미국 반독점 당국과 사상 초유의 소송전을 벌이고 있고요.
그런데 이 선순환의 고리에 균열을 일으킬 경쟁자가 등장했습니다. 생성형 AI입니다. ‘생성형’이라는 부분이 중요한데요, 사실 구글의 검색 엔진 자체도 상당히 고도화한 AI입니다.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 기계 지능이니까요. 지금 우리 삶을 바꾸고 있는 생성형 AI는 이미 존재하는 링크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답변을 생성해 보여 줍니다. 이걸 AI 모델이 아니라 사람이 하도록 했던 서비스가 있는데요, 바로 네이버의 ‘지식iN’입니다.
초등학생이 숙제할 때, 구글 검색을 활용해 정보가 담긴 링크를 일일이 클릭해서 필요한 내용을 정리한다고 가정해 보죠. 생각만 해도 귀찮고 어렵습니다. 그런데 지식iN에 질문하면 그대로 복사해 붙여 넣기 하면 될 정도의 답변이 달립니다. 질문이 앞뒤가 맞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인간에게는 공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맥을 통해 질문자의 의도를 파악해 답변합니다.
구글의 위키피디아 콘텐츠 노출은 지식iN의 또 다른 버전입니다. 그리고 생성형 AI를 활용한 검색은 지식iN의 기계화 버전이고요. 언제든 즉시 답변을 달아주는 지식iN 서비스가 있는데 검색에 시간을 쓸 사람은 없습니다. 이 변화가 우리 생활로 닥치고 있고요. 이제 우리는 구글 제로(Google zero)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더 정확히는 클릭 제로(click zero) 시대에 가깝겠네요.
지식의 스트리밍
이제 도서관 형식의 정보 찾기는 끝났습니다. 정보는 사용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조합되어 완성품의 형태로 제공됩니다. 당장 난리가 난 것은 마케팅 쪽입니다. 키워드 위주의 SEO 전략이 20년간의 법칙이었는데, 이게 하루아침에 바뀐 겁니다. 하지만 변화는 코앞까지 턱턱 치고 들어옵니다. 애플은 사파리 검색 엔진에 퍼플렉시티와 클로드의 AI 모델을 내장하기로 했습니다. 온라인 광고 시장을 창조한 구글조차 AI 모드를 선언한 마당이고요.
바뀐 판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묻는 질문이 어지럽게 쏟아지니 답변도 쏟아집니다. 주로 업계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테크 블로거나 인플루언서들이 생성형 AI의 작동 원리에 기반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벤처캐피털 a16z 소속의 투자자 두 명이 작성한 글이 주목받았죠.
이들은 SEO 시대가 끝나고 GEO(Generative Engine Optimization)가 표준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클릭 수는 중요치 않고, 생성형 AI가 콘텐츠의 내용을 언급하는 빈도와 방식이 중요한 시대가 온다는 겁니다. 새로운 시대에 최적화된 전략도
제시하는데요, 이 내용은 다른 블로거들이
설명하는 것과 큰 차이는 없습니다. 간단히 정리해 보죠. 콘텐츠를 블록 단위로 구조화할 것, 메시지를 명확하게 할 것, 인용과 출처 기록에 신경 쓸 것
등입니다. 즉, AI가 가져다 재조합해 쓰기 좋게 콘텐츠를 만들라는 얘깁니다.
실제 사례를 보죠. ‘한국의 인디 화장품 시장’에 관해 챗GPT로 검색한
결과입니다. 여기서 AI가 참조한 사이트들을 보시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주요 일간지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오픈AI와 계약이 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이미 계약을 체결한 〈연합뉴스〉의 기사도 보이지 않죠. 대신 컨설팅 회사나 증권사의 분석 보고서, 전문지의 기획 기사 등이 눈에 띕니다. 링크를 클릭해 들어가 보면, 몇 개의 문단 별로 소챕터를 나눠 구조화한 글이 대부분입니다. 통계 자료나 사진 자료, 인용 등이 붙어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