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의 특별한 효능

bkjn review

불편하고 당황스러운 관계 맺기를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우나의 특별한 효능

2025년 6월 10일

삶의 방식을 바꾸는 기술은 때로 아주 간단한 원리로 작동합니다. 틴더(Tinder)는 2012년 출시된 이래 데이트의 방법론을 새로 썼습니다. 상대방이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직접 만나 이야기하기란 껄끄러운 일이죠. 내 마음과 당신의 마음이 늘 같으란 법은 없으니까요. 거절은 하는 쪽도 당하는 쪽도 껄끄러운 법입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화면을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넘기는 일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틴더는 데이트에 딸려 올 수 있는 초반의 마찰과 갈등을 기술로 해결했습니다.

2023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30퍼센트가 온라인 데이트 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또, 18세에서 29세까지의 경우 커플 5쌍 중 1쌍은 온라인으로 상대를 만난 경험이 있었고요. 온라인으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이제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이 시장의 최고 강자는 틴더의 모회사 ‘매치(Match)그룹’입니다. 틴더와 함께 힌지(Hinge), OK큐피드(OKCupid) 등 다양한 데이팅 앱을 운영하면서 한때 시장 점유율이 70퍼센트를 넘길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매치 그룹의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실적 부진으로 신임 CEO를 1년도 안 되어 해임하더니 직원의 15퍼센트를 해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사용자가 줄어서 그렇습니다. 시장 조사 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30세 미만의 앱 사용자 가운데 61퍼센트가 최근 1년간 데이팅 앱을 삭제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틴더 유료 이용자 수는 6분기 연속 줄어들고 있고요. 이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데이트를 포기한 것은 아니겠죠. 관계를 시작하는 방법이 달라지고 있을 뿐입니다.
틴더는 한때 관계를 만드는 가장 ‘쿨한’ 방법이었습니다. 출처:Tinder
혼밥의 시그널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혼자서는 못 삽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잘 곳이 다 있어도 외로움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허기를 느끼듯 관계를 찾습니다. 이 욕구를 제대로 공략한 산업이 바로 소셜 미디어였습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친구들과 소통하는 곳인 동시에 친구를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소셜 미디어는 관계를 만드는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소셜 미디어가 끝난 겁니다. 메타의 CEO 마크 저커버그가 직접 선언했습니다.

저커버그는 2025년 4월 반독점 관련 재판을 시작하며 사용자들이 더 이상 친구들의 게시물을 확인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페이스북 이용자의 17퍼센트, 인스타그램 이용자의 7퍼센트만이 친구들의 계정을 확인합니다. 이제 메타의 플랫폼들은 틱톡, 유튜브, iMessage 등과 경쟁 중입니다. 인플루언서들이 만든 콘텐츠를 즐기거나 DM 기능을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는 용도로 쓰인다는 것이죠. 소셜 네트워크가 소셜 미디어로 변화했고, 다시 콘텐츠를 소비하는 플랫폼으로 변화했습니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살고 있습니다. 미국인은 평균적으로 평생 21년 5개월 29일을 온라인에서 보내게 될 전망입니다. 그런데 스마트폰 안에서 우리를 전 세계와 초연결해 주던 소셜 미디어가 관계의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스마트폰 앱은 상품입니다. 고객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대가로 돈을 벌죠. 만약 우리가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에 관심이 있었다면, 페이스북은 여전히 소셜 네트워크로서 기능하고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모두 온라인이고 접속 가능합니다. 연결된 겁니다. 그러나 깊은 ‘유대’는 없습니다.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023년 미국 노동 통계국의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인의 약 25퍼센트가 설문 전날 모든 끼니를 혼자 먹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향은 역시 젊은 층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혼밥을 일종의 ‘현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치 판단의 대상이 아닌 겁니다. 그래서 혼밥을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영양 섭취의 불균형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혼밥의 증가를 ‘시그널’로 봅니다. 미국이 불행해지고 있다는 신호 말입니다.

생존의 문제

실제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1997년에서 2006년 사이에 출생한 Z세대의 경우, 외로움을 느끼는 비율이 67퍼센트에 달합니다. 1981년에서 1996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도 65퍼센트가 외로움을 느끼고요. 반면, 베이비부머 세대는 그 비율이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경험한 단절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단절은 세대를 막론하고 모두가 경험했던 것입니다.

매년 미국의 〈외로움 백서(Loneliness in America)〉를 발간하고 있는 대형 보험사 시그나(Cigna)는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가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과 함께 성장한 세대로, 연결성은 높지만 실제로는 더 큰 외로움을 느낀다고 설명합니다. 사회적으로 가장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정서적 소속감은 느끼지 못한다는 겁니다.

외로움은 생존을 위협합니다.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좋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니까요.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조기 사망률이 32퍼센트 상승한다고 하고요. 이쯤 되면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일종의 질병입니다. 미국 공중 보건국(U.S. Surgeon General)은 지난 2023년 〈사회적 연결에 관한 제언〉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하고 외로움을 일종의 사회적 ‘전염병’으로 규정했습니다.

보고서에는 이 전염병을 해결하기 위한 전략들도 제시되어 있는데요, 첫 번째로 제시한 것이 사회적 기반을 강화하자는 내용입니다. 공원이나 도서관, 커뮤니티 센터 등 물리적 공간을 통해 공동체를 다시 연결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보고서 내용에 따라 설립된 한 민간단체는 밥을 함께 먹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쌀밥을 같이 먹는 것은 아니고, 스타벅스에서 스콘을 함께 먹거나 타코 트럭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방식입니다. 가족과의 단절을 경험 중인 사람들과 명절날 식사를 함께하기도 하죠.

사우나에서 만나면

하지만 인간은 동물이고 삶에 대한 본능적인 집착을 갖고 있습니다. 정부 기관이나 지원 단체의 활동도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외로움이 지배하는 시대에는 그에 맞는 삶의 방식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최근 영국과 미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함께하는 사우나(communal sauna)’ 같은 것 말이죠.

틴더와 인스타그램의 공통점은 ‘사진’입니다. 틴더는 프로필을 올린 사람의 사진과 아주 짤막한 프로필만으로 데이트하고 싶은지 아닌지를 결정해 화면을 밀어내야 합니다. 정말 순간의 결정이죠. 인스타그램에서도 사진을 보고 ‘좋아요’를 누를지 말지 결정합니다. 인스타그램과 틱톡의 공통점은 ‘필터’입니다. 화면 속의 인물은 AI의 판단에 따라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정됩니다.

하지만 동네 한편에 지어진 오두막 크기의 사우나에서는 다릅니다. 수영복만 걸친 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곳에서 사람들과 만날 수밖에 없죠. 영국에서는 사우나 문화가 그렇게 대중적이지 않았지만,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붐을 일으키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본연의 모습 그대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진정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겁니다. 영국에서는 공중 사우나의 숫자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2025년 현재 147곳으로, 2023년의 3배 수준입니다. 이런 트렌드는 미국에서도 시작되고 있고요.

독일에서는 전통 모임을 부활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정기 모임’이라는 뜻의 ‘슈탐티쉬(Stammtisch)’입니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술을 마시며 대화하는 모임으로, 주제는 독서부터 직장, 개인사 등 다양합니다. 독일의 바나 레스토랑에는 공간 한복판에 둥그런 테이블이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슈탐티쉬를 위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관광객이 모르고 앉았다가는 쫓겨나기도 했고요. 1980년대 이후 기성세대의 문화라는 인식 때문에 많이 사라졌지만, 최근 스탐티쉬를 다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임이 늘어나고 있죠. 러닝 크루나 독서 모임 같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문토’나 ‘소모임’ 같은 앱이 인기를 얻고,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며 여행하는 ‘밍글링 투어(mingling tour)’ 상품이 잘 팔립니다. 경험을 함께 쌓고 이야기를 나누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겁니다. 인류가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듯 말이죠.

마찰의 가능성

틴더에서도 취향이 맞는 사람을 만나고, 유대감을 형성해 진정한 관계를 만들 수는 없을까요?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의 관계 형성은 오프라인과는 다르게 심리스(seamless)합니다. 나를 드러낼 필요가 없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를 보여 줄 수 있죠. 마찰이 없습니다. 인간관계를 시작하기 위해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겁니다.

그렇게 시작된 관계는 무겁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관계는 관계이되 언제든 쉽게 끊어 낼 수 있습니다. 투입한 노력이 거의 없으니 ‘손절’이라고 할 수도 없지요. 이래서는 여전히 외로움과 고립감이 남습니다. 이래서는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계의 어딘가에서는 불편하고 당황스러운 관계 맺기를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우나에서, 독서 모임에서, 술집이나 카페 한편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겁니다. 마찰투성이일 겁니다. 상대방은 나를, 나는 상대방을 거슬리게 할 테고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에너지가 발생하고 연결이 생겨납니다. 내가 당신에게 맞추고 당신이 나에게 맞추는 과정을 거쳤으니 이 관계에는 가치가 부여됩니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욕망하는 사회가 탄생합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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