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통합정부
기존 엘리트 중심의 인사 제도가 폐쇄적이고 불투명했다는 비판은 타당합니다. 그러나 그 해법이 대중 추천이어서는 안 됩니다. 좋은 인사를 하라고 대중이 표를 줘가며 추천한 사람이 이재명 대통령입니다. 그 일을 국민에게 되돌려 주는 건 국민 주권 회복이 아니라 책임 방기입니다. 국민 주권은 헌법적 가치이지만, 정치는 정치인이 해야 합니다. 국민 주권을 너무 내세우면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포퓰리즘은 정치적 극단주의를 가속할 수 있고요.
새 정부의 초대 내각은 그 정부의 얼굴입니다. 여러 말이 필요 없습니다. 내각 구성이 정부의 성격을 규정합니다. 과거 이명박 정부 때는 강부자, 고소영 정부라는 말이 유행했죠. 강남, 부동산, 부자(강부자). 그리고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고소영)으로 대표되는 정부라는 뜻이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검찰 그 자체였고요.
그럼, 이재명 정부의 초대 내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국민 통합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6월 4일 오전 국회 로텐더홀에서 취임 선서를 한 뒤,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크게 통합하라는 대통령의 또 다른 의미에 따라,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그러면서 “정의로운 통합정부, 유연한 실용정부”가 되겠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이재명 정부의 얼굴은 통합이어야 합니다. 심리적 분단을 극복하고 결국 이 좁은 땅에서 같이 부대끼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란 극복은 특검과 사법부가 할 겁니다. 경제 회복은 유능한 공무원과 기업과 국민이 할 겁니다. AI 3대 강국은 정부가 걸림돌만 치워 주면 기업과 연구자가 중심이 되어 이룰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통합은 오직 대통령만 할 수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초대 국무총리로 김민석 의원을 지명했습니다. 김민석 의원은 친명 핵심 전략가로 통합니다. 총리를 맡을 역량이 충분하다 하더라도, 친명 색깔이 너무 강합니다. 통합을 원한다면 장관 인선은 다르게 가야 합니다. 김문수와 이준석을 찍었던 국민도 동의할 수 있는 인사가 필요합니다. 국민추천제 플랫폼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재명 캠프는 대선을 앞두고 외연 확장을 위해 보수 책사 윤여준 전 장관을 총괄선대위원장에 앉히고, 김상욱 전 국민의힘 의원, 허은아 전 개혁신당 대표를 영입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야당의 주류로 보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통합의 의미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진짜 통합을 위한 행보였다면, 야당에서 의미를 깎아내릴 이유도 없었겠죠.
통합은 반대 진영에서 한두 사람 데려온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통합은 당과 당끼리 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선결 조건이 있습니다. 카운터파트인 국민의힘이 정당다운 정당이 되어야겠죠. 내란 옹호 세력과 절연하고 건강한 보수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이 전제하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이 야당에 장관 후보자를 추천해 달라고 손을 내밀면 좋겠습니다.
이때는 구색 맞추기용으로 야당 인사 한두 명 빼가는 게 아니라 야당과 공식적으로 협의해 결정해야 합니다. 부처 몇 개는 야당이 맡아 달라고 요청하는 겁니다. 사람만 데려가서도 안 됩니다. 야당과 협치하려면 야당의 정책도 가져와야 합니다. 야당과 국정을 공동 운영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의로운 통합정부’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