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추천제 말고 야당추천제

bkjn review

초대 내각은 정부의 얼굴입니다. 이재명 정부의 얼굴은 통합이어야 합니다.

국민추천제 말고 야당추천제

2025년 6월 12일

이재명 정부가 6월 10일부터 16일까지 일주일간 국민에게 장·차관, 기관장 등 주요 공직자를 추천받는 ‘진짜 일꾼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인사혁신처가 운영하는 국민추천제 홈페이지에 추천 글을 남기거나, 이재명 대통령의 소셜 미디어 계정 또는 이메일로 의견을 보내면 참여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추천할 수도 있고요. 접수된 사람들은 본인이 동의하면 국가 인재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고, 인사 검증을 거쳐 임명됩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 제도가 “국민 주권 정부라는 국정 철학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민의 집단 지성을 활용해 국민을 위해 진정성 있게 일하는 ‘진짜 인재’를 발굴하겠다는 겁니다. 반응은 뜨겁습니다. 시행 하루 만에 1만 건이 넘는 추천이 쏟아졌습니다. 국민추천제를 직접 해봤다는 체험형 기사도 나왔습니다. 이 기자는 봉준호 감독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추천했다고 하네요. 부산시의사회는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로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을 추천했고요.

국민 주권의 잘못된 환원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의 인사 버전인 국민추천제는 언뜻 참여 민주주의의 확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관찰하면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문화 체육 관광 정책을 총괄할 역량이 있는지도 불투명할 뿐더러, 그렇다 하더라도 계속 영화를 찍어 주는 게 국가에 더 득이 됩니다. 대중적 낭만주의는 행정의 실효성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행정의 전문성을 훼손할 우려도 있고요. 국민추천제가 우려되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이 네 가지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면 제도가 성공할 수도 있겠죠.

첫째, 국민 추천은 정부 여당의 책임 회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장·차관은 정책 집행의 최종 책임자입니다. 이들을 국민 추천을 받아 임명하면 그 인사가 잘못된 것으로 판명이 나도 정치적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추천한 국민이나 시민 사회를 찾아가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죠. 실책이 생겨도 책임의 귀속이 명확하지 않아 제도적 무능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정치적 책임은 선출자와 임명권자 간의 책임 사슬이 명확할 때 작동합니다.

둘째, 행정의 정치화를 가속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 상징성이나 인기 투표 위주로 장·차관이 임명되면 관료의 정치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 막스 베버는 발달한 관료제는 “분노도 편견도 없이” 작동한다고 말합니다. “개인적인 감정을 직무 처리에서 배제”하는 것이 관료제의 미덕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고위 공직자가 소셜 미디어 여론으로 낙점된다면 공직은 전문적 기능 조직이 아니라 정치적 이념 조직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셋째, 포퓰리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특정 이익 집단이나 시민 사회 단체가 추천 플랫폼을 과점할 경우, 제도의 취지와 달리 다수 의견이 아닌 조직된 소수의 추천이 권력을 독점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국민’이라는 명분 아래 측근 기용이 제도화할 우려도 있죠. 부처 업무에 전문성이 없는 캠프 출신 인물이 ‘국민 추천’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대중적인 정실주의가 되는 겁니다.

넷째, 검증 제도가 약화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실은 추천된 인재를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인사 검증을 하고 공개 검증도 거쳐 임명하겠다고 했지만, 문제가 드러나도 “국민이 뽑았는데 뭐가 문제냐?”식의 방패막이 등장할 우려가 있습니다. 국민 주권이라는 미명하에 정권에 맹목적으로 충성하거나 논란이 많은 인물이 법적, 제도적 검증을 피해 갈 우회로가 생깁니다. 국민 추천과 공개 검증이 강조될수록 국회 인사 청문회의 권한은 약해질 겁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6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취임 행사에서 “모두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통합을 강조했습니다. / 출처: KBS News
정의로운 통합정부

기존 엘리트 중심의 인사 제도가 폐쇄적이고 불투명했다는 비판은 타당합니다. 그러나 그 해법이 대중 추천이어서는 안 됩니다. 좋은 인사를 하라고 대중이 표를 줘가며 추천한 사람이 이재명 대통령입니다. 그 일을 국민에게 되돌려 주는 건 국민 주권 회복이 아니라 책임 방기입니다. 국민 주권은 헌법적 가치이지만, 정치는 정치인이 해야 합니다. 국민 주권을 너무 내세우면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포퓰리즘은 정치적 극단주의를 가속할 수 있고요.

새 정부의 초대 내각은 그 정부의 얼굴입니다. 여러 말이 필요 없습니다. 내각 구성이 정부의 성격을 규정합니다. 과거 이명박 정부 때는 강부자, 고소영 정부라는 말이 유행했죠. 강남, 부동산, 부자(강부자). 그리고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고소영)으로 대표되는 정부라는 뜻이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검찰 그 자체였고요.

그럼, 이재명 정부의 초대 내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국민 통합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6월 4일 오전 국회 로텐더홀에서 취임 선서를 한 뒤,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크게 통합하라는 대통령의 또 다른 의미에 따라,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그러면서 “정의로운 통합정부, 유연한 실용정부”가 되겠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이재명 정부의 얼굴은 통합이어야 합니다. 심리적 분단을 극복하고 결국 이 좁은 땅에서 같이 부대끼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란 극복은 특검과 사법부가 할 겁니다. 경제 회복은 유능한 공무원과 기업과 국민이 할 겁니다. AI 3대 강국은 정부가 걸림돌만 치워 주면 기업과 연구자가 중심이 되어 이룰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통합은 오직 대통령만 할 수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초대 국무총리로 김민석 의원을 지명했습니다. 김민석 의원은 친명 핵심 전략가로 통합니다. 총리를 맡을 역량이 충분하다 하더라도, 친명 색깔이 너무 강합니다. 통합을 원한다면 장관 인선은 다르게 가야 합니다. 김문수와 이준석을 찍었던 국민도 동의할 수 있는 인사가 필요합니다. 국민추천제 플랫폼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재명 캠프는 대선을 앞두고 외연 확장을 위해 보수 책사 윤여준 전 장관을 총괄선대위원장에 앉히고, 김상욱 전 국민의힘 의원, 허은아 전 개혁신당 대표를 영입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야당의 주류로 보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통합의 의미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진짜 통합을 위한 행보였다면, 야당에서 의미를 깎아내릴 이유도 없었겠죠.

통합은 반대 진영에서 한두 사람 데려온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통합은 당과 당끼리 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선결 조건이 있습니다. 카운터파트인 국민의힘이 정당다운 정당이 되어야겠죠. 내란 옹호 세력과 절연하고 건강한 보수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이 전제하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이 야당에 장관 후보자를 추천해 달라고 손을 내밀면 좋겠습니다.

이때는 구색 맞추기용으로 야당 인사 한두 명 빼가는 게 아니라 야당과 공식적으로 협의해 결정해야 합니다. 부처 몇 개는 야당이 맡아 달라고 요청하는 겁니다. 사람만 데려가서도 안 됩니다. 야당과 협치하려면 야당의 정책도 가져와야 합니다. 야당과 국정을 공동 운영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의로운 통합정부’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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