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안동네 재개발

bkjn review

서울은 그들의 존재를 알지만, 모르는 채로 살아갑니다.

영등포 안동네 재개발

2025년 6월 11일

요즘 영등포역 6번 출구 부근이 뒤숭숭합니다. 공공 주도 쪽방촌 정비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참이기 때문입니다. 영등포 롯데백화점과 타임스퀘어 사이에 자리 잡은 ‘안동네’ 얘깁니다. 기차역 주변이었고 성매매 업소가 밀집해 있던 곳입니다. 1970년대 서울이 점점 도시의 모습을 갖춰 가면서 도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안동네로 모여들었습니다. 50년도 넘은 이곳이 밀리고 공공 임대 주택과 주상 복합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입니다.

쪽방촌에 살던 사람들은 올 상반기 안에 살던 곳을 떠나야 합니다. 대책 없이 밀려나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근처 고가 도로 아래에 임시 거처가 마련되었습니다. 화장실과 샤워실, 주방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거처가 아직 모자랍니다. 주민 360여 명 가운데 200명 정도가 임시 거처에 입주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마련된 시설은 96명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전부 1인실이라 2인 이상의 가구는 막막합니다.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영등포 안동네 개발 사업은 서울이 겪어 왔던 이전의 도시 개발과 다릅니다. 적어도 선주민을 무조건 몰아내고 높은 건물을 올리는 방식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사업은 성공해야 합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의 이주가 시작됩니다. 사진에 표시된 구역입니다. / 출처: 서울시
경험한 적 없는 개발

영등포 쪽방촌 공공 개발 계획이 발표된 것은 2020년입니다. 기존 쪽방 주민을 위한 영구 임대 주택과 함께 젊은 층을 위한 행복주택을 짓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머지 공간은 민간에 매각해 주상 복합, 오피스텔 등으로 개발할 수 있게 합니다.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주민들이 임시로 거주할 공간을 만들어 운영합니다. 잠시 거처를 옮겼다 영구 임대 주택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한 겁니다. 블록을 나눠 순차적으로 철거하고 공사합니다. 선주민 이주도 차례로 이루어집니다. ‘순환 개발’ 방식입니다. 서울 최초입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쪽방촌 개발의 기준이 될, 실험적인 사업입니다.

사실, 이 사업은 2023년까지 마무리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팬데믹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상은 했지만 넘지 못했던 집주인들과의 갈등도 있었죠. 공공 개발이 진행되면 민간 개발에 비해 손해를 볼 것이라며 개발에 반대한 겁니다.

쪽방촌이 공공 주도로 개발되면 소유주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맞습니다. 유명 건설사 아파트가 높이 올라가거나 대기업 사무실이 들어올 만한 멋진 상업 빌딩이 들어선다면 큰 수익을 올리게 될 테니까요. 다만, 영등포를 비롯한 서울 대부분의 쪽방촌은 민간 개발을 추진했지만 이미 실패했습니다. 사업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민간 개발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아예 개발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쪽방촌에서는 월세가 정기적으로 들어옵니다. 기록도 남지 않는 현금 장사입니다. 1.5평 정도의 방 한 칸이 30만 원이 좀 넘습니다. 건물 한 채당 천만 원도 넘는 수익이 매월 발생합니다.

이상한 임대업

지난 2019년 《한국일보》에서 서울시의 모든 쪽방 건물의 등기부 등본을 전수 조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모든 집주인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당시 조사 결과 상당수가 투기 목적으로 쪽방 건물을 매수했고, 상속이나 증여 등의 방식으로 가족에게 물려주기도 했습니다. 10대 청소년이 쪽방 건물의 공동 집주인으로 이름을 올리는 식입니다.

실질적으로 쪽방촌을 운영하는 것은 집주인이 지정한 ‘관리인’입니다. 보통 쪽방촌 거주자나 인근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동네 주민이 맡습니다. 공실이 없도록 꾸준히 사람을 받고, 월세가 밀리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입주자를 퇴거시킵니다. 건물이나 방에 문제가 있을 때 세입자와 함께 해결하기도 하고요. 세입자와 임대인이 직접 만날 일은 없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잘못은 아닙니다. 집주인은 이미 칸칸이 쪼개진 쪽방 건물을 매입해 임대 사업을 했을 뿐입니다. 쪽방에 들어와 살고 싶은 수요가 있고, 그 수요를 충족할 공급을 한 겁니다. 시장 경제의 논리상 잘못된 부분이 없죠. 하지만 우리의 상식을 조금만 확장해 보면 이상한 점은 몇 가지 있습니다.

비정상의 정상화

먼저, 공급하는 재화의 품질 문제입니다. 불량 식품을 만들어 팔면 처벌 받습니다. 피부염을 일으키는 불량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 팔아도 처벌받겠죠. 그런데 거주자의 건강을 해칠 정도로 불량한 거주를 제공하는 것에는 왜 이렇게 관대한 것일까요? 쪽방촌은 주거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낡았습니다. 방 크기의 문제가 아닙니다. 벽이 갈라지고 천정이 내려앉아도, 바퀴벌레가 창궐하고 공공 화장실이 고장 나도 집주인은 얼굴도 비치지 않습니다. 폭염과 혹한을 견뎌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수면과 최소한의 위생도 보장받을 수 없는 주거입니다.

그럼에도 쪽방촌은 끝내 쓰러지지 않고 유지됩니다. 지원 단체에서 집을 고쳐 주거나 청소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자체에서도 대형 화재 등을 예방하기 위해 전기 시설 등을 철마다 개보수합니다. 중앙 정부의 예산이 투입되기도 합니다. 기존 쪽방 건물을 지방 정부가 임대해 고쳐서 재임대하는 사업도 있습니다. 세금으로 쪽방 소유주의 사유 재산을 수리하고 유지해 주는 겁니다.

세금이 소유주에게 지급되는 더욱 직접적인 경로는 바로 월세입니다. 쪽방촌 거주민은 대부분 주거 급여 대상자입니다. 쪽방촌의 월세는 대개 이 주거 급여의 금액과 비슷하게 책정됩니다. 주거 급여가 오르면 월세도 오릅니다. 2025년 현재 1인 가구 기준 서울의 주거 급여는 월 35만 2000원입니다. 쪽방촌 월세가 딱 그 정도입니다. 이건 일반적인 시장 경제 논리에 따른 가격 상승이라 볼 수 없습니다.

이 기형적인 구조 속에서 국가는 굳이 민간 임대업자를 거쳐 주거 복지를 제공하고 있는 셈입니다. 돈은 많이 드는데 복지의 품질은 떨어집니다. 세금 낭비입니다. 이를 끊어내는 방법이 공공 주도의 재개발입니다. 이번 재개발 계획에는 쪽방촌 주민들을 수용할 영구 임대 주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넓지 않은 방이겠지만 기본적인 관리가 이루어지고 온수가 나올 겁니다. 냉난방 시설도 갖춰질 겁니다. 무엇보다 공공 기관이 직접 주거 복지를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제대로 잘 권리

이렇게 수준 이하의 민간 임대 주거를 공공 임대 주택으로 대체하는 것이 영등포 재개발이 성공해야 할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영등포가 앞으로 이루어질 쪽방촌 재개발의 기준점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영등포가 성공해야 동자동, 창신동, 돈의동의 쪽방촌도 확신을 갖고 사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서울의 대표적인 쪽방촌으로 꼽히는 동자동에서는 4년째 공공 주도 개발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 주민들의 위기감이 나날이 커지는 상황입니다.

우리 사회는 꽤 오랫동안 빈곤이 개인의 문제라고 오해해 왔습니다. 나태함이나 불운 같은 것의 결과라고 말입니다. 그 오해가 풀리기 시작한 것은 1997년 IMF 외환 위기 이후부터입니다. 빈곤과 도시의 거리가 갑자기 좁혀졌던 때입니다. 쪽방촌은 노숙과 도시 사이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노숙하면서 성실하게 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건강을 잃어버리고 정신적으로 타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쪽방촌은 그보다는 조금 낫습니다. 하지만 고시원이나 반지하방에서 사는 청년들이 흔히 겪듯, 여전히 몸도 마음도 지칩니다.

이런 상황을 일상에서 일부러 생각해 볼 일은 잘 없습니다. 타인의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쪽방촌의 세계와 서울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주민이 아니고서야 영등포 안동네 골목 안으로 들어갈 사람은 없습니다. 주변에서 자원봉사 및 구호 활동을 하는 종교인, 봉사자, 시민 단체 활동가 외에는 외부인이 쪽방촌의 방문을 열 일도 없습니다. 애당초 청소년 출입이 24시간 금지된 곳입니다. 성매매 업소 밀집 지역 근처라 그렇습니다.

서울은 그들의 존재를 알지만, 모르는 채로 살아갑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두고 모르는 척하는 쪽이 더 편리합니다. 하지만 개발이 끝나고 나면 그 경계가 희미해집니다. 쪽방촌 주민들은 상업 시설 옆 블록에 삶의 터전을 새로 마련하게 됩니다. 이 사업을 통해 서울은 쪽방촌 주민들을 비로소 제대로 대면하게 될 겁니다. 

재개발이 성공한다면 우리 사회가 처음으로 겪게 될 일은 또 있습니다. 주거의 질이 획기적으로 향상되었을 때 주거 빈곤 계층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지켜보게 될 겁니다. 낙관적인 결과가 나오리라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 갈등도 발생할 테고 어딘가에 숨겨진 느슨한 구멍을 찾아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정도로 대규모의 주거 개선이 단박에 이루어진 일이 없습니다. 춥거나 덥지 않은, 깨끗한 잠자리가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홈리스 행동의 홍수경 상임활동가는 북저널리즘과의 인터뷰에서 쪽방촌 공공 개발 과정들에서 주민과의 소통을 더 늘리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개발과 관련해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주거 공간을 만드는 과정에 각 쪽방촌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자는 겁니다.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집을 지을 때 그 집에 살게 될 사람과 대화를 하자는 것이니까요.

빈곤을 줄이는 일은 사회적 갈등과 그에 따른 비용을 줄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세계는 불행한 사람이 줄어들수록 안전해지고, 공중 보건이 확립될수록 건강해집니다. 쪽방촌 공공 개발도 그런 일입니다. 제대로만 된다면 이 세계가 좀 더 나아집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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