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란티어에서 보낸 8년
완결

팔란티어에서 보낸 8년

팔란티어는 소프트웨어의 존재론적 의미를 고민하며 논쟁을 즐기는 회의주의자들의 컬트였다.

지금 팔란티어는 뜨겁다. 최근 S&P 500에 편입되었고, 주가는 급등 중이며 시가 총액은 1000억 달러에 근접했다(편집자 주: 이 글은 2024년 10월 16일 최초 발행됐다. 8개월이 지난 2025년 6월 20일 현재 팔란티어의 시총은 3300억 달러다). 벤처 투자자들은 팔란티어 출신 창업자들을 쫓아다니며 투자를 제안하고 있다.

이런 열풍은 팔란티어를 오래 다닌 직원과 전직 직원들에겐 낯설게 느껴진다. 특히 2016년부터 2020년 사이에는 사람들에게 팔란티어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그리 권장되는 일은 아니었다. 대중은 팔란티어를 스파이 기술 회사, 국가안보국(NSA) 지시에 따르는 감시 회사, 혹은 그보다 더 악랄한 회사로 인식했다. 회사 앞에서는 연일 시위가 벌어졌고, 팔란티어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팔란티어를 소프트웨어인 척하는 컨설팅 회사이거나, 기껏해야 전 세계 임금 차이를 활용해 인건비가 싼 지역에서 전문가를 채용해 차익을 내는 회사로 치부했다.

나는 2023년에 회사를 떠났지만, 그곳에서 배운 것을 공개적으로 쓴 적은 없다. 많은 이들이 팔란티어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많다. 그곳에서 8년간 일한 사람으로서 그런 부분을 나름 설명해 보고자 한다. 참고로 이 글은 개인 자격으로 작성된 것이다. 현재 나는 회사와 공식적인 관계가 없다. 아울러 나는 팔란티어 주식을 보유하고 있음을 밝힌다.
 

내가 팔란티어에 합류한 이유


나는 2015년 여름, 이제 막 문을 연 런던 오피스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실리콘밸리로 옮겼고, 마지막으로 워싱턴 D.C.에서 전방 배치 엔지니어(Forward Deployed Engineer·FDE)로 일했다. 당시 직원 수는 1500명 규모였다. 팔로알토(본사), 뉴욕, 런던, 그리고 몇몇 도시에 사무실이 있었다(현재는 4000명 규모의 조직이 되었다. 본사는 덴버에 있다).

내가 팔란티어에 입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나는 ‘어려운’ 산업에서 진짜 의미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나는 개인적인 이유로 헬스케어와 바이오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당시 팔란티어는 막 이 분야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단계였다. 회사는 헬스케어, 항공 우주, 제조업, 사이버 보안 등 내가 중요하다고 느끼는 산업군에 진출하겠다고 이야기했는데, 당시 이런 분야에 주목하는 회사는 거의 없었다.

그 시절 ‘잘나가는’ 분야는 페이스북, 링크드인, 쿼라 같은 소셜 네트워크나 드롭박스, 우버, 에어비앤비 같은 소비자 앱이었다. 그러나 이런 회사들은 ‘진짜 복잡한’ 문제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만약 그런 어려운 산업에 도전하면서도, 동시에 실리콘밸리의 조직 문화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당시로서는 팔란티어가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였다.

내 목표는 언젠가 회사를 차리는 것이었는데, ①그 전에 먼저 이런 산업 중 하나에 깊어 들어가 실제로 의미 있는 것들을 배우고 싶었고, ②미국 회사에 일하며 영주권을 얻고 싶었다. 팔란티어는 두 조건을 모두 충족했다. 그래서 선택은 쉬웠다.

둘째, 인재 밀도(talent density)였다. 나는 당시 헬스케어 부문을 초기부터 이끌었던 닉 페리, 레칸 왕, 앤드류 거빈과 대화를 나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어 비즈니스 운영과 전략을 담당하던 초기 멤버들과 면접을 진행했는데, 오히려 더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엄청나게 치열하고, 경쟁심이 강하고, 반드시 승리하고자 하는 진심 어린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여가 시간에 철학서를 읽고, 기이한 식단을 시도하며, 100마일 자전거 라이딩을 ‘재미 삼아’ 하는 괴짜 같지만 매혹적인 사람들이었다. 알고 보니 이 모든 것은 ‘페이팔 마피아’의 유산이었다.

페이팔 초기 멤버였던 이샨 웡(Yishan Wong)은 ‘강도(intensity)’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전반적으로 여러 스타트업을 조사하며 느낀 점은, 페이팔의 인재 수준이 실리콘밸리의 다른 스타트업들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는 바로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강도’였던 것 같다. 피터 틸과 맥스 레브친은 둘 다 극도로 치열한 사람들이었다. 극한의 경쟁심, 엄청난 근면성, 그리고 절대로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 나는 이런 리더십이야말로 ‘표준 수준의 팀’을 진짜 위대한 성과를 내는 팀으로 끌어올리는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훗날 수많은 성취가 쏟아져 나오는 원천이 된다.”

팔란티어는 유난히 강도 높고 이상한 분위기의 회사였다. 팔란티어 공동 창업자인 스티븐 코헨(Stephen Cohen)과 처음 대화를 나눴던 날이 기억난다. 그의 사무실은 에어컨 온도가 섭씨 15도로 맞춰져 있었고, 방 안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낮추기 위한 이상한 장치들이 여러 개 놓여 있었으며, 컵에는 얼음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는 대화 내내 얼음 조각을 계속 씹어 먹었다(이렇게 하는 게 인지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팔란티어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알렉스 카프. 사진 중앙에 주황색 상의를 입은 사람이다. / 출처: IDFA Professionals
나는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알렉스 카프(Alex Karp)와도 면접을 봤고, 다른 경영진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카프는 정말 독특한 인물이다. 그와 나눈 대화를 여기서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의 스타일이 어떤지는 2012년 언론 인터뷰를 보면 잘 드러난다.

“나는 지원자에 대해 아무런 정보 없이 만나는 걸 좋아합니다. 이력서도, 사전 인터뷰도, 직무 설명도 없이, 오직 나와 지원자만 방 안에 있는 상황이죠. 그런 다음, 팔란티어에서 실제로 하게 될 일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꽤 무작위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 사람이 그 질문을 어떻게 분해하는지, 하나의 사안을 얼마나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지를 인식하고 있는지 관찰하죠. 면접은 되도록 짧게, 10분 이내로 끝내는 걸 선호합니다. 그 이상 길어지면 사람들은 외워 온 답변 모드로 들어가 버려서, 그 사람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 어려워지거든요.”

내 면접들 역시 종종 업무나 소프트웨어와는 무관한 이야기로 진행됐다. 한번은 면접을 보면서 비트켄슈타인에 대해서만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참고로 피터 틸과 알렉스 카프 모두 철학 전공자다. 당시 피터 틸의 강의 노트(CS183 Startup)가 막 공개된 시점이었는데, 그 둘은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르네 지라르(당시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지금은 클리셰가 된 인물) 등 다양한 주제를 논의하곤 했다.

지적 허영과 극단적 경쟁심이 결합한 분위기는 나에게 완벽하게 맞았다. 사실 지금도 그런 조합을 갖춘 회사를 찾기란 쉽지 않다. 많은 회사가 ‘하드코어 워크 컬처’나 ‘우리는 해병대다’ 같은 조직 문화를 흉내 내지만, 정작 그 안에 풍부한 사상과 아이디어가 흐르는 지적 분위기까지 갖춘 곳은 드물다. 이런 건 억지로 흉내 낼 수 없다. 창업자와 초기 구성원들이 실제로 지적으로 흥미로운 사람들이어야만 가능하다.

오늘날 이 조합을 제대로 갖춘 회사로 떠오르는 곳은 오픈AI와 앤트로픽 정도다. 이들이 인재들을 빨아들이는 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1]
 

전방 배치(Forward Deployed)


내가 입사했을 당시 팔란티어의 엔지니어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①고객과 직접 일하는 엔지니어. 흔히 FDE(Forward Deployed Engineer, 전방 배치 엔지니어)라고 불리는 그룹이다. ②핵심 제품 개발 팀(Product Development·PD)에서 일하는 엔지니어. 이들은 고객사를 방문하는 일이 거의 없다.

FDE는 일반적으로 주 3~4일 고객사 사무실로 출근해 일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즉, 엄청난 이동이 요구됐다. 실리콘밸리 기업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방식이었다.

이 모델에 대해 설명할 내용은 많지만, 핵심은 이렇다. 제조, 의료, 정보기관, 항공 우주 등 까다로운 산업의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직접 경험하며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스프트웨어를 설계하는 것이다. PD 엔지니어는 FDE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제품화(productize)하고, FDE들이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를 구축한다.

팔란티어의 대표 플랫폼 ‘파운드리(Foundry)’도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FDE들이 고객사 현장에 직접 가서 수많은 반복적이고 비효율적인 일을 수작업으로 처리했고, PD 엔지니어들은 그 작업을 자동화하는 도구를 개발했다.

예를 들어 SAP나 AWS에서 데이터를 불러와야 한다면, 마그리트(Magritte)라는 데이터 인제스천 툴이 있다. 데이터를 시각화해야 한다면, 클릭 한 번으로 가능한 컨투어(Contour) 툴이 있다. 빠르게 웹앱을 만들어야 한다면, 워크숍(Workshop)이라는 리툴(Retool) 스타일의 웹앱 제작 UI가 있다. 결국 이렇게 해서 ‘데이터를 통합하고 유용하게 만드는’ 매우 강력한 툴셋이 탄생했다.

당시만 해도 이 도구들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어서 이걸 고객에게 직접 제공한다는 발상은 매우 급진적으로 여겨졌지만, 그 결정이 지금 팔란티어 매출의 50퍼센트 이상을 견인하고 있다. 그게 바로 파운드리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팔란티어는 보기 드물게 서비스 기업에서 제품 기업으로 피봇에 성공한 사례다. 2016년까지만 해도 팔란티어를 실리콘밸리의서비스 회사라고 부르는 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2024년 현재 그런 평가는 완전히 맞지 않게 되었다.

팔란티어는 초기 현장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엔터프라이즈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는 수익 구조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2023년 기준으로 팔란티어의 매출 총이익률(gross margin)은 80퍼센트다. 전형적인 소프트웨어 기업 수준의 이익률이다. 참고로 액센츄어(Accenture)는 32퍼센트다.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Tyler Cowen)은 “맥락은 희소한 것이다(context is that which is scarce)”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이 모델의 핵심 통찰이 바로 여기에 있다(편집자 주: 코웬은 현대 미술 등 많은 문화 영역에서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맥락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객사가 필요로 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다). 스타트업 구루 스티브 블랭크(Steve Blank)가 “빌딩 밖으로 나가라(getting out of the building)”고 말했듯이, 고객사 현장에 직접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요구 사항 목록’을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일하는지를 암묵지로 포착하는 것이다.

팔란티어는 이 철학을 거의 종교적으로 믿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받으면, 다음 날 새벽 비행기를 예약해 이름도 처음 듣는 도시에 가는 일이 흔했다. 문화적으로 “일단 비행기부터 타고, 질문은 그다음에”가 기본값이었다. 이 때문에 출장비는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솟았고, 많은 직원이 ‘United 1K’ 같은 항공사 최상위 등급을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집요하고 강도 높은 학습 사이클이 10년 동안 이어졌고, 그 결과는 알다시피 충분히 값진 것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참여한 고객 프로젝트는 프랑스에 본사를 둔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Airbus)였다. 나는 프랑스 툴루즈로 이사해 1년 동안 에어버스 공장에서 현장 제조 인력들과 함께 주 4일씩 일했고, 그곳에 적용할 소프트웨어를 구축하는 일을 했다.

툴루즈에서의 첫 달, 나는 주말마다 도시를 빠져나올 수 없었다. 항공 관제사들이 매주 주말마다 파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프랑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였다(농담이다. 프랑스는 멋진 나라다. 그리고 에어버스 비행기는 정말 훌륭하다. 에어버스는 진정한 엔지니어 중심 기업이다. CEO는 언제나 항공 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이며, MBA 따위가 아니다. 뭐, 더 말은 않겠다).

에어버스 CEO는 우리에게 가장 큰 과제가 A350 기종의 생산 속도를 끌어올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한 소프트웨어를 만들게 되었다. 나는 이 시스템을 종종 “비행기를 만들기 위한 아사나(Asana)”라고 설명하곤 한다. 여러 시스템에 흩어져 있던 작업 지시, 누락 부품, 품질 이슈 데이터를 하나의 인터페이스에 통합했고, 거기서 작업 항목을 체크하고, 다른 팀이 뭘 하고 있는지, 부품은 어디에 있는지, 일정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과거의 품질 문제를 퍼지 검색(fuzzy search)이나 의미 기반 검색(semantic search)을 통해 찾아보고, 그것들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이 모든 기능은 겉보기에 단순한 소프트웨어 기능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가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렇게 모범 사례 UI를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효과를 냈다. 이 시스템은 A350 생산 속도를 4배나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고, 동시에 에어버스 특유의 높은 품질 기준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소프트웨어는 간단히 설명하기 어렵다. 단순한 데이터베이스도, 스프레드시트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소프트웨어는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엔드투엔드(end-to-end) 솔루션이었다. 범용성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우리 임무는 오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니까, 그다음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다음 일은 PD 팀의 몫이다. 그들은 우리가 만든 것을 다른 고객에게도 팔 수 있는 형태로 다듬는 일을 했다.
툴루즈의 A350 최종 조립 라인. 나는 이곳에서 대부분의 날들을 보냈다. 압도적인 현장이었다. / 출처: 나빌 쿠레시
FDE들은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는 코드를 작성하는 경향이 있다. 그 말은 곧 — 점잖게 표현하자면 — 기술적 부채(technical debt)와 임시방편적인 우회로(hacky workaround)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 PD 엔지니어들은 확장 가능하고,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고,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팔란티어의 핵심적인 ‘비밀’ 중 하나는, 지속적이고 깊이 있는 기업 가치를 창출하려면 이 둘이 모두 필요하다는 점이다.

FDE들은 대체로 고통에 대한 내성이 강하고, 다른 조직 내부에 깊이 파고들어 고객의 신뢰를 얻는 데 필요한 사회적·정치적 감각, 그리고 빠른 실행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고객이 ‘아, 이 사람들 진짜다’라고 느끼게 하려면, 일단 짧은 시간 안에 핵심 가치를 제공하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

다행히도 고객 대부분은 소프트웨어 외주 업체에 대한 기대치가 터무니없이 낮았다. 대부분 SAP 같은 솔루션을 도입하거나, 수년 단위의 ‘워터폴’ 방식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업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20대 초반의 어설픈 팀이 나타나, 1~2주 만에 실제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보여 주면 고객들은 깜짝 놀랐다.

이 양방향 모델(two-pronged model)은 매우 강력한 성장 엔진이었다. 고객사에 파견된 팀들은 대개 4~5명 규모의 소수 정예였고, 빠르고 자율적으로 움직였다. 이런 팀들이 여러 곳에 있었고, 모두가 빠르게 학습하고 있었다. 핵심 제품 팀은 이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주요 플랫폼을 만들었다.

우리가 어떤 조직 내부에서 실제로 일할 수 있는 허가를 받기만 하면, 이 모델은 대체로 아주 잘 작동했다. 문제는 대부분 정치적인 장벽이었다. 정부가 작동하지 않는 웹사이트 하나 만들겠다고 딜로이트에 1억 1000만 달러를 주는 장면이나, healthcare.gov 같은 대형 참사[2], 샌프란시스코 교육청이 급여 시스템 하나 구축하는 데 4000만 달러를 쓰고도 역시나 실패하는 사례를 볼 때마다, 우리는 실력이 정치에 패배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스페이스X와 나사(NASA)의 차이를 비교해 봐라. 또 하나의 사례다.

세상에는 더 많은 스페이스X와 팔란티어가 필요하다. 정치적 줄타기를 하거나 단편적인 솔루션을 만드는 게 아니라, 실행력과 결과로 차별화되는 회사들 말이다.
 

비밀


FDE들이 수행한 또 다른 핵심 업무는 ‘데이터 통합(data integration)’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지루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이 작업이야말로 팔란티어가 하는 일의 핵심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이 작업의 중요성은 오랜 기간 외부의 평가에서는 과소평가되어 왔다. AI 시대가 도래한 지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깨끗하고 정제된, 접근하기 쉬운 데이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있다. 참고로 AI 모델의 진짜 핵심은 바로 데이터셋이다.

간단히 말하면, ‘데이터 통합’이란 다음을 의미한다. ①기업 내부의 ‘데이터 소유자’들과 협의해 데이터 접근 권한을 확보하고 ②데이터를 사용 가능한 형태로 정제하거나 때로는 가공한 뒤 ③모든 사용자가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배치하는 것이다. 팔란티어의 주요 소프트웨어 플랫폼인 파운드리의 기반이 되는 소프트웨어 대부분은 이 과정을 더 쉽고 빠르게 만들기 위한 도구들로 구성되어 있다.

데이터 통합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데이터가 컴퓨터가 쉽게 분석할 수 없는 다양한 형식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PDF, 노트북 파일, 엑셀 파일(정말 셀 수 없이 많다) 등 온갖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진짜 걸림돌은 기술보다는 조직 내부의 정치인 경우가 많다. 특정 팀이나 부서가 핵심 데이터 소스를 통제하고 있는데, 이들이 조직 내에서 존재 가치를 입증하는 방식이 바로 그 데이터의 ‘문지기(gatekeeper)’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종종 해당 데이터를 분석해 제공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데이터 접근 권한을 독점함으로써 조직 내 위상을 유지한다.

이런 정치적 장벽은 만만치 않은 장애물이 되는데, 때로는 웃지 못할 상황을 낳기도 했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가 8~12주짜리 파일럿 프로젝트를 발주했는데, 우리는 그 시간의 대부분을 오직 데이터 접근 권한을 얻는 데 써버렸다. 마지막 주가 되어서야 겨우 시연용 결과물을 허둥지둥하며 만들 수 있었다.

팔란티어가 일찍이 간파한 또 다른 ‘비밀’은, 데이터 접근을 둘러싼 갈등이 단순한 권한 다툼이 아니라 실제 보안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많다는 점이었다. 팔란티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플랫폼의 데이터 통합 계층 전반에 보안 통제를 내장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 접근 방식은 역할 기반 접근 제어(RBAC), 행 단위 정책(row-level policies), 보안 등급 표시(security markings), 감사 추적(audit trails) 등 수많은 보안 기능을 포함한다. 이 분야에서 팔란티어는 여전히 다른 기업들이 따라잡지 못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팔란티어를 도입하면 데이터 보안이 약화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강화되는 경우가 많았다.[3]
 

문화


회사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이라기보다는 메시아적 컬트에 가까웠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비판이 매우 관대하게 받아들여졌고 오히려 환영받았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막 입사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디렉터와 이메일로 공개적으로 논쟁을 벌인 기록을 보여 준 적이 있다. 메일 수신자에는 1000명쯤 되는 회사 전체가 참조로 걸려 있었다.

합리주의적 사고를 가진 철학 전공자로서, 나에게는 이 점이 매우 중요했다. 나는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맹목적인 컬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안에서 소프트웨어가 존재론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문제를 두고 논쟁하길 주저하지 않는 회의주의자들의 컬트라면, 그건 충분히 흥미로운 곳이었다.[4]

지금도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근무할 당시에는 입사자에게 책 몇 권을 보내 줬다. 《즉흥연기(Impro)》, 《문명전쟁(The Looming Tower)》(9·11 관련 책), 《Interviewing Users》, 《끝도 없는 일 깔끔하게 해치우기(Getting Things Done)》. 나는 여기에 더해, 훗날 《원칙(Principles)》으로 출간된 레이 달리오 원고의 초창기 PDF 버전도 받았다. 이 세트는 회사의 문화를 암시했다.

《문명전쟁》을 보내 준 이유는 명확했다. 회사 자체가 9·11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설립된 측면이 있었고, 피터 틸은 이후 필연적으로 벌어질 시민 자유 침해를 우려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팔란티어의 창업 맥락을 이해하는 데 유용했다. 하지만, 《즉흥연기》는 왜 줬을까?

성공적인 FDE가 되려면 사회적 맥락에 대한 비범한 감수성이 필요했다. 사실상 FDE가 해야 할 일은 기업 또는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그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었는데, 이건 대개 정치적 게임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즉흥연기》는 그런 게임을 이해하는 데 유용했다. 이 책은 ‘너드’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사회적 행동을 메커니즘적으로 해부해 설명하기 때문이다. 팔란티어 내부의 언어는 즉흥연기식(Impro-isms) 표현으로 가득했는데, 예를 들어 ‘캐스팅(casting)’이라는 표현이 그중 하나였다.

저자 키스 존스톤(Keith Johnstone)은 같은 배우라도 신체 동작의 몇 가지 요소만 바꾸면 고지위(high status)나 저지위(low status) 역할을 모두 연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말할 때 머리를 고정하고 있으면 고지위,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면 저지위로 보인다. 등을 곧게 펴고 손을 드러낸 채 서 있으면 고지위, 구부정하게 서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으면 저지위로 해석된다. 그 외에도 다양한 신호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모르고서는 고객 현장에서 성공하기 어려웠고, 그렇다는 것은 곧 고객 데이터를 통합하지 못하고, 그들이 우리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었으며, 그 말은 실패를 의미했다.

이것이 바로 전직 FDE들이 훌륭한 창업자가 되는 이유다. 실제로 와이콤비네이터(Y-Combinator)의 각 기수에는 구글 출신보다 팔란티어 출신 창업자가 더 많다. 구글 직원 수가 팔란티어보다 50배쯤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훌륭한 창업자는 공간의 분위기, 집단의 역학, 권력 구조를 직관적으로 읽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건 창업 관련 글이나 조언에서 흔히 언급되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능력이다. 성공적인 창업이란 결국 끝없이 이어지는 협상 속에서, 전체적으로 우위를 점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채용, 영업, 투자 유치, 이 모든 것은 결국 협상이다. 그리고 인간 행동에 대한 본능적 감각 없이는 훌륭한 협상가가 되기 어렵다. 이것이 바로 팔란티어가 FDE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며, 실리콘밸리의 다른 테크 기업들에서는 배우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FDE는 이해력이 뛰어난 사람이어야 한다. 고객의 언어를 얼마나 빨리 익히고, 그들의 비즈니스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얼마나 깊이 파고들 수 있는지가 성과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병원과 함께 일할 경우, 단순히 “의료 서비스를 개선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병상 운영(capacity management)’이나 ‘환자 처리량(patient throughput)’ 같은 정확한 용어로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약 개발, 건강 보험, 생물정보학, 암 면역 치료 등도 마찬가지다. 각 분야에는 고유한 전문 용어가 있다. 성과를 내는 사람들은 대개 그 언어를 빠르게 습득한다.

타일러 코웬의 책 《Talent》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통찰 중 하나는, 가장 재능 있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어휘와 밈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이 어휘와 밈은 그들이 구축한 지적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한다. 타일러 본인부터가 대표적 사례다. 그의 블로그 ‘Marginal Revolution’ 독자라면 누구나 10개 이상의 ‘타일러리즘(Tylerism)’을 말할 수 있다. 예컨대 “이 문제를 모델링해 봐라(model this)”, “맥락은 희소한 것이다(context is that which is scarce)”, “균형점을 찾아라(solve for the equilibrium)”, “위대한 정체(the great stagnation)” 등이 그렇다.

이런 능력을 지닌 이들은 더 있다. 피터 틸이 그렇고, 일론 머스크도 그렇다. 예컨대 “다행성 종족(multiplanetary species)”, “의식의 빛을 보존하라(preserving the light of consciousness)” 같은 표현들은 모두 일론이 만든 밈이다. 트럼프, 유드코스키(Eliezer Yudkowsky), 그웬(gwern), SSC(Slate Star Codex), 폴 그레이엄(Paul Graham) 등도 밈을 자주 창조하는 인물이다. 이런 밈 창출 능력은 ‘영향력’을 측정하는 훌륭한 지표이기도 하다.

이 통찰은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팔란티어 역시 방대한 자체 용어 체계를 갖고 있었고, 그중 일부는 너무도 난해해서 “팔란티어는 대체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가?”라는 온라인 밈이 생겨날 정도였다. 예를 들어 ‘온톨로지(ontology)’는 잘 알려진 용어지만, 그 외에도 ‘impl’, ‘아티스트 콜로니(artist’s colony)’, ‘복리(compounding)’, ‘36개의 방(the 36 chambers)’, ‘도트(dots)’, ‘고통의 대사화(metabolizing pain)’, ‘감마 방사선(gamma radiation)’ 등 수많은 표현이 있었다.

이 용어 하나하나는 저마다 복잡하고 방대한 통찰을 압축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 모든 뜻을 일일이 설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이렇다. 만약 당신이 새로운 회사를 찾고 있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흥미롭게 만들어 주는 풍부한 내부 언어나 사유의 어휘를 가진 조직이야말로, 충분히 합류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페이팔 공동 창업자 피터 틸(왼쪽)과 일론 머스크. 2000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 있는 페이팔 본사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 사진: 폴 사쿠마
팔란티어 하면 대부분 피터 틸을 떠올리지만, 이런 용어 중 다수는 초창기 직원들, 특히 현재 CTO인 샴 산카르(Shyam Sankar)에게서 비롯되었다. 물론 피터 틸은 내가 근무하던 시기에는 회사 운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지만, 팔란티어의 조직 문화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팔란티어 공동 창업자 조 론스데일(Joe Lonsdale)이 작성한 문서가 있는데, 원래는 내부 문서였지만 어느 시점에 외부에 공개되었고, 회사가 지향하는 문화적 원칙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 준다.

피터 틸에게서 비롯된 아이디어 중 하나는 직함(title)을 부여하지 않는 문화였다. 내가 회사에 있을 당시, 거의 모든 사람이 ‘FDE’라는 같은 직함을 달고 있었다. 그 외에는 대여섯 명의 디렉터, 그리고 CEO가 있을 뿐이었다.

간혹 별도의 직함을 자의적으로 붙이는 사람도 있었는데, — 어떤 사람은 자신을 ‘특수 상황 책임자(Head of Special Situations)’라고 불렀는데, 정말 웃겼다. — 이런 식의 직함이 조직 내에서 유행처럼 번지지는 않았다. 이런 방식은 피터의 지라르주의적(Girardian) 세계관과 맞닿아 있었다. 직함을 부여하면 사람들이 그것을 욕망하게 되고, 내부에서 경쟁적 정치가 벌어져 조직의 결속을 해친다는 논리였다. 차라리 모든 사람에게 같은 직함을 부여해서 목표에 집중하도록 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다.

‘수평적 조직(flat hierarchy)’에 대한 비판은 많다. 그중에서도 《구조 없음의 폭정(The Tyranny of Structurelessness)》이 특히 유명하다. 실제로 현대 스타트업들 사이에서 수평적 조직 개념은 한물간 것으로 여겨진다. 이제는 창업 초기에조차 CEO, COO, VP, ‘창립 엔지니어(Founding Engineer)’ 같은 직함을 부여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내 경험상 팔란티어에서는 수평 구조가 꽤 잘 작동했다. 물론 사람마다 영향력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 영향력은 대개 뛰어난 실적에서 비롯되었고, 중요한 것은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영향력 있는 인물이 내 아이디어가 형편없다고 생각해도 상관없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를 무시하고 그냥 만들어 버릴 수 있었다.

게다가 이런 태도가 조직 문화적으로 존중받았다. 예를 들어 어떤 엔지니어가 디렉터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결과적으로 핵심 인프라가 된 사례가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사내에서 모범 사례로 여겨졌다.

이러한 조직 문화의 대가도 분명 존재했다. 회사는 때때로 명확한 전략이나 방향성이 없는 것처럼 보였고, 똑똑한 사람들이 각자 작은 영지를 구축한 뒤 각기 제멋대로 움직이는 페트리 접시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혼란은 엄청난 창조성을 낳았다. 팔란티어에서 얼마나 많은 참신한 UI 개념과 아이디어가 나왔는지는 과소평가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만이 이제야 팔란티어 밖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구현되고 있다. 예컨대 Hex, Retool, Airflow 같은 도구들에는 팔란티어 내부에서 최초로 개발된 구성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지금 팔란티어는 AI 분야에서도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대기업 환경에서 대형 언어 모델(LLM)을 배포하기 위한 툴링(tooling)은 매우 강력하게 구축돼 있다.

‘직함 없는 문화’는 또 다른 효과도 낳았다. 사내에서 누가 영향력 있는 인물인지가 시시각각 바뀌었다. 모두가 같은 직함을 달고 있으니, 영향력을 판단하는 기준은 “이 사람이 지금 어느 디렉터와 가까운가”, “지금 중요한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가” 같은 비공식적 신호들이었다. “저 사람은 VP다” 같은 명확한 기준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사내 평판은 영웅과 얼간이 사이를 오가는 롤러코스터처럼 급변했다. 어떤 이는 한동안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다가도, 어느 순간 어떤 프로젝트에도 관여하지 않은 채 사라지듯 보이지 않게 되곤 했다. 그 이유는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배트맨을 부르는 신호(Bat-signals)


피터 틸로부터 비롯된 또 하나의 개념은 ‘인재 배트 시그널(talent bat-signal)’이다. 이제는 나도 회사를 창업해 — 현재는 스텔스 모드로 운영 중이다. — 이 개념의 중요성을 훨씬 더 절감하고 있다. 좋은 사람을 채용하는 건 정말 어렵다. 좋은 사람을 뽑으려면 차별화된 인재 공급원이 필요하다.

매년 스탠퍼드대학교 출신 컴퓨터공학과 졸업생 풀(pool)을 두고 페이스북, 구글과 경쟁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결국 필요한 건 두 가지다. 첫째, 다른 회사가 아닌 바로 우리 회사와 함께하길 원하는 인재 집단. 둘째, 그들에게 대규모로 도달할 방법. 팔란티어는 두 조건을 충족하는 차별화된 리크루팅 원천을 몇 가지 보유하고 있었다.

첫째, 지금이야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흔치 않았던 국방·정보 분야에 호의적인 사람들이 팔란티어에 모였다. 예를 들어 미국 중서부나 공화당 지지 지역 출신의 똑똑한 엔지니어들이다. 또한 미국을 위해 봉사하길 원하면서도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일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전직 군인, CIA·NSA 출신 인재들도 많았다.

내가 팔란티어에 출근한 첫날, 온보딩 세션에 나 말고도 나보다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팔란티어에 오기 전에는 뭘 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무표정하게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CIA에서 15년 일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소개받은 나의 첫 리드(lead)는 놀랍게도 오하이오주에서 SWAT 경찰로 근무했던 육군 참전 용사였다.

이런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그들 중 상당수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구글 같은 데에는 가지 않았다. 팔란티어는 이들이 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등대였다. 회사는 공개적으로 군을 지지하고, 애국심을 강조하며, 당시로선 유행과는 한참 동떨어진 메시지를 확고히 냈다. 이런 태도가 매우 효과적이고 독보적인 ‘배트 시그널’이 됐다. 요즘은 안두릴(Anduril)을 비롯한 수많은 방산 및 제조 스타트업이 그 역할을 나눠 맡고 있지만 말이다.[5]

둘째, 팔란티어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이상한’ 사람이어야 했다. 초기의 과도한 관심이 식은 뒤, 특히 트럼프 1기 때처럼 회사가 ‘왕따(pariah)’ 취급을 받던 시절엔 더욱 그랬다. 당시 팔란티어는 ‘미션 중심(mission-focused)’이라는 공격적인 브랜딩을 내세웠고, 장시간 근무, 시장보다 낮은 연봉, 잦은 출장 등 불리한 조건을 숨기지 않았다. 당시 우리는 정부와 협업한다는 이유로 실리콘밸리의 채용 박람회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이 모든 조건은 결국 특정한 유형의 사람을 골라냈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나쁜 뉴스에 몇 개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다.
 

도덕성


도덕성 문제는 언제나 흥미롭다. 팔란티어는 서방 진영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는데, 나도 대체로 그 입장에 동의한다. 나는 중국 공산당이나 러시아 중심의 세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지금 세계는 바로 그 갈림길에 서 있다. 자유 국가에 살면서 자유 국가를 비판하는 건 쉽다. 하지만 그 대안을 실제로 경험해 본 사람에게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억압적인 나라에서 몇 년을 보냈다. 그래서 나는 군이 하는 일 중 일부에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회사가 군대와 협력하는 것 자체에는 반감을 갖지 않았다.
전쟁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팔란티어의 고담(Gotham). 고담은 미국 국방, 정보기관이 사용하는 데이터 분석 플랫폼이다. 고담 소개 페이지의 광고 문구는 다음과 같다. “Your software is the weapons system(당신의 소프트웨어가 곧 무기 체계입니다).”
하지만 군대가 나쁜 일을 저지를 때도 있지 않냐고? 물론이다. 나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했었다. 바로 여기에 핵심이 있다. 팔란티어에서 일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100퍼센트 선하지도, 100퍼센트 악하지도 않았다. 때로는 내가 동의하지 않는 목표를 가진 기관을 돕기도 했지만, 정부가 벌이는 많은 공익적 활동에 형편없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해 효율을 높이기도 했다. 그건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다.

도덕성 문제를 명확히 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은, 회사가 수행하는 업무를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보는 것이다. 이 범주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일단 이렇게 생각해 보자.

1.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영역: 페덱스, 약국 체인인 CVS, 금융사, 일반 기술 기업 등에서 수행하는 일반적인 기업 업무. 일부 사람은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지만, 대체로 사회 전반에서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활동이다.

2. 명백히 선한 영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함께한 팬데믹 대응 업무, 실종학대아동방지센터(NCMEC)와 함께한 아동 포르노 근절 프로젝트 같은 것들. 대부분의 사람이 사회적으로 분명히 옳고 필요한 일이라고 평가할 만한 활동이다.

3. 회색 지대: 도덕적으로 까다롭고 어려운 결정이 필요한 영역이다. 예를 들어 건강 보험, 이민 단속, 석유 회사, 군, 정보기관, 경찰, 범죄 대응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모든 엔지니어는 선택에 직면한다. 예컨대 구글 검색이나 페이스북 뉴스 피드 같은 것들에 관여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은 대체로 약간은 좋은 일로 여겨지며, 기본적으로는 1번 범주(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일반 기업 업무)에 속한다. 혹은 자선 단체인 기브다이렉틀리(GiveDirectly)나 오픈필란트로피(OpenPhilanthropy) 같은 2번 범주(명백히 선한 일)에 해당하는 일을 할 수도 있다.

팔란티어를 둘러싼 핵심적인 비판은 이런 식이었다. “3번 범주에 속한 일은 애초에 손대지 말아야 한다. 그 일은 때때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결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2016년부터 2020년 사이에 진행된 이민 단속 업무가 대표적인 예인데, 많은 사람이 불편함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3번 범주를 완전히 외면하고 아예 손을 떼는 것은 일종의 책임 회피라고 생각한다. 3번 범주의 기관들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미국은 총을 든 사람들이 지키고 있고, 경찰은 법을 집행해야 한다. 경찰의 일부 행위에 도덕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자기 집에 도둑이 들면 주저 없이 경찰을 부른다. 석유 회사는 에너지를 공급해야 하고, 건강 보험사는 끊임없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물론 이 모든 일에는 꺼림칙한 면이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런 기관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그들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옳을까?

나는 3번 범주에 속한 고객들과 협력해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정답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사례마다 다르다. 팔란티어의 입장은 대략 이렇다. “우리는 명백히 악한 조직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3번 범주 조직과 협력할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민주적 절차가 그들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예를 들어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관련해서는, 트럼프 1기 시절 추방 집행 부서(ERO)와의 협력은 중단했지만, 국토안보수사국(HSI)과의 협업은 유지했다. 팔란티어는 대부분의 3번 범주 조직들과 협력했는데, 이들 기관이 비판받을 만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세상에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말할 수 없지만, 팔란티어 소프트웨어는 실제로 여러 건의 테러 공격을 막는 데 기여했다. 나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입장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입장은 많은 사람에게 불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100퍼센트 선한 일을 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의 판단이 역사의 흐름에 맡겨지는 셈이고, 우리는 다음 두 가지에 베팅하게 된다. 첫째, 결과적으로 선이 악보다 더 많이 실현될 것이라는 믿음. 둘째,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이 자리를 비우는 것보다 낫다는 믿음. 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다른 선택을 했다.

물론 이 입장에는 분명한 위험이 따른다. 권력 구조가 원하는 일을 정당화하는 만능 논리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기존 시스템을 단지 확대 재생산하는 역할에 그치게 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사안별 판단’이다. 보편적인 정답은 없다.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따져야 한다. 나 개인적으로는 팔란티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의료 및 바이오 관련 프로젝트에 쏟았고, 그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테러를 막은 동료들, 팬데믹 당시 의약품 배급을 맡았던 동료들 역시 자신들의 역할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요즘은 분위기가 바뀌어서 이처럼 ‘까다로운’ 영역에서 일하는 것이 오히려 유행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기술자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이다. AI가 대표적인 예다. 많은 사람이 AI 도입이 가져올 부정적 결과에 불편함을 느낀다. AI는 해킹에 사용될 수도 있고, 딥페이크는 세상을 더 나쁘게 만들 수도 있고, 일자리를 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AI는 엄청난 이익도 제공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앤트로픽 CEO인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가 최근 글에서 잘 설명한 바 있다.

팔란티어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AI에 관여하는 일은 100퍼센트 선도 아니고, 100퍼센트 악도 아니다. AI에 손을 놓고 관여하지 않거나, 혹은 ‘멈추자’라고 외치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오픈AI나 앤트로픽에서 일하지 않더라도 AI 관련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 영역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
 
명확한 영역도 있다. AI 모델 평가 도구(evals)를 만들거나, 정렬 문제(alignment)에 집중하거나, 사회적 회복력 강화(societal resilience)에 기여하는 것 등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회색 지대’ 또한 개입할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정부의 AI 정책에 참여하거나, AI를 헬스케어나 공공 분야에 도입하는 일이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뛰어들어야 한다.[6]

오늘날 AI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떠올려 보면, 거의 예외 없이 ‘그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AI 연구소, 정부, 또는 주요 싱크탱크 등에서 말이다. 나는 밖에서 훈수나 두는 사람이 아니라, 그 방 안에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그 방 안에 있다는 것은 어려운 결정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설령 나중에 그 방을 나와 경고를 울리게 되더라도, 일이 벌어지는 순간에는 방 안에 있는 것이 낫다.
 

다음은?


나는 여전히 팔란티어에 대해 낙관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번 AI 사이클에서 진정한 생산성의 도약은, AI가 오늘날의 대기업과 산업 전반에 실질적인 레버리지를 제공할 때 비로소 본격화할 것이다. 제조, 국방, 물류, 헬스케어 등과 같은 산업이 주요 무대가 될 것이다. 팔란티어는 지난 10년간 이런 산업의 기업들과 함께 일해 왔다.

앞으로 AI 에이전트들이 핵심 비즈니스 업무 흐름의 많은 부분을 주도하게 될 것이고, 이 에이전트들은 중요한 비즈니스 데이터에 대한 읽기·쓰기 접근 권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난 10년간 기업 데이터를 통합해 온 경험은, 기업에 AI를 실질적으로 배치하는 데 결정적 기반이 된다. 기회는 엄청나다.

그리고 나는 지금, 오랫동안 품어 왔던 계획을 실행에 옮겨 새로운 회사를 시작하려 한다. 정부와 관련된 요소도 포함될 예정이다. 팀은 훌륭하다. 아, 지금 채용도 하고 있다. 우리는 가끔 비트켄슈타인 이야기도 나눈다.
[1]
오픈AI와 팔란티어 모두, 겉으로는 뚜렷한 성과 없이도 수년간 자금을 대줄 만큼 신념이 깊은 부유한 후원자들의 지원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 각각 일론 머스크와 YC 리서치, 그리고 피터 틸이 그 후원자였다. 팔란티어는 수년간 정부 시장에서 고전하며 실질적인 성과를 거의 내지 못했고, ‘린 스타트업’이란 개념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오픈AI 역시 언어 모델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최소한 화제성 면에서는 딥마인드(DeepMind)에 밀리는 상태가 몇 년간 이어졌다.

샘 올트먼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오픈AI는 와이콤비네이터에서 내가 했던 조언과 정반대의 선택을 했어요. 우리는 첫 제품을 내놓기까지 4년 반이 걸렸고, 실리콘밸리 역사상 가장 자본 집약적인 스타트업이 될 거라고 했습니다. 고객이 누구일지, 어떤 용도로 이 기술을 쓰게 될지도 모른 채 기술을 만들고 있었죠.”

올트먼은 어느 토요일, 이런 트윗을 남기기도 했다.

“챗GPT는 소셜 기능도 없고, 공유 기능도 없고, 사용하려면 먼저 가입부터 해야 하며, 바이럴 루프도 없습니다. 내가 지난 수년간 스타트업에 해온 조언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됩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통찰이 있다. 회사를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시민의 자유’나 ‘AI 신’처럼 더 큰 목표에 기반해 설계하면, 초기에 진정한 신봉자들이 몰려든다.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 낸 강력하고 생산적인 지적 문화는 훗날 회사가 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된다.

다만 이런 모델은 재현하기 매우 어렵다. 비전 있는 억만장자, 그리고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산업 분야라는 두 요소가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2015년에 AI/ML은 ‘핫’하지 않았고, 2003년의 정부 기술(govtech) 역시 마찬가지였다.
[2]
편집자 주: 2013년에 벌어진 일이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오바마케어 공식 웹사이트(HealthCare.gov)를 열고 국민이 건강 보험에 가입하도록 했다. 웹사이트 구축과 운영은 미국 보건복지부(HHS) 산하의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서비스 센터(CMS)가 맡았다. 그런데 사이트가 개통되자마자 시스템이 먹통이 됐다. 서비스 첫날 건강 보험에 실제 가입한 사람은 단 6명에 불과했다. 이 사태를 조사한 여러 전문가들은, 실패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기초적인 프로젝트 관리 역량의 부재를 지목했다.
[3]
덧붙이자면, 언론에서는 팔란티어를 종종 ‘데이터 회사’로 분류하거나, 더 나아가 ‘데이터 마이닝 회사’ 같은 식으로 묘사하곤 했다. 내가 보기엔 이는 언론의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팔란티어가 하는 일은 기업을 위한 데이터 통합(data integration)이지, 데이터를 소유하거나 채굴하는 게 아니다. 데이터의 소유권은 전적으로 고객사에 있으며, 팔란티어는 이를 갖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데이터 마이닝’이라고 하면, 타인의 데이터를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거나 판매하는 행위를 뜻한다. 팔란티어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고객사의 데이터는 고객사에 남는다.
[4]
애널리스트 바인 호바트(Byrne Hobart)는 팔란티어에 대한 탁월한 분석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컬트’라는 말은 사실, 시세보다 낮은 연봉을 주면서도 평균 이상으로 직원들을 오래 붙잡아 두는 능력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 말은 일리가 있다. 팔란티어는 시장보다 낮은 급여를 지급했고, 5년 이상 재직하는 경우가 흔했다.

물론, 초기 직원들은 결과적으로 매우 잘됐다. 주식 가치 덕분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될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특히 어려웠던 시기에는, 우리 대부분이 자신이 보유한 지분의 가치를 마음속으로 이미 0으로 ‘상각’해 버린 상태였다.

기억에 또렷이 남는 장면이 있다. 회사에서 나눠 준 ‘당신의 지분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를 설명하는 소책자가 있었는데, 거기엔 회사의 기업 가치가 1000억 달러일 경우의 주식 가치가 적혀 있었다. 우리 중 몇 명은 그 오만함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회사의 시가 총액은 974억 달러다(편집자 주: 이 글은 2024년 10월 16일 최초 발행됐다. 8개월이 지난 2025년 6월 20일 현재 팔란티어의 시총은 3300억 달러다).
[5]
참고로, 팔란티어는 그 당시에도 흔히 말하는 우파 성향의 ‘반(反)깨어 있음(woke)’ 성지 같은 곳은 아니었다. 물론, 이념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속한 사람도 있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대다수 동료들은 평범한 중도 성향의 사람들이었다.
[6]
AI 안전 분야에서 폴 크리스티아노(Paul Christiano)는 이 점을 잘 보여 주는 사례다. 그는 정부에 들어가 현재 미국 AI 안전 센터(US AI Safety Center)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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