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알렉스 카프(Alex Karp)와도 면접을 봤고, 다른 경영진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카프는 정말 독특한 인물이다. 그와 나눈 대화를 여기서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의 스타일이 어떤지는 2012년 언론 인터뷰를 보면 잘 드러난다.
“나는 지원자에 대해 아무런 정보 없이 만나는 걸 좋아합니다. 이력서도, 사전 인터뷰도, 직무 설명도 없이, 오직 나와 지원자만 방 안에 있는 상황이죠. 그런 다음, 팔란티어에서 실제로 하게 될 일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꽤 무작위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 사람이 그 질문을 어떻게 분해하는지, 하나의 사안을 얼마나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지를 인식하고 있는지 관찰하죠. 면접은 되도록 짧게, 10분 이내로 끝내는 걸 선호합니다. 그 이상 길어지면 사람들은 외워 온 답변 모드로 들어가 버려서, 그 사람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 어려워지거든요.”
내 면접들 역시 종종 업무나 소프트웨어와는 무관한 이야기로 진행됐다. 한번은 면접을 보면서 비트켄슈타인에 대해서만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참고로 피터 틸과 알렉스 카프 모두 철학 전공자다. 당시 피터 틸의
강의 노트(CS183 Startup)가 막 공개된 시점이었는데, 그 둘은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르네 지라르(당시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지금은 클리셰가 된 인물) 등 다양한 주제를 논의하곤 했다.
지적 허영과 극단적 경쟁심이 결합한 분위기는 나에게 완벽하게 맞았다. 사실 지금도 그런 조합을 갖춘 회사를 찾기란 쉽지 않다. 많은 회사가 ‘하드코어 워크 컬처’나 ‘우리는 해병대다’ 같은 조직 문화를 흉내 내지만, 정작 그 안에 풍부한 사상과 아이디어가 흐르는 지적 분위기까지 갖춘 곳은 드물다. 이런 건 억지로 흉내 낼 수 없다. 창업자와 초기 구성원들이 실제로 지적으로 흥미로운 사람들이어야만 가능하다.
오늘날 이 조합을 제대로 갖춘 회사로 떠오르는 곳은 오픈AI와 앤트로픽 정도다. 이들이 인재들을 빨아들이는 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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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 배치(Forward Deployed)
내가 입사했을 당시 팔란티어의 엔지니어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①고객과 직접 일하는 엔지니어. 흔히 FDE(Forward Deployed Engineer, 전방 배치 엔지니어)라고 불리는 그룹이다. ②핵심 제품 개발 팀(Product Development·PD)에서 일하는 엔지니어. 이들은 고객사를 방문하는 일이 거의 없다.
FDE는 일반적으로 주 3~4일 고객사 사무실로 출근해 일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즉, 엄청난 이동이 요구됐다. 실리콘밸리 기업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방식이었다.
이 모델에 대해 설명할 내용은 많지만, 핵심은 이렇다. 제조, 의료, 정보기관, 항공 우주 등 까다로운 산업의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직접 경험하며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스프트웨어를 설계하는 것이다. PD 엔지니어는 FDE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제품화(productize)하고, FDE들이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를 구축한다.
팔란티어의 대표 플랫폼 ‘파운드리(Foundry)’도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FDE들이 고객사 현장에 직접 가서 수많은 반복적이고 비효율적인 일을 수작업으로 처리했고, PD 엔지니어들은 그 작업을 자동화하는 도구를 개발했다.
예를 들어 SAP나 AWS에서 데이터를 불러와야 한다면, 마그리트(Magritte)라는 데이터 인제스천 툴이 있다. 데이터를 시각화해야 한다면, 클릭 한 번으로 가능한 컨투어(Contour) 툴이 있다. 빠르게 웹앱을 만들어야 한다면, 워크숍(Workshop)이라는 리툴(Retool) 스타일의 웹앱 제작 UI가 있다. 결국 이렇게 해서 ‘데이터를 통합하고 유용하게 만드는’ 매우 강력한 툴셋이 탄생했다.
당시만 해도 이 도구들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어서 이걸 고객에게 직접 제공한다는 발상은 매우 급진적으로 여겨졌지만, 그 결정이 지금 팔란티어 매출의 50퍼센트 이상을 견인하고 있다. 그게 바로 파운드리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팔란티어는 보기 드물게 서비스 기업에서 제품 기업으로 피봇에 성공한 사례다. 2016년까지만 해도 팔란티어를 실리콘밸리의서비스 회사라고 부르는 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2024년 현재 그런 평가는 완전히 맞지 않게 되었다.
팔란티어는 초기 현장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엔터프라이즈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는 수익 구조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2023년 기준으로 팔란티어의 매출 총이익률(gross margin)은 80퍼센트다. 전형적인 소프트웨어 기업 수준의 이익률이다. 참고로 액센츄어(Accenture)는 32퍼센트다.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Tyler Cowen)은 “맥락은 희소한 것이다(context is that which is scarce)”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이 모델의 핵심 통찰이 바로 여기에 있다(편집자 주: 코웬은 현대 미술 등 많은 문화 영역에서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맥락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객사가 필요로 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다). 스타트업 구루 스티브 블랭크(Steve Blank)가 “빌딩 밖으로 나가라(getting out of the building)”고 말했듯이, 고객사 현장에 직접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요구 사항 목록’을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일하는지를 암묵지로 포착하는 것이다.
팔란티어는 이 철학을 거의 종교적으로 믿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받으면, 다음 날 새벽 비행기를 예약해 이름도 처음 듣는 도시에 가는 일이 흔했다. 문화적으로 “일단 비행기부터 타고, 질문은 그다음에”가 기본값이었다. 이 때문에 출장비는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솟았고, 많은 직원이 ‘United 1K’ 같은 항공사 최상위 등급을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집요하고 강도 높은 학습 사이클이 10년 동안 이어졌고, 그 결과는 알다시피 충분히 값진 것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참여한 고객 프로젝트는 프랑스에 본사를 둔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Airbus)였다. 나는 프랑스 툴루즈로 이사해 1년 동안 에어버스 공장에서 현장 제조 인력들과 함께 주 4일씩 일했고, 그곳에 적용할 소프트웨어를 구축하는 일을 했다.
툴루즈에서의 첫 달, 나는 주말마다 도시를 빠져나올 수 없었다. 항공 관제사들이 매주 주말마다 파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프랑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였다(농담이다. 프랑스는 멋진 나라다. 그리고 에어버스 비행기는 정말 훌륭하다. 에어버스는 진정한 엔지니어 중심 기업이다. CEO는 언제나 항공 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이며, MBA 따위가 아니다. 뭐, 더 말은 않겠다).
에어버스 CEO는 우리에게 가장 큰 과제가 A350 기종의 생산 속도를 끌어올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한 소프트웨어를 만들게 되었다. 나는 이 시스템을 종종 “비행기를 만들기 위한 아사나(Asana)”라고 설명하곤 한다. 여러 시스템에 흩어져 있던 작업 지시, 누락 부품, 품질 이슈 데이터를 하나의 인터페이스에 통합했고, 거기서 작업 항목을 체크하고, 다른 팀이 뭘 하고 있는지, 부품은 어디에 있는지, 일정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과거의 품질 문제를 퍼지 검색(fuzzy search)이나 의미 기반 검색(semantic search)을 통해 찾아보고, 그것들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이 모든 기능은 겉보기에 단순한 소프트웨어 기능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가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렇게 모범 사례 UI를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효과를 냈다. 이 시스템은 A350 생산 속도를 4배나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고, 동시에 에어버스 특유의 높은 품질 기준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소프트웨어는 간단히 설명하기 어렵다. 단순한 데이터베이스도, 스프레드시트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소프트웨어는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엔드투엔드(end-to-end) 솔루션이었다. 범용성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우리 임무는 오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니까, 그다음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다음 일은 PD 팀의 몫이다. 그들은 우리가 만든 것을 다른 고객에게도 팔 수 있는 형태로 다듬는 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