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출범한 뒤 우리나라 언론은 연일 치솟았던 코스피 지수에 주목했죠. 하지만 외신은 좀 달랐습니다. 새롭게 들어선 진보 정부가 대북 관계를 어떻게 풀어 갈 것인지에 더 주목했죠. 한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 따라 전 세계 지정학적 힘의 균형에 의미 있는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좋았습니다. 우리가 먼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면서 북한도 대남 방송을 중단했습니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접경지 지역 주민들에게는 하늘이 다시 열리는 일입니다. 아파트 층간 소음에도 마음이 무너지고 이성을 잃습니다. 하물며 24시간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귀신 소리, 동물이 우짖는 소리는 삶을 파괴합니다.
그런데 시작만 좋았습니다. 삐끗했습니다. 이번에는 정부가 삐끗한 것이 아니라 한 민간단체가 일을 냈습니다. 북한으로 전단을 살포한 겁니다.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는 이걸 표현의 자유로 봤습니다. 2023년 헌법재판소가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이 과도한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던 것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취지는 그냥 놔두라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의 행정력, 경찰력 등을 통해 제지할 수 있으나 법으로 처벌까지 하는 것은 과하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당시 통일부는
그냥 놔두기로 했습니다.
새 정부는 입장이 다릅니다. 전단 살포 계획이 알려지자, 대통령이 직접 나서 중단을 요청했습니다. 그래도 이 단체는 전단을 날려 보냈습니다. 결국 정부는 처벌을 포함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단체들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자신들이 나설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북한 정부도 아니고 남한 정부가 왜 대북 전단 살포를 막아서냐고 항변하죠. 말이 안 되는 얘깁니다. 이 단체들은 북한을 도와 주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북한 군부를 도와 주고 있죠.
삐라의 시대
저는 한국 전쟁을 책으로 배운 세대입니다. 그러니 대북 심리전 같은 얘기는 굉장히 멀게 느껴집니다. 과거의 이야기이거나, 나의 일상과는 관계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1960년대에는 상황이 많이 달랐을 겁니다. 전쟁을 몸으로 겪은 사람들에게, 누구의 편이냐에 따라 생사가 갈렸던 시대로부터 10년이 겨우 지났을 때 북한에서 날아오는 ‘삐라’는 무서운 일이기도 했거니와 지금 이곳의 일이었겠지요.
당시에는 북한에서 보내오는 전단이나 대남 방송이 실제로 위협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산업화하기 이전이었고,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집이 많았습니다. 삶의 질이 지금처럼 압도적으로 벌어지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북한의 심리전은 실질적인 공격으로 작동했죠. 그래서 우리도 대응에 나섭니다. 1962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대북 방송을 시작합니다. 이듬해부터는 전단 살포도 시작했습니다. 쌍방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체제가 우월하다며 월북, 월남을 독려했습니다.
이 선전전으로 북한 주민 대다수가 휴전선을 넘어오길 기대한 건 아니었을 겁니다. 실제 그랬다면 엄청난 혼란이 있었을 테고요. 다만, 몇 명이라도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게 된다면 내부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우리의 체제가, 우리의 시스템이 상대보다 우월하다는 증거가 되니까요. 즉, 상대방을 흔드는 효과도 있지만,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에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언제 대북 심리전이 멈추고, 또 시작되었는지를 보면 이런 속성이 더욱 명확히 드러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 발표 이후 대북 전단과 방송을 모두 중지합니다. 1970년대면 북한과의 경제적 격차가 압도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 때입니다.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이 자신감을 바탕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고요. 하지만 1979년 12·12 사태가 발생하고, 이후 군사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북 심리전은 재개됩니다. 1980년 9월 북한이 대남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는 국방부의 발표와 함께였습니다. 같은 해 5월, 광주 항쟁 이후 내부 결속과 정권의 정당성이 갈급했던 시기였죠.
서울이었다면
이제 잘살아 보겠다고 북한으로 향할 사람은 휴전선 이남에 없습니다. 반면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국경 봉쇄 등으로 숫자가 크게 줄었지만, 2010년대까지만 해도 매년
1000명 이상의 탈북자가 목숨을 걸고 한국으로 향했죠. 이런 상황이면 심리전의 효과가 너무 비대칭적입니다. 대북 방송이나 전단은 엄청난 타격이 되고, 대남 방송과 전단은 사실상 의미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2000년 이후 우리 군의 대북 방송, 그중에서도 확성기를 통한 방송은 북한을 타격하기 위한 적극적인 공격 수단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남북 관계가 좋을 때는 방송이 멈추고, 북한이 도발해 왔을 때, 즉 ‘
비정상적 사태’일 경우에는 방송이 재개되기를 반복해 왔습니다. 반면 전단 살포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우리 군이 1980년대 이후 2011년까지 살포한 대북 전단은 무려 19억 장입니다. 하지만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이후로 우리 군이 공식적으로 전단을 살포하는 일은 중단되었습니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죠.
하지만 민간단체들의 전단 살포는 잊을 만하면 재개되었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사실상 허용했고요. 오물 풍선은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기생충이 득실거리는 분변이 서울 한복판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한 대응으로 우리 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북한도 대남 확성기 방송으로 맞받았습니다. 접경 주민들의 불면의 밤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의 정신을 바닥부터 뒤흔드는 소리가 하루 종일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들의 실상은 우리 언론보다 해외 언론이 더 주목했습니다. 서울의 사무실에서는 접경 지역보다 서울에서 나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기 마련이니까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주민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숫자가 적고 대부분 노인이기 때문에 정부가 외면하고 있습니다. 만약 서울에 이런 소음이 퍼져 나갔다면, 정부가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