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사고로 사망할 확률은 1000만분의 1 정도라고 합니다. 벼락에 맞을 확률보다 낮고 자동차를 타는 것보다 안전하다고 하죠. 하지만 실제 항공기 추락 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그런 숫자들이 한없이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한 번 사고가 발생하면 생존 확률이 극히 낮습니다. 탑승객은 물론 조종사도 손 쓸 도리가 없고요. 이번 에어 인디아 사고 또한 그러했습니다.
현지 시각 6월 12일 오후 인도 아메다바드 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에는 242명이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이상이 감지된 것은 이륙 직후였고, 건물이 밀집된 지역으로 추락하기 시작했을 땐 이미 불덩어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기체는 지역 의과 대학 기숙사 건물에 부딪혀 추락했습니다. 생존자는 단 한 명입니다.
대부분의 항공기 사고가 그렇듯, 원인을 밝히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최소 몇 달, 길게는 몇 년도 걸립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한 회사를 향하고 있습니다. 보잉사입니다. 추락한 비행기가 보잉 787-8 기종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검증이 되기도 전에 제조사부터 의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보잉이라는 회사는 제대로 망가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걸 고쳐 보려는 노력이 막 시작된 참이었고요.
조종사도 몰랐던 기능
2018년 10월 29일 인도네시아 라이온에어의 비행기가 추락했습니다. 반년도 지나지 않은 2019년 3월 9일에는 에티오피아 항공사의 비행기가 또다시 추락했습니다. 두 비행기 모두 보잉 737 MAX-8 기종이었습니다. 탑승객 전원이 숨졌습니다. 총 364명이었습니다.
조사 결과 조종특성향상시스템(MCAS, Maneuvering Characteristics Augmentation System)이라는 항공 소프트웨어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737 MAX-8은 기존의 737 모델을 개량하여 제작되었는데, 연비를 개선하기 위해 장착한 신형 엔진이 더 크고 무거워지면서 이륙할 때 기체의 머리 부분이 과도하게 들리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MCAS는 이걸 자동으로 잡아주는 시스템입니다. 이륙할 때 비행기의 머리 부분을 자동으로 눌러주는 겁니다.
그런데 센서에 문제가 생기면서 MCAS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비행기가 제대로 날고 있는데도 머리 부분이 아래로 눌리면 당연히 고꾸라집니다. 라이온에어조종사들은 MCAS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아예 그런 시스템이 있는 줄도 몰랐죠. 기체는 자꾸만 아래로 향하는데 손 쓸 도리가 없었습니다.
첫 사고 이후 보잉은 MCAS 시스템이 무엇인지 조종사들에게 설명했습니다. 에티오피아항공의 조종사들도 그 설명을 들었고요. 하지만 사고 당일, 비행기는 조종사들이 조작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MCAS가 오작동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매뉴얼에 나와 있는 대로 했지만, 비행기는 추락했습니다.
If it’s not Boeing, I’m not going.
2018년의 대형 참사 이후에도 보잉은 제대로 된 개혁을 이루어내지 못했습니다.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랐죠. MCAS 문제로 인한 두 건의 대형 참사 이후 보잉은 청문회에 제대로 된 자료는 제출하지 않은 채 조종사들의 자격을 문제 삼았습니다.
언론을 통해 관련 내용을 흘리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죠. 피해 유가족들과는 제대로 대화하지 않았습니다. 보잉의 비행기에는 문제가 없다는 메시지를 내는 데에 주력했습니다. 희생자에 대한 CEO의 사과가 나온 것은 사고 발생으로부터 6년 가까이 지난
2024년이었습니다.
보잉의 직원들은 예전엔 분위기가 달랐다고
이야기 합니다. ‘안전’이 보잉의 최우선 가치였죠. 보잉의 창업주 윌리엄 보잉부터 엔지니어 출신이었거든요. 1881년 태어난 보일은 예일대 공대 출신으로 목재 사업을 크게 벌였습니다. 탈 것에 관심이 많았는데, 자연히 당시 최첨단의 탈 것이었던 비행기에도 매료되었습니다. 취미로 비행기를 구입해 몰던 보잉은 수리용 부품 수급이 늦어지자 답답한 나머지 비행기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지금의 보잉입니다.
보잉은 1차 세계 대전 기간 중 미 해군에 항공기를 납품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를 계기로 사업을 확장했고, 1958년에는 역사에 길이 남은 여객기인 보잉 707기종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100명 넘는 승객을 태울 수 있었고 당시 프로펠러 여객기 속도의 약 2배로 날았습니다. 혁명이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도 비행기를 타고 먼 거리를 여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행기 여행의 대중화가 시작된 겁니다.
월스트리트가 원하는 기업
이후에도 보잉은 꾸준히 새로운 모델을 선보이며 신뢰를 쌓았습니다. 비행기 여행이 안전하다는 인식이 확산할수록 자동차 대신, 기차나 선박 대신 비행기를 선택하는 승객이 늘어납니다. 보잉의 성장은 항공 여객 산업의 성장이었습니다.
보잉의
기업 문화 덕이었습니다. 보잉은 엔지니어가 중심이 되는 회사였습니다. 조립 과정에서 누군가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면 일정을 늦추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비행기에 문제가 생길 확률이 낮아집니다. 하지만 이런 문화는 비효율로 흐르기가 쉽습니다. 실제로 1990년대 중반쯤에는 보잉의 별명이 ‘게으름쟁이 B(Lazy B)’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회자될 정도였죠. 주로 월스트리트 쪽에서 그런 얘기가 들려왔습니다.
보잉은 정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윤을 추구하고 주주들에게 배당을 돌려주는 일은 등한시한 채, 완벽한 비행기 한 대를 만들어 내는 데에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다만, 그 시각은 월스트리트의 시각입니다. 기업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는 곳이죠. 보잉이 월스트리트의 요구에 맞추기 시작한 것은 1997년입니다. 미국의 항공기 제작 회사인 맥도넬 더글라스와 합병을 하면서부터였죠. 보잉사에 ‘잭 웰치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합니다.
숫자의 시대
21세기의 CEO로 ‘일론 머스크’를 꼽을 수 있다면, 1990년대의 CEO로는 GE(제너럴일렉트릭스)를 키워 낸 ‘잭 웰치’가 꼽힙니다. GE의 주가는 잭 웰치 재임 기간(1981년~2001년) 약 3000퍼센트 상승했습니다. 1993년 9월 이후로 꽤 오랫동안 미국 시가총액 1위를 기록했고요. 잭 웰치의 전략은 과감한 인수 합병 전략이었습니다. 이익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면 과감하게 사 들였고, 이윤을 내지 못하면 가차 없이 처분했죠. 분기별 목표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이를 위해 금융 사업 부문인 GE캐피털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제조업 본업의 실적이 주춤하면 GE캐피털에서 돈을 끌어와 메꾸고, 제조업에서 실적이 나면 다시 GE캐피털에 가져다 쌓았습니다.
잭 웰치식 경영의 또 다른 핵심은 극단적인 비용 절감과 인력 감축이었습니다. 별명이 ‘
중성자탄 잭(Neutron Jack)’일 정도였으니까요. 잭 웰치는 재임 초기 몇 년간 10만 명 이상의 직원을 해고하고 수십 개의 공장을 폐쇄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위기에 몰린 기업에 새로운 CEO가 부임하면 대량 구조조정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기적으로 회사를 살려낸 전설의 경영자가 남긴 전례 때문입니다. 직원들의 해고 소식이 들려오면 주가는 오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잭 웰치 재임 시절 GE 주주들은 행복했습니다. 회계 장부가 예쁘게 맞춰지고 주가는 오릅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경영은 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약화합니다. 워런 버핏은 대놓고 GE의 방식은 주주를 속기는 사기라
일갈했을 정도입니다. 결국 GE는 2000년대 후반 금융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회사 전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숫자를 맞추는 데 골몰하느라 기술 개발 등 기업의 미래 경쟁력에는 투자하지 못했고, GE는 결국 위기를 돌파하는 데 실패합니다. 이제 GE라는 이름의 회사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잭 웰치가 전 세계 기업인의 롤모델이었습니다. 많은 기업이 인수 합병으로 덩치를 키우고 주주의 이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영 전략을 다시 세웠습니다. 보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침 인수 합병으로 한 식구가 된 맥도넬 더글라스 임원진은 GE 출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들이 이사회와 경영진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보잉의 기업 문화가 달라집니다.
엔지니어들이 문제를 지적하면 징계를 당했습니다. 특히 서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기록을 남기지 말라며 엄중한 주의를 받았죠. 납기의 압박에 시달리느라 실수가 많아졌습니다. 이런 문화는 경쟁사인 에어버스가 연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신모델, ‘에어버스 320 NEO’ 모델을 출시하면서 극한에 달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대응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려다 기존의 737 모델에 맞지도 않는 엔진을 달아 출시한 겁니다. 2018년 참사를 일으킨 여객기, 보잉 737 MAX-8 기종입니다. 내부에서는 문제가 제기됐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에어버스에 뒤처진 수주 실적을 채워야 주가가 오릅니다. 주가가 올라야 주주들이 부자가 되고, 임원진도 연봉이 오릅니다.
사실 그 이전부터 제조 현장은 점점 엉망진창이 되고 있었습니다. 2005년에는 비행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동체 제작 파트를 따로 떼어내 분사시킵니다. 이후 787 드림라이너 개발 과정에서는 설계 및 제조 과정의 70퍼센트를 외주사에 맡깁니다. 잭 웰치의 방식이죠. 하지만 부품 하나만 헛돌아도 추락하는 비행기의 특성상, 이 전략은
실패를 거듭합니다. 아웃소싱으로 부품 공급망을 구축하기에 비행기는 너무 특수한 분야였던 겁니다. 납품된 부품들은 서로 맞아 돌아가지 않았고, 그마저도 납기가 계속 늦춰졌습니다. 결국 787기종의 첫 출고일은 3년이나 늦어집니다. 그리고 2025년 6월, 인도에서 보잉 787 계열의 비행기가 추락합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다운폴〉에 등장한 보잉의 엔지니어들은 야간 근무조가 비행기 랜딩 기어에 부품을 하나 빠트렸다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대로 비행기가 날아오른다면 대형 사고로 번질 일이죠. 품질 관리 인원을 급격히 줄이고 작업 속도를 높이면서 현장에서는 문제를 절감하지만, 회계 장부에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비행기가 추락할 때까지는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