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예테보리대학교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V-DEM)가 지난 3월 《
민주주의 보고서 2025》를 펴냈습니다. 매년 발행하는 보고서인데, 올해는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 국가(88개국)보다 독재 국가(91개국)가 많아졌습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전 세계 인구의 48퍼센트가 독재 국가에 살았는데, 지금은 72퍼센트가 됐습니다.
민주주의의 후퇴와 권위주의의 전진에는 세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우선, 자유 민주주의가 약속한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든 민주 국가에서 중산층이 줄었고, 정치 양극화는 심해졌습니다. 미국조차 중산층이 1971년 61퍼센트에서 2021년 50퍼센트로
감소했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이들은 자유보다 안정과 질서를 선호하게 됐습니다. 포퓰리스트들이 이 틈을 파고들었죠.
다음으로, 디지털 기술이 민주주의를 뿌리부터 갉아먹었습니다. 2011년 ‘아랍의 봄’에서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유튜브는 이집트의 독재자 무라바크를 끌어내렸습니다. 한때 해방의 도구로 찬양받던 소셜 미디어는 이제 독재 정권을 돕는 무기가 됐습니다. 허위 정보를 퍼트리고, 프로파간다를 심고, 반정부 인사를 감시하는 도구로
전락했죠.
마지막으로, 독재자들이 변했습니다. 독재 국가 91개국 중에 선거를 치르는 독재 국가(electoral autocracies)가 56개국입니다. 이 나라의 독재자는 군복을 입은 폭군이 아닙니다. 양복을 입고 선거에서 승리해 정권을 잡은 다음, 입맛에 맞게 헌법을 바꾸고, 법원을 장악하고, 의회를 무력화하고, 언론을 길들입니다. 이들은 형식적 선거를 꼬박꼬박 치르며 정당성을 잃지 않습니다.
비자유 민주주의
헝가리 총리 빅토르 오르반은 러시아의 푸틴,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중국의 시진핑을 칭송하며, 서구 자유 민주주의는 시대착오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미국과 유럽이 주도한 세계화와 시장 경제가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만 가져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비자유(illiberal)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선거와 다수결 원칙은 지키지만, 권력 분립이나 언론 자유, 다원성 존중 같은 자유주의적 가치는 배제하는 민주주의입니다.
정치사상처럼 포장한 말장난입니다. 그냥 포퓰리즘적 민족주의를 하겠다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으니 하는 말이고, 장기 집권을 하겠다는 소리입니다. 오르반은 저 말을 유행시키려고 하는지 10년 넘게 꾸준히 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외 주요 언론은 오르반의 궤변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기사 쓰기도 바쁜데, 오르반쯤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독재자의 궤변까지 일일이 보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파 낭비니까요. 그러나 언론에서 간과한 게 있습니다. 오르반의 통치 전략이 학습의 결과물이라는 점입니다. 요즘 독재자는 과거와 달리 고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독재자들끼리 서로 관찰하고 학습하고 모방합니다. 앞서나간 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야당 탄압과 정보 통제, 선거 조작의 ‘모범 사례’를 익히고 실천합니다.
아직 한국도 툭하면 선진 민주주의 사례를 들고 옵니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는 공무원을 유럽으로 견학 보내고, 언론은 ‘스웨덴의 민주주의를 배운다’ 같은 기획 기사를 냅니다. 우리도 이렇게 배우려고 하는데, 독재 정권이라고 학습 욕구가 없을까요. 더구나 이쪽 진영에는 초격차를 보여 주는 압도적인 성공 사례까지 있는데 말입니다.
독재자의 독재자, 푸틴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입니다. 20세기의 마지막 날이었던 1999년 12월 31일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정권을 잡은 푸틴은 21세기형 독재 시스템을 완성했습니다. 20세기 독재자는 대개 쿠데타로 집권해서 일당제를 채택하고, 국영 언론으로 프로파간다를 퍼트리고, 사법 기능을 무시하거나 해체하고, 국제 관계에서도 고립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푸틴은 달랐습니다. 합법적 선거로 권력을 잡고, 다당제를 유지하고, 친정부 민영 언론으로 국정을 선전하는 동시에 반(反)미디어 환경을 조성해 정보 자체를 오염시키고, 다른 국가에 독재 기술을 수출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는 독재를 법 위에 세우는 게 아니라 법 자체를 바꿔 독재를 합법화한 것입니다. 푸틴은 법치주의를 강조합니다. 2010년에는 이런 말을
했죠.
“들어 봐요. 우리 반대자들은 모두 법치주의를 외칩니다. 그런데 법치주의가 뭡니까? 현행법을 따르는 거예요. 그럼 현행 법률에서 시위에 대해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지역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죠. 허가를 받았습니까? 그럼 시위하세요. 안 받았습니까? 그럼 시위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시위를 강행하면? 곤봉으로 머리를 얻어맞게 될 겁니다. 끝!”
푸틴의 러시아는 법의 지배(rule of law)는 없고,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만 있는 국가입니다. 그 법은 푸틴이 장악한 입법부에서 만들어지고, 푸틴이 장악한 사법부에서 해석됩니다. 헌법재판소장과 대법원장을 임명하고 해임할 권한을 푸틴 한 사람이 갖고 있죠. 정적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라고 법관을 압박하는 구소련식 ‘전화 재판(telephone justice)’까지 벌어집니다.
독재자 플레이북
전 세계 독재자들에게 영감을 준 푸틴의 독재 기술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낙인찍기입니다. 푸틴은 2012년에 외국 대리인 법을 만들었습니다. 반체제 인사와 비판 언론, 시민 단체를 외국 대리인(foreign agent)으로 낙인찍어 법적 처벌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배제되게 합니다. 구소련 시대로 치면 국가의 적이자 반역자 딱지를 붙이는 겁니다.
외국 대리인의 범위는 엄청나게 넓습니다. 평범한 시민이 정부 정책에 단순 의견을 표하기만 해도, 당국이 당신은 외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면 외국 대리인에
지정됩니다. 이 법은 특허 없는 도구처럼 권위주의 국가들로 복제되어 나갔습니다. 헝가리, 조지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같은 곳들인데, 법률 용어와 구조를 거의 그대로 가져다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