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플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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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민주주의 국가보다 독재 국가가 많아졌습니다. 독재가 독재를 학습해서 그렇습니다.

독재자 플레이북

2025년 6월 19일

스웨덴 예테보리대학교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V-DEM)가 지난 3월 《민주주의 보고서 2025》를 펴냈습니다. 매년 발행하는 보고서인데, 올해는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 국가(88개국)보다 독재 국가(91개국)가 많아졌습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전 세계 인구의 48퍼센트가 독재 국가에 살았는데, 지금은 72퍼센트가 됐습니다.

민주주의의 후퇴와 권위주의의 전진에는 세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우선, 자유 민주주의가 약속한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든 민주 국가에서 중산층이 줄었고, 정치 양극화는 심해졌습니다. 미국조차 중산층이 1971년 61퍼센트에서 2021년 50퍼센트로 감소했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이들은 자유보다 안정과 질서를 선호하게 됐습니다. 포퓰리스트들이 이 틈을 파고들었죠.

다음으로, 디지털 기술이 민주주의를 뿌리부터 갉아먹었습니다. 2011년 ‘아랍의 봄’에서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유튜브는 이집트의 독재자 무라바크를 끌어내렸습니다. 한때 해방의 도구로 찬양받던 소셜 미디어는 이제 독재 정권을 돕는 무기가 됐습니다. 허위 정보를 퍼트리고, 프로파간다를 심고, 반정부 인사를 감시하는 도구로 전락했죠.

마지막으로, 독재자들이 변했습니다. 독재 국가 91개국 중에 선거를 치르는 독재 국가(electoral autocracies)가 56개국입니다. 이 나라의 독재자는 군복을 입은 폭군이 아닙니다. 양복을 입고 선거에서 승리해 정권을 잡은 다음, 입맛에 맞게 헌법을 바꾸고, 법원을 장악하고, 의회를 무력화하고, 언론을 길들입니다. 이들은 형식적 선거를 꼬박꼬박 치르며 정당성을 잃지 않습니다.

비자유 민주주의

헝가리 총리 빅토르 오르반은 러시아의 푸틴,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중국의 시진핑을 칭송하며, 서구 자유 민주주의는 시대착오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미국과 유럽이 주도한 세계화와 시장 경제가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만 가져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비자유(illiberal)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선거와 다수결 원칙은 지키지만, 권력 분립이나 언론 자유, 다원성 존중 같은 자유주의적 가치는 배제하는 민주주의입니다.

정치사상처럼 포장한 말장난입니다. 그냥 포퓰리즘적 민족주의를 하겠다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으니 하는 말이고, 장기 집권을 하겠다는 소리입니다. 오르반은 저 말을 유행시키려고 하는지 10년 넘게 꾸준히 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외 주요 언론은 오르반의 궤변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기사 쓰기도 바쁜데, 오르반쯤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독재자의 궤변까지 일일이 보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파 낭비니까요. 그러나 언론에서 간과한 게 있습니다. 오르반의 통치 전략이 학습의 결과물이라는 점입니다. 요즘 독재자는 과거와 달리 고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독재자들끼리 서로 관찰하고 학습하고 모방합니다. 앞서나간 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야당 탄압과 정보 통제, 선거 조작의 ‘모범 사례’를 익히고 실천합니다.

아직 한국도 툭하면 선진 민주주의 사례를 들고 옵니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는 공무원을 유럽으로 견학 보내고, 언론은 ‘스웨덴의 민주주의를 배운다’ 같은 기획 기사를 냅니다. 우리도 이렇게 배우려고 하는데, 독재 정권이라고 학습 욕구가 없을까요. 더구나 이쪽 진영에는 초격차를 보여 주는 압도적인 성공 사례까지 있는데 말입니다.

독재자의 독재자, 푸틴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입니다. 20세기의 마지막 날이었던 1999년 12월 31일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정권을 잡은 푸틴은 21세기형 독재 시스템을 완성했습니다. 20세기 독재자는 대개 쿠데타로 집권해서 일당제를 채택하고, 국영 언론으로 프로파간다를 퍼트리고, 사법 기능을 무시하거나 해체하고, 국제 관계에서도 고립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푸틴은 달랐습니다. 합법적 선거로 권력을 잡고, 다당제를 유지하고, 친정부 민영 언론으로 국정을 선전하는 동시에 반(反)미디어 환경을 조성해 정보 자체를 오염시키고, 다른 국가에 독재 기술을 수출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는 독재를 법 위에 세우는 게 아니라 법 자체를 바꿔 독재를 합법화한 것입니다. 푸틴은 법치주의를 강조합니다. 2010년에는 이런 말을 했죠.

“들어 봐요. 우리 반대자들은 모두 법치주의를 외칩니다. 그런데 법치주의가 뭡니까? 현행법을 따르는 거예요. 그럼 현행 법률에서 시위에 대해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지역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죠. 허가를 받았습니까? 그럼 시위하세요. 안 받았습니까? 그럼 시위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시위를 강행하면? 곤봉으로 머리를 얻어맞게 될 겁니다. 끝!”

푸틴의 러시아는 법의 지배(rule of law)는 없고,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만 있는 국가입니다. 그 법은 푸틴이 장악한 입법부에서 만들어지고, 푸틴이 장악한 사법부에서 해석됩니다. 헌법재판소장과 대법원장을 임명하고 해임할 권한을 푸틴 한 사람이 갖고 있죠. 정적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라고 법관을 압박하는 구소련식 ‘전화 재판(telephone justice)’까지 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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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독재자들에게 영감을 준 푸틴의 독재 기술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낙인찍기입니다. 푸틴은 2012년에 외국 대리인 법을 만들었습니다. 반체제 인사와 비판 언론, 시민 단체를 외국 대리인(foreign agent)으로 낙인찍어 법적 처벌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배제되게 합니다. 구소련 시대로 치면 국가의 적이자 반역자 딱지를 붙이는 겁니다.

외국 대리인의 범위는 엄청나게 넓습니다. 평범한 시민이 정부 정책에 단순 의견을 표하기만 해도, 당국이 당신은 외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면 외국 대리인에 지정됩니다. 이 법은 특허 없는 도구처럼 권위주의 국가들로 복제되어 나갔습니다. 헝가리, 조지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같은 곳들인데, 법률 용어와 구조를 거의 그대로 가져다 썼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지방 선거에 등장한 도플갱어 후보들. 제일 오른쪽이 진짜 ‘보리스 비슈네프스키’ 후보입니다. 나머지 둘은 선거를 위해 이름을 바꾸고 수염을 길렀습니다.
둘째, 경쟁 없는 선거를 조직합니다. 야당 후보를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해 피선거권을 박탈하거나, 친정부 야당을 들러리로 내세워 유권자에게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스포일러 전술도 씁니다. 유력 야권 후보와 정치 성향이 비슷한 후보를 출마시켜 야권의 표를 분산합니다. 심지어 야당 후보와 이름이 같고 얼굴이 비슷한 도플갱어 후보를 내보내기도 하죠.

푸틴식 경쟁 없는 선거는 튀르키예의 독재자 에르도안에게 영감을 줬습니다. 에르도안은 지난 3월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였던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을 부패 혐의로 체포하고, 대학 학위를 취소했습니다. 튀르키예 헌법상 대선에 나가려면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하거든요. 선거의 외형만 갖추고, 정적을 사전에 제거해 치르나 마나 한 선거로 만드는 겁니다.

셋째, 언론 자유를 허용하는 척하며 통제합니다. 중국은 당이 국영 언론을 소유하고 직접 통제하지만, 러시아의 주요 방송, 신문, 포털은 외형상 민간이 운영합니다. 그러나 대주주가 국영 기업이거나 친정부 인사입니다. 시민들은 여러 매체를 소비한다고 느끼겠지만, 결국 프레임 바깥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일부 비판 매체는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해 버리면 그만입니다.

오르반의 헝가리도 똑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헝가리는 EU 회원국이라 공식적인 언론 검열이나 국영화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푸틴처럼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해야 합니다. 2014년부터 오르반 측근 기업가들이 헝가리의 주요 언론사를 인수하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500개 가까운 언론사를 사들인 다음, 회사 경영권을 ‘중유럽 언론 미디어 재단’이라는 친정부 재단에 기부합니다. 현재 헝가리 전체 언론의 80퍼센트 이상이 사실상 정부 여당의 기관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독재자 네트워크

푸틴이 집대성한 21세기 권위주의 통치 전략은 동유럽,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일부 국가의 독재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고립된 섬이 아니라, 다른 독재자들과의 연대와 상호 학습을 통해 글로벌 권위주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습니다. 브릭스(BRICS)와 상하이협력기구(SCO)가 대표적입니다.

두 기구는 상호 내정 불간섭 원칙에 입각해 권위주의적 연대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점잖게 표현하면 그렇습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푸틴과 시진핑의 통치 전략이 공유되고 통치 기술이 수출되는 장입니다. 브릭스 국가들은 디지털 주권을 강조하며, 자체 인터넷·감청·검열 시스템을 구축하는 전략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상하이협력기구 국가들은 2009년 예카테린부르크 협정을 맺고 테러 대응을 명분으로 감청·검열·인터넷 통제 메커니즘을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일당 독재 권위주의 정치 체제를 유지하는 중국도 통치 전략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2022년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권위주의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웠습니다. 베이징에서 파견된 중국 교사들이 아프리카 지도자들에게 당과 국가의 결합 모델, 당내 통제 및 감시 방법을 가르칩니다. 집권당이 정부와 법원 위에 있어야 한다고도 강조하고요. 탄자니아, 나미비아, 모잠비크, 앙골라, 남아공, 짐바브웨 등의 집권당 간부들이 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 나라들은 다당제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집권당 한 곳이 수십 년간 집권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민주주의 동맹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시민의 감각, 공동체의 신뢰, 교육과 언론의 힘이 살아 있어야 움직입니다. 지금까지 민주주의는 그것이 ‘옳다’는 도덕적 주장에 안주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작동한다’는 실천적 증명이 필요합니다. 독재자들은 서로 관찰하고 가르치고 배우며 진화하고 있으니까요.

민주주의 국가들도 권위주의 연대에 맞설 대항 축을 만들어야 합니다. 서방 중심의 주요 7개국인 모임인 G7이 있어도 이 사달이 났으니 G7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대안은 D10(Democracies 10)입니다.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10개국으로 이루어진 D10은 G7 국가(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와 호주, 인도, 한국이 참여하는 경제·외교·안보 협의체입니다. 개념만 있고 실체와 지위가 불분명한 D10을 강화해 민주 진영이 한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인데, 이 구상이 실현되려면 몇 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민주 진영의 리더 미국의 대통령이 트럼프니까요. 바로 며칠 전에 캐나다의 산악 휴양지 카나나스키스에서 G7 정상 회의가 열렸죠. G7 정상들은 러시아를 비판하는 공동 성명을 내려 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는 G7 회의 도중에 중요한 일이 있다며 조기 귀국했고요. 그 중요한 일이란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에 관한 것으로 보입니다.

CNN은 트럼프의 갑작스러운 귀국이 중동 문제 중에서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중동 위기가 캐나다의 숲속에서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트럼프의 믿음이었다. 그는 외국 정상들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공동 대응이라는 개념에는 별다른 무게를 싣지 않는 듯 보였다. 대신 그는 중동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의 결정뿐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트럼프도 G7 확대에는 찬성합니다. 회원국이 늘어야 챙길 수 있는 것도 늘어날 테니까요. 그러나 민주 진영의 리더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트럼프는 G7에서 탈퇴했던 러시아를 복귀시켜 G8을 만들고 싶어 합니다. 중국이 G7에 참여하는 것도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다”라고 했죠.

공동 대응과 세계주의적인 의제를 좋아하지 않는 트럼프가 권위주의 연대에 대응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저 역시 한 가지는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년에 발간될 민주주의 보고서에는 독재 국가의 수가 늘어나 있을 겁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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