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말투

bkjn review

새로운 행위자가 등장했습니다. 창작의 정의가 달라집니다.

AI 시대의 말투

2025년 6월 24일

최근 디즈니와 유니버설이 이미지 생성 AI 스타트업 미드저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저작권 침해 혐의입니다. 새로운 것 없는 소식입니다. 각종 언론사는 물론이고 음악 업계, 배우와 작가들까지 생성형 AI가 인간의 창의력을 대가 없이 빨아들이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죠. 법정에서 시비를 다투는 경우도 꽤 많아졌고요.

인간의 창작물이 허락도 없이 사용되고 있다니, AI 기업을 향한 줄소송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 주장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분위기가 좀 미묘합니다. 지난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저작권청의 수장을 해임했습니다. 백악관이 직접적으로 밝힌 바는 없지만, 저작권청이 내놓은 보고서가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오픈AI,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이 AI 모델의 학습을 위해 온라인 데이터를 무작위로 긁어다 써도 되는지에 관해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문은 AI 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AI가 곧 권력이며 국가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각국 정부 입장에서는 무시하고 지나가고 싶은 문제입니다. 그렇다 보니 법정 다툼은 이어지는데 관련 법 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정부가 별로 없습니다. 저작권 개념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 개념은 시대정신과 맞지 않습니다.

Information wants to be free

전조는 20세기에 시작되었습니다. ‘해커’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발명한 인물인 스튜어트 브랜드는 1984년 제1회 해커 콘퍼런스에서 “정보는 무료이기를 원한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정보 자체의 복제 비용이 거의 0에 수렴하고, 디지털화된 정보는 쉽게 공유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파했던 겁니다.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특히 인터넷이 발명되고 보급되면서 변화는 일상으로 몰려왔죠. 대표적인 변화가 신문의 종말입니다. 신문을 돈 주고 사 읽는 경우가 급격히 줄어든 겁니다. 동시에 사람들은 블로그를 통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와 견해를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랜드가 예견했던 시대가 실제로 도래한 겁니다.

이러한 흐름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입니다. 창작자가 창작물의 공유 범위를 설정해 지정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입니다. 지금은 정부 기관에서도 사용하는 개념이지만, 시작은 일종의 문화 운동이었습니다. 디지털 기술은 누구나 편집하고 복제하고 다시 창작할 가능성을 열었지만, 저작권법은 오히려 더 강화하고 새로운 형태의 창작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내놓은 대안적 제도입니다.

저작권법은 창작자의 권리를 지켜 주는 법이지만, 한편으로는 창작을 제약하는 도구로서도 기능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창작 방법, ‘리믹스(remix)’와 같은 것을 정면으로 가로막죠. 현재의 저작권 체계는 리믹스 문화를 위법으로 간주합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의 창시자 중 한 명인 하버드 로스쿨의 로렌스 레식 교수는 기술의 발전 방향과 정반대로 향하는 저작권법을 향해 “법은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이제는 기술을 억제하는 데 법이 점점 더 활용되고 있다”라고 진단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산업에 포섭되면서 이용자가 쓰기보다는 읽기만 하도록 강제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거대한 리믹스 기계

그런데 인터넷 시대에서 생성형 AI 시대로 넘어오면서 이러한 기술과 산업의 충돌 양상이 달라집니다. AI가 대량으로 기존 콘텐츠를 학습해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합니다. 인간이 아니라 기계가 ‘리믹스’를 시작한 겁니다. 기계의 리믹스는 때로 노골적입니다. 전 세계를 며칠간 흥분시켰던 ‘지브리 사태’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리믹스가 고도화하면 전통적인 의미의 ‘창작’에 한없이 가까워집니다.

창작의 최전선, 광고 업계는 이 변화를 적나라하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국제 광고제인 ‘칸 라이언즈 (Cannes Lions)’는 명실공히 세계 광고인들의 축제로 꼽힙니다. 하지만 2025년의 행사장은 AI라는 새로운 격변을 목격하는 현장이었습니다. 틱톡, 메타, 구글 등의 광고 플랫폼들이 AI 기반의 동영상 자동 제작 기능이나 카피 문장 작성 도구 등을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진 광고가 영예로운 수상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아마 당분간 그러할 겁니다. 하지만 트로피가 아니라 돈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심각합니다.

전 세계 광고비는 연간 1조 달러 정도로 추산됩니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은 아주 평범하고 무난한 광고이고요. 샘 올트먼이 ‘AI가 마케팅의 95퍼센트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죠. 과장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인스타그램에서 생성형 AI를 사용해 제작한 광고 이미지를 수없이 보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창의적인, ‘작품’ 수준의 광고를 제외하면 이제 생성형 AI로도 충분히 제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AI도 적극적인 창작자로 편입되면서 인간이 영향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 증거가 언어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챗GPT 서비스가 출시된 이후 사람들이 ‘meticulous(꼼꼼한)’, ‘delve(파고들다)’, ‘realm(영역)’, ‘adept(숙련된)’ 같은 단어를 더 자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AI의 말투에 인간이 스며든 겁니다. 즉, AI는 이제 인간의 창작물을 흡수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AI의 말투를 베끼고 있는 겁니다. 생성형 AI가 이미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의 일부로 기능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 생각과 결심

원래 인간은 기계나 기술, 미디어를 마치 사람처럼 인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1990년대 BMW는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바로 내비게이션 시스템입니다. 최고급 모델에 한해 운전자에게 음성 안내를 제공했습니다. 상냥하고 명료한 말투의 여성 목소리였죠. 그런데 BMW는 예상치 못한 항의를 받게 됩니다. 꽤 많은 고객이 ‘여성이 지시하는’ 방향으로 운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겁니다. 즉, 이들은 기계가 제공하는 정보를 인간 여성의 지시로 받아들였습니다.

미디어 방정식(The Media Equation)’이라는 현상입니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등의 매체를 실제 사람처럼 대하는 경향으로, ‘예의 바르다’, ‘무례하다’, ‘신뢰가 간다’, ‘날카롭다’ 등의 특성을 부여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수식어는 매체 너머에서 실제로 메시지를 작성하는 인간을 향한 것입니다. 기계는 기계일 뿐이죠. 그런데 AI 시대에는 또 달라집니다. 사람들은 AI를 인간처럼 대하지만, AI 너머에는 인간도 없습니다. 인간은 아직도 LLM(Large Language Model)의 작동 원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는 사회 전체가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 네트워크로 구성된 복잡한 사고 기계라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ANT)’을 주장합니다. 사회는 인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기술이나 도구, 알고리즘, 문서, 건축물과 같은 비인간 존재도 사회적 행위자로 작동한다는 겁니다. AI도 당연히 그렇고요.

예를 들어, 제가 오늘 저녁에는 식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가정해 보죠. 점심을 너무 많이 먹었고, 입맛도 별로 없어서 저녁을 거르기로 결정한 겁니다. 이것은 저의 주체적인 사고이며 결심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는 우리 사회에 흩어져 있는 여러 가지 관념들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과식은 몸에 좋지 않다는 상식, 인스타그램에서 본 마른 연예인의 사진, 특정 체형에 잘 맞는 옷을 생산하는 의류 산업 등 엄청나게 복잡하고 다단한 비인간적 요소들이 저의 사고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생성형 AI는 이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사고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언어를 변화시키듯 사고를 변화시키고, 창작의 방향을 변화시킵니다. AI는 인간은 아니되 인간과 영향을 주고받는, 일종의 행위자(actant)로 존재합니다. 그 영향력의 크기는 동료 인간 존재와 거의 비슷한 정도겠지요. AI는 인간을 베끼는 존재이지만, AI 입장에서는 인간도 AI를 베끼는 존재입니다. 어쩌면 AI를 일종의 매개 삼아 인간이 인간을 베끼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새로운 행위자가 등장했습니다. 인간이 경험한 적 없는 가장 강력한 리믹스 기계입니다. ‘베낀다’라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해집니다. ‘베끼지 않은 것’을 찾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아주 많은 소스를 아주 잘게 썰어 베끼면 무엇을 베꼈는지도 알 수 없어집니다. 사실, 이것은 인간의 창작 과정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규칙이 필요합니다. ‘창작’의 정의부터 다시 세워야 하겠지요. ‘표절’의 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작권을 뛰어넘는, 창작물에 대한 새로운 권리 개념도 필요합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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