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경험한 적 없는 부동산 대책이 나왔습니다. 집 살 때 빌릴 수 있는 돈이 6억 원까지로 제한됩니다. 담보로 잡힐 주택이 아무리 비싸도, 내 소득이 아무리 탄탄해도 예외는 없습니다. 주택 담보 대출은 6억 원까지입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대출 한도를 일괄적으로 제한한 정책은 처음입니다. 서울 아파트 가격 평균값이 13억 5000만 원 정도입니다. 이걸 사려면 이제 7억 5000만 원을 현금으로 들고 있어야 합니다.
정책 시행 방식도 전무후무한 수준입니다. 예고 없이 6월 27일 금요일 오후에 발표하고 바로 다음 날인 6월 28일 토요일부터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시장에 대비할 시간을 안 준 겁니다. 억울한 사례가 발생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당장 6월 30일 월요일에 계약서에 도장 찍고 대출 실행을 하려던 사람들은 계획이 틀어졌습니다. 반면, 이렇게 해야 꼼수를 쓸 여지를 차단하고 정책 효과도 최대화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루라도 여유를 뒀다면 어떻게든 정책 시행 전에 거래하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부작용이 발생했을 거란 얘깁니다.
최근 집값이 뛰고 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려왔습니다. 그것도 서울 집값만 뛰었습니다. 6월 한 달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전월 대비 1.54퍼센트 상승했습니다. 1년으로 환산하면 18.5퍼센트 상승하는 비율입니다. 이유는 FOMO(Fear Of Missing Out)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진보 정권이 들어섰으니, 집값이 뛸 것이라는 불안감이 장을 밀어 올렸다는 겁니다. 우연찮게 그런 경향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정부의 행보는 일단 무척 특이합니다.
정부는 집값이 떨어지길 바라지 않는다.
모든 정부의 목표는 집값 상승도, 하락도 아닙니다. 안정입니다. 집값이 오르면 부동산으로 투기 자본이 몰리고 집이 진짜 필요한 실수요자가 피해를 봅니다. 반대로 주택 가격이 내리면 금융권부터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 많은 주택 담보 대출의 ‘담보’ 가격이 하락하니 당연한 현상입니다. 집을 가진 사람들도 가난해집니다. 우리나라는 가구 평균 자산의 3분의 2가 부동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 ‘벼락 거지’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부동산 정책의 목표는 언제나 ‘안정’입니다. 기본적으로는 현상 유지가 가장 좋고, 가격이 급등하거나 급락할 때는 완만히 ‘연착륙’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걸 가장 잘 해낸 역대 정권은
김영삼 정권입니다.
기막힌 정책을 쓴 건 아닙니다. 시기가 좋았습니다. 마침, 직전의 노태우 정권에서 1기 신도시 건설로 200만 호라는 공급 폭탄을 던져 놨습니다. 이 중 100만 호가 수도권에 집중되었죠.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이 모두 이때 아파트의 도시로 거듭났습니다. 넘치는 공급을 물려받은 김영삼 정부는 필요한 사람들이 집을 살 수 있도록 수요 관리만 잘하면 되었던 셈입니다. 금융 실명제와 함께
부동산 실명제를 시행해 거래를 투명하게 하고, 규제에 묶여 있던 분양가를 자율화하는 등 부동산 거래를 시장에 돌려주는 정도의 정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외의 장면도 보입니다. 20세기 한국 보수 정권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김영삼 정부의 부동산 정책 슬로건은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것이 고통이 되도록 하겠다’였거든요.
탐욕의 사다리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투기꾼들 때문에 ‘서민’이 고통받는다는 식의 관념은 진보나 보수라는 이데올로기에 따른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은 급속도로 성장한 국가입니다. 산업도, 부동산도 국가 주도로 개발되고 육성되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20세기 중후반까지 투자의 기회는 거의 없고 투기의 기회만이 존재하는 기형적인 경제 환경에 잠겨 있었죠.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방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외국 자본의 공세에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을 한국 경제가 갖춘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 기형적인 시대를 지나며 누군가는 떼돈을 벌었습니다. 노력보다 훨씬 더 많이 벌었습니다. 그걸 ‘사다리’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실은 누군가가 내 집을 마련해 안정적인 삶을 일굴 기회를 빼앗아 얻은 부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그래서 투기를 막겠다는, 부동산으로 큰돈 벌겠다는 생각을 꺾겠다는 목표가 생깁니다. 김영삼 정부도 그 목표를 지향했습니다. 다만, 직전 정권에서 워낙에 공급을 크게 풀어 놓다 보니 집값이 알아서 안정된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집값을 정조준한 정책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것이고요. 다만, 부동산을 가진 사람에게 제대로 세금을 매기겠다는, ‘보유세’ 강화 기조는 확실했습니다. 이를 위해 부동산 실명제가 필요했고요.
뉴타운이 남긴 악몽
그런데 시대는 바뀌어 아파트 가격이 급기야 떨어지는 일이 발생합니다. 부동산 불패 신화가 깨진 겁니다. 이명박 정권 때였습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전 세계 경제 기반이 흔들리는데, 정책은 공급을 밀어붙였습니다. ‘뉴타운 개발’입니다. 공급을 수요가 따라오지 못하자 자연스레 가격이 하락합니다. 특히 강남 아파트 가격은
16퍼센트 떨어졌습니다.
강남 불패의 신화가 잠시 멈췄던 순간입니다. 강남만 신화가 깨지면 모르겠는데, 뉴타운 정책이 쓸고 지나간 곳을 중심으로 부동산 하락이 시작되었습니다. 집을 사면 자연스럽게 재산 증식이 된다는 법칙 자체가 깨졌습니다. ‘하우스 푸어’라는
신조어가 등장합니다. 우리는 상승장을 주로 기억하지만, 집값 하락은 또 다른 후폭풍을 가져옵니다. 더 안정적인 삶으로 나아갈 사다리 자체가 부서지는 겁니다.
세계 경제가 휘청이는데도 뉴타운 개발 열풍이 멈추지 못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잘 먹히는 카드였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시절부터 시작된 이 공급 정책은, 개발 구역이 지정되면 선거에서
필승하는 마법의 카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치가 만들어 낸 인위적인 공급은 시장 경제와 엇박자를 내면서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 ‘빚내서 집 사는’ 정책을 밀어붙였던 이유입니다. 어떻게든 떨어지는 집값을 끌어올리겠다는 의도였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윤석열 정부 시절의 부동산 가격은 좀 복잡합니다. 국민 평수라는 서울 30평형대 아파트 평균 시세만 놓고 보면, 상승률은 1퍼센트 수준입니다. 주택 가격 안정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강남과 비강남을 놓고
비교해 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강남이 아닌 지역은 가격이 오히려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강남 집값이 폭등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집값이 상승한 꼴이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서울 집값을 강남이 혼자서 받쳐 올린 겁니다.
최근 〈KBS〉에서 흥미로운 취재를 했습니다. 노원, 마포, 강남의 아파트를 분석해 봤더니 노원의 재건축 예상 아파트는 60퍼센트가, 대기업 맞벌이 부부가 갈 수 있는 최고의 아파트로 불리는 마포의 준공 14년 차 단지는 51퍼센트가 빚 없이 현금으로 집을 샀습니다. 원래 현금 부자거나 갭투자를 했을 거란 분석입니다. 두 곳 모두 매수자가 거주하는 비율은 20퍼센트에 그쳤고요. 지방에 살면서 서울 아파트를 투자 목적으로 한 채 장만하는 식입니다. 서울에 ‘똘똘한 한 채’를 마련해 두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