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그래서 시 주석의 집권 1기와 2기 동안 장유샤는 시진핑이었고, 시진핑은 곧 장유샤였습니다. 갈등의 소지가 없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관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정치 내부의 사정은 사실 속속들이 파악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아주 큼지막한 사건 정도는 외부로 알려집니다. 특히 사건의 발단이 미국이라면 더욱 그렇겠죠.
사달이 난 것은 2022년 10월 24일입니다. 미국 공군대학 산하 중국 항공우주 연구소에서 중국 로켓군(PLA Rocket Force)에 관한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총 25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보고서에는 중국 로켓군 사령부의 위치와 미사일 기지의 좌표 등 군 기밀 정보가 상세히 담겼고요. 이 정도면 내부자가 정보를 넘긴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것이 중론이었죠.
당연히 중국이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특히 시 주석이 크게 분노했다고 합니다. 미국에 맞설 국방력을 강조하는 시 주석이 로켓군에 각별히 신경 쓰고 공을 들였기 때문입니다. 로켓군은 핵탄두를 포함한 미사일을 운용하는 곳입니다. 중국이 육군과 해군, 공군 외에 로켓군이라는 별도의 군종을 두게 된 것 자체가 미사일 전력을 중요시하는 시 주석의 판단 때문이었고요.
결국 2023년부터 군부에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로켓군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숙청이 시작된 겁니다. 명분은 부패를 뿌리 뽑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목적이 당연히 있겠죠. 시진핑은 집권 1기와 2기 시절에도 숙청을 단행했습니다. 온건하고 합리적이며, 집단 지도 체제에 가까운 정치를 펼칠 것이라는 원로들의 기대와는 달리, 시진핑은 반대파를 거침없이 숙청했습니다. 하지만 자기편은 잘 챙겼습니다. 장유샤와 그의 측근들도 안전했죠.
그런데 2023년부터는 장유샤의 측근들이 제거되기 시작합니다. 당시 장유샤가 한동안 공식 석상에서 사라졌는데, 자신의 파벌에 대한 숙청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무성했습니다. 하지만 장유샤는 쉽게 손댈 수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시진핑이 장기 집권하는 동안 장유샤도 군부 내에서 세력을 더욱 단단히 굳혔습니다. 중국은 시진핑이 장악했지만, 군부는 장유샤가 장악했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장유샤가 시진핑으로부터 등을 돌렸습니다. 분열의 시작입니다.
스탈린
시진핑의 정치 스타일에는 스탈린의 그림자가 어려 있습니다. 스탈린은 1936년 공산당은 물론 군부와 사회 전반에 걸친 대숙청을 시행했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경쟁자, 지식인, 국가의 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자신에게 긴밀히 협력했던 사람들까지도 무자비하게 제거했죠. 스탈린이 정적을 모두 없애버린 이후에도 숙청이라는 극단적인 통치 방법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대기근 때문이었습니다. 1930년대 초 지금의 우크라이나 지역을 중심으로 닥친 끔찍한 흉작으로 350만 명이 굶어 죽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독재자가 권력을 유지할 방법은 끝나지 않는 숙청입니다. 도전과 비판의 싹을 잘라버리는 방법이죠.
시진핑 3기가 시작되기 직전, 중국은 코로나19로 인한 극단적인 봉쇄령을 경험했습니다. 당시 불만이 고조된 나머지 시진핑을 비난하는 시위가 일 정도였죠. 잘 알려졌다시피 청년 세대의 구직난은 심각하고, 집권 이후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시진핑에게도 스탈린처럼 숙청이라는 통치 방법이 계속 필요합니다.
특히 장유샤처럼 자신의 측근으로 오랫동안 가까이에 머물며 세력을 키워 온 사람이라면 특히 더 위험하겠죠. 정적 이상으로 내 자리를 빼앗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유샤 본인을 직접 겨냥할 수는 없었지만, 그 주변을 숙청의 대상으로 삼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2024년 이후부터 최근까지는 흐름이 또 바뀌었습니다. 군부 내의 시진핑 파벌이 숙청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겁니다. 장유샤가 반격에 나섰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중국 군부 서열 3위였던 허웨이둥, 5위였던 먀오화 모두 시진핑 파벌이었고, 숙청되었습니다. 반면, 서열 4위였던 류전리는 무사합니다. 장유샤 파벌 쪽 인물입니다. 시진핑이 권력을 잃었다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이죠.
후계자
다만, 이 숙청이 장유샤의 뜻이었는지 시진핑의 뜻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만약 시진핑이 스스로 자신의 파벌을 잘라낸 것이라면, 부패 척결에 있어 그 누구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긴장을 늦추거나 배신한다면 용서란 없다는 시그널 말입니다. 반면, 장유샤의 힘이 작용한 것이라면 시진핑의 임기는 이번 3기까지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실제로 최근 시 주석의 경호 인력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기세등등한 권력자의 주변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현상이긴 합니다.
시진핑은
소년 시절,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홍위병에게 둘러싸여 굴욕적인 모자를 뒤집어써야 했습니다. 군중 속에서 욕설을 들어야 했죠. 그 군중 속에는 시진핑의 어머니도 있었고요. 광기의 시대가 끝난 후 중국은 한 명의 독재자가 권력을 틀어쥐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절감했고, 공산당을 통한 집단 지도 체제로 선회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시진핑은 어린 시절의 경험을 다르게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인민들’에게 힘을 쥐여줄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진핑은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독재 체제를 구축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남을 겁니다.
오는 9월경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가 4중전회(四中全會)를 열 전망입니다. 5년 단위로 바뀌는 중앙위원회가 4년 차에 여는 연례 회의라는 뜻입니다. 일정표상 시진핑이 후계자에게 권력을 물려준다면 이 회의에서 윤곽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변화가 정말 일어난다면, 다음 권력은 장유샤 파벌 쪽으로 이동합니다. 장유샤는 시진핑과는 정치 성향이 다르다고 합니다. 집단 지도 체제로의 복귀를 주장하고, 대만과의 관계에도 온건한 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겪어 봐야 압니다. 시진핑도 집권 이전까지는 야심을 숨기고 온화한 이미지를 뒤집어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