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독재자

bkjn review

시진핑 실각설이 돕니다. 올가을 윤곽이 드러납니다.

흔들리는 독재자

2025년 7월 2일

21세기를 상징하는 권력자를 꼽자면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한 국가의 정상 자리를 13년째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느샌가 시진핑은 중국 그 자체로 세계인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푸틴이 없는 러시아를 상상하기 힘든 것처럼, 시진핑이 없는 중국도 상상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최근 심상치 않은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권력을 잃고 있다는 겁니다. 4연임은 힘들 수 있다는 얘깁니다. 최근 군부를 중심으로 시 주석의 최측근들이 숙청당하고 있는데, 이것을 시 주석의 힘이 빠졌다는 시그널로 해석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만약 시 주석의 시대가 정말 끝나가고 있는 것이라면, 국제 사회의 질서 자체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시진핑이라는 인물은 신냉전, 신제국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스트롱맨’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중국의 정권 교체가 정말로 시작된다면, 그 시점은 올가을부터입니다. 딱 한 계절이 남은 셈입니다.

시중쉰

중국은 공산당과 군부가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 주석은 직함을 세 개나 갖고 있습니다. 중국이라는 국가를 대표한다는 의미의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중국 공산당의 수장으로서의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마지막으로 중국 군부의 통수권자를 의미하는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까지 말이죠.

시 주석 직전에 집권했던 후진타오 주석은 군부 장악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원칙적으로 중국의 군부, 즉 인민해방군은 공산당의 통제하에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무기를 쥐고 있는 쪽은 군부입니다.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면, 통제하기 어렵죠. 정치적인 위기의 순간에 군부 혹은 군부의 지원을 받는 세력에게 정권을 빼앗길 위험이 커집니다. 후 전 주석도 늘 그런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인민해방군의 고위 장성들이 후 전 주석을 대놓고 무시했다는 뒷얘기가 꽤 많습니다.

시 주석은 다릅니다. 집권 초기부터 군부를 단단히 장악했죠. 이유가 있습니다. 시 주석의 아버지인 시중쉰은 국공내전 당시 활약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진 인물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 개국 공신에 이름을 올린 겁니다. 이후 부침은 있었지만, 시중쉰은 원로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덕분에 시진핑은 홍얼다이(紅二代), 즉 정치적 금수저로서의 특권을 누릴 수 있었고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출셋길에 올라탔습니다. 첫 직장은 중앙군사위원회 판공청의 비서직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국방부 장관 비서진입니다. 자연스럽게 군부에 탄탄한 인맥을 만들었습니다.
장유샤는 시진핑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중국 군부 실세입니다. 사진은 2017년 러시아 방문 당시 푸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입니다. / 출처: 크렘린 궁
장유샤

본인의 인맥 말고도 시 주석에게는 믿을 구석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사석에서 ‘형님’으로 부른다는 장유샤라는 인물입니다. 중월 전쟁 등 전장에서 활약하며 성과를 냈고, 이름을 알렸습니다. 실전 경험과 승전 기록은 군인으로서 가장 값진 자산입니다. 장유샤는 군 내부의 신망이 두텁습니다. 시진핑과는 부모 세대부터 친분을 쌓았고, 출신 지역도 가깝습니다. 시 주석이 처음 집권했을 당시 ‘시진핑의 호위무사’로 소개되곤 했죠. 현재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을 맡고 있습니다. 군부에서는 시진핑 다음가는 ‘2인자’입니다.

이 둘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이들의 10대 시절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둘의 부모 세대는 권력자였습니다. 그러나 1966년 문화대혁명이 발발하면서 권력자는 인민재판과 조리돌림의 대상이 됩니다. 가족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시진핑과 장유샤는 금수저 도련님에서 인민의 적으로 추락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당시 10대였던 시진핑은 시골 마을로 보내져 이가 들끓는 동굴에서 먹고 자면서 도랑을 파고 비료를 날랐습니다. 장유샤도 학업 대신 군대를 선택했습니다. 인민해방군에 입대했죠. 그러니까, 이 둘은 ‘생존자’입니다.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끝나고 이들은 다시 권력자 가문의 도련님이라는 지위를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10대 시절 경험한 사건은 쉽게 지워질 만한 것이 아닙니다. 시진핑과 장유샤는 전우는 아니되 그에 준하는 관계입니다. 생사의 동지 말입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는 문화대혁명의 광기에 아버지를 잃은 한 여성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 출처: 넷플릭스
시진핑

그래서 시 주석의 집권 1기와 2기 동안 장유샤는 시진핑이었고, 시진핑은 곧 장유샤였습니다. 갈등의 소지가 없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관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정치 내부의 사정은 사실 속속들이 파악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아주 큼지막한 사건 정도는 외부로 알려집니다. 특히 사건의 발단이 미국이라면 더욱 그렇겠죠.

사달이 난 것은 2022년 10월 24일입니다. 미국 공군대학 산하 중국 항공우주 연구소에서 중국 로켓군(PLA Rocket Force)에 관한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총 25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보고서에는 중국 로켓군 사령부의 위치와 미사일 기지의 좌표 등 군 기밀 정보가 상세히 담겼고요. 이 정도면 내부자가 정보를 넘긴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것이 중론이었죠.

당연히 중국이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특히 시 주석이 크게 분노했다고 합니다. 미국에 맞설 국방력을 강조하는 시 주석이 로켓군에 각별히 신경 쓰고 공을 들였기 때문입니다. 로켓군은 핵탄두를 포함한 미사일을 운용하는 곳입니다. 중국이 육군과 해군, 공군 외에 로켓군이라는 별도의 군종을 두게 된 것 자체가 미사일 전력을 중요시하는 시 주석의 판단 때문이었고요.

결국 2023년부터 군부에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로켓군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숙청이 시작된 겁니다. 명분은 부패를 뿌리 뽑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목적이 당연히 있겠죠. 시진핑은 집권 1기와 2기 시절에도 숙청을 단행했습니다. 온건하고 합리적이며, 집단 지도 체제에 가까운 정치를 펼칠 것이라는 원로들의 기대와는 달리, 시진핑은 반대파를 거침없이 숙청했습니다. 하지만 자기편은 잘 챙겼습니다. 장유샤와 그의 측근들도 안전했죠.

그런데 2023년부터는 장유샤의 측근들이 제거되기 시작합니다. 당시 장유샤가 한동안 공식 석상에서 사라졌는데, 자신의 파벌에 대한 숙청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무성했습니다. 하지만 장유샤는 쉽게 손댈 수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시진핑이 장기 집권하는 동안 장유샤도 군부 내에서 세력을 더욱 단단히 굳혔습니다. 중국은 시진핑이 장악했지만, 군부는 장유샤가 장악했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장유샤가 시진핑으로부터 등을 돌렸습니다. 분열의 시작입니다.

스탈린

시진핑의 정치 스타일에는 스탈린의 그림자가 어려 있습니다. 스탈린은 1936년 공산당은 물론 군부와 사회 전반에 걸친 대숙청을 시행했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경쟁자, 지식인, 국가의 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자신에게 긴밀히 협력했던 사람들까지도 무자비하게 제거했죠. 스탈린이 정적을 모두 없애버린 이후에도 숙청이라는 극단적인 통치 방법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대기근 때문이었습니다. 1930년대 초 지금의 우크라이나 지역을 중심으로 닥친 끔찍한 흉작으로 350만 명이 굶어 죽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독재자가 권력을 유지할 방법은 끝나지 않는 숙청입니다. 도전과 비판의 싹을 잘라버리는 방법이죠.

시진핑 3기가 시작되기 직전, 중국은 코로나19로 인한 극단적인 봉쇄령을 경험했습니다. 당시 불만이 고조된 나머지 시진핑을 비난하는 시위가 일 정도였죠. 잘 알려졌다시피 청년 세대의 구직난은 심각하고, 집권 이후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시진핑에게도 스탈린처럼 숙청이라는 통치 방법이 계속 필요합니다.

특히 장유샤처럼 자신의 측근으로 오랫동안 가까이에 머물며 세력을 키워 온 사람이라면 특히 더 위험하겠죠. 정적 이상으로 내 자리를 빼앗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유샤 본인을 직접 겨냥할 수는 없었지만, 그 주변을 숙청의 대상으로 삼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2024년 이후부터 최근까지는 흐름이 또 바뀌었습니다. 군부 내의 시진핑 파벌이 숙청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겁니다. 장유샤가 반격에 나섰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중국 군부 서열 3위였던 허웨이둥, 5위였던 먀오화 모두 시진핑 파벌이었고, 숙청되었습니다. 반면, 서열 4위였던 류전리는 무사합니다. 장유샤 파벌 쪽 인물입니다. 시진핑이 권력을 잃었다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이죠.

후계자

다만, 이 숙청이 장유샤의 뜻이었는지 시진핑의 뜻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만약 시진핑이 스스로 자신의 파벌을 잘라낸 것이라면, 부패 척결에 있어 그 누구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긴장을 늦추거나 배신한다면 용서란 없다는 시그널 말입니다. 반면, 장유샤의 힘이 작용한 것이라면 시진핑의 임기는 이번 3기까지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실제로 최근 시 주석의 경호 인력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기세등등한 권력자의 주변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현상이긴 합니다.

시진핑은 소년 시절,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홍위병에게 둘러싸여 굴욕적인 모자를 뒤집어써야 했습니다. 군중 속에서 욕설을 들어야 했죠. 그 군중 속에는 시진핑의 어머니도 있었고요. 광기의 시대가 끝난 후 중국은 한 명의 독재자가 권력을 틀어쥐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절감했고, 공산당을 통한 집단 지도 체제로 선회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시진핑은 어린 시절의 경험을 다르게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인민들’에게 힘을 쥐여줄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진핑은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독재 체제를 구축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남을 겁니다. 

오는 9월경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가 4중전회(四中全會)를 열 전망입니다. 5년 단위로 바뀌는 중앙위원회가 4년 차에 여는 연례 회의라는 뜻입니다. 일정표상 시진핑이 후계자에게 권력을 물려준다면 이 회의에서 윤곽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변화가 정말 일어난다면, 다음 권력은 장유샤 파벌 쪽으로 이동합니다. 장유샤는 시진핑과는 정치 성향이 다르다고 합니다. 집단 지도 체제로의 복귀를 주장하고, 대만과의 관계에도 온건한 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겪어 봐야 압니다. 시진핑도 집권 이전까지는 야심을 숨기고 온화한 이미지를 뒤집어썼습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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