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이렇게 무책임합니다.

bkjn book review

동일본 대지진을 맞혔다는 소문만으로 책 한 권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일본에서 연일 지진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규슈 남부 지역의 도카라 열도에서는 지난 열흘 동안 1000회 이상의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했죠. 묘한 공포감이 일본 전체에 떠다니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도카라 법칙’이 실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퍼지고 있는 겁니다. 이 지역에서 지진이 잦아지면 이후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 대지진이 발생한다는 속설입니다.

물론 일본의 전문가들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낭설이라며 손사래를 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감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습니다. 이번 지진은 사실, ‘2025년 7월 5일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난다’라는 예언을 뒷받침하는 사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인 연관 관계를 따진다고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공포감이 사라질 리가 없습니다. 예언대로 7월 5일에 정말 재앙이 닥칠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기사가 매일 쏟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2011년 발생했던 동일본 대지진보다 훨씬 강력한 지진이 일본을 덮친다는 예언, 그것도 정확한 날짜까지 지정한 이 예언은 신흥 종교의 교주나 예언가를 자처하는 사람이 내놓은 것이 아닙니다. 한 만화가의 주장입니다. 1999년에 초판이 발간된 《내가 본 미래》라는 만화에 일본 대지진을 예언해 뒀고, 그 날짜가 바로 2025년 7월 5일입니다.

발간 당시 이 책은 존재감 없이 묻혀 버렸습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조잡합니다. 출판사에는 가혹한 평가일 수 있겠지만, 편집과 구성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없습니다. 내용도 실망스럽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예지몽’을 꾸었다고 주장하면서, 구체적인 사례를 만화로 소개합니다. 이후에는 예지몽을 그림으로 기록해 둔 ‘꿈 일기장’의 사진과 간단한 설명이 따라붙죠. 일방적인 주장입니다.

물론, 예지몽이라는 것이 근거가 아닌 결과를 논하게 되는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자신의 예지몽이 정말 맞아 들어갈 수 있다고 독자를 설득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저 그룹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사망을 미리 꿈꾸었다거나, 친척의 장례식을 꿈에서 미리 보았다는 식의 사후적인 이야기가 이어진 뒤, 자신이 예지몽을 통해 봤다는 미래의 모습을 나열할 뿐입니다. 꿈을 꾼 뒤 일기장에 그리고 적어 기록해 둔 내용에 설명을 붙이기는 하지만, 대개 자기 생각이나 감상 수준이죠.

예언을 담은 책을 팔면서 최소한의 성의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판 발간 당시 반응이 없었던 이유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책이 역주행을 시작했습니다. 표지에 그려진 다섯 가지 꿈 중의 하나에 사람들이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2011년 3월이라는 날짜가 적힌 꿈 이야기입니다. 

“대재해(大災害)는 2011년 3월”

표지에 적힌 이 문장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입니다. 같은 해 8월 일본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정점을 찍었습니다. 전염병 재난이 한창이던 때입니다. 각자 집에 머물며 타인과의 거리를 유지해야 했던 불안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의 눈에 《내가 본 미래》가 띄었던 것 같습니다. 순식간에 붐이 일어납니다.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을 예언한 책이 발견된 겁니다.

이후 작가 타츠키 료의 이름으로 몇몇 잡지와의 인터뷰 기사도 나오며 분위기는 더욱 고조됩니다. 하지만, 이 인터뷰는 가짜였습니다. 책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입길에 오르자, 누군가 작가를 사칭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때 책에 실려 있지도 않은 내용들까지 맞혔다는 가짜 뉴스도 나옵니다. 예를 들면 예지몽 내용 중에 코로나19 사태를 예견한 것도 있었다는 등의 얘깁니다. 그런 내용은 책에 전혀 없습니다. 그림 한 장도 실려 있지 않습니다.

작가는 책이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은퇴한 후 잠적해 있었습니다. 인터넷에도 거의 접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이 다시 역주행하면서 중고 책이 50만 엔에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도,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빌려 거짓을 말하고 다닌다는 사실도 몰랐죠. 작가를 사칭했던 사람이 출판사와 《내가 본 미래》의 개정판을 준비하게 된 이후에야 본인에게 자세한 상황이 전해집니다. 2021년에 작가의 코멘트와 수정 사항 등이 반영된 ‘완전판’이 다시 출간되었던 이유입니다. 출판사가 사칭범과의 작업을 중단하는 대신 작가를 설득해 수정본을 다시 출간하기로 한 겁니다.

그리고 다시 출간된 2021년판에서 작가는 자신이 꾼 대재해에 관한 예지몽은 2011년의 지진이 아닌 것 같다고 한 발 뺍니다. 규모나 위치로 봤을 때 규슈에서 간사이 지방 남쪽의 바다 쪽에 동일본 대지진 때의 세 배 규모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지진이 있을 것이라고 말을 바꾸죠. 그리고 다시 지정한 날짜가 2025년 7월 5일입니다.

저는 타츠키 료 작가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명성을 얻어 부자가 되기 위해 이런 경고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책에는 그런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의도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예언을 믿으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큰일이 닥치기 전에 이런저런 준비가 필요하겠다는, 상식선에서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내용을 덧붙일 뿐입니다. 이 책에는 작가가 꾸었다는 예지몽과 그에 관련된 경험 외에는 그 어떠한 선동도, 설득도 없습니다.

어렴풋이 이 책을 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작가는 1998년 인도를 여행했을 당시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작가 자신이 전생에 인도의 영적 지도자로 이름을 날렸던 ‘사티야 사이바바’의 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이바바가 전생에 1800년대 쿠웨이트로 건너간 영국인 기자였으며, 자신은 당시 그의 딸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이는 사이바바 본인의 이야기와 엇갈립니다. 사티야 사이바바는 자신이 19세기의 전설적인 힌두교 구루인 ’쉬르디 사이바바’가 환생한 존재라고 주장하며 추종자를 모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손금이 사이바바의 것과 거의 같았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담담하게 사이바바의 딸이었노라고, 인도에서 그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재회’했노라고 이야기합니다.

작가는 자신이 어딘가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평생 품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내기 직전 인도에서 자아를 재발견하는 경험을 했죠. 그래서 일종의 자기 고백으로, 그리고 혹시 자신의 말을 누군가 믿는다면 닥쳐올 재앙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책을 냈습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는 ‘팔릴만한’ 책이라고 판단했을 테고요. 첫 발간 당시 조용히 사라졌고 그렇게 끝나면 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지금 일본을 들끓게 합니다.

30년간 80퍼센트

왜일까요. 일본의 독자들이 딱히 근거 없는 주장을 잘 믿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일본만큼이나 이 소식에 예민한 곳이 어디인지를 살펴보면 답이 보입니다. 중화권 쪽이 크게 반응하고 있는데, 대만은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일본만큼 이 ‘예언’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여행 취소율이 홍콩 다음으로 큽니다. 일본과 대만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진’이라는 재난에 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엄청난 재난으로 이어지는 대지진까지는 아니어도 일본과 대만 모두 작은 규모의 지진이 꽤 잦은 편입니다.

누구도 미래를 알 수 없다고 하지만, 인류의 과학 기술로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위성 사진으로 내일 밤 상륙할 태풍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일기 예보가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경험은 일기 예보가 당연히 맞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성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진은 홍수나 가뭄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예측이 안 됩니다. 기껏해서 심해어가 해수면으로 올라왔다는 식의 ‘징조’ 같은 것에 기댈 뿐입니다. 그마저도 지진이 임박한 것 아닐까 하는 불안을 키울 뿐, 언제쯤 지진이 발생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난카이 대지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일본 기준으로 남쪽 바다 전체를 ‘난카이(南海)’라고 합니다. 이 부근에서 100년에서 150년 주기로 강한 지진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역사적 기록만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지질학자들의 연구 결과입니다. 판과 판이 만나는 곳이라 그렇습니다. 바다 쪽의 판이 육지 쪽의 판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형태입니다. 지진 발생 주기나 최근 주변 바다에서 일어나는 잦은 지진의 양상으로 보아 이번 대지진이 곧 닥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곧’이라는 시기의 범위가 너무 넓습니다. 내일일 수도 있고, 30년 후일 수도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는 앞으로 30년 이내에 대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80퍼센트 이상이라는 겁니다. 엄정한 측정 결과에 근거한 발표도 아닙니다. 그저 100년에 한 번꼴로 발생했으니, 1년에 지진 발생 가능성이 1퍼센트 정도 오른다고 계산하면 이 정도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진은 인류가 과학 기술로도 정복하지 못한 ‘불확실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2025년 7월 5일’을 향한 뜨거운 관심과 불안의 답이 있습니다. 이 불확실한 재난에 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이 불확실성의 크기를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즉, ‘종결 욕구’도 더 커집니다.

종결 욕구를 부추기는 범인

종결 욕구란 불확실한 상황을 불편하게 느끼는 심리 상태입니다. 욕구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문화적인 영향, 성장 과정의 경험은 물론 유전적인 요인까지 작용한다고 합니다. 종결 욕구가 큰 사람은 집중력이 좋습니다. 대신 한 가지 생각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유연성은 떨어집니다. 반면, 이 욕구가 작은 사람은 개방적이고 관습에 신경 쓰지 않는 자유로운 성격입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능력이 중요해진 요즘에는 종결 욕구가 작은 사람이 유리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종결 욕구가 없다면 우리는 쉽게 다치고 죽을 겁니다. 종결 욕구가 없다면 인간은 충분한 정보를 획득하지 않는 이상 불확실성 앞에 머뭇거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저 수풀 너머의 그림자가 토끼인지, 늑대인지 판단해야 하는 순간에는 종결 욕구 때문에 부족한 정보로도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빨리 결론을 내고 싶은 욕망이 ‘이 정도 정보면 충분하다’라고 자신을 납득시키는 겁니다.

그런데 심리학자 아리 크루글란스키 교수는 저서 《불확실한 걸 못 견디는 사람들》에서 정보를 처리하기 힘들고 불편한 상황에서는 종결 욕구가 커진다고 이야기합니다. 너무 피곤하거나 술에 취해 인지 능력이 떨어진 상황에서도 확실성을 원하는 경향이 높고요. 크루글란스키 교수는 불확실성을 피하고 어떻게든 확실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갈망이 “우리의 존립이나 안전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교수는 책에서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예로 들었습니다. 《내가 본 미래》가 온라인에서 다시 입길에 오르던 때입니다. 난카이 대지진이 곧 닥칠 것이라는 경고도 잘 들어맞는 예시가 될 테고요.

지금 일본은 언제든 들이닥칠 수 있는 재난이라는 불확실성 앞에 서 있습니다. 보통은 이런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이 전문가나 정부 등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불확실성 그 자체가 과학적인 결론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그게 사실일 겁니다. 그런데 정부마저 ‘30년 내에 80퍼센트’라는 애매한 수사로 불확실성을 오히려 더 키웁니다. 그 결과 동일본 대지진을 맞혔다는 소문만으로 책 한 권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일본 시민들은 확실성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정부 부재

일본 정부의 입장은 일종의 책임 방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아야 할 숫자는 쓰나미에 대비한 구조물을 건설하기 위한 예산 규모나 위험 지역에서 안전한 곳으로 몇 명이 얼마 만에 대피할 수 있는지에 관련된 것이니까요. 이런 숫자들이야말로 불확실한 위험을 대비 가능한, 확실한 상황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를 믿으라고 했지만, 시민을 지킬 수 없었던 전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2011년의 대지진 얘깁니다. 이후 일본의 자민당 정권은 뿌리부터 흔들렸습니다. 아베 전 총리가 팬데믹 상황에서도 도쿄 올림픽 개최에 집착했던 이유입니다. 2011년의 정부 실패를 극복하고 일본이 ‘부흥’했다는 상징으로 올림픽 행사를 이용하고자 한 겁니다.

일본 정부는 대지진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개인이 철저히 대비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으로 선회했습니다. 물론 완전히 손을 놓은 것은 아닙니다. 지난 2014년, 난카이 대지진에 대비한 방재 계획을 세웠습니다. 사망자 수를 80퍼센트 줄이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정부 추산 예상 사망자 수 감소는 20퍼센트에 불과합니다. 2025년 7월 1일, 일본 정부는 같은 계획을 세웁니다. 2014년의 계획과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목표는 여전히 사망자 수를 80퍼센트 줄이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정부 부재입니다.

2025년 7월 5일이 되면 《내가 본 미래》를 둘러싼 이야기는 일종의 헤프닝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을 잊지 않겠죠. 예언이 빗나가고도 그 생명을 잃지 않는 까닭입니다. 이미 작가는 7월 5일이라는 날짜는 편집부의 부탁으로 넣은 것이라며 “꿈을 꾼 날이 반드시 어떤 일이 일어나는 날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차기작 얘기도 나옵니다. 어떤 책은 이렇게 무책임합니다. 일본 사회는 지금 무책임한 책, 무책임한 정부로 인해 더 큰 불확실성과 종결 욕구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bkjn book review는 단순 서평이 아닙니다. 원전을 해체해 다른 책, 기사, 논문과 연결합니다. 매월 한 권의 책을 리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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