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버그를 그냥 두고 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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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생태계에는 불량품이 없습니다.

러브버그를 그냥 두고 보는 이유

2025년 7월 7일

이제 일주일 남았습니다. 수도권을 뒤덮은 러브버그는 일주일 정도면 잦아들 전망입니다. 저도 지난주보다는 개체수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당장 길을 걷다 부딪히게 되는 경우가 줄어들었으니까요. 하지만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럴 것으로 생각하면 좀 피곤해집니다. 아무리 익충이라지만, 어떻게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 스스로 화들짝 놀랍니다. 인위적인 방제가 얼마나 생태계를 뒤흔들고 파괴했는지 잘 알면서 또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하자는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듭니다. 올여름 러브버그와 관련해 가장 많이 전달된 지침은 ‘물을 뿌려 쫓으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임시방편입니다. 정부는 사실상 러브버그와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지침을 내린 겁니다. 한 종의 ‘창궐’ 앞에 우리가 원래 이렇게 너그러웠나 돌아보게 됩니다.

향기로운 편백 숲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 전 특정 지역에서 창궐했던 또 다른 곤충의 사례를 살펴보죠. 2020년 여름 서울 은평구에서 대량 발생한 대벌레 군집 이야깁니다. 은평구 봉산에 편백 숲이 있습니다. 편백은 향이 좋고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나는 특성이 있습니다. 숲으로 조성하면 보기가 좋죠. 은평구는 봉산에 2014년부터 ‘봉산 편백 치유의 숲’ 사업을 벌였습니다. 원래 자라던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편백을 심었습니다. 총 1만 3400그루입니다. 서울시 ‘최초’의 편백 숲입니다.

궁금하기도 하고 건강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말에 나들이 가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은평구도 그런 효과를 기대했습니다. 봉산이 새로운 명소로 거듭나길 바란 겁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서울에 편백 숲이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편백이란 이름보다 ‘히노키’라는 일본 이름이 더 익숙한 분도 계실 겁니다. 편백의 원산지는 일본입니다. 수분과 양분을 많이 필요로 하는 수종입니다. 건조한 경사지에서는 자라기 어렵습니다. 서울의 산에 잘 맞는 나무가 아니란 얘깁니다.

편백 숲이 조성된 후 사람들이 봉산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은평구의 기대와 달리 불청객도 봉산으로 찾아들었죠. 바로 대벌레입니다. 대나무처럼 길쭉하고 마른, 초록색 벌레입니다. 봉산을 중심으로 떼 지어 나타났습니다. 주변 공원까지 퍼지면서 지역 주민들의 불편이 커졌죠. 하늘에서 뚝뚝 벌레가 비처럼 떨어질 정도였습니다. 은평구는 이후 3년 동안 살충제 희석액 약 9200리터를 살포했습니다. 살충제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봉산 나무마다 끈끈이 띠를 둘렀습니다. 대벌레를 박멸해야 봉산을 살리고, 편백 숲도 ‘치유’라는 쓸모를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요.
 
대벌레는 은평구의 문제였습니다. 러브버그만큼 알려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 출처: 비디오머그
숲의 주인

대벌레를 잡기 위해 진행된 방제 사업은 대벌레만 죽인 것이 아닙니다. 특히 끈끈이에는 나무 사이를 오가는 모든 곤충이 발이 묶인 채 죽었습니다. 흐트러진 새의 깃털도 흔적을 남겼습니다. 나무에도 상처를 입혔습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크게 다쳤습니다. 봉산에 놀러 가 잠시 머무는 인간은 알 도리가 없습니다.

사실, 편백나무가 대벌레를 불러들인 것은 아닙니다. 대벌레는 편백을 먹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빽빽이 자라던 나무를 인공적으로 베어내고 편백을 심은 뒤 대벌레가 나타났습니다. 합리적 의심이 가능합니다. 생태계에 일어난 어떤 빈틈이 대벌레 대량 발생이라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입니다. 그리고 2022년부터, 이 의심을 더 강화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은평구는 2023년 친환경 방제로 대벌레가 전년 대비 52퍼센트 감소했다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그런데 대벌레가 사라진 자리에는 이미 새로운 개체가 또 대량으로 발생해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러브버그입니다. 은평구 봉산은 대표적인 러브버그 초기 발원지로 꼽힙니다. 대벌레 방제 과정에서 생태계에 틈이 생겼고, 그 결과 러브버그가 창궐하게 된 것 아니냐는 것이 환경 단체의 주장입니다.

은평구는 일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빌어 러브버그와 편백 숲은 관계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러브버그의 유충은 편백 같은 침엽수가 아니라 활엽수의 낙엽 더미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봉산에서 자꾸만 특정 개체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현상은 분명 예외적입니다. 인공적인 조림 과정과 방역 과정에서 트리거가 될만한 일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주장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생명의 쓸모

러브버그에는 대벌레처럼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안 그래도 대벌레 발생과 방제 과정에서 은평구는 여러 비판에 직면했었습니다. 게다가 러브버그는 발생 직후부터 지역을 넘어선 관심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던 특이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해충이 아니라 진드기를 박멸하고 지렁이처럼 땅을 비옥하게 하는 ‘익충’이라는 사실도 빠르게 퍼졌습니다. 초반에는 약품을 이용한 방역에 나서던 지자체도 시간이 지날수록 러브버그에는 함부로 손을 댈 수 없게 됩니다. 사람 마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법이 그렇습니다. 현행법상 곤충이 익충으로 분류되면 방제 근거가 없습니다. 지자체의 방역 예산 집행에 법적 근거가 없어진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우리가 러브버그를 함부로 방역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러브버그에게는 너그러워야 하는 이유가 정말 ‘익충’이기 때문인지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또 다른 러브버그를 계속해서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익충인지 해충인지를 판단해 방역 여부를 결정해도 될지를 따져보자는 겁니다.

러브버그가 익충이니 방역하지 말자는 주장은 은평구가 빽빽한 숲을 밀어내고 편백을 심었던 때의 논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은평구는 기존의 숲을 밀어내면서 ‘불량림’을 제거하고 편백을 심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어떤 나무를 불량하다고 할 것인지의 기준은 사람이 정하기 나름입니다. 오래된 나무일까요? 고목은 늙고 쓰러져 결국 땅으로 돌아갑니다. 새로운 나무가 자라날 거름이 되죠. 너무 빽빽이 우거져 햇빛을 가리는 나무일까요? 그 아래에는 그늘을 좋아하는 다른 나무가 자리 잡습니다. 잘 자라지 못하는 나무, 예쁘지 않은 나무도 불량품이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생태계에는 불량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포식자가 있고 천적이 있고 서로 폐를 끼치며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있을 뿐입니다.

전문가들은 사람이 새로 길을 내고 인공적으로 조림한 곳이야말로 생명이 자라기 힘든 ‘침묵의 숲’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향기롭고 아름다운 편백이라 하더라도 생명을 품지 못하면, 어지럽게 얽혀 등산객의 발목을 잡는 아까시나무보다 낫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애당초 생태계를 볼 때 우위와 선악을 가르는 것부터 논리가 맞지 않습니다. 그저, 인간 관점에서 같이 살기 편한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가 있을 뿐이죠.

능력의 한계

대표적인 해충으로 꼽히는 모기에 관해 생각해 볼까요. 한 해 72만 명에 달하는 인간이 모기가 옮기는 질병으로 사망에 이릅니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에게는 양질의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먹잇감이기도 합니다. 지구 전체의 입장에서 보자면 모기는 선하거나 악한 존재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냥 생태계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퍼즐 조각일 뿐이죠.

그러니 인간이 모기를 방역하는 이유는 모기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모기를 방역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을 위협할 만한 다른 부작용이 나타난다면 우리는 방역을 멈춰야 하겠죠. 예를 들어, 모기를 절멸시키면 초콜릿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모기는 카카오와 같은 열대작물의 꽃가루를 옮기는 매개체 역할도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오랫동안 모기와의 전쟁을 이어오면서도 모기를 멸종시키겠다고 나서지 않는 겁니다. 대신 새로운 방법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말라리아모기를 골라 번식하지 못하도록 ‘유전자 조작’을 하는 겁니다. 저는 이 방법도 무조건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유전자 조작 모기를 만들어낸 연구자들은 생태계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말라리아를 예방할 방법을 고심했고 결론을 냈습니다.

러브버그는 분명 우리 삶을 침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생태계를 흔들지 않고 러브버그의 개체수를 줄일 방법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러브버그에 별다른 조치를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익충이라서가 아닙니다. 이 여름이 지나기 전에 우리 사회가 함께 생각하고 논의해 봐야 할 지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여름, 우리는 살충제를 뿌리는 트럭과 환경 단체가 내건 팻말 사이에서 또다시 정답 없는 갈등을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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