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

bkjn review

워싱턴을 벗어나려던 전략과 베이조스의 개입, 모두 실패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

2025년 7월 14일

2013년 여름 제프 베이조스는 2억 5000만 달러에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광고 매출 하락과 구독자 감소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었지만, 베이조스에겐 남는 장사였습니다. 닉슨 대통령을 낙마시킨 명성과 수십 개의 퓰리처상을 수상한 140년 역사를 — 돈으로 살 수 없는 유산을 — 당시 기준으로 아마존 하루 매출이면 살 수 있었으니까요.

베이조스가 포스트 인수 배경을 직접 밝힌 적은 없지만, 정치적 상징성을 고려할 때 단순한 투자가 아닌 일종의 의사 권력 획득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워싱턴DC에는 아마존, 블루오리진 등 베이조스의 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데, 포스트는 워싱턴DC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매체였으니까요.

한편 미디어 업계는 실리콘밸리식 혁신이 낡은 신문 산업을 구해낼 수 있을지 주목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초기 몇 년은 그럴듯했습니다. 그러나 인수 10여 년이 지난 지금, 포스트는 침몰하고 있습니다. 평일 발행 부수가 9만 7000부까지 떨어졌습니다. 미국 중소 도시의 지역지 수준입니다. 불과 5년 전까지 25만 부를 발행하던 신문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혁신인가, 착각인가

베이조스는 포스트를 아마존처럼 바꿨습니다. 이 전략의 핵심은 성과 측정과 최적화의 무한 반복입니다. 우선 베이조스는 아마존의 핵심 개발자를 포스트에 파견했습니다. 기자 중심 조직에서 기자와 개발자 중심 조직으로 바꾸죠. 이들은 ‘아크(Arc)’라는 콘텐츠 관리 시스템(CMS)을 개발해 콘텐츠 작성, 배포, 성과 측정을 자동화했습니다. 이 소프트웨어를 다른 언론사에 판매하며 소프트웨어 회사의 면모를 보이기도 합니다. 조선일보도 250만 달러를 들여 아크를 도입했죠.

아마존식 혁신은 뉴스룸의 문화를 바꿨습니다. 편집자의 직관은 클릭률에 자리를 내줬습니다. 기사 제목은 A/B 테스트를 거쳐 결정됐고, 기사의 성패는 실시간으로 수치화되었습니다. 기자들은 조회 수와 공유, 체류 시간을 근거로 기사의 성과를 확인하게 됐습니다. 포스트 사람들은 독자(reader)라는 말 대신 고객(customer)이나 소비자(consumer)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죠.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웹사이트 월간 방문자 수는 인수 당시 1680만 명에서 2020년 9000만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유료 디지털 구독자는 300만 명을 기록합니다. 이 무렵 국내외 언론에선 포스트의 ‘디지털 퍼스트’ 전략을 배워야 한다는 기사가 쏟아졌죠. 베이조스는 죽어가던 신문 산업마저 살리는 경영의 신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포스트의 구세주는 따로 있었습니다. 트럼프입니다.

트럼프가 떠난 뒤

도널드 트럼프는 포스트의 성장 엔진이었습니다. 트럼프는 집권 1기였던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진보 성향인 포스트와 뉴욕타임스를 거의 매일 공격했습니다. 이들이 러시아 스캔들 특검 등 트럼프의 아픈 곳을 잘 찔렀거든요. 그러자 트럼프는 포스트를 “아마존의 로비스트”라고 비하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런 트럼프의 독설은 웹사이트 트래픽으로 돌아왔습니다. 

트럼프에게 분노하는 독자들은 포스트를 지지하고 구독했습니다. 또 포스트를 지지하지 않더라도 정치 뉴스가 어지간한 영화나 드라마보다 재밌는 시기였습니다. 정치가 오락이 되었고, 언론이 쇼의 스크립트를 제공했죠. 대통령과 치고받으면서 포스트를 포함한 정치 매체들이 그야말로 쑥쑥 큽니다. ‘트럼프 범프(bump)’였죠.

그러나 2021년 1월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나며 쇼는 끝납니다. 포스트의 디지털 구독자 수는 정점을 찍고 하락하고, 체류 시간은 감소하고, 광고 수익은 정체됩니다. 웹사이트 트래픽은 반 토막이 났죠. 결국 2024년에 1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합니다. 평일 발행 부수는 9만 7000부까지 떨어졌고요. 미네소타 지역지 ‘스타 트리뷴(Star Tribune)’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결국, 포스트의 디지털 전환이 성과를 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정치적 열기에 의한 일시적 고양이었다고 봐야 합니다.

정체성의 붕괴

베이조스가 진짜 바꾸고 싶어 했던 것은 포스트의 지리적 정체성이었습니다. 워싱턴 지역지를 넘어 전국지로, 나아가 글로벌 미디어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입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더 큰 시장으로 진출하겠다는데, 이상할 건 없습니다. 그런데 포스트는 그 과정에서 핵심 자산을 자해하듯 파괴했습니다.

2021년까지 포스트 편집국장을 맡았던 마틴 배런(Martin Baron)은 지역 탐사 보도의 신봉자였습니다. 배런은 보스턴글로브의 편집국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지역 사회의 가톨릭교회 성 추문을 폭로한 탐사 보도팀을 이끌어 퓰리처상을 수상했습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실존 인물로 잘 알려져 있죠. 배런은 포스트에서도 지역 탐사 보도를 강화하려 했지만, 베이조스의 전국지 전략을 넘지 못했습니다.

포스트는 올해 6월 워싱턴DC와 인근 지역의 뉴스를 다루는 메트로(Metro) 섹션을 없애고, 메트로, 스포츠, 스타일 섹션을 통합했습니다. 메트로 섹션을 담당하던 베테랑 기자들은 포스트를 떠났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워싱턴’ 포스트에서조차 지역 소식이 배제되었다고 느꼈죠. 포스트는 전국지를 표방하면서 핵심 자산이던 로컬의 신뢰를 스스로 포기한 겁니다.

그렇다고 뉴욕타임스 수준의 전국지가 되지도 못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라는 제호에서 ‘워싱턴’이 갖는 어감이 너무 강해서, 워싱턴DC를 감싸는 순환 도로인 ‘벨트웨이(beltway)’ 안에서나 보는 신문으로 인식됩니다. 몬태나주 사람들이 보기엔 정치인, 로비스트, 관료들이나 읽는 ‘그들만의 신문’인 거죠.

뉴욕타임스도 제호에 ‘뉴욕’이라는 도시명이 들어가지만, 워싱턴과는 색깔이 다릅니다. 뉴욕은 비즈니스, 미디어,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지입니다. 뉴욕의 이야기는 전국의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뉴욕타임스는 요리와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해 전국적 라이프스타일 미디어로 리브랜딩에 성공했죠. 반면 워싱턴은 정치 일변도의 단선적인 도시 느낌이 강합니다.

그런데 그 단선적인 영역마저 다른 매체에 뺏기고 있습니다. 의회와 백악관 취재에선 악시오스와 폴리티코에 밀린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또 워싱턴DC에는 연방준비제도와 국제통화기금 같은 기구가 있죠. 그런데 경제, 금융 부문에서는 월스트리트저널에 뒤처지고 있고요. 종합하자면, 포스트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매체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베이조스의 개입

문제는 또 있습니다. 사주 베이조스입니다. 베이조스는 트럼프 집권 1기 때까지만 해도 편집권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당시 편집국장 마틴 배런은 트럼프 정부의 자선 자금, 국방·보안 예산, 러시아 스캔들 등 정권의 핵심 분야를 대상으로 집중 탐사 보도를 수행했습니다. 트럼프 1기 동안 포스트는 퓰리처상을 세 번 받습니다. 

트럼프는 자신을 공격하는 포스트를 아마존과 동일시했습니다. 포스트의 보도를 반박하는 수준을 넘어, 아마존을 규제해야 한다고 협박했죠. 그래도 베이조스는 편집국을 ‘쪼지’ 않았습니다. 베이조스는 침묵했고, 포스트는 비판 보도를 이어 갑니다. 2017년 포스트는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Democracy Dies in Darkness)”라는 슬로건을 채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2024년 10월 들어 트럼프 재집권이 유력해지자 베이조스는 태도를 바꿉니다. 미국에선 대선에서 특정 후보 지지를 선언하는 언론이 많습니다. 포스트도 그중 하나였고요. 지난 대선을 앞두고 포스트는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사설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대선 약 열흘 전에 베이조스가 사설 게재를 막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포스트는 특정 대선 후보 지지 의사를 밝히지 않겠다고 발표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대선 중립을 지키겠다는 이유였는데, 그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베이조스의 우주 기업 블루오리진은 주요 클라이언트가 미국 항공우주국과 국방부입니다. 트럼프와 등을 돌리면 최대 고객을 잃는 셈이죠. 그래서 베이조스는 ‘선제적 복종’을 하기로 한 겁니다. 주요 칼럼니스트가 사표를 냈고, 구독자의 12퍼센트인 30만 명이 구독을 해지합니다.

올해 2월에도 사건이 있었습니다. 베이조스는 “앞으로 개인의 자유와 자유 시장이라는 두 가지 기본 원칙을 지지하는 칼럼을 쓸 예정”이라며 사실상 ‘보도 지침’을 발표했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자유 시장을 옹호하기로 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뉴스룸에는 자유가 없어졌습니다. 이 방침에 이틀 만에 구독자 7만 5000명이 구독을 해지했습니다. 고참 기자들은 사표를 냈고요.
“Democracy Dies in Darkness” 2025년 2월 도널드 트럼프의 교육 정책에 반대하는 미국 국회의사당 시위 현장에서 등장한 피켓 문구.
어둠 속에서 죽는 것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라는 슬로건은 그로테스크하기는 해도, 포스트의 투쟁적 정신을 상징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 말은 포스트의 운명을 암시하는 문구처럼 들립니다. 뉴스룸은 분열됐고, 독자는 떠났고, 베이조스는 더 이상 신문 산업의 구세주가 아닙니다.

그사이 경쟁자들은 진화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라이스프타일 플랫폼이 됐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금융 엘리트의 정보 채널이 됐습니다. 악시오스와 세마포는 모바일 시대에 최적화한 콘텐츠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반면 포스트는 불확실한 방향성과 노쇠한 브랜딩, 낡은 UX와 구조 조정이라는 전형적인 침몰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마틴 배런은 포스트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거부한 것을 두고 “비겁함, 그리고 민주주의를 희생시키는 어둠의 순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지금 어둠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건 미국의 민주주의 그리고 워싱턴포스트입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