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퍼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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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로 만든 정당이 지금 일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일본인 퍼스트

2025년 7월 17일

일본 정치는 재미가 없습니다. 승자의 얼굴이 늘 똑같기 때문입니다. 1955년 창당된 이후 일본의 제1당은 자민당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총리도 자민당 소속이고요. 70년의 역사를 통틀어 정권을 놓쳤던 적은 약 3년 3개월가량입니다. 일본은 자민당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이 독점이 뒤집힐지도 모릅니다. 오는 7월 20일 치러질 참의원 선거 결과가 관건입니다. 지지율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7월 11일부터 13일 사이에 진행된 NHK의 여론조사에서는 24퍼센트를 기록했습니다. 잠시 정권을 내줬던 민주당으로부터 자민당이 여당 자리를 탈환했던 것이 2012년 12월입니다. 그 이후 자민당의 지지율이 이렇게까지 낮았던 적이 없습니다. 좋지 않은 시그널입니다.

자민당을 향한 지지는 떨어지는데 신생 정당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정당들이 약진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것이 ‘참정당’입니다. 현지 언론은 ‘태풍의 눈’이 될 수 있다며 주목합니다. 그런데 이 정당, 정치를 유튜브 하듯 합니다. 좀 위험해 보입니다.

참여할 수 있는 정치, 참정당

일본 의회는 중의원과 참의원으로 나뉩니다. 각각 하원, 상원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립 여당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연립 여당은 이미 중의원에서 과반을 잃었습니다. 참의원 선거에서도 과반을 지키지 못하면 이시다 내각은 총사퇴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되면,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빼앗깁니다. 야당이 어떻게 합종연횡하느냐에 따라 일본 정계는 급격한 변화의 물살을 탈 수도 있게 됩니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이 사수해야 하는 의석은 50석입니다. 그런데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참정당이 15석까지도 가져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요미우리신문》은 19석까지도 가능하다는 조사 결과까지 내놓았습니다. 참정당이 의석을 확보할수록 연립 여당의 과반은 멀어집니다. 최종적으로 참정당이 두 자릿수 의석을 확보하게 된다면, 그 발언권은 무시 못 할 수준이 될 테고요.

참정당은 2020년 창당되었습니다. 대표는 가미야 소헤이, 1977년생입니다. 일본 정계에서는 꽤 젊은 축에 속합니다. 가미야는 일본 유권자에게 익숙한 정치인 유형이 아닙니다. 먼저 세습 정치인이 아닙니다. 일본은 대체로 대를 이어 정계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치도 가업으로 하는 겁니다. 하지만 가미야의 집안은 정치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가미야 본인은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가족이 운영하던 슈퍼마켓 점장을 맡았던 이력이 있습니다. 이 슈퍼마켓이 도산한 뒤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합니다.

그러니까, 가미야는 자민당의 쟁쟁한 엘리트 정치인들과는 달리 현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자영업자의 고충도 겪었습니다. 스스로도 이 점을 내세웁니다. 자신의 경력이 교육이나 지방 경제에 관한 고민으로 이어졌고, 이 때문에 정치에 뛰어들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당연히 쉽지 않았습니다. 시스템이 자리 잡은 대부분의 국가가 그렇습니다만, 일본 정계야말로 전형적인 ‘그들만의 리그’입니다. 정치 신인이 의회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가업을 이어받는 방식을 택하거나 주요 정당의 주요 계파에 몸담는 것 외에 방법이 없습니다. 가미야도 그 길을 걷고자 했습니다. 자민당 소속으로 중의원 선거에까지 입후보했죠. 하지만 낙선했고 이후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했습니다. 보통은 여기까지입니다. 하지만 가미야는 다른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바로 ‘유튜브’입니다.

유튜브로 창당하는 방법

가미야는 낙선 이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정치 평론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팬덤을 만듭니다. 콘텐츠의 주요 내용은 일본 정치와 역사에 대한 극우적인 해석, 역사 수정주의, 일본 제국주의 옹호,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 비판 등입니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에서 클릭과 후원금이 되는 주제들이죠. 2012년에 개설한 채널은 꾸준히 성장합니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19가 닥쳤습니다.

일본도 당시 강력한 방역 정책을 추진했던 국가 중 하나입니다. 거리의 상점은 문을 닫았고, 거리두기를 엄격하게 시행했습니다. 당연히 일상은 불편해졌고, 불만도 쌓였죠. 가미야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마스크 착용이나 봉쇄, 백신 의무화 등에 반대하는 공약을 내세우면서 신당 창당에 나선 겁니다. 참정당의 시작입니다.

가미야는 창당 과정을 유튜브로 공개했습니다. 어차피 거리에 사람을 모을 수도 없던 시절입니다. 코로나19 방역에 반대하는 공약을 내세우며 2022년 참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 1석을 확보합니다. 가미야가 드디어 의회에 입성한 겁니다. 이 경험은 가미야 자신에게도, 일본에도 중요한 경험이 됩니다. 온라인에서 ‘먹히는’ 이야기가 정치적 의제가 되고, 권력이 되는 과정입니다.

혐오 정치 101

창당 이후 참정당은 가미야의 개인 유튜브 채널과 한몸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가미야가 주요 의제를 소위 ‘전문가’들과 대담 형식으로 풀어 올리면, 이를 바탕으로 참정당의 주요 정책을 만들어 내놓는 식입니다. 그러니까, 참정당은 유튜브 채널 운영의 확장판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참정당의 주요 정책이나 주장도 극우 유튜브 채널이 주로 다루는 이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음모론 같은 것 말입니다. 실제로 참정당 창당 멤버였던 보수 정치 유튜버 카즈야(KAZUYA)는 2021년 탈당을 선언하면서 참정당이 ‘딥 스테이트(Deep State)’같은 이야기를 들고나오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딥 스테이트는 ‘정부 뒤에 숨겨진 비공식적 권력 집단’을 뜻합니다. 정부나 정치인들은 꼭두각시일 뿐이며, 실제로 국가를 조종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전형적인 음모론이죠. / 출처: KAZUYA Channel
물론, 음모론만으로는 지지자를 확장할 수 없습니다. 지금 참정당이 내세우고 있는 주요 정책은 ‘일본인 퍼스트’, 이민 반대와 외국인 규제 강화입니다. 외국인이 일본에서 부동산과 기업을 사들이고, 일자리를 빼앗고, 범죄를 일으키고, 복지 시스템에 기생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외국인 때문에 일본이 불행해졌고 가난해졌으니 이를 되돌리자는 것이죠.

낯설지 않은 주장입니다. 유럽의 극우 정당들이 주장하는 바와 매우 유사합니다. 낯선 사람들을 가해자로 지목하는 수법은 혐오 정치의 기본입니다. 20세기에는 이 방법으로 성공하려면 주요 언론사를 포섭해야 했습니다. 21세기에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플랫폼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지자들이 솔깃할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일본은 경험한 적 없는 경제 상황과 조우하고 있습니다. 엔저 때문입니다. 2020년 12월 100엔은 0.97달러였습니다. 거의 1달러죠. 2025년 7월 17일 현재 0.67달러입니다. 엔화의 힘이 30퍼센트 정도 사라진 겁니다. 이렇게 되면 일본인은 가만히 앉아서 가난해집니다. 자산과 소득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물가도 오릅니다. 수입해 들여오는 원재료 가격 상승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데, 여기에 엔화의 가치도 떨어지니 부담이 더 커집니다.

우리는 가난해지고 있는데, 외국인들이 들어와 일본 기업과 부동산을 쓸어 담고 있다면 공포스럽습니다. 우리 일자리도 빼앗고 내가 낸 세금으로 복지 혜택도 본다니 분통 터집니다. 일본인부터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참정당의 지지율이 오릅니다.

NHK를 보지 않는 시대

이 외에도 참정당은 교육 과정에서 애국주의를 강화하고, 평화 헌법을 개정하자는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일본도 상비군을 보유하고 핵무장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겁니다. 성소수자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며 젊은 여성에게 일할 것이 아니라 임신과 출산을 하도록 장려해야 한다고도 주장하죠. 외부에서 보기엔 선뜻 이해하기 힘들지만,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통해 이 주장이 왜 옳은지 반복해서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됩니다. 동의하게 됩니다.

참정당의 정당 지지율은 현재 8퍼센트 수준입니다. 자민당의 3분의 1입니다. 아직은 참정당이 자민당을 넘어서 정권을 틀어쥘 가능성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신생 정당으로서는 놀라운 수준의 발언권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시바 총리는 “일부 외국인의 범죄와 민폐 행위, 각종 제도의 부적절한 이용 등으로 국민이 불안과 불공평을 느끼는 상황이 생기고 있다”면서 외국인 정책 총괄 조직을 신설했습니다. 참정당의 인기를 의식한 행보라는 진단이 나옵니다. 참정당이 자민당 정부의 외국인 정책을 오른쪽으로 밀어낸 셈입니다. 이번 참의원 선거가 끝나면 일본은 공식적으로 ‘힘 있는’ 극우 정당을 보유한 국가가 됩니다. 몇 년 전의 프랑스나 이탈리아, 독일과 같은 상황입니다.

자민당은 사실 스스로 몰락을 자초한 면이 있습니다. 쇄신 요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애당초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가 자리에서 내려오고 이시바 시게루 현 총리가 정권을 잡게 된 이유는 비자금 스캔들 때문이었습니다. 비자금 문제는 가벼이 볼 수 없습니다. 돈을 타고 청탁과 비리가 정치인에게 흘러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치 자금은 투명해야 합니다. 국민도 모르는 돈주머니를 차면 속부터 썩어들어갑니다.

그러나 이시바 총리의 새로운 내각도 이러한 과거와 절연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자민당 도쿄 도당에서 비슷한 스캔들이 터졌습니다. 현실 감각 없는 정치인들은 사고를 계속 냅니다. 쌀값이 올라 온 나라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농림수산상은 ‘우리 집에 쌀이 많아 사 본 적이 없다’며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가 결국 경질됐습니다. 지진 피해에 관한 공포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관련된 망언을 늘어놓은 정치인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민당의 가장 큰 실책은 정치를 유권자와 함께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민당의 노회한 정치인들은 아직도 고급 식당의 별실에서 국정을 논의합니다. 참정당이 창당 과정을 유튜브에 중계하며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효능감’을 경험케 했던 과정과 비교됩니다. 참정당의 공식 유튜브 구독자 수는 43만 명입니다. 자민당은 14만 명입니다. 사실, 자민당의 유튜브 채널은 그나마 잘하고 있는 편에 속합니다. 틱톡 채널은 팔로워 수가 2000명 수준입니다.

지금 일본은 공고했던 기성 정치 세력이 낡고 닳은 채 쇄신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다양한 신생 정당들이 들어오면서 일본의 미래에 지금까지 없던 선택지가 생기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선택지에는 유튜브가 낳은 혐오의 정치가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남의 일로만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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