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기가 될 조건

bkjn review

유전자를 굳이 조작하지 않더라도 방법이 있습니다. ‘배아 선택’입니다.

나의 아기가 될 조건

2025년 7월 21일

영국에서 특별한 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생후 몇 주에서 2년 이상 된 이 아이들은 아버지는 한 명이지만, 생물학적 어머니는 두 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전 질환을 회피하기 위해 ‘미토콘드리아 이식술’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미토콘드리아는 배아를 성장시키기 위한 일종의 ‘배터리 팩’ 같은 것입니다. 수정된 배아의 중앙에는 전핵(pro-nuclei)이 발달하게 되는데, 여기 인간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2만여 개의 유전자가 들어 있습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전핵을 둘러싸고 있으며, 영양을 공급합니다. 13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습니다.

미토콘드리아 DNA에 ‘결함’이 있는 경우 근육 위축, 심부전, 뇌 질환 등 다양한 의학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5000명 중 한 명꼴로 증상이 나타납니다. 이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새로운 치료법이 등장했습니다. A와 B가 각각 정자와 난자를 제공해 배아를 만듭니다. B는 미토콘드리아 유전병 DNA를 갖고 있죠. 이들의 배아에서 난핵만을 뽑아냅니다. A와 C가 각각 정자와 난자를 제공해 배아를 만듭니다. C는 유전병 요인이 없습니다. 이들의 배아에서 난핵을 제거한 후 A와 B의 난핵을 삽입합니다. 이 배아의 유전자는 ‘대부분’ A와 B의 것입니다. 단, C의 유전자도 아주 일부, 0.1퍼센트 정도 포함하게 됩니다. 이 아이의 부모는 A와 B입니다.
 
빨간 것이 A와 B의 배아입니다. 파란 것이 A와 C의 배아입니다. / 출처:Sharma et al. (2020). Development of mitochondrial replacement therapy: A review. Heliyon. 6. e04643. 10.1016/j.heliyon.2020.e04643.
미토콘드리아 유전병은 아직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고통을 막으려면 예방이 최선입니다. 이식술로 태어난 8명의 아이는 모두 관련 징후가 없습니다. 완전한 예방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엄청난 의학적 진보입니다. 다만, 이식술이 허용되는 곳은 전 세계에 오직 한 곳, 영국뿐입니다. 배아의 유전자에 영구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0.1퍼센트의, 또 다른 어머니의 유전자 말입니다. 이 작은 실마리가 ‘맞춤형 아기’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하지만 유전자는 이미 무작위 확률 게임이 아닙니다. 영국 밖에서도 말이죠.

배아 선택

유전자를 굳이 조작하지 않더라도 방법이 있습니다. ‘배아 선택’입니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오키드헬스(Orchid Health)’는 부모가 되려는 의뢰인들에게 그들의 배아가 가진 정보를 제공합니다. 특히, 수천 가지의 잠재적 질병 가능성 목록을 제공하죠. 체외 수정을 통해 생성된 각 배아가 성장하여 아기로 태어나 성장할 경우 양극성 장애, 암, 알츠하이머, 비만 등이 발생할 확률을 점수표로 만들어 주는 겁니다. 이 서비스는 당연히 비싸고, 주 고객층도 대부분 부유층입니다. 한 고객은 12개의 배아를 생성해 검사를 진행하고 시험관 아기 시술까지 받는 데에 총 3만 달러의 비용이 들었다고 합니다. 자녀라는 인생 일대의 사안에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오키드를 선택합니다.

고도의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입니다. 오키드는 30억 개의 염기쌍으로 이루어진 배아의 전체 유전 정보를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창립자이자 CEO인 누르 시디키는 ‘성관계는 재미를 위한 것이고 배아 검사는 아기를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죠. 즉, 오롯이 아기를 위해 임신하고자 한다면, 일단 체외 수정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만든 몇 개의 배아들을 검사한 뒤, 1200여 가지 질병 가능성에 대한 점수표를 놓고 어떤 배아가 가장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겁니다. 이를테면, 양극성 장애 가능성이 평균의 1.2배인 배아와 심장 질환 가능성이 평균의 1.4배인 배아 사이의 선택입니다.

파격적입니다. 게다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자녀 중 4명의 어머니로 알려진 시본 질리스도 오키드의 고객이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입길에 오르내리다 보니 비판도 커집니다. 일단, 기술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됩니다. 아직은 검사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일부 질병 가능성은 부풀려질 수 있고, 그에 따라 건강한 배아가 버려지는 비윤리적 상황이 발생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기술이 제2의 우생학으로 치닫게 될 위험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오키드의 기술에 관해 소개한 《워싱턴포스트》의 기사에 대해 76세의 독자 안카 블라로폴로소 씨는 이런 의견을 남겼습니다.

“이 엄청나게 무지한 사람들은 유전학과 정규 분포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 천재라고 해서 천재 자녀를 낳는 것은 아니다. IQ가 낮은 사람에게서도 매우 똑똑한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를 부추기는 백인 우월주의 신화는 결국 그저 인종 차별일 뿐이다.”

블라로폴로소 씨의 걱정과는 달리 오키드는 인종주의적인 편견을 표방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연구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유전자 데이터 풀이 유럽과 미국, 그 중에서도 50만 명의 유전자 데이터를 포함하는 영국의 UK 바이오뱅크에서 제공되기 때문에 비유럽 혈통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검사 결과의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의도치 않게 인종적 격차가 이 기술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성공의 유전학

사실, 오키드는 위험을 회피하고 태어날 자녀에게 최선의 유전 정보를 물려주겠다는 목표만을 이야기합니다. 지적 장애의 가능성은 알려 주지만, 지능에 관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하죠.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우생학과 거리를 두고자 하는 겁니다. 하지만 보다 직설적인 목소리도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큰손 피터 틸이 투자한 스타트업 ‘뉴클리어스(Nucleus)’는 어떤 배아가 평균 이상의 인지 능력을 가진 성인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지에 대해서도 정보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유전자부터 잘 걸러져 장애로부터 안전한 아이, 더 높은 지능을 가진 아이를 선택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새로운 제안이 너무나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과학을 가장한 야만이었던 우생학을 떠올리게 됩니다. 출발선이든 기회든 뭐 하나는 공평해야 한다는 교과서 속의 평등은 허구의 개념인 것 같고요. 이 기술은 우리가 절대 악이라고 배웠던 개념을 소환해 다시 생각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이 사회의 기본 원리라고 배웠던 ‘평등’이 일종의 허상은 아닌지 의심하게 하고요.

하지만 현실을 잘 들여다보면, 유전자는 공평했던 적이 별로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집단은 더 좋은 지역에 몰려 살았고, 그들끼리 결혼하여 2세를 낳곤 했죠. 자신이 속한 지역 외의 사람을 만나기 힘들었던 과거에는 그런 경향이 더 심했을 겁니다.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역사를 반복하다 보면, 성공 집단과 그 바깥의 유전적 차이가 심해집니다. 그 경향이 극단으로 치달았던 케이스가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입니다. 반복되는 근친혼으로 혈우병 등의 유전병이 심해져 왕조의 멸망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유전자 분석 기술이 고도화할수록 생명 과학은 사회학과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최근 발표된 한 연구 결과는 인간 사회의 불평등에 유전적 특성이 기여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교육 수준과 같은 사회적 지표에 유전자가 분명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그리고 사회적 지표가 유전 형질이 되어 대물림되기도 하고요.

예를 들면, 이 연구는 영국에서는 교육 성취도 관련 지표가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들이 경제적으로 낙후한 탄광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탄광 산업이 쇠퇴하면서 교육 기회가 줄어들고, 유전적으로 교육 성취도에 유리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불리한 환경에 남겨진 사람들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 모두에서 불리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반면, 성적이 좋은 사람의 기회 요인에 관해 생각해 보죠. 공부 잘하는 사람들의 재능 같은 것이 있죠. 집중력, 문제 해결력, 인지 능력 같은 것입니다. 현대의 교육 제도는 이러한 형질을 어린 나이부터 평가하고 선별합니다. 더 나은 사회 계급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은 대체로 살기 좋은 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회사나 학술 기관이 있고, 윤택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안전한 지역 말입니다. 비슷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비슷한 지역에 모여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이곳에서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모두 유리합니다.

이러한 현실을 생각하면, 가장 건강한 배아를 골라 임신하고 출산한다는 오키드의 서비스는, 그리고 그 서비스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사회의 종족 보존 본능

저는 영국에서 성공한 이식술 소식이나 오키드와 같은 야심 찬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소식을 접하며 조금 비관적인 전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사회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유전적인 형질까지 부에 따라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면, 우리가 삶을 위해 애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이런 비관론은 능력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이야기인지로 귀결됩니다. 능력에 따라 대우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산술적인 주장이 능력도 대물림된다는 이야기와 만나면, 타고난 유전자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격차가 더욱 심해지는 가운데 무기력이 우리 대부분을 집어삼키도록 내버려두면 될까요? 유전자가 결정한 계급대로 순응하며 주어진 가치, 그러니까 물려받은 능력만큼의 삶을 살면 되는 걸까요?

하지만 우리는 늘 평균치 바깥에서 미래를 발견하곤 합니다. 개천에서 용이 났다는 미담에 기대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개천에 좋은 영양소를 공급하고, 용이 될 기회를 자꾸 풀어 두면 개천에서 정말로 용이 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유전자를 포함한 사회 경제적 지위가 누군가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면, 유전자만큼이나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지점에 사회가 긍정적인 개입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입니다.

1964년 미국은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목표하에 여러 가지 사업이 추진되었는데, ‘헤드 스타트(Head Start)’라는 프로그램이 그 중 하나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3~4세 자녀를 둔 흑인 가정을 중심으로 빈곤층 가정의 영유아에게 혜택을 제공했습니다. 건강 검진, 영양 관리, 부모 교육 같은 것들입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은 청소년기에 범죄에 가담할 확률, 성인이 되어 비만 및 우울증에 빠질 확률 등이 낮아졌습니다. 학업 성취도도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빈곤의 대물림에 정부가 개입해 성공한 사례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주 어린 나이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먹을 것부터 교육까지 통합적인 개입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최소한의 삶’을 제공하기에도 바쁜 우리의 복지 제도를 돌아보게 됩니다.

개인의 본능은 더 건강한 배아를 골라 출산하는 선택을 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고도로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동물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사회가, 우리의 정치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개인의 본능이 사회적 지위의 대물림을 향하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 종의 번성을 위해서 사회적 본능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는 전혀 다른 방향일 수 있겠죠. 저는 ‘헤드 스타트’ 같은 프로그램이 그 답안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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