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법을 만든 사람들

bkjn review

단통법이 나빴던 것이 아닙니다. 입법 과정이 나빴습니다.

그 법을 만든 사람들

2025년 7월 22일

그 법의 이름은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입니다. 이름이 너무 길어 ‘단통법’으로 불렸습니다. 줄여 부르다 보니 법을 왜 만들었는지 다들 잊었습니다. 이동통신 단말장치, 그러니까 휴대폰을 사고파는 구조가 이상하게 꼬여 있으니 이걸 정상화하겠다는 법입니다. 법의 취지대로라면 휴대폰을 파는 쪽도, 사는 쪽도 이득을 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원성만 샀습니다. 그래서 그 법은 2025년 7월 22일부터 폐지됩니다.

실제로 시장이 정상적이진 않았습니다. 2014년 10월 단통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휴대폰 가격이 천차만별이었으니까요. SK텔레콤, KT, LGU+ 같은 이동통신 사업자가 제공하는 지원금과 삼성전자, LG 전자 등의 휴대폰 제조사가 책정한 보조금이 같아도, 각 대리점이나 판매점별로 추가 지원금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갤럭시 S5 모델을 사도 동네에서 사면 몇십만 원을 줘야 하는데, 테크노마트의 ‘성지’에서는 요금제에 따라 ‘공짜폰’으로도 살 수 있었던 겁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 단통법이 제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문제를 잘못 짚었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게다가 여론이 악화하면서 정부와 국회에 부담으로 전락했죠. 휴대폰을 ‘모두가 적당히 싸게’ 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갑자기 비싸게’ 사는 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 보면, 단통법이 처음부터 나빴던 것이 아닙니다. 입법 과정이 나빴습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단통법 이전, 휴대폰을 잘 사려면 ‘발품’을 팔아야 했습니다. 대리점 차원에서 추가 지원금을 넉넉히 푸는 곳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성지’로 이름난 곳은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입소문을 탔습니다. 사람들은 알음알음 ‘성지 순례’에 나섰고요. 이런 정보에 밝지 않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봐야 했습니다. 정부는 이것을 ‘이상한 구조’라고 봤습니다.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누구는 싸게, 누구는 비싸게 사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본 겁니다.

그런데 이 논리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당시 휴대폰 유통 구조가 정상적이지 않았던 것은 맞습니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문제였던 것도요. 그런데 그 정보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었는지를 잘못 짚었습니다. 정보는 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가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만들어 판매하는 서비스와 제품의 원가가 얼마나 되는지, 최종 판매 가격 평균은 얼마로 맞추고 있는지와 같은 정보를 틀어쥐고 있었으니까요.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이게 비싼지 싼지, 가늠할 방법이 없었죠.

통신 시장이 보조금의 액수로 경쟁하고 있었다는 점도 비정상이었습니다. 표면적인 가격은 비슷하게 두면서 시장의 실질 가격을 암암리에 보조금으로 맞춰 주는 형태입니다. 이렇게 되면, 원가는 물론이고 판매 가격에 대한 정보도 공급자가 쥐락펴락하기 쉽죠. 결정적으로, 시장 경쟁을 중간 유통망인 대리점과 판매점에 큰 부분 떠넘길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일선에서는 출혈 경쟁이 발생합니다. 그 손해를 메꾸기 위해 정보 습득이 상대적으로 쉽지 않은 고령 소비자나 정보를 잘 모르는 것 같은 소비자를 상대로 비싼 요금제 가입을 유도하거나, 강매까지 저지르고요.

그래서 단통법이 발의됩니다. 2013년 5월, 19대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 여당 간사였던 조해진 의원이 초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어 추진한 법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통신비 경감이 당시 박근혜 정부의 주요 공약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반값 통신비’라는 슬로건이었죠. 하지만, 이 법안은 국회가 여야 대립으로 공전하는 가운데 잊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4년 5월, 이 법이 반드시 통과되어야 할 이유가 생깁니다. 일련의 ‘사건들’ 때문입니다. 2014년 2월 11일, 이른바 ‘211 휴대폰 대란’이 발생합니다. 아이폰5S 10만 원, 갤럭시 노트3가 15만 원이라는 소식에 새벽부터 매장 앞에 긴 줄이 늘어서는 진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되면서, 시장에 문제가 있긴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됩니다. 이어서 같은 해 4월에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합니다. 정부 여당을 향한 민심이 악화했습니다. 그리고 6월에는 전국동시지방 선거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거가 코앞이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어떻게든 민생 문제를 해결할 돌파구를 찾아야 했습니다. 단통법이 ‘패키지’에 들어간 이유입니다.
당시 아이폰 5S, 갤럭시노트3는 각각 90만 원과 80만 원의 보조금이 지급된 셈이었습니다. 새벽 3시부터 수백 명이 매장으로 몰렸습니다. / 출처: 아주경제
미래창조과학부 vs 기획재정부

조 의원이 대표 발의한 단통법 초안을 보면, 당시 왜곡된 시장을 정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법안 내용은 단순하고 합리적입니다. 이통사와 제조사가 제공하는 보조금이 얼마인지 투명하게 알리라는 겁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냐’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할 수 없게 말이죠. 이통사와 제조사에 휴대폰 판매 현황이나 관련 비용, 수익 등을 정부에 제출하게끔 하는 조항도 들어갔습니다. 실질적인 단말기 가격이 얼마인지, 소비자가 지나치게 비싸게 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면 상임위원회에서 논의를 거쳐 법안을 다듬습니다. 해당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국회의원들의 의견은 물론, 국회 소속의 ‘전문 위원’들의 의견까지 수렴합니다. 그런데 단통법이 미방위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되던 2023년 12월, 미방위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여야가 대립하면서, 새누리당 의원들만 위원회에 참석했죠. 이런 상황 속에서 조 의원의 초안에는 없던 내용이 추가됩니다. 첫 번째는 보조금 상한제입니다. 정부가 이통사와 제조사가 제공할 수 있는 보조금을 얼마까지 줄 수 있는지 정한다는 내용입니다. 전문 위원을 통해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가 밀어 넣었다는 추측이 나옵니다. 두 번째는 비밀 유지 조항입니다. 휴대폰 판매 관련 자료 제출 관련해 제조사의 영업 비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이런저런 단서를 단 겁니다.

이 두 가지가 단통법을 악법으로 전락시켰습니다. 먼저, 보조금 상한제는 실질적으로 시장에서 경쟁을 제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인구 밀도가 극히 낮은 지역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 휴대폰이 잘 안 터지는 지역은 거의 없습니다. 통신사별로 차이는 존재하지만, 최소한의 통신 품질은 이미 갖춰진 상황입니다. 통신 3사의 요금제를 살펴봐도 마치 짜 놓은 듯 구조가 비슷합니다. 결국 보조금이 유일한 경쟁 요소였던 상황에서 그마저 없애버린 꼴이 되었습니다.

시장 경쟁이 사라지면 이득을 보는 것은 시장을 독점 내지 과점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현재 SK텔레콤이 40퍼센트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KT와 LGU+가 나머지를 나누어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이 상태입니다. 이동 통신 산업은 새로운 사업자가 후발 주자로 진입해 이득을 보기 힘든 특성이 있습니다. 초기 투자 비용이 크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장을 선점한 통신 3사는 더 이상의 경쟁 없이 현상 유지를 하는 쪽을 택하게 됩니다. 이미 확보한 가입자 수에 비례해서 매월 또박또박 통신료가 수입으로 들어오니까요. 통신사 멤버십 서비스가 눈에 띄게 축소된 것도, LTE에서 5G로 기술이 진보했다는데 체감되지 않는 것도, 요금이 인하되지 않는 것도 시장에서 경쟁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해야 할 동기가 사라진 겁니다.

이걸 밀어붙인 것은 미래부입니다. 이통 3사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했던 겁니다. 정부 정책에 맞춰 통신사 측의 협조가 필요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때에 정부가 내밀 수 있는 ‘카드’가 필요합니다. 보조금 상한제가 그런 카드입니다. 보조금 상한을 급격히 올려버리거나 낮추는 권한을 정부가 가지면 통신사에 대한 통제력이 생깁니다.

제조사의 판매 데이터에 관한 비밀 유지 조항에는 기획재정부의 입김이 들어갔다는 것이 당시 최양희 미래부 장관의 주장이었습니다. 특히, 시장을 주도하던 삼성전자의 영업 비밀에 미방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신경을 참 많이 썼던 정황이 포착됩니다. 결국 국회 본회의에 올라갈 때 삼성전자는 완벽한 비밀 보장을 받게 됩니다. 아예 제조사가 얼마나 보조금을 지원하는지를 공개할 필요가 없어진 겁니다. ‘분리 공시’ 조항이 삭제되었습니다.

야당

이렇게 단통법은 이통 3사의 시장 경쟁 부담을 덜어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법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휴대폰이 얼마나 비싼 물건이고, 이것을 팔기 위해 누가 얼마나 비용을 부담하는지는 모호한 채로 남게 되었고요. 공급과 수요 사이의 정보 비대칭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그대로 남겨 둔 겁니다. 하지만 단통법에는 한 번의 기회가 더 남아 있었습니다. 국회 본회의에서의 표결입니다.

야당 국회의원 중 누군가 이 법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문제점을 발견했다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을 겁니다. 정부 여당이 아무리 밀어붙인다 하더라도 유권자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법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누구든 멈춰 세웠겠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기회는 있습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표결 직전까지 관련 발언을 할 수 있습니다. 반대표를 던지고 피켓 시위라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단통법에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아무도 없었죠.

단통법이 ‘패키지’ 법안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설득과 이해를 바탕으로 작동해야 하지만, 때로는 협상하기도 합니다. 여야가 패키지로 각자 법안 꾸러미를 싸 서로 맞바꾸는 식입니다. 당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미방위 법안 중 다른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KBS 사장 후보자가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받도록 하는 법안입니다. 공영 방송이 정권의 입맛에 맞춰 기우는 것을 막기 위해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 법을 단통법과 맞바꿨습니다. 서로 ‘퉁’친 겁니다.

국회의원들은 단통법이 구체적으로 어떤 법인지, 어떤 영향을 불러오게 될지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시장에서는 반발이 일어나고, 소비자들의 원성이 빗발치고 있었습니다. 결국 일부 의원들은 단통법에 찬성표를 던진 것에 대해 사과까지 했습니다. 법의 취지만 듣고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이통 3사는 고객 혜택을 포함한 마케팅비를 크게 줄였습니다. 그리고 전 국민이 골고루 적당히 비싸게 휴대폰을 사는 시대가 도래했죠.

다음 단통법

국회의 입법 과정은 이렇게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곤 합니다. 단통법이 시행된 후 열린 국정감사장에서는 단통법을 두고 행정부와 입법부가 서로 ‘네 탓’을 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죠. 세금이 참으로 아까운 장면이었습니다. 이 법이 폐지되기까지 11년이 걸렸습니다. 그렇다고 통신 시장이 이번에는 정상화할지는 두고 봐야 합니다. 단통법 이전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시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단통법과 관련해 질타하는 국회의원을 향해 ‘의원님들이 만든 것’이라고 받아쳤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죠. / 출처: SBS
사실, 이번 단통법 폐지도 SK텔레콤에 이득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공교롭게도 지난 해킹 사태로 가입자 수가 약 60만 명 감소한 상황인데, 이를 만회할 절호의 기회라는 겁니다. 하지만, SK텔레콤이 점유율을 일단 회복하고 나면, 단통법 효과는 사그라들 수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AI입니다.

사실, 이동통신에 몰아쳤던 혁신은 끝났습니다. PCS, CDMA, 2G, 3G, LTE, 5G까지 발전하면서 기술은 상향 평준화되었습니다. 걸으며 통화할 수 있게 되었을 땐 혁신이었습니다. 휴대폰으로 인터넷 접속까지 되자 편리해졌습니다. 하지만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진 정도의 변화는 체감하기도 힘듭니다. 이건 단말기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폰이 등장했을 땐 패러다임이 뒤집혔죠. 하지만 요즘은 다릅니다. 기술이 성숙하면서 발전도 정체기입니다.

기업은 정체된 시장에서 폭발적인 계기를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재 통신 기업에 AI 선점이 더 큰 과제입니다. 같은 돈이 있다면 가입자 유치를 위한 보조금이 아니라 AI 관련 프로젝트에 쓸 겁니다. 단통법이 소비자 부담을 파격적으로 덜어 주기 어려운 까닭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제2의 단통법, 제3의 단통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입법부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허투루 처리해 소비자들이, 유권자들이 손해를 떠안게 되는 경우가 또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실패한 법을 복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단통법이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입법 과정이, 세비로 일하는 사람들이 실패했습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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