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가 신제품을 발표합니다. 2025년 말부터 사탕수수 설탕으로 단맛을 낸 콜라를 판매하겠다고 발표한 겁니다. 사실, 이 소식을 먼저 전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습니다. 자신의 트루스 소셜 계정에 ‘코카콜라가 콘시럽 대신 사탕수수 설탕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집무실에 ‘콜라 버튼’을 따로 둘 정도로 콜라를 사랑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버튼만 누르면 비서진이 콜라를 가져오도록 한 겁니다. 평소의 취향과 독단적인 캐릭터가 맞물려 이제는 대통령이 콜라 맛까지 바꾸려 드냐는 논조의 뉴스가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이번 ‘설탕 콜라 소동’은 괴팍한 정치인의 실없는 참견이 아닙니다. 트럼프와 코카콜라 모두에게 소소하게 이득이 되는, 일종의 ‘쇼’입니다.
쌀과 옥수수
지금까지 코카콜라가 사용해 온 콘시럽의 정식 명칭은 ‘고과당 옥수수 시럽(HFCS, High-fructose corn syrup)’입니다. 옥수수 전분을 원료로 만들고, 설탕에 비해 가격은 더 저렴한데 맛은 더 답니다. 식품 산업이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개발된 것은 20세기 중반, 미국에서였습니다. 전통적인 콘시럽은 19세기부터 있었지만, 훨씬 달고 대량 생산이 편리한 HFCS의 시작은 20세기입니다. 이후 1970년대 중반 이후로 대중화하면서 1980년대부터는 코카콜라에 사용되기 시작했고요.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20세기면 설탕이 그리 귀하던 시절도 아닙니다. 가격의 등락이야 있었겠지만, 굳이 대체재를 애써 개발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싶은 겁니다. 이유가 있긴 했습니다. 1970년대 초, 쿠바 혁명 이후 미국이 쿠바산 사탕수수 수입을 제한하면서 설탕 수급이 불안정해지고 수입산 설탕이 관세 폭탄을 맞게 된 겁니다. 고속 성장하고 있던 식품 산업은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는 달콤함이 필요했죠.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이유도 있었습니다. 수요의 문제가 아니라 공급의 문제였죠. 바로 넘쳐나는 옥수수를 어딘가에 사용해야만 했던 겁니다. 사실, 미국에서 옥수수의 지위는 우리나라나 일본의 쌀과 비슷합니다. 쌀은 국가의 근본이며 식량 주권 그 자체입니다. 시장의 수요보다 더 많이 생산되더라도 정부가 나서 사들이고, 쌀 소비 운동을 벌입니다.
우리나라보다 일본은 이런 경향이 더 강합니다. 일본의 농민, 특히 쌀을 주로 재배하는 고령층이 집권 자민당의 중요한 지지 기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민당은 쌀을 중심으로 하는 농업 정책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수요가 줄어드니 감산 정책을 펴긴 하지만, 강하게 밀어붙이지도 않고 정부가 나서 추가 생산된 쌀을 계속 사들입니다. 최근 일본은 쌀 부족 사태를 겪고 있죠. 고이즈미 신지로 신임 농림상이 쌀 공급 대책으로 비축미를 반값에 풀었습니다. 그런데 자민당 내부에서 비판이 나옵니다. 농민을 주 지지층으로 둔 ‘농림족’ 의원들이 들고일어난 겁니다. 쌀농사를 짓는 농민과 유통망의 입김입니다.
옥수수와 트럼프
미국은 더합니다. 농업 대국이니까요. 게다가 1970년대 이후 미국 농무부(USDA)는 농업 구조를 재편합니다. 닉슨 행정부 시절 농무부 장관이었던 얼 버츠(Earl Butz)가 당시 상징적인 어록을 남깁니다. “Get big or get out(규모를 키울 것이 아니라면 포기하라).” 최대한 많이 심어 많이 거두라는 겁니다. 농업의 산업화입니다. 특히 옥수수나 콩과 같이 원료나 사료 등으로 활용 가치가 높은 작물에 집중적으로 보조금을 퍼부었습니다.
정부가 진흥해서 옥수수를 심었으니, 이제 옥수수밭이 망하면 정부 실패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옥수수를 책임집니다. 가격이 일정 이하로 떨어지면 차액을 보전해 주고, 흉작이 들면 보험료로 메꿔 줍니다. 뿐만 아니라 옥수수의 쓰임새도 넓혀 갑니다. 사료와 전분, 에탄올은 물론이고 설탕 대신 사용할 고과당 옥수수 시럽까지 개발된 겁니다.
이후 옥수수는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되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더욱 그렇습니다. 미국 최대 옥수수 생산지로 꼽히는 아이오와주를 비롯한 미국 중서부 지역은 대체로 공화당을 지지하는 ‘레드 스테이트’ 지역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옥수수 정책에 따라 민심은 언제든 돌아설 수 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 1기 행정부 말기, 옥수수 에탄올을 연료에 의무적으로 배합하도록 한 정책을
완화한 일이 있었습니다. 정유 업체들의 편의를 봐준 겁니다. 당장 옥수수 민심이 돌아섰고, 2020년 대선에서 콘벨트(corn belt)에 속해 있던 위스콘신, 미네소타 등은 바이든을 선택했죠.
물론, 2024년 대선에서는 달랐습니다. 콘벨트 지역은 트럼프를 선택했습니다. 농민들 처지에서는 관세를 목 놓아 외치며 보호 무역을 표방하는 트럼프의 공약이 매력적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트럼프는 이 콘벨트를 외면한 겁니다. 코카콜라는 미국의 상징입니다. 코카콜라가 옥수수를 버리고, 사탕수수를 선택한다는 것은 미국이 옥수수를 버린다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가뜩이나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이 가공식품과 액상 과당에 대한 비판을 이어 가는 상황입니다. 트럼프 정부는 콘벨트가 지금까지 겪었던 그 어떤 정부보다도 옥수수에 냉담합니다.
트럼프와 코카콜라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트럼프라는 인물이 콘벨트 지역에 끌려다니는 상황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합니다. 여기에 세계적인 사탕수수 가공 기업인 ‘플로리다 크리스탈 코퍼레이션’의
판훌(Fanjul) 가문이 엄청난 선거 자금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죠. 트럼프의 마음이 사탕수수 쪽으로 기운 것이 이해 가는 대목입니다.
게다가 지금 전 세계의 화두 중 하나가 ‘건강’이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튜브와 틱톡은 물론이고 소셜 미디어에도 건강한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넘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고비의 시대입니다. 비싼 값을 치러 GLP-1 제재를 투약해 놓고, 코카콜라를 들이켜는 건 모순입니다.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의 주장처럼, 고과당 옥수수 시럽은 비만과 당뇨병의 원흉이니 말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콘시럽이 비난을 받는 분위기 속에서 설탕은 꽤 건강한 감미료처럼 인식된다는 겁니다. 그 맛도 어딘가 특별하게 느껴지고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일부러 멕시코산 코카콜라를
역수입해 마시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합니다. 멕시코는 설탕이 저렴하기 때문에, 멕시코에서 생산하는 코카콜라만큼은 콘시럽이 아닌 설탕을 사용하거든요. 가격은 조금 더 비싸지만, 인기는 높다고 합니다. 마치 우리가 ‘손맛’이나 ‘필름 감성’에 돈과 시간을 쓰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