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개발도상국입니다. 이 표현이 적절한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고 도시화되지 않았습니다. 식민 지배를 겪었고, 공업이 발달하기에 불리한 환경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각종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토네이도와 태풍, 허리케인은 점점 잦아지고 강해집니다. 게다가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영토가 물에 잠깁니다. 투발루의 경우 매년 0.5센티미터씩 물이 차오르고 있습니다.
이들 도서국의 목소리가 전 세계에 들리기 시작한 것은 21세기가 되면서입니다. 바닷속에 묻힌 광물 자원, 호주와 중국 사이의 지정학적 위치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 결과, 기후 재난의 당면한 피해자들에게 발언권이 생겼습니다. 당장 영토가 바다에 잠기며 이재민이 생기고 있는 태평양 도서국들이 국제 사회에서 피해를 호소하고, 이미 개발의 시대를 거친 국가들에 책임을 요구하고 나선 겁니다.
하지만, 요구가 관철되느냐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실제로 2024년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COP29)에서는 선진국의
분담금을 놓고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지요. 사실, COP 회의가 매년 거듭될수록 회의장에서 협상하고 토론하는 것만으로는 기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확신만 굳어가는 분위기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번영의 비용
2024년 미국 다트머스 대학 연구팀은 흥미로운
계산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기후 위기를 촉발한 국가들에 얼마만큼의 책임이 있는지 돈으로 따져본 겁니다. 1990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은 전 세계에 1조 9000억 달러 이상의 기후 피해를 줬습니다. 뒤를 이어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도 같은 기간 총 4초 1000억 달러 규모의 경제 손실을 초래했고요. 상위 5개국이 입힌 손실을 합하면 전 세계 GDP의 약 11퍼센트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물론 중국이나 인도, 브라질 등은 할 말이 있습니다. 제국주의의 결과로 산업화 시기가 늦어진 국가들에 기후 책임을 똑같이 물으면, 사다리 걷어차기가 된다는 겁니다.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실제로 연구는 분석 시작 연도를 1960년으로 앞당길 경우, 유럽 등 선진국의 책임이 400퍼센트 이상 증가한다고도 지적합니다. 고위도의 부유한 국가들에 기후 위기의 누적된 책임이 확실히 집중되어 있습니다.
책임이 몰려 있듯 피해도 몰려 있습니다. 미국이 배출한 탄소로 인한 피해는 아프리카,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등 저위도에 있는 저소득 국가들에 집중되었습니다. 이들 국가는 GDP의 약 1~2퍼센트씩을 손해봤습니다. 미국의 탄소 배출 탓이었습니다. 반면 캐나다나 러시아, 북유럽 등 고위도 국가들은 탄소 배출 과정에서 오히려 경제적 이득을 취했고요. 즉, 기후 위기는 전 세계적인 부의 불평등을 심화하는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는 겁니다.
COP와 같은 국제 협의체는 필연적으로 돈이 곧 발언권입니다. 이미 부유한 국가들, 즉 기후 위기의 용의자들이 장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COP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미래를 위해 노력하자는 취지의 결의안은 매년 나오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않습니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지원하겠다는 약속은 해도, 기후 변화의 책임을 돈으로 지라는 얘기에는 난색을 보입니다. COP29에서는 2035년까지 선진국이 3000억 달러의 기후 재원을 확보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이 기후 변화 영향에 적응하고 에너지 시스템을 탈탄소화하려면 매년 최소 1조 달러가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태평양 도서국들은 사법적인 판단에 국가의 존립을 걸어보기로 한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에 학생들이 올라탔습니다. PISFCC는 학생이 과제 하듯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무작정 열심히 한 것이 아니라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정치적 영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파악했죠. 바누아투의 랄프 레겐바누 기후 변화 장관이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이미 화석연료 기업과 책임이 있는 국가들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의견을 밝힌바 있었던 레겐바누 장관 입장에서는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계획이었을 겁니다.
바누아투 정부가 UN 등 국제 무대에서 외교적 역할을 담당하고 PISFCC는 전 세계 청년 단체와 함께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열린 기후 관련 회의장을 찾아 피켓을 들었고 발표를 했죠. 활동과 함께 지지도 쌓였습니다. 그리고 2023년 UN 총회에서 ICJ에 공식적으로 자문을 요청하기로 결의합니다. 바누아투는 바로 그해, 심각한 태풍과 허리케인으로 두 차례나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