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AI 아메리카나 ①

bkjn review

미국은 AI로 세계를 지배하고자 합니다.

팍스 AI 아메리카나 ①

2025년 7월 28일

최근 백악관에서 뉴스가 쏟아지다 보니 중요한 이슈가 묻히는 일이 꽤 있습니다. 특히 관세 협상 관련해서는 실시간으로 속보가 끊이질 않습니다. 하지만 관세는 향후 4년간의 이야기입니다. 현지 시각으로 2025년 8월 23일 발표한 ‘미국 AI 액션 플랜(America‘s AI Action Plan)’은 향후 30년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이고요.

인공지능, 그중에서도 생성형 AI는 연구실 안에서 개발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산업은 전 세계의 관심과 자본, 정책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 가 움직이는 거대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트럼프의 AI 액션 플랜은 이 거대 생명체를 미국 정부가 어떻게 다룰지를 보여 주는 선언입니다. 이와 함께 세 건의 행정 명령, 연준 소속 연구자들의 관련 보고서까지 함께 공개되었습니다. 오늘과 내일, 이틀에 걸쳐 관련 내용을 자세히 짚어 보겠습니다.

미국이 꿈꾸는 AI

표면적으로 AI 액션 플랜은 두 가지를 목적으로 합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혁신 장려’와 ‘위험 통제’입니다. AI 기술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하니, 국가 차원에서 종합적인 전략을 세워 대응하겠다는 것이죠.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규제는 없애고, 도입은 속도를 내겠다고 합니다. AI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이나 기술 도입에 따른 사회 변화의 연착륙에 관한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즉, 혁신만 장려하고 위험은 별로 통제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 액션 플랜은 사실상 실리콘밸리와 백악관의 합작품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중순, 오픈AI, 구글, 메타 등 프런티어 AI 기업들은 트럼프 행정부에 제안서를 제출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생성형 AI 개발을 어떻게 보호하고 촉진해야 하는지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번 AI 액션 플랜에 이 제안 내용 대부분이 포함되었습니다. 오픈AI는 미국의 각 주가 AI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는 규제 법률을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캘리포니아 등의 움직임을 경계한 겁니다. 액션 플랜에 반영되었습니다. 메타는 개방형 모델 개발을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이 또한 반영되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실리콘밸리가 정부를 쥐고 흔든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특히 미국의 각 주가 AI 관련한 규제를 추진할 수 없게 하는 조항에 우려가 쏠립니다. 시민단체 미국시민자유연맹(ACUL,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은 이번 액션 플랜이 “심각한 법적 문제를 제기한다”라는 성명을 내놨습니다. 물론, 모든 주 정부의 규제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혁신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법률만이 대상입니다. 하지만 꽤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백악관이 부당하다면 부당한 것이겠죠.

실리콘밸리의 편의를 봐준 이유가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와 실리콘밸리가 공동으로 꿈꾸는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달러 패권으로 미국이 전 세계 경제를 통제했던 20세기에 이어, 생성형 AI 시스템으로 21세기에도 ‘팍스 아메리카나’를 유지하겠다는 꿈입니다. 앞으로 이 세계의 기본 운영 체제(OS)는 AI가 될 것입니다. 미국은 AI를 지배해 G1으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죠. 이걸 실현하기 위해 액션 플랜에는 세 가지 주요 내용이 담겼습니다.

AI 재교육의 의미

첫 번째는 미국산 AI 기업을 키우겠다는 겁니다. 기업이 원하는 규제 철폐, 개방형 모델 장려 등의 내용 외에 AI 시대에 맞춰 미국 노동자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언뜻 보기엔 AI로 일자리에서 밀려날 사람들을 위한 정책 같습니다. 실제로 관련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AI 도입에 따른 고용 시장 변화로 실직한 노동자를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 같은 것 말입니다. 하지만, 잘 뜯어 보면 기업을 위한 정책입니다.

기업이 직원을 대상으로 AI 관련 교육을 지원하면 세금 감면 혜택을 받습니다. 현재 직장에 잘 다니고 있는 사람이라도 AI 도입에 대비해 교육을 받겠다고 나서면 지원해 줍니다. 이런 교육이 늘어날수록 AI를 도입하는 기업의 경쟁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겁니다. 즉, 이 정책은 각 기업에 AI를 도입하라는 재촉입니다. 그래야 실리콘밸리의 AI 기업들도 수익 창출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액션 플랜은 의료, 에너지, 농업 등 분야별 AI 도입을 촉진하기 위해 표준 기술을 개발할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연방 정부에도 AI를 도입하겠다고 하고요. 기술 개발은 실리콘밸리가 하겠죠. 바뀐 시스템에 사람을 맞춰 넣는 쪽에는 정부 정책으로 힘을 싣겠다는 겁니다. 이를 위한 정책 방향을 노동자 재교육 쪽으로 잡은 이유가 있습니다. 빅테크 기업들을 키운다고 AI 전환을 가속하다 대량 실업이 발생하면 미국 정부 재정이 흔들립니다. 실업에 따른 사회적 비용, 가장 직접적으로는 실업 급여를 지출해야 합니다.

본격적인 상업화를 위해 생성형 AI는 지금보다 더 발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액션 플랜 두 번째는 인프라 구축을 강조합니다. 특히 데이터 센터 건설과 이를 돌리기 위한 전력망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전력 수급을 위해 기존 석탄, 가스 발전소를 다시 평가해 조기 폐쇄되는 것을 막습니다. 화석 연료를 사용해 전기를 충당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과 맞닿아 있죠. 그리고 미래 전력망 확대를 위해서는 ‘핵융합’ 기술까지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태양광 에너지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재생 에너지에 대한 배척이라기보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입니다. 조사 주체에 따라 다르지만, 중국의 태양광 제조 점유율은 70~90퍼센트대로 추정됩니다. 즉, 중국산 아닌 패널을 찾기 힘들다는 얘깁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태양광을 절대 품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AI 제국주의의 청사진

하지만 태양광 패널 보이콧 정도로 중국이 견제될 리는 없죠. 미국이 AI 기업을 키우고,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를 까는 까닭은 압도적인 격차로 새로운 기술을 지배하기 위해서입니다. 드디어 속내가 나올 차례입니다. 이번 액션 플랜의 핵심은 세 번째 파트에 담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파트 제목부터 ‘국제 AI 외교 및 안보 주도(Lead in International AI Diplomacy and Security)’입니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죠. 먼저, 국제적 AI 규범과 기술 표준을 미국이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AI 관련 규제 주도권을 유럽에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하지만, 한 단계 더 깊이 들여다보면, 중국이나 러시아 등의 권위주의 국가가 설정한 비민주적 AI 운영 기준을 빌미로 이들 국가의 AI 모델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최대한 막아서겠다는 저의가 깔려 있습니다.

반도체 수출 통제에서도 강경한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특정 칩이 ‘우려 국가(countries of concern)’에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고성능 GPU에는 위치 추적 장치 같은 것을 달아 중국이나 러시아로 흘러 들어가지 않는지 감시하겠다는 얘깁니다. 고성능 모델의 유출을 확실히 막을 방법을 마련해 뒀기 때문에, 엔비디아가 저성능, 중성능 GPU를 중국에 다시 수출할 수 있었던 것이겠죠.

다음으로는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인데, 말이 협력이지, AI로 동맹국을 지배하겠다는 얘깁니다. 미국 중심의 AI 외교 블록을 형성하고 상호 운용할 수 있는(interoperable) AI 정책을 펼칩니다. 즉, 동맹국끼리는 기술 표준도, 규제책도 맞춰 가자는 겁니다. 물론, 미국 기준에 맞춰야겠죠. 이를 위해 관련 정보를 공유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를 상정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생성된 데이터가 AI 시스템의 ‘보안’이라는 명분에 따라 미국으로 넘어 갈 수 있습니다. 데이터 주권 관점에서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되겠죠.

그런데 이런 상황을 피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전체 기술 스택을 통으로 동맹국에 수출해서 미국 중심의 AI 동맹을 구축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데이터센터는 엔비디아의 GPU가 꽂혀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애저(Azure)를, 파운데이션 모델은 오픈AI의 GPT를, 고객 관리 AI 솔루션은 세일즈포스의 서비스를 사용하도록, ‘통으로 묶어서’ 팔겠다는 겁니다. 이걸 ‘풀 스택 AI(full-stack AI)’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데이터 주권이라는 말은 아예 성립하지 않습니다. 데이터를 넘기지 않으면 AI를 아예 이용할 수 없으니까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추진되고 있는 ‘소버린 AI’ 정책은 미국의 이런 계획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쉽게 말해, LG가 생성형 AI 모델을 꽤 쓸만하게 개발한다 해도, LG는 미국산 풀 스택 AI를 사용해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 수출하는 기업을 중심으로 이러한 정책에 영향을 받게 되겠죠. 기술 표준이 미국산 AI로 굳어지면, 국산 AI 모델의 사용량은 줄어듭니다. 사용량이 줄어들면 갈수록 모델의 기술적 수준도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민간 기업은 미국산을 사용한다 해도, 국방이나 행정 등 보안이 중요한 섹터도 있습니다.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입니다.

이렇게 ‘자유 진영’을 완전히 지배하고자 하는 미국산 AI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요? 무엇을 옳고, 그르다고 하게 될까요? 그 기준은 액션 플랜과 함께 공표한 행정 명령, ‘연방 정부의 편향된 AI 방지 조치(Preventing Woke AI in the Federal Government)’에 담겨 있습니다.


* 〈팍스 AI 아메리카나 ②〉로 이어집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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