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이 발표한 ‘미국 AI 액션 플랜(America‘s AI Action Plan)’은 미국이 지배하는 21세기를 목표로 합니다. 이를 위해 실리콘밸리는 오로지 더 뛰어난 AI 모델 개발에 매진하면 됩니다. 규제는 무효로 합니다. 에너지는 석탄 발전소를 돌려서라도 충당하며 그게 부족하면 병원용 예비 전력까지 끌어다 쓰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미국산 AI는 풀 스택 형태로 동맹국에 수출됩니다. ‘소버린 AI’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우리나라는 물론, 생성형 AI 개발에 있어 유럽 선두를 달리는 프랑스도 예외는 없습니다. 미국산 AI를 써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 AI만 틀어쥐면 자연스럽게 패권이 따라오는 것일까요? 이렇게 과격한 정책 방향을 공표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다들 AI를 말하지만, 거품이라는 냉소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생성형 AI의 이점을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고요. AI는 ‘사건’입니다. 단, 작은 사건인지, 큰 사건인지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하지만 백악관은, 특히 트럼프는 확신한 것 같습니다. 생성형 AI가 21세기의 ‘증기 기관’이라고 말입니다. 산업 혁명 수준의 생산성 폭발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이죠.
이에 대한 힌트가 될 만한
논문이 나왔습니다. 지난 2025년 7월 4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 소속의 경제학자들이 발표한 것입니다. 연준의 공식 보고서는 아니지만, 백악관을 비롯한 정책 기관이 눈여겨볼 수밖에 없겠죠. 생성형 AI가 우리 사회에 어느 정도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지에 관한 내용입니다. 논문은 AI가 전구, 발전기, 현미경 중에 무엇이 될 것인지를 탐구합니다.
* 〈
팍스 AI 아메리카나 ①〉에서 이어집니다.
특이점이 온다
셋 모두 인류의 역사를 바꾼 기술입니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달랐죠. 전구는 인류의 생산성을 끌어올렸습니다. 밤에도 불을 환히 밝히고 일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뿐입니다. 그 자체가 혁신을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반면, 발전기는 다릅니다. ‘일반 목적 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 GPT)’이기 때문입니다. 크게 세 가지 특성을 가집니다. 먼저, 확산성(Diffusion)입니다. 발전기는 다양한 산업과 조직에 널리 채택되어 확산했습니다. 다음으로 연쇄 혁신(Knock-on Innovation)입니다. 안정적인 전기 공급을 바탕으로 다양한 기술이 쏟아졌죠. 마지막으로 핵심 기술 지속 혁신(Ongoing Core Innovation)입니다. 발전기 자체도 혁신을 거듭해 우리는 핵융합 발전의 시대를 예견하고 있습니다.
일반 목적 기술은 인류의 생산성 전반에 구조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인류의 역량 자체를 개선하는 겁니다. 증기 기관, 컴퓨터, 인터넷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논문은 생성형 AI도 일반 목적 기술로 분류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현 상황이 근거입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생성형 AI를 채택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이 발생하고요. 사진 수정 기술부터 디지털 트윈은 물론이고, 휴머노이드와 자율 주행 자동차까지 빠른 성장을 거듭하고 있죠. AI 모델 자체의 성능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AI는 현미경이기도 합니다. 현미경은 일상생활에서는 별 의미 없는 물건이지만,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한 물건이기도 합니다. 현미경을 통해 생물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이 촉발되었죠. 이를 ‘IMI(Invention of Methods of Invention)’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발명 방법의 발명’입니다. 관찰, 분석, 커뮤니케이션, 조직화 등 R&D 전반의 효율을 높여 줍니다. 일종의 메타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논문은 생성형 AI도 ‘발명 방법의 발명’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패턴 인식, 이미지 분석, 비정형 데이터 해석 등에 강점을 가지기 때문에 훌륭한 관찰 도구라는 것이죠. 관찰을 통해 획득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조직화하는 능력은 당연히 뛰어나고, 연구자 간 협업도 돕습니다. 문서 요약, 번역, 시각화 등의 기능 덕분입니다.
결론적으로 연준의 경제학자들은 생성형 AI가 현재를 살아가는 인류 전체가 누릴 수 있는 기술이면서, 그 자체로 혁신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기술이라고 봤습니다. 또한 연구자들에게도 훌륭한 도구입니다. 개발의 효율을 높여 혁신의 속도와 질을 향상하는 데 기여합니다. 생성형 AI는 장기적으로 경제 전반의 생산성은 물론 성장률을 모두 끌어올릴 잠재력이 있습니다. 다만, 논문은 GDP와 같은 현실 지표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이야기하죠. 또, 생성형 AI의 확산이 ‘진행 중’이라는 점도 지적합니다. 대기업 위주로 도입이 늘고 있지만, 중소 규모의 기업에서는 그 속도가 더디다는 겁니다.
혁명이 필요로 하는 것
미국 AI 액션 플랜이 노동자 재교육을 강조한 이유가 보입니다. 이 시대의 발전기가, 현미경이 도래했는데 아직 빠른 속도로 확산하지 못하고 있다니 답답하죠. 그 이유를 노동자와 기술 간의 불화로 본 겁니다. 불화를 해결하는 방법은 보통 두 가지입니다. 기술이 사람에 맞추거나 사람이 기술에 맞추는 것이죠. 전자가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미국 국가과학아카데미(National Academies of Sciences, Engineering, and Medicine)도 연구
보고서를 통해 인간 보완형 AI 기술에 관한 공공 연구 지원을 정부에 권고했고요.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후자의 경우가 흔했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산업 혁명 시기, 공장에서 기계에 끼어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기계를 인간에 맞춰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방직기는 현대의 반도체 이상으로 최첨단의 문물이었지만, 문제가 생겼을 땐 성인 노동자가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방직기 밑으로 기어들어가 끊어진 실을 잇는 작업을 하려면 어린아이만큼 체구가 작아야 했죠. 그래서 아이들이 그 일을 했습니다. 기계에 맞는 몸집이었으니까요. 기계 속에 들어가 기름칠하는 일도 마찬가지였고요. 모두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