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로변에 ‘국제 선거 감시단’이라는 이름이 자주 걸려 있습니다. 또, ‘모스 탄’이라는 인물에 관한 현수막도 꽤 눈에 띄죠. 2025년 6월 3일 치러졌던 대통령 선거 결과는 잘못된 것이라고, 부정 선거였다고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눈살을 찌푸린 분도 계실 것이고, 내용이 궁금하셨던 분도 계시겠지요. 혹은, 논리나 상식의 영역 바깥에 있는 극소수의 주장일 것으로 생각하신 분도 계실 겁니다.
그 현수막 내용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림짐작하기도 힘들죠. 하지만, 극소수는 아닙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국제 선거 감시단’과 ‘모스 탄’은 의미 있는 언어입니다. 심지어 윤석열 전 대통령을 모스 탄이 접견할 것인지가 한동안 정치 뉴스의 중심이었고요. 대체 무슨 일일까요. 누가, 무엇을 근거로 왜 이런 주장을 하는 걸까요.
누가 부정 선거를 믿나?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입장의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지지도가 여론 조사를 통해 데이터로 제시되기도 하고요. 부정 선거론과 탄핵 반대가 정확히 일치하는 견해라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탄핵에 반대하는 정치인의 많은 수가 부정 선거를 주장하는 집회에 얼굴을 비추고, 부정 선거론자들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합니다. 즉, 자신이 직접 부정 선거를 주장하지는 않더라도 애매하게 메시지를 던지는 겁니다. 현재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 출사표를 던진
김문수 전 대선 후보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최근 한 여론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의 약
35퍼센트가 김 전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사마다 숫자가 달라지고, 누가 누구의 편인지도 달라집니다. 하지만 적어도 두 자릿수 퍼센트 이상의 응답자는 탄핵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올해 치러졌던 대선이 부정 선거라고 의심하는 비율도
19퍼센트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5명 중 1명입니다. 우리 사회의 정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믿지 못하는 사람의 숫자라고 생각하면, 너무 많습니다.
부정 선거 음모론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만,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인간이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경험하게 되면, 음모론으로 이를 해결하고자 한다고 봤습니다. 내가 공감할 수 없는 정치 세력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내가 옳다고 믿어왔던 가치가 차별이며 혐오라고 비난받습니다.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입니다. 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고, 사회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사회가 잘못된 것이라면, 이 사회를 비틀어 놓은 못된 세력이 있습니다. 중국의 사주를 받아 대통령 선거 결과를 조작하는 세력 말입니다.
국제 선거 감시단은 어떤 단체인가?
그런데 이런 믿음은 지난해 12월 이후 단 한 번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2024년 총선이 부정 선거였다는 명분으로 계엄령을 선포했지만, 계엄은 3시간도 되지 않아 국회에 의해 해제되었죠. 이어 윤 전 대통령은 탄핵당했으며, 윤 전 대통령이 지지했던 대통령 후보는 당 경선 과정에서
낙마했습니다.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했고요.
이런 상황은 음모론에 대한 확신을 키웁니다. 그리고 ‘우리 편’에 대한 지지를 더욱 공고히 하죠. 부정 선거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는 극우 유튜버 전한길 씨는 계엄 사태 이후 주목받기 시작해 지난 3월 말 ‘전한길 뉴스’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습니다. 4개월여 만에 구독자는 43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들을 상대로 ‘면접’을 보겠다며 세를 과시했는데, 실제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라는 이름으로 실현되는 중입니다. 우리나라 제1 야당을 흔들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외부’로부터의 확실한 인정이 필요합니다. 절실합니다. 현실이 잘못된 것이며, 우리의 믿음이 맞다는 인정 말입니다. 이때 나타난 인물이 ‘모스 탄’이라는 인물입니다.
대선 이전까지 모스 탄은 우리나라 정계는 물론이고 워싱턴에서도 알려진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 말 사전 투표 당시, ‘국제 선거 감시단’이라는 이름의 단체 소속으로 모스 탄을 포함한 4명이 우리나라에 입국한 뒤 투표장에 나타났습니다. 네, 요즘 현수막으로 자주 보이던 그 단체 말입니다. 이름이 꽤 그럴듯합니다. 미국 정부나 UN 산하 기관처럼 보입니다. 대체 이 단체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관련해 뉴스를 검색해 보면, 아무런 설명 없이 가치 중립적으로 단체명만 언급하는 기사들이 쏟아집니다. 또, 이 기관이 매우 권위 있는 것처럼 추켜세우며 협조하지 않는 선관위를 비난하는 기사도 쏟아지고요. 적긴 하지만, ‘
극우 단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단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는 기사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단체의 정체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국제 선거 감시단이 어떤 곳인지 묻는 질문에 모스 탄은 ‘국가 선거 투명성 협회(National Election Integrity Association)의
관할 아래 활동하고 있다’라고 답합니다. 그렇다면 국가 선거 투명성 협회는 또 어떤 곳일까요? 찾아보면 별다른 정보나 언론 기사 등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후원금 모금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에 국가 선거 투명성 협회의 주소지가 나와 있습니다. 구글 맵으로 어떤 곳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버지니아주의 한 주택가, 가정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