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 탄은 누구인가?

bkjn review

요즘 길거리에 ‘국제 선거감시단’을 언급하는 현수막이 눈에 띕니다.

모스 탄은 누구인가?

2025년 7월 31일

최근 대로변에 ‘국제 선거 감시단’이라는 이름이 자주 걸려 있습니다. 또, ‘모스 탄’이라는 인물에 관한 현수막도 꽤 눈에 띄죠. 2025년 6월 3일 치러졌던 대통령 선거 결과는 잘못된 것이라고, 부정 선거였다고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눈살을 찌푸린 분도 계실 것이고, 내용이 궁금하셨던 분도 계시겠지요. 혹은, 논리나 상식의 영역 바깥에 있는 극소수의 주장일 것으로 생각하신 분도 계실 겁니다.

그 현수막 내용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림짐작하기도 힘들죠. 하지만, 극소수는 아닙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국제 선거 감시단’과 ‘모스 탄’은 의미 있는 언어입니다. 심지어 윤석열 전 대통령을 모스 탄이 접견할 것인지가 한동안 정치 뉴스의 중심이었고요. 대체 무슨 일일까요. 누가, 무엇을 근거로 왜 이런 주장을 하는 걸까요.

누가 부정 선거를 믿나?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입장의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지지도가 여론 조사를 통해 데이터로 제시되기도 하고요. 부정 선거론과 탄핵 반대가 정확히 일치하는 견해라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탄핵에 반대하는 정치인의 많은 수가 부정 선거를 주장하는 집회에 얼굴을 비추고, 부정 선거론자들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합니다. 즉, 자신이 직접 부정 선거를 주장하지는 않더라도 애매하게 메시지를 던지는 겁니다. 현재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 출사표를 던진 김문수 전 대선 후보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최근 한 여론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의 약 35퍼센트가 김 전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사마다 숫자가 달라지고, 누가 누구의 편인지도 달라집니다. 하지만 적어도 두 자릿수 퍼센트 이상의 응답자는 탄핵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올해 치러졌던 대선이 부정 선거라고 의심하는 비율도 19퍼센트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5명 중 1명입니다. 우리 사회의 정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믿지 못하는 사람의 숫자라고 생각하면, 너무 많습니다.

부정 선거 음모론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만,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인간이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경험하게 되면, 음모론으로 이를 해결하고자 한다고 봤습니다. 내가 공감할 수 없는 정치 세력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내가 옳다고 믿어왔던 가치가 차별이며 혐오라고 비난받습니다.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입니다. 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고, 사회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사회가 잘못된 것이라면, 이 사회를 비틀어 놓은 못된 세력이 있습니다. 중국의 사주를 받아 대통령 선거 결과를 조작하는 세력 말입니다.

국제 선거 감시단은 어떤 단체인가?

그런데 이런 믿음은 지난해 12월 이후 단 한 번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2024년 총선이 부정 선거였다는 명분으로 계엄령을 선포했지만, 계엄은 3시간도 되지 않아 국회에 의해 해제되었죠. 이어 윤 전 대통령은 탄핵당했으며, 윤 전 대통령이 지지했던 대통령 후보는 당 경선 과정에서 낙마했습니다.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했고요.

이런 상황은 음모론에 대한 확신을 키웁니다. 그리고 ‘우리 편’에 대한 지지를 더욱 공고히 하죠. 부정 선거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는 극우 유튜버 전한길 씨는 계엄 사태 이후 주목받기 시작해 지난 3월 말 ‘전한길 뉴스’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습니다. 4개월여 만에 구독자는 43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들을 상대로 ‘면접’을 보겠다며 세를 과시했는데, 실제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라는 이름으로 실현되는 중입니다. 우리나라 제1 야당을 흔들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외부’로부터의 확실한 인정이 필요합니다. 절실합니다. 현실이 잘못된 것이며, 우리의 믿음이 맞다는 인정 말입니다. 이때 나타난 인물이 ‘모스 탄’이라는 인물입니다.

대선 이전까지 모스 탄은 우리나라 정계는 물론이고 워싱턴에서도 알려진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 말 사전 투표 당시, ‘국제 선거 감시단’이라는 이름의 단체 소속으로 모스 탄을 포함한 4명이 우리나라에 입국한 뒤 투표장에 나타났습니다. 네, 요즘 현수막으로 자주 보이던 그 단체 말입니다. 이름이 꽤 그럴듯합니다. 미국 정부나 UN 산하 기관처럼 보입니다. 대체 이 단체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관련해 뉴스를 검색해 보면, 아무런 설명 없이 가치 중립적으로 단체명만 언급하는 기사들이 쏟아집니다. 또, 이 기관이 매우 권위 있는 것처럼 추켜세우며 협조하지 않는 선관위를 비난하는 기사도 쏟아지고요. 적긴 하지만, ‘극우 단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단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는 기사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단체의 정체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국제 선거 감시단이 어떤 곳인지 묻는 질문에 모스 탄은 ‘국가 선거 투명성 협회(National Election Integrity Association)의 관할 아래 활동하고 있다’라고 답합니다. 그렇다면 국가 선거 투명성 협회는 또 어떤 곳일까요? 찾아보면 별다른 정보나 언론 기사 등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후원금 모금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에 국가 선거 투명성 협회의 주소지가 나와 있습니다. 구글 맵으로 어떤 곳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버지니아주의 한 주택가, 가정집입니다.
 
구글맵으로 확인한 주소지의 모습입니다. / 출처: Google
결론적으로 이 단체는 아무런 권한이 없는 민간단체입니다. 소속된 사람들이 미국 육군 출신이거나 트럼프 행정부에서 공무원으로 일한 적이 있는 정도죠. 지금은 완전히 민간인이고요. 당연히 관련 내용을 검색해도 나오는 게 없습니다. 이들을 미국 현지 언론이 다룰 이유도 없고, 지금까지 이렇다 할 활동을 벌인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사전 투표장에 등장했을 때 정치부 기자들은 선거 관련 보도를 쏟아내던 시기였습니다. 자료를 찾아도 나오는 게 없었고요. 이들의 정체를 파악하려면 취재를 좀 해야 하는데, 그럴만한 사안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이 단체를 자세히 설명한 보도가 사전 투표 당시에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처음 보는 곳인데 이름이 그럴싸하니, 해당 보도를 접한 독자 중 누군가는 국제적으로 공신력 있는 기관이 우리 선거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생각하게 되었겠고요.

모스 탄은 누구인가?

대선이 치러지고 나자, 이번에는 기자 회견이 열립니다. 2025년 6월 27일 워싱턴의 내셔널 프레스 클럽(National Press Club)에서였는데, 이 장소가 매우 공식적이며 권위 있는 곳이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과 다릅니다. 누구나 돈을 내면 빌려 쓸 수 있는 행사장입니다. 이번 대선이 부정 선거였으며 배후에는 중국이 있다는 내용을 발표했는데, 그 근거 중의 하나로 언급한 것이 온라인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의 미국 정치 갤러리의 게시글이었습니다.

그래서 외신에 이 내용을 검색하면 아무런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보도 자료 배포 플랫폼에 올라와 있는 정도입니다. 그런 곳은 자료를 보내면 그냥 등록해 주니까요. 그런데 무려 1면에서 이 기자회견 내용을 다룬 매체가 한 곳 있습니다. 바로 《미주중앙일보》입니다. 다만, 《미주중앙일보》는 《중앙일보》에서 데스킹하는 매체가 아닙니다. 일종의 프렌차이즈 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의 기사를 사용할 수 있고, 중앙일보의 이름과 조판 디자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대가로 사용료를 냅니다. 아주 느슨한 본사와 가맹점의 관계 같은 것입니다.

결국, 《미주중앙일보》의 대서특필은 이 단체나 부정 선거 주장에 대한 미국 한인 사회 일부의 움직임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한인 사회에서 한국어로 발행되는 종이 신문을 읽는 이민 1세대 계층을 대상으로 했다고 추론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국제 선거 감시단의 활동에 돈을 댔을까요? 그리고 현지 한인 매체 1면에 그 내용을 실리게 했을까요?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국제 선거 감시단의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모스 탄’이라는 인물을 따라가 보면 짚이는 구석이 있습니다. 모스 탄은 이민 1.5세대의 한국인으로, 한국 이름은 ‘단현명’입니다. 지난 7월 14일 다시 방한했습니다. 이번에는 혼자였고, ‘국제 형사사법 대사’라는 이력이 중점적으로 소개됐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극우는 왜 연결되는가?

모스 탄의 이력은 거짓이 아닙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무부 소속의 국제 형사사법 대사로 임명되어 활동했습니다. 변호사 출신으로, 법학자입니다. 북한 관련 연구를 해 왔던 경력이 인정받았죠. 다만, ‘대사’라는 직함이 그러하듯, 권한이 있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관련 국제회의에 미국을 대표해 참석하고, 강연 활동 등을 하는 역할이었죠. 임기가 끝나자, 대학으로 돌아갔고요.

그런데 트럼프 2기로 접어들면서 모스 탄의 활동 영역이 점차 넓어집니다. ‘CPAC KOREA’라는 단체를 기반으로 한국의 부정 선거 음모론을 주장하기 시작한 겁니다. 2019년, ‘애니 챈’이라는 인물이 설립했습니다. 한국계 이민 1세대입니다. 사업으로 부를 축적했고,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죠. CPAC KOREA는 미국 최대의 보수 콘퍼런스인 CPAC(Conservative Political Action Conference)의 산하 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CPAC 행사장에 부스를 차리고 한국의 부정 선거 내용을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CPAC은 단순한 보수 정치 모임이 아닙니다. 도널드 트럼프를 받치고 있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지원하고, 무엇보다 트럼프에게 거액의 후원금을 냅니다. 즉, 백악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겁니다. CPAC KOREA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백악관과 연결고리가 있고요.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습니다. 2025년 2월 CPAC 연례행사 현장에 나타난 트럼프 대통령이 수많은 사람들 중 ‘고든 창’이라는 인물을 지목해 일으켜 세운 뒤 자신이 대중 정책을 잘 펼치고 있는지 묻습니다. 이 장면을 시작으로 고든 창이라는 인물이 순식간에 유명세를 탑니다. 이전까지는 극우 매체를 중심으로 정치평론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중국 출신의 이민 1.5세대로, 애니 챈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고든 창은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옹호했습니다. 계엄의 명분으로 거론된 한국의 부정 선거 음모론을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트럼프의 이날 호명 이후 고든 창은 극우 매체 위주로 활동하던 인사에서 〈CNN〉, 〈더 힐〉등에 전문가로 나서게 됩니다. 대통령이 신뢰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발언의 무게도 달라진 겁니다. / 출처: FOX NEWS
그렇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우익은 공통의 적, ‘중국’으로 엮여 있습니다. 고든 창은 그 누구보다 확실한 반중 주의자이며, 중국이 간첩과 해커 등을 동원해 미국 사회를 교란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는 음모론자입니다. 우리나라의 2024년 총선도 중국산 장비와 소프트웨어 때문에 결과가 조작되었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이런 배경을 놓고 보면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백악관이 내놓았던 입장에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행사를 우려하고 반대한다’라는 내용이 왜 포함되었는지 이해가 갑니다. 고든 창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CPAC과 같은 후원 단체를 통해 백악관에 극우적 음모론을 슬며시 올려놓고 있는 겁니다. 물론 백악관의 주류가 전부 극우 세력은 아닙니다. 다만, 누군가는 그러합니다.

모스 탄은 애니 챈과 고든 창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작은 인물입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을 적극적으로 오가며 연결고리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구해줬던’ 경험이 있는 노령층에, 특히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집단에게 모스 탄의 방문은 의미심장합니다. 미국에 한국의 사정을 잘 설명해 이번에도 미국이 우리를 ‘구해줄 것’이라는 희망이 됩니다.

탄의 방한이 소동을 일으키고, 윤 전 대통령과의 접견이 추진되었다 불발되었던 배경에는 미국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극우 단체와 그 산하에 있는 한국 관련 단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가 아직 광화문으로 모여 집회를 이어가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이고 기댈 곳입니다. 거리 곳곳에 걸린 현수막에는 그 믿음이 담겼습니다. 처음부터 외부를 설득할 목적의 선전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건재하다는, 곧 미국이 도와줄 거라는 믿음을 내부에 확인시키기 위한 현수막입니다.

우리나라의 극우 세력은 앞으로 이런 희망을 계속 발견할 겁니다. CPAC KOREA나 애니 챈, 고든 창, 모스 탄과 같은 인물들이 희망에 신빙성을 더해줄 것이고요. 문제는 이들의 세력이 우리나라의 보수 정당을 흔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규모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집회 현장에서 느끼는 열기는 확신을 줍니다. 보수와 극우의 경계를 긋지 못하고 자꾸만 끌려다닙니다. 그래서 부정 선거 음모론을 믿는 20퍼센트가 위험합니다. 그 현수막들은 우리 정치의 독버섯입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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