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할 때 기업은 컨설팅 회사를 찾습니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코로나19라는 초유의 감염병 사태입니다. 기업들은 사업 전반을 온라인으로 옮겨와야 했습니다. 사무실까지 통째로 말이죠. 게다가 환경과 사회, 지배 구조에 있어 기업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했습니다. ESG 열풍입니다. 그 결과 세계 최대의 컨설팅 기업으로 꼽히는 맥킨지(McKinsey & Company)의 경우 2024년 16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2012년의 두 배 넘는 숫자입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격변의 시대입니다.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지정학적 권력의 축이 움직이고, 달러를 중심으로 유지되어 온 경제 시스템이 흔들립니다. 생성형 AI는 노동력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2~3년 전까지 유망해 보였던
비즈니스 모델을 가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럼에도 컨설팅 기업들의 성장은 점차 속도를 줄이고 있습니다. 2024년 매출 성장률은 2퍼센트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실제 맥킨지는 최근 2년간 직원 1800여 명을
해고했습니다.
20세기의 컨설팅도, 컨설턴트라는 직업의 개념도 낡고 있습니다. 그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한 것은 온톨로지(Ontology)입니다.
신자유주의의 설계자들
1911년으로 시계를 돌려보겠습니다. 20세기 이후의 노동 방식을 결정한 책 한 권이 발간된 해입니다. 필라델피아 출신의 기계 공학자 프레드릭 윈슬로우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론(The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발간 이후 인간 노동의 패러다임이 뒤집혔습니다. 노동의 생산성을 결정하는 것은 노동자의 개인적 숙련 정도나 직감이 아니라는 겁니다. 노동과 생산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표준화하고, 분업화하면 생산성이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테일러주의의 신념입니다.
이번에는 1960년대로 향해 볼까요. 경제학계에서 ‘시카고 학파(Chicago School)’가 부상하기 시작합니다.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유 경쟁 체제의 시장을 신뢰하면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자원 분배가 이루어진다는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1980년대 이후 세계를 움직이는 이데올로기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죠.
현대적 의미의 경영 컨설팅은 이 두 가지 결정적 순간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시스템을 만들어 사람을 관리하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믿음, 시간과 동작, 성과까지 모두 수치화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기업 내부는 물론 사회 시스템까지도 시장 경제 논리를 적용해 구조 조정과 비용 절감을 진행하면 격변의 시기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입니다. 신자유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죠.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시장의 경쟁을 유도했습니다. 수많은 국영 기업을 민영화했고, 복지 정책도 축소했죠. 이 과정에서 컨설팅 기업이 맹활약하게 됩니다. 대처 정부 당시 공공 부문 컨설팅 지출은 1979년 600만 파운드에서 1990년 2억 4600만 파운드까지 급증합니다.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에서 구제 금융, 차관 등을 지원할 때도 대상 국가 정부에 컨설팅 도입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1997년 IMF 구제 금융을 받게 되면서
골드만삭스 등이 기업 구조조정 컨설팅에 합류했었죠.
전문가의 자격
하지만, 컨설팅 산업은 실제로는 가치 창출보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이미지’ 구축에 더 힘을 쏟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흔히 ‘MBB’라 불리는 맥킨지, 보스턴 컨설팅 그룹 (Boston Consulting Group), 그리고 베인 앤 컴퍼니 (Bain & Company) 등의 3대 컨설팅 기업은 취업 준비생들에게 꿈의 직장이기도 합니다. 엄청난 업무 강도와 그만큼 따라오는 높은 연봉을 약속하죠. 그리고 이러한 기업 문화는 일종의 ‘신화’가 되어 이들의 전문성을 보증하는 내러티브로 기능합니다.
또, 자체적인 연구 기관을 설립해 꾸준히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합니다. 보고서에 쓰인 내용에 따라 한 회사의 주가가
출렁거리기도 하죠. 업계의 트렌드를 읽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좋은 참고 자료를 거의 ‘무료’로 공개하는 이들의 행보가 이상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보고서 발간 및 배포는 컨설팅 회사가 특정 분야의 사고 리더(thought leader)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보고서에 담긴 전문성이 실제 컨설팅 현장에서도 발휘될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킨다는 겁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 할지라도 MBA 졸업 후 2~3년정도 된 주니어 컨설턴트가 업계에서 10년 넘게 일한 내부 직원보다 더 뛰어난 전문성을 갖추고 있을 리가 없습니다. 꼭 전문 분야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2~3년은 한 기업이나 정부의 미래를 설계하는 설계자가 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컨설팅 기업들의 매출이 크게 성장했던 코로나19 당시를 떠올려보죠.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인류 중 이 새로운 감염병에 관해 제대로 알고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직 잘 모른다’라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전문가였습니다. 하지만 컨설팅 회사가 그렇게 말한다면 돈을 받을 수 없겠죠. 사달이 났습니다. 영국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에 컨설턴트들을 대거
투입했습니다. 코로나19 감염 검사 및 추적 시스템에 투입된 컨설턴트들은 하루 평균 1100 파운드씩 받아 챙겼죠. 하지만 성과는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프랑스 정부도 코로나19 백신 접종 계획에 맥킨지 등 컨설팅 업체들을
투입했습니다. 2021년 한 해에만 거의 10억 유로에 달하는 지출이 있었죠. 하지만 프랑스가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특출난 성과를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 어떤 정부도 특출난 성과를 낼 수 없는 사건이었고요. 결국 컨설팅 비용이 지나친 낭비 아니었느냐는 비난이 일었습니다.
전장에 선 컨설턴트
사실, 컨설팅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투입하고도
헛다리를 짚거나 교과서에 나올 법한 뻔한 결론을 내놓는 컨설턴트들의 일화가 신화처럼 전해져 오죠. 예를 들면, 감소하는 독자를 다시 되돌리기 위해 컨설팅을 의뢰했더니 ‘더 나은 이야기와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라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컨설팅 업계가 이 세계에 독이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해 있습니다. 56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며 미국을 뒤흔들었던
마약성 진통제 사태를 키운 장본인 중 하나가 바로 맥킨지입니다. 고용량 진통제를 주로 처방하도록 유도하고, 소비자를 현혹하는 마케팅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맥킨지는 건강 보험사와 기업체 복리후생 기금에 합의금 7800만 달러를 지급했습니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이주’ 시키는 데에 드는 비용을 추산하고, 전쟁으로 파괴된 지역을 복구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당장 거센 비난이 나왔습니다. 반인륜적인 전쟁 범죄라는 겁니다. BCG는 이 프로젝트에 관여한 파트너를 해고하고, 해당 프로젝트는 회사 차원에서 승인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아껴야 잘 산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경영 컨설팅은 어떨까요? 정말 효과가 있는 것일까요? 맥킨지나 딜로이트 같은 이름에 현혹되어 기업이 불필요한 돈을 지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에 관한 흥미로운
논문이 최근 발표되었습니다. 벨기에의 연구자들이 실제 거래 자료를 바탕으로 대기업의 실적과 컨설팅의 관계에 관해 분석한 겁니다.
경영 컨설팅을 의뢰하는 기업은 대부분 규모가 크고 성과가 높은 기업입니다. 보통 1년 미만의 단기 프로젝트로 진행되며, 컨설팅 후에는 전반적으로 노동 생산성이 향상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익성이 눈에 띄게 높아진 것은 아닙니다. 기업들은 노동 생산성 향상과 함께 일정 정도의 해고를 진행하였고, 이와 함께 평균 임금이 높아졌습니다.
이런 방식의 변화는 생산성이 낮은 기업에서는 유의미한 효과를 보입니다. 반면, 원래 성과가 좋았던 기업에서는 엄청난 개선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컨설팅 업체의 능력과 한계가 동시에 보입니다. 비효율을 효율로 바꾸는 데에는 경영 컨설팅이 유의미합니다. 하지만 컨설팅은 생각보다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오지는 않습니다. 실제 컨설팅 프로젝트가 운영 효율이나 비용 절감, 조직 구조 개편 등에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식입니다. 혁신과는 거리가 멀죠.
격변의 시대를 맞은 지금, 주요 컨설팅 기업들의 성장세가 꺾인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고전적인 방식의 컨설팅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혁신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습니다.
결정의 외주화에서 역량의 내재화로
지금까지의 컨설팅은 대개 정량적인 수치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숫자가 방법(how)의 근거가 되었죠. 하지만 현재 발생하고 있는 혁신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숫자보다 방법을 먼저 이야기해야 합니다. 정체가 무엇인지 이해하기도 힘든 AI라는 도구를 ‘어떻게’ 회사에 도입할 것인지 말이죠. 그 답은 맥킨지보다 오픈AI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전문성에서 압도적이죠. 하지만 오픈AI의 엔지니어가 우리 회사에 상주하며 시스템 개발부터 도입까지 완전히 책임지기는 힘듭니다. 그보다는 AGI를 개발하는 것이 더 급선무일 테니까요. 물론, 업계에서는 관련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오긴 합니다. 하지만 오픈AI의 본업은 AI 모델 개발이죠.
이런 상황에서 부상하고 있는 기업이 바로 팔란티어(Palantir)입니다. 우리가 흔히 팔란티어를 ‘AI 방산 업체’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쯤 맞고 반쯤은 틀립니다. 방산도 합니다. 하지만 방산이 아닌 분야도 합니다. 한 애널리스트는 팔란티어를 ‘맥킨지와 데이터브릭스(Databricks)의 만남’이라고 묘사하는데요, 데이터브릭스는 AI 및 데이터 엔지니어링 플랫폼을 제공하는 미국의 IT 기업입니다. 즉, 팔란티어는 고객사의 업무, 비즈니스 모델, 문제의식 등을 현장에서 함께 겪고 이해하며 분석합니다. 맥킨지처럼 말이죠. 그리고 그 해결책을 PPT 파일이 아니라 AI 시스템으로 내놓습니다.
팔란티어의 핵심 개념 중 하나가 ‘
온톨로지’입니다. 고객사의 데이터와 그 구조, 워크플로우를 정의해 일종의 지도로 그리는 겁니다. 예를 들어 항공 산업이라고 한다면, 비행기와 항공편, 항공사, 공항, 지연 등의 요소와 이를 연결하는 관계를 정의하는 겁니다. 이를 통해 기업은 비전 정립, 목표 설정, 팀 조율 등에 있어 기준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팔란티어는 이 온톨로지를 바탕으로 각 기업에 맞춤형 AI 시스템을 설계해 이식합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기업 고유의 내재 역량이 되는 시스템이고요.
이미 이동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미국 국방부는 어센츄어(Accenture), 딜로이트 등 주요 IT 컨설팅 업체들과의 51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종료합니다. 국방부 내부 인력으로도 수행 가능한 업무를 그저 외주화했을 뿐이라는 것이죠. 반면 팔란티어와는 2008년 이후 계속해서 계약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미 육군이 향후 10년간 최대 100억 달러 규모의 제품 및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고요.
지금까지 기업과 정부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컨설팅 기업의 도움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변화는 좀 다릅니다. 컨설팅 기업들이 영향을 받고, 함께 흔들립니다. 이번에는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패러다임이 뒤집히는 사건이라는 뜻이겠죠. 최근 주식 시장에서 팔란티어의 주가가 엄청난
폭등을 기록했던 것은 단순한 헤프닝이 아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