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의 에러

bkjn review

왓챠의 혁신은 유통 기한이 너무 짧았습니다.

왓챠의 에러

2025년 8월 11일

왓챠의 위기‘설’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2025년 8월 4일, 기업회생절차를 시작했습니다. 왓챠가 선택한 일은 아닙니다. 신청은 왓챠에 200억 원 규모를 투자했던 벤처 캐피털 ‘인라이트벤처스’가 채권자 자격으로 진행했습니다. 기업회생 결정은 법원이 내렸습니다. 즉, 채권자와 법원이 ‘이대로는 힘들다’라고 판단했다는 얘깁니다.

왓챠의 성장 과정은 ‘무신사’와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영화에 관해 코멘트를 남기고 별점을 메기는, 일종의 커뮤니티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무신사가 패션 커뮤니티에서 웹 매거진으로, 이커머스로 사업을 확장했듯 왓챠도 콘텐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등에 업고 2016년 OTT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마니아층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오리지널 콘텐츠의 성공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왓챠는 무신사가 되지 못했습니다.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죠.

콘텐츠 유통 구조를 해킹한 스타트업

왓챠를 만든 창업자들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취향을 분석하고 계산해 대중의 평균이 아닌, 내게 맞춘 평균을 찾아 주는 서비스를 구상했던 겁니다. 아이템은 영화가 아니라 맛집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창업 멤버들이 대부분 영화를 좋아하기도 해서 영화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커뮤니티에 데이터가 쌓일수록 왓챠는 내 취향에 맞춘 영화를 훨씬 더 잘 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OTT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커뮤니티에 쌓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장 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콘텐츠를 골라 수급해 오는 방식입니다. 이론상으로는 완벽한 전략입니다. 10만 원어치 팔릴 콘텐츠를 만 원 주고 사 오는 방식이니까요.

사실, 이런 아이디어는 당시 여러 면에서 꽤 유효했습니다. 먼저, 개인의 취향을 파악해 저격한다는 점부터 그러했죠. 지금은 너무 당연한 얘깁니다. 언젠가부터 유튜브와 넷플릭스,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의 알고리즘이 나 자신보다 내 취향을 더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왓챠가 커뮤니티의 형태로 처음 문을 연 때가 2012년입니다. OTT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2016년이고요. 아직도 ‘멜론 TOP 100’ 플레이 리스트가 유효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콘텐츠 수급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2010년대 초중반 한 케이블 채널 방송국을 상상해 보죠. ‘킬러 콘텐츠’ 확보가 중요합니다. 그래야 수백 개 채널 중 우리 채널에 시청자가 멈추고, 주기적으로 찾아오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영화 및 해외 시리즈를 수급할 때는 무조건 해당 시즌의 최고 기대작을 쟁탈하기 위해 경쟁합니다. 이를테면 〈왕좌의 게임〉 같은 대작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대작은 하나만 사 올 수 없습니다. ‘패키지’라는 이름으로 규모가 작고 흥행 가능성이 적은 작품들도 함께 사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잘되기 어려운 미국 정치 시트콤 같은 것이라 해도 말이죠. 그래서 당시에는 판권을 구매해 놓고도 몇 년 동안 편성조차 하지 않는 영화나 해외 시리즈도 있었습니다. 자막 등 후작업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창고에서 먼지만 쌓이는 겁니다. 그게 이득이었습니다. 킬러 콘텐츠를 3방, 4방째 다시 편성하는 쪽이 훨씬 높은 시청률과 광고 수익을 보장했으니까요.

OTT의 정의를 바꾼 팬데믹

반면, 왓챠는 처음부터 킬러 콘텐츠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죠. 시청자는 원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가성비 작품 리스트를 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모범 답안을 들고 있었던 겁니다. 게다가 OTT라는 플랫폼의 특성이 그런 ‘취향’의 영역과 참 잘 맞아 보였습니다. 편성 시간이라는 물리적 한계로부터 자유로우니까요. 그런데 그 정답지의 유효 기간이 너무 빨리 끝나 버렸습니다.

2019년까지만 해도 왓챠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임원이 직접 나서 구글플레이 매출상으로는 넷플릭스를 넘었다고 언급하기도 했죠. 하지만 자신감의 더 큰 근거는 ‘추천’의 정확성이었습니다. 플랫폼은 늘 이용자에게 콘텐츠를 추천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콘텐츠를 클릭하고 끝까지 플레이하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왓챠는 이 부분에서 넷플릭스를 앞선다고 자평했습니다. RMSE 값(평균 제곱근 오차, 예측한 값과 실제 값 사이의 오차가 얼마나 되는지 측정)을 기준으로 30퍼센트 이상 넷플릭스보다 우위에 있다고 설명했죠.

근거는 왓챠의 뿌리인 커뮤니티입니다. OTT 론칭 이후 ‘왓챠피디아’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여전히 건재합니다. 왓챠의 기업회생 진행 결정 소식이 전해지면서는 왓챠의 OTT 서비스보다 왓챠피디아의 존립이 더 걱정이라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죠. 왓챠피디아에 영화 감상평과 별점을 오랫동안 쌓아 둔 유저들이 적지 않은 영향입니다. 실제로 2025년 1월 기준 왓챠피디아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400만 명에 달합니다. 왓챠는 50만 명대고요.

하지만 곧 OTT 시장은 취향이 아니라 물량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팬데믹 이전부터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서 잘 될만한 IP를 열심히 사들이고 있다는 소문이 업계에 돌았습니다. 2019년 오리지널 시리즈〈킹덤〉이 유의미한 성공을 거둔 후 팬데믹이 터졌습니다. 투자 시장에 돈이 몰렸죠. 극장은 문을 닫고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던 시절, OTT는 가장 매력적인 투자 종목이었고요. 넷플릭스는 확보해 뒀던 IP를 차례차례 터뜨렸습니다. 오리지널 콘텐츠 싸움이 시작된 겁니다. 여기에 디즈니플러스라는 글로벌 경쟁자와 웨이브, 티빙 등 국내 방송사 및 대기업의 OTT가 합세했고요.

〈시멘틱 에러〉와 〈오징어 게임〉사이의 간극

시장 환경의 변화는 왓챠의 전략을 뿌리부터 흔들었습니다. 마니아층이 원했던 독립 영화, 스타 배우는 없어도 작품성으로 인정받은 해외 시리즈 등에만 집중하기엔 각 플랫폼이 쏟아내는 대작이 너무 많았습니다. OTT에 편성 시간이라는 물리적 제약은 없습니다. 하지만 시청자에겐 시간 자원이 한정적입니다. 〈오징어 게임〉을 정주행하면 왓챠를 열어 볼 시간은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2021년 HBO와의 콘텐츠 계약이 종료되면서 왓챠라는 플랫폼과 결이 잘 맞았던 〈왕좌의 게임〉, 〈체르노빌〉 등의 콘텐츠를 상실하게 됩니다.

왓챠는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2021년 말 490억 원의 전환 사채(CB)를 발행합니다. 일종의 투자 방식입니다. 채권자는 만기가 도래했을 때 원금과 이자를 회수할 수도 있고, 투자 금액에 비례해 회사의 지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이번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인라이트벤처스가 200억 원을 투자합니다.

이 돈으로 왓챠는 오리지널 콘텐츠에 힘을 실었습니다. 영화와 드라마 외에 웹툰과 웹소설, 음원, 게임 등 멀티 콘텐츠 플랫폼으로 거듭나는 ‘왓챠 2.0’ 계획도 발표했죠. 의미 있는 결과를 냈습니다. BL 시리즈〈시멘틱 에러〉가 주목받았고, 〈좋좋소〉같은 콘텐츠는 유튜브와 OTT 사이의 경계를 무너트리며 사회적 밈이 되었습니다. 〈조인 마이 테이블〉 같은 따뜻한 예능 프로그램도 잔잔한 화제를 일으켰고요.
왓챠의 오리지널 콘텐츠는 꽤 호평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계가 분명했죠. / 출처: 왓챠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의미 있는 실적은 못 냈습니다. 콘텐츠는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합니다. 왓챠의 라인업은 소박하고 짧았습니다. 만드는 족족 대박을 터트린다면 모를까, 〈오징어 게임〉과 〈무빙〉같은 콘텐츠가 계속 쏟아지는데 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 넷플릭스의 MAU는 1400만 명이 넘습니다. 왓챠의 28배 가까이 됩니다. 같은 콘텐츠를 같은 돈 들여 제작해 서비스하면 넷플릭스가 28배 이익을 챙기는 구조입니다. 글로벌 시장으로 넓혀 생각하면 그 차이는 더 벌어지겠죠.

그래서 왓챠는 오리지널 콘텐츠에서도 ‘취향’이 전략이었습니다. 적은 비용으로 퀄리티를 내려다 보니 BL이라는, 다양성이라는, 일드like, 미드like라는 취향을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그 취향이라는 것에 관해 찬찬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A라는 사용자는 매주 〈나는 솔로〉를 봅니다. 복잡한 생각은 내려놓고 웃고 욕하며 즐깁니다. A는 또한 ‘아리 애스터’ 감독의 팬입니다. 〈유전〉, 〈미드소마〉 같은 영화를 몇 번이고 돌려봤습니다.

왓챠피디아에서 〈나는 솔로〉에 달린 코멘트는 700개 이상으로 집계됩니다. 반면, 〈미드소마〉에는 9500개 이상의 코멘트가 달려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취향을 개성 있고 독특하며 가치 있는 것으로 포장하고자 합니다. 〈나는 솔로〉는 적합한 콘텐츠가 아니죠. 또, 재미 있게 본 모든 콘텐츠에 글을 남기고 싶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즉, 왓챠피디아를 기반으로 모인 ‘취향’ 데이터에는 오류가 있다는 얘깁니다. 〈나는 솔로〉를 보지만 굳이 코멘트를 남기거나 별점을 주지 않는 사용자 A의 존재가 바로 왓챠의 에러입니다.

물론, 왓챠피디아를 바탕으로 쌓인 데이터는 마니아층을 대상으로 한 OTT 서비스에는 적합합니다. TV가 기본적인 콘텐츠를 충족하는 가운데 나의 취향을 위한 추가 투자로 OTT를 선택할 때 말입니다. 하지만 TV를 대체할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할 때에는 다른 얘깁니다. 이용자의 저변을 넓히고자 할 때에는 〈나는 솔로〉의 매력을 이해하는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왓챠 3.0

왓챠는 2022년을 기점으로 달라집니다. 직전까지는 LGU+ 등 대기업 인수를 점치고 있었지만 무산됐습니다. 직접 상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그마저도 실패했습니다. 1000억 원 규모의 프리IPO 유치에 실패한 겁니다. 증시에 상장하기 직전,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받는 투자입니다. 이걸 모으지 못했다는 뜻은 시장이 왓챠의 가치를 상장할 만큼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뜻입니다.

엑싯(exit)과 상장이라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나왔던 왓챠 2.0 선언도 흐지부지됐습니다. 음원 사업 등은 정리했고, 웹툰만 왓챠 서비스 내에 단건 결재 방식으로 일부 전환하면서 살아남았습니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도 거의 멈췄습니다. 자체 제작을 위한 인력을 중심으로 감원을 진행해 현재는 직원 규모도 100명 안팎 수준입니다. 절반 이상을 줄인 겁니다. 사실, 콘텐츠 제작에 있어서는 제작비가 낮은 숏폼으로 피봇했으니 아예 리그를 갈아탄 셈입니다.

이렇게 왓챠는 2021년의 투자로 잡으려 했던 기회를 다 놓쳤습니다. 그리고 2024년 11월, 490억 원 전환 사채 만기일이 돌아왔습니다. 왓챠는 만기일을 연장하고자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투자자들은 시장 상황과 왓챠의 재무제표를 봤을 때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고요.

왓챠의 경쟁력은 진짜 팬들의 커뮤니티와 데이터였습니다. 하지만 무신사의 ‘스트리트 스냅’ 콘텐츠 등과는 달리, 커뮤니티가 구매로 직결되는 시스템은 만들지 못했습니다. 모두를 위한 플랫폼이 되기에는 애초에 맞는 데이터가 아니었고요.

아직 왓챠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회생’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OTT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전략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업계에서는 최근 흑자 전환에 성공한 애니메이션 전문 OTT ‘라프텔’, 중국 시리즈 전문 OTT ‘모아’ 등을 예로 들며 더 뾰족한 전략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왓챠의 꿈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왓챠의 경쟁력도 그런 것이 아니었고요.

저는 오히려 대형 OTT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집는 모델을 왓챠가 보여 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olyn.com’과 같은 스타트업처럼 말입니다. 독립 영화 감독이나 제작자가 작품을 직접 관객에게 배포할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관객은 영화를 감상한 후 이를 주변에 추천할 수 있고, 시청이 발생해 수익으로 이어진다면 일정한 보상도 받을 수 있습니다. 영화 콘텐츠 유통의 중간 단계를 완전히 없애는 프로젝트죠. 아마 왓챠가 처음 시작했을 때는 olyn.com만큼이나 대단한 혁신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혁신의 유통 기한이 너무 짧았습니다. 왓챠 3.0에는 새로운 혁신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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