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부부의 귀여움

bkjn review

중국이 욕망의 생산자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라부부의 귀여움

2025년 8월 12일

귀여움으로 세계를 정복한 기업들이 있습니다. 미키마우스의 디즈니, 헬로 키티의 산리오, 더 보탠다면 포켓몬스터의 닌텐도 정도까지 포함할 수 있겠죠. 캐릭터 IP 산업은 대개 고유의 세계관과 이야기, 잘 설계된 형태를 갖춰야 성립합니다. 또, 소비자를 이 모든 것에 노출할 플랫폼과 콘텐츠도 갖춰야 하죠. 포켓몬스터가 게임과 애니메이션이라는 콘텐츠를 통해 전 세계에 침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화적인 설득의 과정이 거의 생략된 채 미국과 한국, 중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캐릭터가 등장했습니다. ‘라부부’입니다. 뭔가 토끼를 닮은 듯하지만, 토끼는 아닙니다. 북유럽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엘프’ 캐릭터라고 합니다. 베이징에 본사를 둔 ‘팝마트’라는 중국 기업의 캐릭터인데, 주로 키링이나 봉제 인형, 피규어의 형태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품귀 현상이 벌어지면서 인형을 두고 몸싸움이 벌어졌다거나, 희귀 모델의 경우 중고 시장에서는 세 배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등의 소식이 쏟아집니다.

라부부의 인기와 함께 팝마트의 기업 가치도 수직 상승 중입니다. 2010년에 문을 연 이 기업의 시가 총액은 현재 약 60조 원 정도입니다. 헬로 키티의 산리오가 17조 원, 바비 인형의 마텔이 10조 원이니 캐릭터 IP 업계에서는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라부부의 성공에 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옵니다. 물론 이 괴상한 캐릭터가 어떻게 지갑을 여는지는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감수성을 보여 주니 말입니다. 하지만 라부부는 그 이상을 상징합니다. 

특별한 소유욕을 만든 기업

팝마트는 2010년 잡화점으로 시작했습니다. ‘무인양품’이나 ‘플라잉 타이거’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홍콩의 ‘Log on’이라는 잡화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곧 장난감 분야에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피봇합니다. 그리고 ‘아트 토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습니다.

사실, 어른을 위한 장난감은 새로운 개념이 아닙니다. ‘키덜트(kidult)’ 문화의 성장과 함께 정교한 피규어나 장난스러운 기능을 가진 전자 기기 등이 꾸준히 인기를 모아 왔죠. 쉽게 가지고 놀다 망가뜨리는 용도가 아니라 수집욕을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가격도 꽤 고가에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팝마트가 내놓은 아트 토이는 개념이 조금 다릅니다. 마니아층만을 위한 버티컬 타깃 제품이 아닙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귀여움’을 팝니다. 그런데 그 귀여움에 가치를 더했습니다. ‘아티스트가 창작한’ 귀여움입니다. 디자이너 브랜드의 의류나 잡화가 실용 이상의 가치를 획득하는 것과 비슷한 전략입니다. 지금 열풍의 한가운데에 있는 캐릭터인 라부부도 벨기에 일러스트레이션 대회 수상 경력의 홍콩 작가 룽카싱(Lung Kasing)이 만든 캐릭터입니다. 동화책 속 캐릭터이지만, 그 스토리는 현재의 라부부 현상과는 크게 상관이 없죠. 

팝마트 전략은 중국의 청소년층과 20대에게 정확히 먹혀들었습니다. 스스로를 위해 ‘특별한 귀여움’을 구매할 만큼 경제력을 갖추고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취업난과 폭등하는 주택 가격 등에 좌절하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처음엔 몇만 원 정도의 귀여운 사치였습니다. 그런데 팝마트의 판매 전략은 귀여움에 대한 호감을 사회 현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팝마트의 블라인드 박스 전략에 주목합니다. / 출처: The Wall Street Journal
맥락 없는 시대의 캐릭터 상품

해외 언론은 팝마트의 ‘블라인드 박스’ 전략을 라부부의 성공 요인으로 꼽습니다. 직접 구매해 박스를 열기 전까지는 라부부의 색상이나 의상 등 상세 스펙을 알 수 없는 겁니다. 원하는 모델을 갖기 위해서는 무한정 구매를 반복해야 합니다. 아니면, 웃돈을 얹어 중고 매물을 사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라부부 상품의 정가는 2만 원에서 10만 원 사이지만, 2차 시장에서는 가격이 몇 배로 치솟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블라인드 박스 전략이 제대로 먹힌 이유는 ‘랜덤 박스 효과’ 때문만은 아닙니다. 물론, 구매 과정에 게임적 요소가 추가되고, 2차 시장에서 가격이 상승하며 캐릭터의 내재 가치가 상승하는 효과까지 누린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더 큰 것이 있습니다. 이 블라인드 박스가 너무나 ‘틱토커블(TikTokable)’ 하다는 사실입니다.

긴 줄을 서서 구매해 온 박스를 ‘언박싱’하는 모습은 틱톡에 딱 맞는 콘텐츠가 됩니다. 원했던 모델이든, 그렇지 않든 극적인 표정으로 귀여운 인형을 끌어안게 되죠. 라부부를 비롯한 팝마트의 상품들이 알고리즘에 올라타자 열풍은 걷잡을 수 없어졌습니다. 블랙핑크의 멤버인 리사, 킴 카다시안 등 유명인들의 라부부 인증이 이어집니다.

텔레비전의 시대에는 내러티브가 소비자를 매혹하고 캐릭터를 사랑하게 만드는 방법이었습니다. 숏폼과 소셜 미디어의 시대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 낼 만한 요소와 한눈에 알아볼 만한 독특한 외형이 관건입니다. 라부부에게 서사가 없다고 하지만, 라부부에는 21세기 방식의 서사가 있습니다. 소비자 개개인이 틱톡과 인스타그램에 공개하는 모든 콘텐츠가 라부부의 서사입니다. 이렇게 완성된 라부부의 인기는 시진핑 주석이 그토록 원했던 것을 획득합니다.

전랑 외교를 넘어설 소프트 파워

중국의 기술력은 모두가 인정합니다. 하지만 중국의 문화적 영향력에 관해서는 의문이 있었죠. ‘소프트 파워’ 얘깁니다. 아주 납작하게 정의하자면, 한 국가의 소프트 파워는 그 나라의 문화나 가치 등에 대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따라서 지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외치고 있는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의 소프트 파워를 깎아 먹는 전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권위주의 정부와 극심한 빈부 격차, 중국을 중심에 두는 중화사상까지 겹쳐 중국의 소프트 파워를 높게 평가하기는 힘들었죠.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이런 상황을 뒤집고자 했습니다. 중국이 해외 투자에 적극적인 이유도, 일대일로 구상에 진심인 이유도 소프트 파워야말로 21세기의 국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4년 시작된 공자학원(Confucius Institutes)은 일종의 ‘중국 문화원’의 개념으로 중국의 언어와 문화를 전파할 목적으로 세워졌습니다. 팬데믹 이후 실시한 비자 면제 확대 정책이나 2025년 7월에는 미국의 인플루언서들을 대상으로 중국 문화를 체험하는 초청 프로그램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죠.

하지만 효과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해외 투자나 일대일로 사업은 미국의 견제를 부르거나, 현지에서 중국 자본에 주요 자원이 예속되는 원인으로 지목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자학원 역시 미국 정부는 단순한 교육 시설 이상의 정치적 기관으로 의심하고 있고요. 인플루언서 초청 프로그램은 진행되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는 보도가 나온 상황입니다.

한 국가의 매력은 정부가 나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는 애써 왔죠. 그런데 라부부가 제3의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Made in China’라는 라벨이 가진 모든 부정적인 이미지가 라부부 앞에서는 쉽게 녹아 사라집니다. 소비자 주도의 트렌드가 만들어 낸 우발적 소프트 파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귀여움의 힘

라부부가 중국의 소프트 파워로서 가지는 최고의 장점은 단연 ‘귀여움’입니다. ‘귀여움’이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의 답은 1943년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가 ‘아기 도식(Kindchenschema)’이라는 개념으로 내놓았습니다. 귀여운 것들에는 보편적인 특성이 있다는 것인데, 인간의 아기와 유사한 특징 몇 가지입니다. 예를 들면 크고 둥근 머리, 통통한 볼, 크고 동그란 눈, 작고 짧은 코, 짧고 통통한 팔다리 등입니다. 이러한 특을 가진 존재를 만날 때, 우리는 시선을 빼앗깁니다. 뇌의 감정과 보상 관련 영역이 자극되죠. 말 그대로 ‘도파민’이 터지는 겁니다. 한 연구에서는 귀여운 사진을 본 참가자들이 더 신중하고 정확하게 주어진 동작을 수행했습니다. 쓰레기통에 귀여운 사진을 붙이면 사람들이 분리수거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요.

우리의 감정이 생존을 위해 프로그래밍된 결과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설명입니다. 인류라는 종이 번성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후손을 남겨야 하고, 따라서 아기를 보면 잘 돌보아 주고 싶은 욕구가 들도록 우리의 감정이 설계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귀여움이 세계를 구한다’라는 서술은 단순한 은유가 아닙니다. 실제로 귀여움은 우리를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스탠퍼드대학의 시안 응가이(Sianne Ngai) 교수는 귀여움이 연약함에 관한 감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작고 단순하며 위협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감상적인 태도라는 겁니다. 따라서 대상이 부상을 입었거나 어딘가 결핍이 있을 때 귀여움은 더해집니다. 연약하고 무해한 존재로서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고 소유욕을 촉발합니다. 귀여움이 팔리는 이유입니다.

철학자 사이먼 메이는 저서 《The Power of Cute》에서 귀여움이 현대 사회 전반을 관통하는 지배적 감성 코드로서 강력한 사회적 동원력을 갖는다고 주장하죠. 귀여운 존재들은 어른과 이이, 남성성과 여성성 사이를 오가며 그 경계를 흐려버립니다. 즉, 귀여운 존재들은 그 정체가 모호합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사람을 만날 때 의식하게 되는 모든 기준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연령, 성별은 물론이고 종(種)과 선악(善惡) 개념도 뛰어넘습니다. 하물며 국적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관세 정책은 힘에 의한 강요입니다. 미국을 소비하도록 전 세계에 강요하고 있는 겁니다. 반면, 소프트 파워는 소비자가 스스로 선택하게 합니다. 우리가 ‘독일산’ 자동차나 ‘일본산’ 정밀 기계에 신뢰를 갖고, ‘이탈리아산’ 가구를 선망하는 현상이 모두 소프트 파워의 결과입니다. 라부부의 귀여움은 중국이 기존의 이미지를 세탁하고 자체적인 소프트 파워를 구축하기에 아주 좋은 시작입니다.

중국의 진화

물론, 라부부 현상이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열기가 식으면 팝마트의 성장에도 한계가 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하지만 라부부는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중국의 브랜드들이 눈에 띄게 부상하고 있습니다. 라부부와 팝마트는 그중 하나일 뿐이고요.

요즘 중국에서는 챠지(CHAGEE)라는 밀크티 카페가 인기입니다. 스타벅스와 가격대가 비슷합니다. 저렴한 가격이 아니라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로 어필해 말레이시아 진출도 성공했습니다. 미국 LA에도 매장을 열었고요. 챠지는 지난 2025년 4월 뉴욕 주식 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을 마쳤습니다. 주얼리 브랜드 ‘라오푸 골드’, 핸드백 브랜드 ‘송몬트’ 등 브랜드 가치로 승부하는 중국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직 중국산의 이미지는 강제 노동과 유해 물질, 낮은 품질에 묶여 있습니다. 하지만 곧 달라질 겁니다. / 출처: Saturday Night Live
이러한 추세는 중국이 단순한 세계의 공장을 벗어나 ‘욕망의 생산자’로 발돋움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제 중국은 갖고 싶은 브랜드, 소비하고 싶은 브랜드를 만들 준비가 끝났습니다. 라부부의 출현은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었다는 얘깁니다. 중국이 만든 캐릭터 IP가 중국이 발명한 플랫폼을 타고 전 세계를 매료시켰습니다. 이 열풍이 꺼진다 해도 제 2의 라부부가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라부부는 달라지는 중국의 경제와 소프트 파워를 상징합니다. 그 변화의 진동은 전 세계를 흔들 겁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