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담배 가격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올리겠다는 겁니다. 액상 담배 관련해서도 규제 적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정은경 신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회의 질의에 “합성 니코틴 역시 건강에 유해한 만큼 일반 궐련 담배와 동일한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라고 답한 겁니다. 우리나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부처이니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닌가 싶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담배와 관련된 문제, 그중에서도 액상 담배와 관련해서 최근 10년간 논의만 이어졌습니다. 문제를 알고 있는데 대책은 내놓지 못했던 겁니다.
담배와 건강의 관계가 과학이라기보다는 사회학이라 그렇습니다. 게다가 액상 담배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담배와는 개념부터 다릅니다. 규제 밖에 있는 데다, 귀엽고 달콤합니다. 각국의 정부는 이미 규제에 나섰습니다. 우리는 이제 시작합니다.
흡연의 책임
담뱃갑에는 경고 문구가 있습니다. 끔찍한 사진도 있죠. 흡연자는 담배의 해악을 모르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몰라도 대강은 압니다. 그래도 흡연을 선택합니다. 그렇다면 흡연은 온전히 개인의 책임일까요? 애매한 질문입니다.
1951년, 3만여 명의 영국 의사 중 약 80퍼센트가 흡연자였습니다. 크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1940~1950년대는 담배 광고에 의사가 등장해 건강에 좋다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던 시절이니까요. 하지만 이후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이 점차 밝혀집니다.
의사들의 흡연율이 빠르게 줄어듭니다. 사회 전체로 보면 소득과 학력이 높을수록 흡연율이 낮아지는
현상이 각국에서 관찰됩니다. 건강 정보에 빠르게 접근하고, 금연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환경의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핀란드에서는 흥미로운
연구도 진행되었습니다. 2000~2001년에 실시된 헬싱키 건강 연구 자료를 분석한 것인데, 내 집을 가진 사람보다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의 흡연율이 높았습니다. 직업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남성의 경우 일반 사무직과 육체 노동직이 관리직이나 전문직보다 흡연율이 높았습니다. 여성의 경우 직위가 낮아질수록 흡연율이 증가했고요. 미국에서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금연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때, 산업 안전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한 사업장에서 금연 성공률이 2배 가까이 높게 나왔다는
보고도 있고요.
흡연은 개인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 아니죠. 오늘도 늦은 밤에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 먹는 누군가도 선택을 한 것이고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배달을 나서기로 한 배달 기사도 선택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의 이유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이고 사회입니다. 생명을 위협받는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의 흡연은 일종의 생존 본능입니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다시 일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죠. 이 선택은 위험한 환경을 사회가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도덕적, 윤리적 선택도 아니고 의지의 문제도 아닙니다.
담배 두둔하는 의사
이 세계는 불공평합니다. 우리의 건강도 마찬가지죠. 무엇을 먹고 얼마나 운동하며 어떤 환경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건강을 누리고 누군가는 질병을 얻습니다. 어린 시절의 영양 상태와 성장 환경도 당연히 중요하고요. 건강 불평등은 사회적 결과입니다. 이를 최대한 줄이는 쪽으로 정책이 움직일 때 ‘기회의 평등’이라는 시장 경제 논리도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흡연도 마찬가지입니다. 흡연과 금연 실패라는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개인의 선택 이외에도 많은 사회적 요인이 작동합니다. 따라서 흡연이 정말 문제라면, 적극적인 사회적 개입을 통해 해결해야 합니다. “의학이 문제를 지적하고 이론적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정치는 실천적 인류학자로서 실질적 해결 수단을 찾아야 합니다.” 현대적인 ‘공중 보건’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 루돌프 피르호(Rudolf Virchow, 1821~1902)의 이 말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피르호는 19세기 독일의 의사이자 정치가였습니다.
하지만 담배의 특성 때문에 의학과 정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습니다. 의학은 담배의 유해성을 밝혀내기도 했지만, 그 유해성을 제대로 인정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게끔 방해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노벨 생리학상 후보로 여러 차례 거론되었던 오스트리아의 생리학자
한스 셀리에 박사의 연구를 들 수 있습니다. 담배 회사의 돈을 받아 진행한 것으로, ‘스트레스 상황에서 흡연의 이점’을 강조했습니다. 캐나다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흡연 규제에 반대하는 증언을 하기도 했죠. 무엇보다 질병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병하며, 암이나 심장병의 주요 원인은 스트레스라고 강조했습니다.
셀리에 박사의 연구와 주장은 지금까지도 담배 회사의 방어 논리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질병이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하다’라는 논리는 21세기의 한국 법정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2014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약 533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6년이 지난 2020년 담배 회사들의 손을 들어 줬습니다. 인과 관계가 부족하다는 이유였습니다. 폐암은 비특이성 질환으로, 특정한 하나의 원인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병한다는 겁니다. 건보공단은 바로 항소했고, 곧 2심 판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담배계의 테슬라
정부도 담배 앞에서는 난처해집니다. 담배는 ‘적당한’ 중독 산업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통제 가능하다고 간주합니다. 가격이나 캠페인 같은 것으로 말입니다. 이를 근거로 우리 사회는 담배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담배가 있는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이득이라고 판단하는 겁니다. 특히 정부의 태도가 그렇습니다. 담배로 발생하는 세수를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2024년 우리나라에서 담배 판매에 따라 걷힌 세금은 약
11조 7000억 원입니다. 우리 정부 1년 총수입 규모의 약 1.8퍼센트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현대의 정부가 마냥 담배를 세수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의료 서비스에 재정을 투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소개한 건보공단의 소송도 그래서 가능했습니다. 장기간 흡연한 이후 폐암과 후두암을 진단받은 환자 3465명에게 공단이 지급한 진료비를 추린 것이 533억 원이라는 손해 배상 금액이었습니다. 즉, 흡연으로 인한 건강의 불균형은 의료 당국에 재정적 부담으로 돌아옵니다.
의료비를 정부가 전부 부담하는 영국 같은 경우에는 그 부담이 더 큽니다. 그래서 금연 정책에 더 조급합니다. 그런데 이런 영국 정부의 조급함과 흡연의 유해성을 더 이상 부인하기 힘들어진 담배 회사 사이에 합의점이 도출됩니다. 바로 태우지 않는 담배,
연기 없는 (smoke-free) 담배입니다.
말보로 담배로 유명한 세계 최대 담배 회사 ‘필립모리스’의 야첵 올차크 CEO는 실제로 영국에서 일반 담배 판매를 중단할 것을 영국 정부에
촉구했습니다. 그래서 회사의 미래를 연기 없는 담배에 걸고 있죠. 대로변은 물론 편의점에서도 자주 보이는 ‘아이코스(IQOS)’ 같은 제품이 대표적입니다. 담배를 ‘찌는’ 방식입니다.
실제로 여의도 파크원 빌딩에 필립모리스가 조성한 흡연 공간을 보면, 태우는 담배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야외 공간과 전자 담배를 위한 실내 공간을 분리하고 있습니다. 전자 담배로의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홍보 정책의 일환입니다. 내연차 회사의 미래가 전기차인 것처럼, 담배 회사의 미래는 전자 담배입니다. 담뱃잎을 직접 불에 태워서 연기를 흡입하는 방식보다 건강하다, 금연을 위한 중간 단계로 유용하다는 식의 마케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찌는 방식의 담배는 올차크 CEO에게 일종의 과도기적 상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흡연의 풍향계는 액상형 전자 담배 쪽으로 빠르게 방향을 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