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AI를 얼마나 체감하고 계신가요? 지난 2025년 7월 미국에서 관련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미국인의 절반은 AI가 우리 삶을 개선할 새로운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절반은 인류와 사회를 위협할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64퍼센트의 응답자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AI 사용을 피할 계획이라고 답했습니다. AI에 대해 긍정적으로 전망한 사람도 실제 사용할 의사가 없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어떨까요. 일상적인 업무에서 AI를 활용하고 있는 사람은 2024년 대비
2배로 늘어났습니다. 엄청난 속도죠. 하지만 진짜 숫자는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2배로 늘어나서 8퍼센트거든요. 물론, 한국과 미국의 정서는 조금 다릅니다. 한국만큼 새로운 기술에 열려 있는 나라도 드물 테니까요. 빠르게 수용하고 적응하죠. 한국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정기적으로 업무에 AI를 사용하는 근로자는 17퍼센트가 넘습니다.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미국보다는 사용 비율이 높다고 추정할 근거는 되겠습니다.
전문가들은 의견이 갈립니다. 사실,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소식은 AI가 몰고 올 생산성 폭발이라는 혁신의 청사진이 대부분입니다. 그 청사진에는 근거가 있고, 현실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돈이 AI 섹터로 몰리는 것이겠고요. 하지만, 좀 다르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AI가 어쩌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 목소리에도 근거가 있습니다. 경제적 근거입니다.
미국 경제 성장의 비밀
AI가 돈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는 이제 상식이 되었습니다. 그 상식을 숫자로 검증할 수 있을까요? 한때 월스트리트 최고의 환율 전문가로 이름을 알렸고, 지금은 데이터 분석 업체의 CEO로 활동 중인 옌스 노드빅이 계산을 해 봤습니다. 근거 데이터는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 관련 매출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전체의 AI 관련 지출액을 추산하고, AI 지출액이 창출해 낸 GDP 효과를 계산했습니다.
그
결과 2025년 AI 산업에의 투자는 미국 GDP의 2퍼센트를 차지하게 될 전망입니다. 성장률을 끌어 올리는 힘은 더 큽니다. 2024년 미국의 실질 GDP 성장률은 약 2퍼센트입니다. 2025년도 비슷할 전망이고요. 이 2퍼센트 중 0.7퍼센트는 AI 투자로 인해 발생하게 됩니다. 계산대로라면, 미국의 경제 성장 중 절반이 좀 안 되는 정도를 AI가 짊어지고 있다는 얘깁니다.
미국 대형 자산운용사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의 토르스텐 슬록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AI 붐에 따른 데이터센터 투자의 성장세를 경계합니다. 일반적으로 미국 GDP의 70퍼센트는 소비자 지출입니다. 그 결과 GDP 성장 동력도 주로 민간 소비에서 나옵니다. ‘소비의 천국’이라는 별명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겠죠. 그런데 2025년은 달랐습니다. 올해 상반기, 아폴로의 분석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한 투자와 소비자 지출이 각각 GDP 성장에
기여한 정도가 비슷했습니다. 소비는 침체하는데, 데이터센터로 흘러드는 돈은 늘어나면서 발생한 현상입니다.
그래서 질문이 나옵니다. AI가 거품인지, 혁신인지 묻는 질문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1990년대 말 닷컴 버블을 이야기합니다. 당시에는 IT스러운 기업명만으로 주식 시장에 상장되어 투자금을 빨아들이는 기업이 허다했습니다. 2000년 봄, 그 거품은 요란스럽게 터졌고요. 최근 월스트리트에서는 AI도 비슷한 길을 따르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기도 하죠.
개천에서 용은 못 나는 판
닷컴 버블 당시와 현재 상황을 비교해 보죠. 비슷한 점이 존재합니다. 혁신 기술에 대한 투자자들의 열광, 이 기술을 등에 업고 IPO를 추진하는 스타트업과 이를 통해 이익을 얻는 월스트리트의 관계, 그리고 기술의 미래에 국운을 거는 정부의 우호적 정책까지 똑 닮았습니다.
반면, 다른 점도 있습니다. 기술의 성격입니다. 인터넷은 일종의 새로운 공간이었습니다. 서부 개척 시대처럼,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섹터가 탄생한 겁니다. 그 새로운 공간에서 누구나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개방된 인터넷 생태계 안에서 작은 기업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에 도전할 수 있었죠. 필요한 것은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 연결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창고나 차고에서 전설이 시작되곤 했습니다.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기업들처럼 말입니다.
지금은 엄청난 투자 없이는 시작도 할 수 없습니다. 일단 AI 모델 개발에 필요한 엔비디아의 GPU가 너무 비쌉니다. 기술 장벽도 너무 높습니다. 이 시대의 최고 수준에 도달한
엔지니어가 아니라면, AGI를 목표로 달리고 있는 프론티어 AI 개발팀에는 명함도 내밀 수 없습니다. 돈과 기술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남은 기회는 오픈AI나 구글, 앤트로픽 등이 개발한 거대 AI 모델을 이용한 2차 서비스입니다. 필연적으로 AI 모델 개발사에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이 게임은 승자 독식입니다. AGI나 초지능에 먼저 도달하는 팀이 승리합니다. 데이터와 컴퓨팅 자원을 더 많이 쏟아부을수록 승률이 올라갑니다. 그래서 데이터센터 건설에 막대한 돈이 몰립니다.
사설 경제 부양책
인터넷 투자자 겸 분석가 폴 케드로스키도 엔비디아 매출을 근거로 관련 내용을
계산했습니다. 그 결과 AI CAPEX(Capital Expenditures, 기업이 미래의 이윤 창출이나 가치 증대를 위해 사용하는 장기적인 투자 비용)는 2022년 이전과 비교해 10배 이상 성장해 2025년 약 5200억 달러 규모로 추정됩니다. 철도나 인터넷 관련 인프라 투자 당시와 비교해도 엄청난 속도입니다. GDP 대비 투자 규모로 계산했을 때 닷컴 버블 당시의 인프라 투자 규모는 이미 넘어섰습니다. 철도 전성기 대비해서는 20퍼센트 수준이지만 짧은 기간을 고려하면 폭발성이 강합니다.
돈의 크기가 너무 크고 자본 투입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 이 투자액이 미국의 경제 관련 통계를 뒤틀고 있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앞서 함께 살펴본 숫자대로라면, 미국 GDP 성장률의 30~40퍼센트가량은 AI 섹터에의 투자에 기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돈의 대부분은 데이터센터 건설에 투입되고 있고요. 즉, 엄청난 데이터센터 건설 붐이 사설 경기 부양책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겁니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경제 상황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투자하기에 좋은 시절이 아닙니다. 금리는 높습니다. 트럼프발 관세 대란으로 경제가 가장 싫어하는 정치적 상황, ‘불확실성’도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그런데 지표가 묘하게 안정적입니다. 당장 불황이나 대공황이 일어날 것 같지 않다는 겁니다. 케드로스키는 이게 AI 투자금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없었다면, 2025년 1분기 미국 GDP 성장률은 -2.1퍼센트까지 하락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계산을 내놓으면서 말이죠.
문제는 AI 섹터가 당장 투자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산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AI로 일하는 사람의 숫자가 아직 소수라는 점이 이를 증명하죠. 그럼에도 미래에 대한 기대만으로 AI는 꾸준히 돈을 빨아들이고 있는 겁니다. 부자들의 돈만 빨아들이고 있는 게 아니죠. 엔비디아에, 테슬라와 메타, 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에 투자한 개미들의 돈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실리콘밸리 빅테크들의 미래까지도 빨아들이고 있고요.
철도와 데이터센터의 차이
오픈AI나 앤트로픽을 제외한 구글이나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의 프론티어 AI 기업은 돈을 잘 법니다. 벌어서 AI 분야에 투자하면 되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들은 돈을 빌려서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난 6월 메타가 AI 인프라 확장을 위해 290억 달러 규모의 자금 조달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 중 260억 달러는 대출로, 30억 달러는 지분 투자 형태로 조달합니다.
260억 달러를 은행에서 빌린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대출을 받으면 부채가 늘어나 재무제표가 빚투성이처럼 보이게 될 테니까요. 당장 주가가 떨어질 겁니다. 그래서 특수목적법인(SPV, Special Purpose Vehicles)을 설립합니다. 이 SPV가 대형 사모펀드로부터 데이터센터 건설에 필요한 돈을 투자받습니다. 260억 달러를 대출로 조달한다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메타도 30억 달러를 지분 투자를 통해 투자합니다. 이 지분 투자를 바탕으로 메타는 SPV를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계약을 맺게 됩니다. 이렇게 하면 빚은 SPV에 남고 메타는 데이터센터를 실질적으로 갖게 됩니다.
여러분이라면 SPV에 투자하시겠어요? SPV는 메타만큼 안전한 투자처일까요? 의견이 갈릴 수 있습니다. 다만, 메타와 SPV는 다른 회사입니다. 메타는 인스타그램으로 돈을 벌고, SPV는
2~3년 뒤면 낡게 될 GPU를 잔뜩 품은 거대 창고입니다. 데이터센터는 몇십 년 사용하는 철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프라입니다. 누군가는 메타에 투자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SPV에 돈이 흘러 들어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고도화한
금융 공학이죠. 문제는 정밀한 기계일수록 고장 나기 쉽다는 겁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말입니다.
모 아니면 도
AI 산업 바깥으로 눈을 돌려 보죠. 최근 1년간 미국 평균 전기 요금은 약 6.5퍼센트
상승했습니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 증가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실질 소비는 2024년 12월 이후
정체 상태입니다. 주택 건설을 포함해 AI 이외 분야에 대한
투자는 급락했습니다. 금리가 높으니 당연합니다. 결국, 고금리에도 성장을 이어 나가는 AI 투자가 경제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AI 섹터에 정체가 올 경우 이미 취약해진 미국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얘깁니다.
결론적으로 AI는 독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한 도시의 전력 사용량을 독점할 정도의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가 뇌관입니다. 경제 폭탄으로 전락할 수 있죠. 하지만 1990년대의 닷컴 버블과는 위기의 성격이 다릅니다. 우리는 이 혁신의 존재를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승자가 정해졌을 때, 혹은 전력이나 데이터 부족으로 성장이 정체했을 때 AI를 향한 투자는 증가세를 멈추게 될 겁니다. 그 때 AI가 생산력 폭발을 충분히 이루어 내지 못한다면, 경제는 흔들리겠죠. 그 반대라면,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계산해 봤던 이 모든 숫자의 의미를 지워 버리는 혁신과 만나게 될 테고요.